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1

01 - 산업계 R&D 현황과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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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석 교수 성균관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시스템경영공학과


뉴노멀(New Normal)은 현실이다. 정상(Normal)이었던 고성장은 이제 예외다.
 
비정상(Abnormal)이었던 저성장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기업들은 지난 수년간 어떻게 대응했을까? 우리 기업들은?

산업계 R&D에 대한 모든 질문과 답은 결국 여기서 시작한다. 일부 기업은 기술혁신의 가능성을 믿는다.
 
10%대의 기초/선행연구를 유지하며, 기술 기반 新시장 창출과 예외적 고성장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은 여력이 부족하다.

기술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기업들 – 인텔(Intel), IBM, 머크(Merck) – 조차 기초/선행연구를 줄이고, 사업화를 강조한다.

연구(Research)를 최소화하고, 2년 내의 개발/디자인/사업화에 주력해 압도적 경쟁우위를 확보한 애플(Apple)의 성공에 IT기업들이 끌려가듯이, 많은 기업들이 개발(Development) 100%의 R&D 예산 구조에 도달했거나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

저성장의 또 하나의 영향은 R&D 예산의 동결 또는 축소다. 늘어나는 기업도 충분하지는 않다.

복잡해지는 기술, 다양해지는 고객층, 높아지는 불확실성 속에 예산 제약은 뼈아프다.

인력, 설비, 자금, 지식 부족은 R&D의 실패율을 높이고, 폐쇄형 R&D의 한계를 가시화한다. 실패가 몇 번 반복되면, 사내에서 R&D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다.

사내 입지가 약화되고, 예산이 다시 줄어들고, 성과는 더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개발에 집중한 후 부딪치는 또 하나의 문제, R&D의 고효율화와 성과 창출이다.

선도 기업들의 해결책은 세 가지다.

첫째, 개방형 혁신 2.0이다. 1.0은 내부에서 부족한 기술지식의 흡수가 핵심이었다. 2.0에서는 광범위한 고객, 기업, 파트너, 시민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제품 단계에서 그대로 사용자가 된다.

부족한 자원의 외부 흡수와 ‘고객이 보장된’ 성과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방법이다.

둘째, R&D의 사업 인큐베이션 역할 강화다. R&D의 역할은 개발한 기술을 사업부에 이관하면 보통 끝이다.

연구원이 사업부로 전진 배치되거나, 산업에 따라 양산공정 적용이나 실증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나 사업 자체를 주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R&D의 입지를 강화하고, 시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직접 사업화를 주도하는 R&D 조직이 늘어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과 연계해 벤처캐피털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R&D는 시장에 보다 넓게, 깊이 개입한다. 시장지향형 성과 창출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다.

마지막은 불확실성 관리 역량의 강화다.
 
움직이는 타깃(Moving Target)부터 다양한 내외부의 위험들을 관리하기 위해 예측-전략 역량을 강화해 다양한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그에 따라 R&D의 기술과 사업 포트폴리오를 신속하게 조정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다.

일부 조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변화의 감지가 아니라 예측을 목표로 한다.

성과 창출의 두 가지 문제, 잘못된 방향 설정과 경직된 구조를 동시에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세 가지를 완성한 R&D 조직은 이제 기술과 사업의 플랫폼, 나아가 에코시스템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움직인다.

우리 기업들은 어떤 상황일까? 답은 표 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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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연구를 포기하고, 선행연구를 축소하며, 개발에 집중한다.

개방형 혁신은 1.0 단계이다.

그나마 내부 협력과 외부 지식 흡수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1.0 완성수준의 조직과 문화를 구축한 기업은 소수다.

빠른 기업도 7~8년이 소요되는 개방형 혁신 1.0과 CoE(Center of Excellence)를 선도 기업들은 이미 2000년대 중후반에 완성했다. 10년의 차가 있는 것이다.

R&D의 사업 인큐베이션과 벤처캐피털의 역할은 일부 대기업이 시도한 지 3~4년으로 아직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아가는 중이다.

가장 약한 것은 불확실성 관리 역량이다. 전략기획 Staff는 늘어났고, 우수하다. 최신 도구도 사용한다.

그러나 시스템은 옛날 그대로다. 정보 부족, 평가 역량 부족, 느린 프로세스, 쓰이지 않는 전략 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우수 인재와 최신 도구를 써도 옛 시스템에서는 결국 의사결정자의 역량이 그대로 불확실성 관리 역량이 된다.

투자는 늘렸는데, 수익은 그대로인 형국이다.
 
이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당연히 글로벌 플랫폼과 에코 시스템을 장악하기 어렵다. 디지털화는 중요하다.

그러나 R&D 조직의 변화가 없이는 성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적재산권 역량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술성과 없이 강한 지적재산권 역량은 의미가 적다. 무엇이 우선인지는 명확하다.

예산 제약 하에서 R&D의 사업 기여에 대한 요구를 만족시키려면 새로운 R&D 시스템으로의 전환, 그리고 그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작은 성공들이 필요하다.

산업계 R&D의 과제들은 수치로도 명확하다.

표 2는 1년 미만 과제의 증가와 그 이상 소요되는 R&D 과제들의 예산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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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미만 과제가 전체 예산의 93.2%를 차지하고 있으며, 3년 이상 걸리는 과제조차 기술수명이 긴 산업의 개발 과제인 경우가 많다.

우리 기업들은 모두 개발 100%로 움직이고 있으며, 연구자들이 기초나 응용이라고 생각하는 과제들조차 실제는 개발인 경우가 많다.

