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무비 & 사이언스 - 너의 마음을 들려줘 - 뇌 인터페이스

무비 & 사이언스는 영화 속의 상상력이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진 과학기술들에 대해 살펴봅니다.

글_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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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다 감전 사고를 당해 기절한 닉(멜 깁슨 분). 깨어난 보니 여자들의 속마음이 그대로 들리는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

영화 <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 2000) >의 닉처럼 여자들의 마음이 들리면 좋겠지만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처럼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연애 중이거나 결혼 한 남자들은 닉의 능력이 부럽기만 하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인간의 마음도 과학의 탐구 대상이며, 뇌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 매트릭스 >가 만든 두려운 세상

‘진심’, ‘속마음’, ‘꿍꿍이’, ‘심중’, ‘내면세계’ 등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많은 단어들이 있다. 마음과 관련된 단어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즉 누구나 알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시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유명한 대사 ‘브루투스 너 마저’라는 말을 남기고 배신자들에 의해 제거 당했다.

역사 속에서는 시저처럼 측근의 배신으로 권좌에서 밀려난 권력자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러기에 권력자들은 믿을 수 있는 심복을 곁에 두려고 했고, 그들에게 심중에 있는 말을 했다. 심복을 믿을 수 있는지는 그들의 심중이 아니라 ‘두중(頭中)’ 즉 머릿속을 살펴야 했다.

말이나 행동은 이미 뇌에서 컨트롤 된 것이므로 사람의 마음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뇌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
 
1919년 미국의 한 지방 신문의 기사에는 뇌의 반응을 확인해 그 내용을 기록한다는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당시에는 소설 속에 등장할 황당한 이야기 정도로 여겨졌지만 불과 5년 만에 독일의 의사 한스 베르거가 뇌파를 측정하는 데 성공한다.

뇌를 읽고 기록한다는 아이디어가 등장한 지 채 100년이 되지 않았지만 이젠 다양한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Brain Machine Interface)가 등장했고, 뇌 과학과 공학이 연결된 뇌 공학까지 출현하게 되었다.

뇌를 공학적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자칫 < 매트릭스(The Matrix, 1999) >와 같은 세상이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머리 뒤쪽에 구멍을 뚫어 컴퓨터와 연결하는 침습적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를 통해 인간을 가상의 세계 속에 가둬 둔다는 것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물론 현실에서 침습적 BCI는 제한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단지 실감나는 게임을 즐기기 위해 머리에 구멍을 뚫는 위험을 감수할 이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가상의 세계 속에 빠트린다는 설정은 중국 장자의 ‘호접몽’에도 등장한다.

호접몽은 인문학적 상상에 불과하지만 < 매트릭스 > 속의 상황은 과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 아바타 >를 통해 보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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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 >가 보여주는 BCI의 세상은 어둡고 암울하게 느껴지지만 현실에서는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1998년 미국의 신경과학자 케네디는 사지마비 환자의 머릿속에 조그만 전극을 삽입해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커서뿐 아니라 타이핑이나 인터넷 검색, 다양한 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는 정도에까지 장치의 성능이 향상되었다.
 
‘브레인 게이트(Brain Gate)’와 같은 두뇌 임플란트 칩은 마비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써로게이트(Surrogates, 2009) >의 경우 환자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자신을 대신해 로봇들을 활용한다.

인간들은 어두운 실내에서 안마의자처럼 생긴 BMI 장치를 통해 자신의 아바타인 대리 로봇을 조종해 직장이나 업무, 심지어 연애도 한다. 위험하거나 힘든 일을 대신하기 위해 만든 대리 로봇이 남용되는 사례를 보여준다.

< 아바타(Avatar, 2009) >도 < 써로게이트 >와 마찬가지로 대리 역할을 하는 아바타를 활용한다.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샘 워딩튼 분)는 과학자들이 만든 나비(Na’vi) 휴머노이드에 접속해 조종하는 일에 참가한다.

하반신 마비로 인해 휠체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제이크가 아바타를 통해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제이크의 아바타는 BMI를 이용해 서로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독립된 개체인 나비족처럼 느껴진다.

정신이 나비 아바타 속에 들어가 재신체화(Reembodiment)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제이크는 자신이 나비족인지 인간인지 정체성에 갈등을 겪기도 한다.

< 써로게이트 >에서는 모든 것을 로봇에게 의존해 나약해진 인간을 묘사하고 있지만, < 아바타 >에서는 BMI와 휴머노이드 아바타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이점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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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2002) >에서는 3명의 예지자들이 본 미래를 뇌 인터페이스를 통해 영상으로 출력해 범죄를 예방한다.

이처럼 뇌 인터페이스는 뇌의 신호를 기계나 컴퓨터에 전달하는 것뿐 아니라 뇌에 저장된 정보를 읽어낼 수도 있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와 같이 실제로 뇌에서 정보를 얻는 장비도 존재한다.

fMRI는 자극에 대해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조사한다. 아직까지는 해상도가 낮아 영화 속에서처럼 생생한 영상을 얻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 점점 해상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면 반대로 지식을 뇌로 업로드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지식을 읽어내는 것도 어렵지만 지식을 업로드 해 뇌를 원하는 대로 구성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 이를 회의적으로 보는 이도 많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사지마비 환자가 뇌파를 이용한 외골격 로봇을 입고 시축해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사람과 동물 또는 사람끼리 생각을 주고받는 뇌-뇌 인터페이스 기술도 등장했다.
 
뇌 인터페이스 기술은 의료뿐 아니라 오락이나 스포츠, 교육, 훈련 등 다양한 활용처가 존재한다. 생각만으로 드론을 움직여 전쟁하는 것이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기계들이 전쟁한다는 것을 마치 터미네이터의 등장처럼 여길수도 있지만 전장에 인간 병사가 등장하지 않을 경우 전쟁의 양상은 완전 달라진다.
 
컴퓨터는 사물 속으로 들어가 사물인터넷 환경이 조성되고 있고, 이것을 뇌 인터페이스를 통해 편리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영화와 비교하면 지금의 뇌 인터페이스는 걸음마 단계이지만 < 트랜센던스(Transcendence, 2014) >에서처럼 ‘마인드 업로딩’ 기술까지 발전할지도 모른다.

만일 마인드 업로딩이 실현된다면 세상의 모습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의 주장처럼 특이점이 올지 알 수는 없지만 뇌 인터페이스 기술이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