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 산업체 주도의 산학연 연구 협력 활성화 방안
▲ 이병헌 교수 광운대학교 경영대학
산학연 연구 협력의 현황
우리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을 마주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 사물인터넷 등과 같이 기존의 산업 질서를 파괴하는 급진적인 혁신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기술과 산업의 수명 주기도 더욱 단축될 것이다.
기업들이 이러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체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외부의 기술과 연구개발 자원을 활용하는 개방형 혁신 전략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의 자발적 투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산학연 연구 협력은 낮은 수준이다.
KISTEP의 연구활동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정부 출연(연)의 연간 연구비 6조 9천억 원 중에서 민간 기업체로부터의 R&D 과제 수탁을 통해 조달되는 연구개발비는 1,174억 원으로 전체 출연(연) 예산의 1.7%에 불과하다.
대학의 경우도 전체 연구개발비 6조 원 중에서 민간 기업체 수탁을 통해 조달한 연구개발비는 7,000억 원으로 10%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기업체의 연구개발비 투자 형태를 보면, 민간 기업체의 전체 연구개발비 48조 6천억 원 중에서 출연(연)이나 대학에 지출되는 연구비 비중은 1.7% 수준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통해, 산학연 공동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표 1과 같이 2015년 기준 10,122개의 공동 연구에 6조 1,118억 원의 연구비가 투입되었다.
전체 연구과제의 22.5%, 전체정부 지원 연구비의 38.8%에 달한다.
과제당 연구비를 비교하면 공동 연구 과제 6.04억 원으로 단독 연구과제의 2.77억 원보다 2.18배 큰 규모이다.
최근 3년간 산학연 공동 연구 지원 규모는 과제 수행 건수를 기준으로 연평균 39.7% 증가한 것이다.
산학연 협력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크게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산학연 공동 연구개발 성과를 토대로 한 기업체로의 기술 이전 건수나 기술료 징수액이 감소 추세이다.
공동 연구 결과물의 사업화 건수도 감소 추세이다.
대학교와 산업체 간의 연구 협력의 정도에 관한 세계경제포럼의 조사 결과를 보면, 7점 만점에 우리나라는 4.6점으로 핀란드 6점, 미국 5.8점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산학연 연구 협력의 문제점
우리나라 산학연 협력연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술공급자 주도의 협력이라는 점이다.
산학연 협력연구가 기업의 자발적 필요와 투자에 의해 이루어지기보다는 정부의 연구비 지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연구개발사업들이 산학연의 공동 참여를 요구하고 있고, 이러한 사업으로부터 연구비를 조달해야 하는 대학이나 연구기관들이 주도적으로 과제를 기획하고, 기업들을 물색하여 공동 연구에 참여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해당 연구개발 과제가 자신들의 내부 기술개발 과제나 사업전략과의 연관성을 고려하지 않고, 그동안의 친분에 의해 참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산학연 간의 공동 연구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문제점은 정부 각 부처에서 추진하는 산학연 협력연구 사업들이 대부분 특정 기술을 개발하는 과제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 협력 주체들의 특성을 반영한 차별화된 프로그램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첨단 분야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고자 하는 대기업이나 벤처기업들과 연구 중심 대학 간의 공동 연구개발과 지역 중소기업과 지역 대학들 간의 공공 연구개발은 개발하는 기술의 특성이나 요구되는 협력 연구의 방식이 다르다.
그러나 정부의 산학연 공동 연구개발사업은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또한 연구개발인력이나 자금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고 연구관리 체계도 갖추고 있는 대기업들과, 인력이나 자금이 충분하지 않고 연구관리 시스템도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들 간에 참여 조건이나 지원 방식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다.
세 번째 문제점은 국가의 산업기술 혁신 정책이나 중소기업 기술혁신 정책의 수단으로 산학연 연구 협력에 지나친 기대를 갖고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기술통계조사의 결과를 보면, 기술수요자인 중소기업들도 공공 연구기관이나 대학과의 협력을 크게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1에서와 같이, 중소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기술개발 지원 형태는 중소기업 단독 개발에 대한 지원이며, 공동 개발에 대한 지원의 선호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연구 중심인 대학, 원천기술 개발을 위주로 하는 정부출연연구소와 중소기업 간 공동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중소기업의 부족한 기술력을 대학 및 연구소의 기술과 인력을 통해 보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개발된 기술들은 중소기업이 이전 받아 상용화하기에는 기술의 성숙도가 낮고, 위험성이 큰 경우가 많아 공동 연구를 통해 개발된 기술이 중소기업에 이전되어 사업화되는 확률은 매우 낮다.
