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혁신 아카데미 - 연구개발 기간 단축을 위한 실험계획법

혁신 아카데미는 혁신의 주요 이론과 개념을 소개하고 실제와 연계한 칼럼입니다.


14.PNG

이장욱 수석컨설턴트 씨앤아이컨설팅


실험계획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전에 기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개발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보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연구개발이라는 것은 크게 보면 무엇을 할 것인가와 어떻게 할 것인가로 구분될 수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해당 기업이 속한 산업 분야, 보유한 기존 제품들, 경영전략 등에 따라 연구개발 관심 분야가 다양하겠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은 고객에게 필요한 효용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많은 기업들이 환경 및 시장분석을 통한 기회 탐색, 기술/제품 로드맵, 기술 트리, 특허 맵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해서 연구개발할 만한 ‘거리’를 찾고 있다.

효용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연구개발 대상이 정해지고 나면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수준까지 잘게 쪼개고, 구체화시켜서 목적과 목표가 분명한 실행 단위인 프로젝트로 만든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잘 선정되었다면 남는 것은 어떻게 잘할 것인가로 공이 넘어온다.

이제 어떻게 잘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자.

어떻게 잘할 것인가를 정의해 보면 경쟁 제품이나 경쟁 기술이 가지고 있지 못한 어떤 효용가치를 더해 줄 것인가가 있을 것이다.

또, 있는 효용가치를 얼마나 최적화 또는 최대화시켜 줄 것인가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비용이나 시간, 공정 등의 측면에서 남들에 비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가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실험계획법은 두 번째와 세 번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다.

흔히들 하는 실험계획법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실험계획법을 쓴다고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담긴 오해이다.
 
이 질문은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더 좋은 제품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된 기업 연구개발 활동 전체를 통해 나오는 것이지 실험계획법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실험계획법은 하나의 훌륭한 도구일 뿐이지 정답을 알려주는 마법의 가이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또 한 가지 자주 받는 오해는 실험계획법을 사용하면 실험 수가 많이 늘어나고 불필요해 보이는 실험까지도 해야 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견해 역시 실험계획법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성급한 결론이다.

오히려 최소한의 실험을 통해서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가 좋은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개발기간까지 단축시킬 수 있어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실험계획법을 소개하기까지 서론이 길어졌다.

우선 실험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하면 실험(Experiment)은 쉽게 말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우리가 조절 가능한 여러 가지 요인들을 어떤 상태로 조절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는 일련의 인위적인 행위들을 지칭한다.

결과는 말 그대로 앞선 일련의 어떤 행위에 의해 나타난 출력 즉, 현상을 의미한다.

현상 자체는 직접적인 컨트롤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상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입력을 조절 또는 조작함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림 1은 이러한 관계를 표현한 그림이다.


15.PNG


실험은 원하는 현상(출력 변수)을 얻기 위해 제어가 가능한 요인(입력 변수)들에 계획된 변화를 주는 일련의 시험을 의미한다.

실험에 대한 정의를 했으니 이젠 실험을 어떻게 해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일반적으로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실험에 필요한 요인들과 조건을 경험과 직관에 의해 정하고 시도해 보는 방식이다.

해당 분야에 경험이 많은 전문가인 경우 이런 실험을 통해 단시간에 원하는 결과를 얻기도 한다. 반대로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대략적인 감을 잡기 위해 이런 실험 방식으로 접근을 한다.

이를 Trial and Error, 시행착오 실험이라 한다.

두 번째는 실험에 관여되는 여러 가지의 제어 가능 요인 중 한 가지의 요인에 대해서만 조건을 변화시키고, 나머지 요인들에 대해서는 일정한 조건으로 고정시킨 후 나타나는 결과를 보는 실험 방식이다.

연구논문이나 기술 자료들을 보면 가장 많이 하는 실험의 유형이다.

여러 가지 요인에 대해 각각의 조건을 동시에 변화시키면 나타난 결과에 대해 어떤 요인이 얼마나 영향을 준 것인지 해석이 곤란해지기 때문에 한 번에 한 요인만을 변화시키는 One Factor At a Time(OFAT) 실험이 가장 많이 사용 되지만 얻어진 결과에 대해선 항상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고정된 나머지 요인들 중에서 결과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 있다면 OFAT 실험을 통해 얻어진 결과는 어디까지나 나타날 수 있는 결과들의 극히 제한된 한 단면만을 보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고자 영국의 통계학자이자 유전학자인 Ronald Fisher에 의해 1920년대에 고안된 것이 실험계획법이다.

