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산업기술 지원정책 방향과 과제
▲ 이부형 이사대우 현대경제연구원
산업·기술 캐치 업(Catch-up) 전략이 가져다준 선물
2009년 11월 25일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개발원조위원회(DAC,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의 2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날이다.
이날이 특히 의미를 가지는 것은 1961년 출범한 OECD 역사상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지위가 바뀐 첫 사례라서가 아니라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선진국 클럽의 회원국으로서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이렇게 평가받기까지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물론 다양한 측면에서의 논의가 있겠지만 굳이 산업기술과 연관 짓자면 4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캐치 업(Catch-up, 추격) 전략을 기반으로 한 수출 지향형 성장 전략이 큰 기여를 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 경제는 2000년대 후반에는 1930년대에 몰아친 세계 대공황을 능가하는 수준의 위기를 비교적 순탄하게 극복하고 경제 성장의 세계적인 모범국가가 되었다.
나아가 미국, 독일, 일본, EU 등 선진국들이 산업기술정책을 제조업 경쟁력 강화로 전환한 것도 우리 제조업 부문의 수출 경쟁력이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한국의 산업 기술 경쟁력, 미래 한국호를 이끌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최근 한국 경제는 이러한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다양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한국의 성장잠재력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태로 그냥 놔두면 한국 경제는 2030년에는 1%도 성장하지 못해 세계에서 가장 성장세가 둔한 국가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는 OECD의 암울한 전망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또 다른 하나는 TFP(Total Factor Productivity; 총요소생산성)라 불리는 경제 전반의 생산성의 급락인데, 산업기술정책 측면에서 TFP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R&D 투자를 통한 기술경쟁력 제고가 TFP를 상승시킨다는 점 때문이다.
다시 말해, TFP가 악화되고 있다는 것은 R&D 투자의 효율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말이 된다.
물론 TFP는 법·제도나 사회적 수준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시장 실패를 보완할 공공 R&D 예산이 급증하고, GDP 대비 R&D 비중이 4%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이는 한국 경제의 현실에 비춰 볼 때 R&D의 생산성 제고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어디 난관이 이뿐이겠는가? 미래의 산업기술은 물론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논의 중 하나인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도 미흡한 것이 작금의 한국의 실정이다.
지난 2016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스위스의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UBS는 4차 산업혁명의 열쇠가 경제·사회의 유연성에 있다고 밝히고, 4차 산업혁명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성, 기술 수준, 교육 시스템, SOC 수준, 법적 보호 등 5개 요소의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종합평가 결과 한국의 순위가 25위로 우리가 경쟁국으로 생각하는 일본이나 독일에는 크게 뒤지고 있는 반면 중국은 28위로 우리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것이다.
산업기술 지원정책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렇게 본다면 현재의 산업기술 경쟁력이 미래 한 국호의 순항을 지켜줄 수 있는 안전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는 어렵고 오히려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앞서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제는 미래 한국호의 순항을 위한 산업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존의 산업기술 지원정책에 큰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우선은 근시안적이고 대중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우리는 1990년대 이후 정부가 바뀔 때마다 산업기술 지원 정책의 변화를 경험했다.
1992~2001년 G7 프로젝트, 2003~2007년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사업, 2009~2013년 신성장 동력 육성사업, 2013년부터는 3대 산업엔진 프로젝트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업들을 통해 신성장 동력은 과연 얼마나 육성되었고, 산업엔진은 얼마나 만들었는지 의문이다.
알파고 충격으로 없던 예산도 만들어 투자하고 있지만 성과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제는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산업 및 기술 지원정책의 근간을 구축하여 미래 정책의 불확실성을 걷어 내야 함은 물론, 새롭게 등장하는 신기술·신산업 분야는 중장기 전략의 틀 안에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적어도 산업기술 지원정책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해 줘야 할 때다.
다음으로 이미 수도 없이 논의되어 왔지만 신기술 신산업 육성 지원정책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소수의 선도형 산업을 우선 확보해 나가야 한다.
모든 산업을 주력화하여 지속 성장한 국가는 없다.
1980년대 미국은 독일과 일본에 밀려 항공, 자동차, IT, 군수 부문으로 주력 산업 갈아타기를 했고, 일본과 독일은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에 밀려 1990년대 이후 자동차와(정밀)기계로 갈아탄 바가 있다.
한국도 이와 같은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다고 모든 산업을 단기간에 신산업으로 전환시킬 수도 없다. 선택과 집중은 필수다.
한편, 현재 국내 산업기술 수준으로 볼 때 캐치 업전략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판단된다.
캐치 업 전략을 통한 외부 경쟁력의 내재화는 현재의 우리 경제 규모로 보나 미래 잠재력으로 보나 여전히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특히, R&D 규모로 볼 때 우리는 주요 경쟁국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산업기술 R&D 부문의 성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제안과 연계한다면 향후 국내 산업기술 지원정책은 기존 주력 산업기술 부문의 경쟁력 지키기, 대규모 시장화 신기술 및 신산업 따라잡기, 특정 분야 선도하기의 3가지 방향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미래 준비 차원에서 법·제도의 운영 즉, 규제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기술이나 신산업의 경우, 승자 독식 현상이 두드러지고 이는 해당 부문의 기업 성장속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 모두가 규제 운영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우버 사태를 기억한다면 어떤 신기술과 어떤 신산업을 지원해서 육성할지 고민하는 시간만큼 산업기술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규제 환경 개선에도 정책 역량의 분배 필요성이 크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설립된 어도비의 주식 평가액이 1,000억 원에 달하는 데 약 20년이 걸렸다면, 지금은 공유경제의 대표사례가 된 우버는 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승자에게는 자원도 단기간 내에 집중되는 것이다.
아울러 실패의 사회적 자산화를 위한 산업기술 지원정책 측면의 보완이 필요하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술·산업이 된 반도체의 경우, 대규모 자원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성공에 대한 불확실성 즉, 실패시 리스크에 대한 우려로 추진에 난항을 겪었지만 결국은 많은 실패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국내 산업계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불확실성이 높은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도전은 극히 제한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고, 도전 과정에서 투자된 자산들은 실패시 그대로 매몰비용으로 사라지게 된다.
산업기술 지원정책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이를 보완해 나간다면 우리 산업·경제 구조가 일부 대기업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산업기술 지원정책,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이외에도 많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으나 정말 중요한 것은 아무리 좋은 대안을 내놓고 전략을 짜고 실행해도 운용의 묘를 살리지 못하면 아니함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산업기술 융합의 시대가 성숙해가고 신기술 신산업이 기존의 산업화 시대의 법·제도를 뛰어넘는 지금, 현재의 산업기술 지원정책은 물론 그 운영체제가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을까?
공공부문의 R&D 투자는 과연 얼마나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본연의 목적인 시장실패를 얼마나 보완하고 있을까?
현재는 물론 미래의 산업과 기술을 선도할 수 있는 산업기술 인재 육성에 적합한 교육·훈련 시스템을 과연 우리는 갖추고 있을까?
산학연에 산재하는 혁신자원들은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을까?
등등의 의문은 모두 산업기술 지원정책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세부 과제들이자 산업기술 지원정책의 운영 방법에 대한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바람은 지난한 과제이기는 하나 산업기술 지원정책만큼은 각 이해관계자들 간 이해가 융합되고, 균형추가 되어 줄 컨트롤 타워가 있어 산적한 과제들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운영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문제로 잔뜩 움츠러든 우리 기업들의 야성(Animal Spirit)이 되살아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배려가 이루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