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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과학탐구 - 병으로 병을 이긴다

생활 속 과학탐구는 일상생활 속 물리학, 첨단과학, 과학일반에 대해 살펴봅니다.

글_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살모넬라균은 골칫거리다. 매년 전 세계에서 2,200만 건의 질병이 이 균 때문에 일어난다.

위생상태가 나쁜 일부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연간 4만 건 이상의 식중독이 이 균 때문에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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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경 약 0.7~1.5μm, 길이 약 2~5μm의 막대 모양인 살모넬라균은 사람이나 가축의 위 장관에서 증식해 설사를 일으킨다.

이 균은 오염된 음식을 먹으면 몸속으로 들어온 뒤 우선은 소화기관에, 그 뒤 다른 신체부위로 확산된다.

살모넬라균은 편모가 발달해 운동성이 강하고, 환경 적응력도 뛰어나 신체의 면역체계 공격에도 강하게 버틴다.

최근에는 항생제 저항성까지 발생해서 치료가 더욱 까다로워지고 있다.

그런데 의학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골칫거리를 질병을 치료할 도구로 삼으려 하고 있다.

트로이 목마 전략이다.

어디에나 잘 침범하고 생존력이 높은 살모넬라균에 백신을 담아 인체 안에 침투 시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살모넬라균에 기반한 소아 폐렴 백신이 연구 중이다.

이 백신은 기존 백신보다 저렴하며 경구 투여가 가능하고 장기간 면역 기능이 유지되는 등의 장점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살모넬라균을 이용해 암도 치료할 수 있을까?

세균 감염을 통해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게 알려진 것은 무려 2백 년 전이다.

최초로 치료에 도입한 이는 1890년대 뉴욕의 외과의사 윌리엄 콜리다.

콜리는 수술 이후 종양 부위에 세균 감염이 있던 환자의 치료 효과가 더 좋았던 것에 착안해 연쇄상구균을 주입해 환자를 치료해 갔다.
 
‘콜리의 독소(Coley’s Toxin)’이라 불리는 이 치료법은 ‘사이비’로 오랫동안 비난을 받았다.

효과를 본 환자도 있었지만, 부작용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후 방사선 치료나 수술 등의 암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세균을 이용한 암 치료는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세균을 통한 암 치료법은 명예 회복을 하고 있다.
 
1980년 대까지도 인체 면역체계를 이용한 암 치료는 불가능으로 여겨졌다.

암은 자기 세포의 돌연변이로 생겨나므로 면역계가 반응할 리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이 되어서야 콜리의 치료법이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살모넬라균이 들어오면 인체의 면역체계는 초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이를 이용해 종양 부위에 살모넬라균을 투입해, 종양 부위에 면역체계가 집중적으로 작용하도록 한다는 것이 기본 아이디어다.
 
최근 의학계는 살모넬라균, 보툴리누스균 등을 이용한 암 치료법 연구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가뜩이나 아픈 암 환자에게 세균까지 투입한다니, 암을 치료하려다 다른 병까지 얻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
 
투입하는 살모넬라균은 특정 유전자를 삭제해 독성을 백만 배 이상 약하게 만든 약독화(弱毒化) 과정을 거친, 말하자면 유전자 조작 세균이다.

지난 2월 전남대학교 의대 민정준, 이준행 교수 연구팀은 살모넬라균에 비브리오균을 혼합한 박테리아를 이용한 항암 치료법이 쥐 실험에서 효과를 거뒀다고 발표했다.

항암용 세균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균의 독성이 없으면서도 인체의 면역계를 충분히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2개의 균을 혼합했다.

침투력이 강한 살모넬라균에 면역 반응이 강한 비브리오균의 단백질 ‘플라젤룸B(FlaB, 플라비)’를 삽입했다.

이 균이 종양에 도달하면 유순한 면역세포들을 맹수로 바꿔 놓는다.

존스홉킨스 대학교 버트 보겔스타인 교수 연구팀은 흙 속에 사는 보툴리누스 세균의 일종인 노비균(C.novyi)을 이용한 치료법을 연구 중이다. 연구진은 노비균이 종양 속에서 성장하고 분열하면서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을 고안했다.