실험계획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요인들을 동시에 변화시켜 보는 실험을 Design 하고, 나타난 결과에 대해서도 각각의 요인들이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리해서 해석할 수 있다.
 
종래의 OFAT 실험이 한 번에 한 가지 요인만을 변화시킴으로서 그 요인에 대한 영향도만 파악할 수 있었다면, 실험계획법은 결과에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예상되는 여러 개의 요인을 동시에 변화시키면서 각각의 요인에 대한 영향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효율성의 측면에서 우선 앞설 수밖에 없다.

효과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한 가지 요인만을 고려하여 최적화에 접근하는 것과 여러 개의 요인을 동시에 고려하여 최적화를 하는 것은 단면만 보고 결론을 내리느냐 입체적으로 보고 더 좋은 결론을 찾느냐 하는 차이가 존재한다.

여러 개의 요인을 동시에 고려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장점은 요인들 간의 상호작용(Interaction)효과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다루는 어떤 분야의 실험이든 단 한 개의 요인만으로 실험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다.

빵을 굽는 실험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빵을 굽기 위해 필요한 요인들을 생각해 보면 제빵사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빵을 굽는 온도, 시간, 반죽의 무게, 부피 등이 최종적인 빵의 구워진 정도, 색깔, 부피 등의 결과에 영향을 주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때 빵을 굽는 온도는 굽는 시간과는 아무런 상호작용이 없을까?

모든 요인들이 실험 상황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호작용이 존재하는 요인들이 있고, 나타난 상호작용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결과에 영향을 준다면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실험계획법을 통한 실험에서는 OFAT 실험에서 고려할 수 없었던 두 개 이상의 요인들이 서로 섞였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새로운 효과까지 파악이 가능해진다.

그림 2를 통해 상호작용(교호작용)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16.PNG


온도와 압력이라는 두 개의 요인으로 4개의 조합을 만들어 실험을 하였다.

Y1 결과의 경우는 온도를 올리면 결과값이 증가한다.

압력이 2기압일 때와 4기압일 때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온도의 증가에 따라 결과가 증가하는 경향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온도와 압력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경우이다.

Y2의 경우는 온도를 올리면 결과값이 증가한다. 2기압과 4기압일 때 모두 온도를 올리면 증가한다는 점은 같지만 증가폭이 달라졌다.

온도에 의한 효과의 경향이 압력이 어떤 값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요인들 간에 서로 상호작용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Y3의 경우는 더 극적인 반전이 있다. 압력이 어떤가에 따라 온도의 효과가 반대로 나타난다. 역시 상호 작용이 있는 경우이다.

근대 이후로 기술의 진보가 급속도로 이루어짐에 따라 연구개발자가 좋은 제품, 좋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해야 하는 실험의 양상도 복잡해졌다.

실험계획법에 대한 교재나 인터넷을 통해 실험계획법에 대해 검색을 해보면 제품의 특성에 영향을 주는 여러 가지 요인을 선정하고 실험을 실시하여 요인들의 영향 및 관계를 파악하고 최적 조건을 최소의 실험 횟수로 찾아내는 통계적 방법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

글 서두에서부터 지금까지 짧은 지면의 내용만으로 실험계획법에 대한 이와 같은 정의를 충분히 설명해 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실험계획법에 대해 모르거나 일부 알고 있는 경우 종종 오해하는 두가지의 경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실험계획법을 사용한다고 더 좋은 제품이 개발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일정 부분 기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Yes’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 오해인 ‘실험 수가 많이 늘어나고 불필요해 보이는 실험까지도 해야 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변을 드리고 싶다.

만약 내가 전문가이고 한두 번만의 실험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일 수 있다. 굳이 실험계획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권유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한두 번 만에 최선을 찾을 수 없고, 여러 개의 요인을 동시에 다루어야 하며 상호작용까지도 파악해야 한다면 실험계획법을 반드시 권유하고 싶다.

실험 수가 많고, 불필요한 실험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는 아마도 단번에 원하는 결과를 얻고 싶어 하는 급한 마음과 실험계획법을 배우고 결과 해석을 위한 통계적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4월호에 게재한 ‘연구개발자가 꼭 알아야 할 기초통계’에서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훌륭한 운전자는 누구나 쉽게 될 수 있다. 운전면허시험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만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