02 - 산업계 중심의 혁신 리더십 실현
산업계 중심의 산업기술 지원체계 전환
기업의 R&D 투자는 지난 30년간 양적으로 크게 확대되어 왔다.
지난 10년간만 하더라도 2006년 21.1조 원에서 2015년 51.1조 원으로 두 배 이상 성장하면서, 국가 경제의 핵심으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기업의 R&D 투자 증가율이 2011년 16.4%에서 2015년 2.6%로 급락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상황이다.
특히 글로벌 경제에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기업의 R&D 투자의 회복을 낙관할 수 없는 분위기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신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 R&D 리더십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 주도로 수립/추진되어온 산업기술 혁신정책을 산업계/수요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정부 주도로 산업 혹은 R&D 지원정책의 개발·추진에 있어 산업계 R&D를 총괄 지원할 전략과 체계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산기협이 2017년 3월에 기업연구소 보유기업 34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25.7%가 ‘중장기적인 국가 R&D 전략 및 실천 계획 부족’을 현 정부 산업기술 정책에서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46.9%가 중장기 R&D 전략의 부재를 아쉬운 점으로 들어, 일관성 있는 중장기 산업기술 정책의 부재가 대기업 R&D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업계 중심의 혁신 리더십 실현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라 할 수 있다.
① '산업기술 당·정·산 협의체(가칭)' 운영
먼저 산업계 중심의 혁신 리더십 실현을 위한 구체적 추진과제로 「산업기술 당·정·산 협의체」(가칭)와 같은 공식적 협의기구의 운영을 검토할 수 있다.
급변하는 산업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산업계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산업계의 대표가 정책 결정자와 직접 만나 협의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한다는 게 산업계의 의견이다.
특히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책 수립 과정에 이해당사자이자 정책수요자인 산업계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이미 선진국들은 기업들이 장기 산업기술 정책 수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이 산업부흥 정책인 ‘High-Tech Strategy 2020 Action Plan’의 일환으로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Industry 4.0’의 경우 연방교육연구부와 연방경제연구부가 함께 참여하고 산학연관으로 구성된 워킹그룹을 통해 전체 전략이 만들어졌는데, 기업이 워킹그룹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총괄은 자동차 부품회사인 보쉬(Dr. Siegfried Dais)와 과학공학한림원(Prof. Dr. Henning Kagermann)이 맡았고, 5개 워킹그룹도 자동화기기 업체인 비텐스타인, 지멘스, SAP, 보쉬 등이 간사를 맡았다.
워킹그룹 멤버에 다임러(Daimler), 바스프(BASF) 등 11개 대기업이 산업계를 대표해 참여했는데, 전체 멤버 중에 산업계 비중이 가장 높게 구성되었다.
이런 운영 특성으로 인해 ‘인더스트리 4.0’이 기업 지향성을 크게 높일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업의 수요와 현재 상황, 미래 계획 등이 계획 전반에 투영되어 정책의 실행력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독일의 경우처럼 산업기술 정책 관련 기본 계획이나, 중장기 전략 수립 과정에 정책의 수요자인 기업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산기협이 제안하는 「산업기술 당·정·산 협의체」(가칭)는 정책 입안자인 국회(여당/야당)와 산업기술 관련 정부부처는 물론이고 산업계 인사가 참여하는 상설 정책협의기구의 성격을 가진다.
이를 통해 산업계 현장 전문가를 통해 분야별 의견을 정치권이 상시적으로 수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를 정부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산업계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는 공식 채널로서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② 일관성 있는 중장기 산업기술 정책 추진
지난 3월에 산기협이 기업연구소를 보유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산업계는 ‘잦은 정부 정책의 변화’, ‘이행 능력 미흡’을 어려움으로 호소하면서 정부 정책의 일관성(중장기 R&D 정책) 유지와 안정적 실천을 요구했다.
이 같은 문제의 이면에는 산업계 R&D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소규모 전문가 집단에 의한 R&D 정책의 기획·추진 방식이 존재한다.
즉, 산업기술계의 특수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표면적 현상에만 주목함으로써, 유행처럼 단명하는 정책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관성 있는 정책의 수립을 위해서는 먼저 산업계 R&D 현황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산업계 R&D 활동에서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빅데이터를 구축한다면,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 정책 추진 체계 수립도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범부처 차원에서 산업기술 관련 중장기 계획 및 제도의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추진해온 산업기술 관련 기본계획 등을 산업계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현장 수요 중심으로 범부처 차원에서 재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R&D 세제지원 제도와 관련 중장기 정책의 수립도 필요하다.
그동안 R&D 조세지원 제도의 잦은 변화로 인해, 기업의 R&D 투자에 불확실성이 상존해왔다.