단기적인 사업화를 중시하는 중소기업과 기초원천 기술개발에 관심이 있는 대학 및 연구소의 연구자들 간에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인하여 실질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데 실패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산학연 협력 연구의 추진 거버넌스에 관한 문제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산학연 공동 연구 과제의 규모가 커지고, 참여하는 연구기관과 연구자들의 숫자가 매우 큰 대형 공동 연구들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조정하고 통제하는 장치인 협력 거버넌스는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협력연구에 참여하는 기업체, 대학, 연구기관들의 역할, 책임과 권한 등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성과물의 활용 주체와 활용 방식, 성과에 대한 참여자 보상 체계 등이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 또한 많다.
산학연 연구 협력의 성과 제고를 위한 차기 정부의 정책 과제
차기 정부는 산학연 협력 연구에 대한 양적인 지원 확대보다는 지원 사업의 내용과 방식을 혁신하여 성과를 제고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산학연 협력 연구에 공공 연구기관이나 대학을 과도하게 동원하기보다는 각 혁신주체의 연구 영역과 핵심역량을 고려하여 제한된 범위에서 협력하되 각각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추진체계를 개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기술개발 중심의 산학연 협력연구를 지양하고, 협력 연구 사업에 참여하는 산학연 혁신 주체들의 니즈와 역량에 따라 정부의 지원 목표, 내용 및 방식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정부가 지원하는 모든 산학연 협력 연구에 있어서 산업체 주도의 협력 연구 거버넌스를 확립하는 것이다.
산학연 협력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업을 통해 기술이 사업화되는 것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과제의 발굴과 기획, 연구 수행, 연구 성과의 활용 및 사업화 등 연구개발 전주기에 걸쳐서 기업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특정 기술 및 업종별로 중소기업 경영자, 대학 및 출연(연) 연구자, 벤처캐피탈 등 기술투자금융 기관의 전문가, 기술경영 전문가, 해외의 기술 및 사업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분야별 연구클러스터 활동을 통해 새로운 기술개발 및 사업화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원할 필요도 있다.
둘째, 정부가 지원하는 산학연 협력 연구에 있어서 참여 주체들의 권한과 책임, 그리고 보상체계를 합리적이고 명확하게 설정하도록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리규정 등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특히, 협력 연구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의 책임과 그에 따른 보상체계를 명확히 규정하고, 연구 성과물의 사업화에 관한 기업의 책임과 권한 범위도 명확히 설정하면서 그 이행 여부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셋째, 대학이나 연구기관과의 협력 연구보다는 기술력이 있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동종 또는 이종 업종의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이 참여하는 연구개발 및 사업화 컨소시엄을 지원하는 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공급 사슬상의 R&D, 생산, 유통·판매 전문 중소기업들이 협력하여 신사업 공동 개발을 위한 협업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경우 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넷째,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첨단 기술 분야를 대상으로 중견기업이나 벤처기업들이 주도하는 협력 연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이 주관기관이 되어 과제의 기획과 수행을 주도하고, 국내외 대기업은 수요자(구매자)로, 대학과 출연(연)은 기술 지원으로 참여하는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혁신역량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해서는 산학연 협력 연구를 기술인력 지원 사업과 연계하여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각 지역별로 중소기업과 대학이 정부가 지원하는 R&D 사업을 매개로 하여,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고 충원할 수 있도록 대학(원)생을 중소기업에 파견하는 공동 R&D를 지원하거나, 공동 연구 수행기업들이 연구에 참여한 졸업생을 채용할 경우 일정 기간 임금의 일부를 연구비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고려할 수 있다.
여섯째, 지역별 대학과 중소기업 간 협력 연구 사업은 중앙 정부보다는 지방 정부 중심으로 추진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따라서 지방 정부가 이러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중앙 정부가 매칭자금을 출연하여 각 지방 정부들로 하여금 이러한 지원 사업을 추진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 기술혁신 지원정책의 지방분권화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