노비균은 혐기성 세균으로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만 생존하는데, 이 때문에 정상세포는 그대로 둔 채 산소가 부족한 종양만을 특이적으로 공격하게 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의 가설대로 “노비균이 종양을 파괴하는 효소를 분비한 다음 파괴된 종양 찌꺼기를 먹어 치운다”면, 그리고 “그 균이 정상세포를 공격하지 않는다”면 암과의 싸움에서 이길 중요한 무기 하나를 얻은 셈이다.

한편 광견병 바이러스도 암 치료용으로 연구되고 있다.

광견병은 여전히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5만 5천 명이 걸려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병이다.

광견병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급성 뇌척수염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 바이러스는 신경세포 속으로 들어가 뇌 조직을 감염시킨다.

우리의 뇌는 모세혈관 벽의 내피 세포들이 단단히 결합되어 있다.

‘혈뇌장벽(BBB, Blood-brain Barrier)’이라 부르는 이 장치는 화학 물질이 뇌로 들어갈 수 없게 차단하는 바리케이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보호 장벽은 뇌를 보호하는 동시에, 뇌에 종양이 생겼을 때 치료용 항암제가 진입하는 것도 막는다.

뇌종양 연구자들은 뇌의 장벽을 뚫을 방법으로 광견병 바이러스를 주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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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윤유석 교수 연구팀은 광견병 바이러스와 모양과 크기가 같은 금 나노 입자를 만들어 뇌종양을 앓는 쥐 4마리의 꼬리 정맥에 주입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나노 입자에는 아무 약물도 적재되어 있지 않지만, 레이저 광선을 쉽게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연구진은 나노 입자가 종양 근처에 축적되면 근적외선레이저를 나노 입자에 발사해 약 50℃로 가열했다.
 
달궈진 나노입자에서 발산된 열은 주변 암세포를 없애 종양 크기를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연구는 미완성이다.

나노 입자가 종양 외부로 누출될 경우 건강한 세포를 태울 위험이 있다.
 
관련 전문가 중에는 나노 입자가 간에 축적될 경우 생길 수 있는 독성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또 나노 입자가 뇌에 도달하는 과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하지만 광견병 바이러스가 뇌종양 치료에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세균을 세균으로 치료하는 ‘이이제이’ 방식의 연구도 있다.
 
항생제로 치료할 수 없는 병, 혹은 항생제가 더 악화시키는 병을 고칠 방법을 균에서 찾는다.

설사와 열, 식욕부진 등의 증상을 수반하는 장내 클로스트리디움은 반코마이신 같은 강력한 항생제에만 반응하는데, 항생제가 일시적으로 상태를 호전시킬 뿐 곧 재발하거나 상태를 악화시킨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분변 이식’은 세균으로 세균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건강한 장의 장내 미생물을 환자의 장에 이식함으로써 항생제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질환을 치료할 길을 열었다.

항생제 내성이 있는 병원균들은 현대 의학이 해결해야 할 난제다.

미국 뉴저지대학교 구강생물학과 다니엘 카두리 교수팀은 다른 박테리아의 세포 안에 침입해 파괴하는 성질을 지닌 박테리아 ‘브델로비브리오 박테리오보루스’와 다른 박테리아의 세포 표면에 달라붙어 죽이는 박테리아인 ‘마이카비브리오 에루기노사보루스’를 이용해 아시네토박터균, 대장균, 녹농균 등 5종 14가지 균주 배양액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연구진은 브로델비 브리오 균주의 경우 14가지 병원체에 대해서 세포수를 줄이는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투입된 ‘용병’ 균들은 인체에 다른 피해를 입히지 않고 병원균만 죽일 수 있을까?

아직 실험 단계에서는 사람의 세포에 증식하거나 염증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균이 항생제 내성 병원균을 막아줄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의 유전체 안에는 우리를 질병으로부터 지켜주는 유전자가 이미 가득하다.

이들은 과거에 우리가 앓았던 지독한 병들의 흔적이다.

식중독으로 우리를 괴롭혀온 살모넬라균과 보툴리누스균이, 생명을 빼앗아온 광견병 바이러스가 다른 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수도 있다.

자연에는 늘 천적이 있고, 생태계는 그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통해 건강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