특히 2013년 이후 매년 R&D 세액공제율이 하향 조정되고 있는데, 이는 미국, 일본, 중국 등이 R&D 부문에 대한 R&D 세액공제율을 상향 조정하는 것에 역행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새 정부에서는 세제지원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예측 가능성을 제고함으로써, 기업 R&D 투자의 불확실성 해소에 나서야 할 것이다.
수요기반의 국가 R&D 사업 혁신
정책단위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 R&D 사업 전반에서도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국가 R&D 투자의 핵심 플레이어인 기업이 국가 R&D 사업에서는 보조 플레이어로 전락했다는 시각이 산업계 전반에 팽배하다.
특히 정부 R&D 사업의 사업 기획·평가 과정에서 기업의 참여가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정부 R&D 사업 추진에 있어 기업 의견 수렴 체계가 미흡하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부분 기업의 참여는 사업기획 및 평가 시 개인 자격의 단발성 참여 형태가 대부분으로 산업계 수요를 대변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국가 R&D 사업은 부처별·사업별로 파편화되어 있어 산업계의 전략적 사업 참여를 저해하는 부분도 있다.
통합적인 전략 방향 로드맵이 없어 정부 R&D 투자 방향을 파악하기가 어렵고 사업수가 많아 적기에 적합한 사업을 찾아 활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기업들의 지적이다.
실제 2015년 기준으로 정부 R&D 사업(Program)수는 639개이며, 세부과제(Project)수는 무려 54,433개에 이른다.
이처럼 많은 과제를 관리하기 때문에 행정적 낭비요소도 적지 않다.
과제가 많다 보니 관리상 어려움으로 인해 협약체결이나 연구비 지급이 지연되는 등 R&D 사업을 차질을 빚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부처별로 독자적인 전문기관을 운영하기 때문에, 여러 과제를 수행하는 기업은 부처마다 다른 관리체계로 인해 이중삼중의 부담을 겪는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실제 현재 연구관리 전문기관은 15개 부처에 18개에 이르며, 각기 다른 연구과제 관리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추진과제로 산업계 전문가로 구성된 ‘국가 R&D 사업 기획평가단(가칭)’의 운영과 ‘국가 R&D 사업 운영 통합성 제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① ‘국가 R&D 사업 기획평가단(가칭)’ 운영
정부가 R&D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기업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산업계를 대표하는 전문가 집단이 충분하지 못한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부가 기업의 의견을 듣고 싶어도 전문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의견수렴이 제한적이었던 것이다.
산기협이 부분적으로 의견수렴의 창구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범부처적인 활용은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38,000여 명을 넘어서는 기업연구소 연구소장을 산업기술계 전문가 Pool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기업연구소 신고관리제에 의해 전국 단위의 전 산업분야에 모든 연구소장이 등록되어 있으며 그 데이터가 관리되고 있으므로, 이를 중심으로 ‘국가 R&D 사업 기획평가단’의 구성 및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평가단은 기술 수요 조사, 사업 기획, 과제 평가, 최종 평가 등 국가 R&D 사업 전 프로세스에 산업계 전문가로 참여하는 등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정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 등을 비롯해 관련 법령 혹은 규정에 반영함으로써, 전 부처가 활용하도록 근거를 마련한다면 모든 부처가 일관된 기준과 수요에 의해 정책을 추진하는데 보탬이 될 것이다.
② 국가 R&D 사업 운영 통합성 제고
수요기반의 국가 R&D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처별로 분산되어 있는 전략기술 육성 로드맵의 통합 운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서비스 로봇 육성 관련 로드맵의 경우 종합계획과 세부계획 및 로드맵 모든 부분에서 부처별로 유사한 계획을 수립·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전략기술 육성 로드맵이 중복됨에 따라 정부 R&D 사업에서도 중복 요인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산기협이 지난 4월 14일에 기업연구소 보유기업 515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기업들은 정부 부처 간 조정과 협력이 원활하지 않아서 R&D 사업의 중복성도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부처별·기술별로 분산된 전략기술 육성 로드맵을 통합하여 산업계 관점에서 재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복 부분을 조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백 부분이 발생하지 않도록 점검하고 추진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업구조를 단순화하고 기업의 권한 강화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기업 대상 지원과제는 전략기술 개발형, 사업화 지원형, 애로기술 해결형 등으로 구조화하고 세부사업 단위의 유사사업을 통합해야 한다.
응용개발 분야 과제는 반드시 기업이 참여하는 형태로 지원하고 기업에게 주관기관 역할을 부여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업 현장 수요에 기반한 산업기술 정책의 추진으로 혁신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에 슬기롭게 대처하여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