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문화 - 로봇과 인공지능, 이제는 예술에까지
과학과 문화는 과학과 인문, 사회, 문화, 예술 등을 접목,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학기술 이야기를 다룹니다.
글_임동욱 연구교수(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전제품과 교통수단을 중심으로 ‘자동화’의 열풍이 한창이었다.
사람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집안일이 처리되고 먼 곳으로 운전이 가능한 세상이 이상향처럼 그려졌다. 그런데 지금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앗아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컨설팅회사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최근 보고서에서 15년 안에 로봇 자동화에 의해 사라지는 직업의 비율을 미국 38%, 독일 35%, 영국 30%, 일본 21%로 예측했다.
영국의 싱크탱크 리폼(Reform)은 2030년까지 영국 정부 소속 관리직 공무원의 90%와 공중보건의 수만 명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때문에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인간만의 영역은 어디까지 축소될까. 심리학과 교육학 분야에서는 인간만이 가지는 능력으로 ‘공감’과 ‘창의성’을 꼽는다.
공감은 상대방의 마음 상태를 읽어내서 그에 적합한 행동을 할 줄 아는 능력을, 창의성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시행착오를 통해 다듬어서 세상에 새로운 방식을 소개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마저도 신기술에 의해 인간 독점체제가 깨지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지원으로 프랑스에서 개발한 로봇 페퍼(Pepper)는 사람의 표정을 인식해서 대화를 이끌어간다.
실제 점포에서 판매원으로 활약 중인 페퍼는 손님의 얼굴이 슬퍼보이면 농담을 던져서 호감을 높이고 선택을 주저하면 제품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설명한다. 조만간 내 손을 잡고 등을 토닥이며 공감을 해주는 도우미 로봇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창의성은 인간의 전유물일까. 요즘 등장하는 소식을 보면 더 이상 안심할 수가 없다. 음악, 미술, 문학 등 창의성의 대표 분야로 꼽히는 예술계에서도 소프트웨어와 로봇의 약진이 생각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음악 분야부터 살펴보자. 클래식 대가들이 작곡한 음악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정화되고 정신이 한 단계 고양되는 느낌을 받는다.
흔히들 ‘기계’라고 불리는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작곡해도 이런 효과가 나타날까. 1950년대부터 자동 작곡 프로그램이 개발됐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일정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예일대에서 개발한 쿨리타(Kulitta) 알고리즘은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였다.
사람이 만든 곡과 쿨리타가 만든 곡을 섞어서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더니 대부분 구별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디와 리듬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구글은 마젠타(Magenta) 프로젝트를 통해 자동 작곡에 도전 중이다. 한쪽에서 사람이 건반을 누르면 그에 맞춰 마젠타가 음악을 이어서 연주하는 동영상도 공개된 바 있다.
아직은 크게 감명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알파고처럼 큰 충격을 주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한편 소니의 컴퓨터과학 연구소에서는 딥바흐(DeepBach)라는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바흐 스타일로 음악을 작곡하는 소프트웨어인데 1,60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40퍼센트 가까운 사람들은 딥바흐를 실제 바흐의 곡으로 혼동했다.
유튜브에서 DeepBach로 검색하면 문제의 곡을 들어볼 수 있다. 이런 곡들은 누구에게 저작권을 지불해야 할지 논쟁이 될 만하다.
순수 작곡은 아니더라도 컴퓨터가 사람을 대체할 음악 분야는 많다. 지난해 말 영국 파이낸셜타임즈는 ‘로봇 음악 산업의 부상’이라는 기사를 통해 선곡이나 믹싱 등 음악 분야에서 소프트웨어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컴퓨터가 내 기분을 파악해서 그에 맞는 음악을 틀어준다면 굳이 사람을 DJ로 고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미 스포티파이(Spotify) 같은 유명 업체들이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회원별로 추천 음악을 선곡해준다.
뮤지션을 선발할 때 컴퓨터가 심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영국의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 음반사는 인터넷 동영상 분석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실력 있는 가수와 밴드를 발굴하고 있다.
미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이 그린 그림의 밝기나 색채를 조절하는 수준을 넘어서 소프트웨어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시대가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네덜란드의 미술관과 협업해서 만들어낸 넥스트 램브란트(Next Rembrandt) 프로그램은 유명화가 램브란트의 작품 346점을 정밀하게 분석해서 그와 유사한 화풍으로 새 그림을 그려준다.
지난해 초 공개된 그림은 램브란트가 살아생전 그렸다고 해도 믿을 만큼 흡사한 스타일을 보였다. 3D 프린터와 연결한 덕분에 화가의 붓질까지 입체적으로 살려내 찬사를 받았다.
지난해 3월에는 구글의 인공지능 이미징 프로그램 딥드림(DeepDream)이 그려낸 작품이 실제 경매에서 8,000달러에 판매되어 화제를 모았다.
사람이 그리지 않은 그림도 정식 미술품으로 인정받을 날이 머지않았다. 그래도 “기계가 만들었으니 별 가치가 없다.”고 한다면 이 농담을 되새겨볼 만하다.
어떤 사람이 “컴퓨터는 반고흐처럼 명작을 그려내지 못해.” 하고 지적하자 컴퓨터가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당신도 못 그리잖아.” 특정한 인물이 가진 창의성을 일반인 전체에 적용할 수 없다면 기분은 편치 않아도 인공지능이 예술의 영역에 발을 들일 자격까지 인정해야 하는 셈이다.
문학에서도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나고야대학교에서 개발한 인공지능이 단편소설을 써서 호시 신이치(星新一) 문학상 예심을 통과해 주목을 받았다. 시작도 그럴싸하다.
“그날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 찌푸린 날이었다. 방 안은 여느 때처럼 최적의 온도와 습도였다. 요코는 흐트러진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시시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이 작품은 본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개발팀은 “인간의 도움 없이 인공지능 스스로 쓴 글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유사 프로그램들의 도전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번 문학상에는 총 1,400여 편의 소설이 접수됐는데 그중 11편이 인공지능의 작품이다.
누군가는 “인공지능은 시를 쓸 수 없다”고 했지만 구글은 이미 스탠퍼드대학교와 함께 순환신경망 언어모델(RNNLM)을 이용해 시를 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냈다.
“세상에는 나 이외에 어느 누구도 없다. 아무도 보이는 사람이 없다. 중요했던 유일한 사람들이었고, 남아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나와 함께해야 했고, 그녀는 그와 함께해야 했다. 나는 이럴 수밖에 없었다. 그를 죽이고 싶었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그에게 매달렸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읽는다면 사람이 쓴 작품이라 믿을 만하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기계는 인간을 뛰어넘지 못 한다”는 말로 위안을 삼곤 했다.
그러나 공감과 창의성이 필수적인 예술 분야에까지 인공지능과 로봇이 진출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제는 기존의 교육체계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정의까지 새롭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