R&D 예산의 양적 확대 한계도 명확하다. 민간 R&D 투자 증가율은 2013년 7.72%에서 2014년 7.1%를 거쳐 2015년에는 2.57%로 급락했다.

대기업 연구소조차 R&D 예산 정부 의존도가 70~80%를 넘는 기업들이 있으며, 실제 대기업 투자 증가율은 2010년 21.1%에서 2015년 0.8%로 감소했다.

예산 동결, 감소 그리고 제약은 우리나라 R&D 조직 대부분이 처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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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의 성과가 글로벌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도 부정하기 힘들다.
 
2015년 기준 국내 기술수출은 104.1억 달러, 기술도입은 164.1억 달러로 60억 달러 적자다. 중소기업 중 수출 기업은 3%대이다.

일부 기업의 세계 1등 제품을 제외하고 나면, 산업계 R&D 성과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부족하다.

주요 업종별 기술 수준 평가(2016, 산업연구원)에서 제조업 전체 기술 수준은 세계 최고 대비 2015년 80.8%로 2011년의 81.9%에서 오히려 감소했다.

세계 최고 기술 수준에 도달한 기업 비율 역시 2016년 9.5%로, 2011년의 14.7%에서 큰 폭으로 감소했다.

R&D의 성과는 평균적으로 후진 중이며 예외인 산업이 없다. 예외인 일부 기업만 있을 뿐이다.

선도 기업들이 추진하는 R&D 조직 변화에 대한 대응도 느리다. IMD는 매년 국가경쟁력 지표를 발표한다. 2016년 우리나라의 산학 간 지식이전 순위는 34위, 기업 간 기술협력은 42위다.
 
OECD 국가 평균 대비 매우 낮다. 문제는 이 순위가 개선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산학연 협력과 오픈 이노베이션에서 우리 기업들의 발걸음은 느리고, 계속 느린 상태다.

외부 R&D 기관과의 협력 경험조차 없는 기업 비중도 높다. 대기업은 87.9%, 중견기업은 88.4%, 중소기업은 73.3%가 외부와 R&D 협력 경험이 없다(2016,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오픈 이노베이션 및 산학연 협력의 양적/질적 성과는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R&D 주도의 사업 인큐베이션은 일부 성공 사례가 있으나, 체계화된 기업은 적다.

삼성 벤처스, LB인베스트먼트 등 기업 벤처캐피털(CVC, Corporate Venture Capital)은 일부 활동하고 있으나, R&D가 주도하는 경우는 적다. 불확실성 관리 역량 역시 약하다.

국내 기업의 81.6%가 미래예측을 하고, 사업/기술전략을 수립한다. 대기업은 5~10명, 중소기업은 CEO/CTO를 포함해 2~3명이 투입된다.

기간은 1~2개월. 전략기획의 사내 공유도는 낮고, 계열사에조차 비밀인 경우가 많다.
 
결국 많이 만들지만 신뢰도는 낮고 실제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낮다. 산업계 R&D의 이런 문제들을 누가 해결해야 할까?

물론 기업 스스로가 해결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나 정답이 통할 만큼, 현실은 녹록치 않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연구원들의 회의와 무관심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번번이 좌초한다. 사업 인큐베이션은 기업 내 갈등, 시장의 변덕, 외부환경의 변화 속에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한다.

전략은 양산되지만, 대다수는 기각되거나 잊혀진다. 정부의 정책지원은 그래서 필요하다.

기업 스스로 하기 힘든 역량강화에 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이다. 산학연 협력 사업을 비롯해, 많은 협력 사업에 정부는 자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진짜 협력은 적고, 내용은 분업인 경우가 많다. 협력은 하지만, 솔루션 제공자는 빠진 채로 암중모색만 하는 경우도 많다. 정부 지원 산학연 협력 사업의 사업화 성공률이 낮은 이유다.

사업 인큐베이션을 돕기 위해 정부는 사업화 역량 강화사업을 시행하고, 실증, 인증, 테스트에 자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R&D 주도 여부는 관심사가 아니다.

사업화의 성패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고, 당연히 사업부가 인큐베이션의 중심이 된다. R&D의 사업 인큐베이션 역량은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이다. 불확실성 관리는 답이 없다.

어떤 전략 기획 시스템이 필요하고, 무엇을 지원해야 할지가 모호하다. 가시적이지도 않다. 자연히 전략기획 역량 강화를 위한 사업 자체가 적다. 정부는 산업계 R&D를 지원한다.
 
GDP 대비 지원 비율은 세계 수준이다. 그러나 효과는 제한적이다. 산업계 R&D의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정부 지원의 비효율성이다. 우리나라는 경제 추격의 상징과도 같은 국가다. 그 과정에서 R&D는 정책, 시장과 함께 한 축을 형성했다.

그러나 1997년 IMF 이후, R&D의 성장에 한 차례 단절이 발생했다. 그 단절은 오늘날 많은 기업에 약한 기술 기반, 공동화된 원천기술 역량이라는 문제를 가져왔다.

뉴노멀의 시대는 이제 또 한 번의 단절을 산업계 R&D에 가져오려 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사업 인큐베이션 역량, 불확실성 관리 역량에서 또 한번의 추격이 필요한 때다.

산업계 R&D의 혁신 시스템 추격과 이 시스템의 프런티어를 넘어선 고유의 혁신 시스템 구축이라는 과제가 오늘날 산업계 R&D 앞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