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 ⑤ 석유화학 산업 경기에 따른 성과보다는 근본적 사업 경쟁력에 집중 필요
▲ 임지수 연구위원 LG경제연구원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현재 상황은 타 장치 산업 대비 양호하다고 볼 수 있다. 환경이 우호적인 현시점이 향후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위기를 준비할 수 있는 적기이다.
기업 내부에서 누군가는 사업의 객관적 상황과 리스크를 철저하게 검토하고 공유하면서, 충분한 대응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근본적으로는 기업 스스로의 경쟁력으로 사업을 성장시키는 체질 구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변화를 주도해야 할 것이다.
석유화학 산업, 사업 환경 호전으로 경기 낙관론 확산
최근 한국 석유화학 산업에 대하여 상반된 시각들이 공존하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 업종으로 거론되는가 하면, 2016년 실적도 좋고 2017년 전망도 양호한 업종이라는 발표도 나온다.
또 중장기적으로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미래가 어둡다는 전망이 있는가 하면, 대형 설비 투자가 위축되면서 중기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업계의 일반적 전망은 현재 양호한 시황을 기반으로 향후 산업 경기 전망에 대해 대체로 낙관적이다.
2014년 하반기부터 2016년까지 원료 설비(나프타분 해설비, NCC)를 보유한 전통 석유화학 기업들의 경영실적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또 상당수의 합성섬유원료나 합성고무, 우레탄 등 개별 제품 기업들은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적극적인 감산과 원료가격 하락 수혜로 수익성이 소폭 개선되고 있다.
석유화학 산업의 양호한 업황이 2017년 상반기까지 유지되고, 미국의 신규 설비들이 가동되는 2017년 하반기 또는 2018년 부터 하향 조정기간을 거칠 것이라는 시각은 대체로 유사하다. 문제는 중장기에 대한 부분이다.
최근 거시환경 변수나 경쟁구도 변화를 볼 때, 석유화학 산업의 경기를 예상보다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는 리스크 요인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재된 리스크 요인 큰 상황
리스크 요인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수요 성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기관들이 경제성장률 전망을 매년 하향 조정하는 상황에서도, 장기 경제전망은 여전히 회복될 것으로 보는 발표가 주를 이룬다. 이러한 전망에 기반하여 추정되는 중기 석유화학 수요
도 양호하게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성장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둘째, 유가가 예상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리스크다. 배럴당 50달러 수준의 저유가는 원료가격의 큰 하락대비 최종 제품 가격 하락은 제한적이어서 일단 유리한 상황이다.
그러나 배럴당 70달러 이상의 고유가 환경으로 바뀔 경우, 원가 부담은 높아지는 반면 석유기반의 석유화학 사업을 하는 한국 기업들은 가스 및 석탄 기반 기업들 대비 원가경쟁력 약화로 이중고가 불가피하다.
현재 주요 유가 전망 기관들은 2020년 석유가격을 배럴당 60~80달러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유가가 더 빠르게 상승할 가능성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셋째, 중국 시장의 자급화가 석유화학 전 제품으로 확산되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 석유화학 기업들이 시장 주도권을 갖는 제품이 이제는 기능성 제품에서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능성 제품에서 중국기업들의 약진은 공격적인 글로벌 M&A, 금융기관을 통한 정부의 R&D 및 설비투자 지원, 성별로 잘 짜인 산학협력 시스템 등을 통해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넷째, 최근 경기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확산되면서 석유화학 설비투자 검토 및 추진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자 붐은 이미 진행되는 미국 셰일가스 기반 투자 외에도, 이란 및 중앙아시아 등 천연가스자원 보유국과 일부 잉여자본이 충분한 석유 및 석유화학 기업들이 개도국 수출시장을 타깃으로 검토하고 있다.
또 미국의 셰일가스 기반 투자도 지속적인 추가검토가 이어지고 있는데, 최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의 당선으로 프로젝트 건수가 더욱 많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 추가 검토되는 계획들 중 과반수 정도만 추진되어도 중장기 경기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향후 석유화학 산업 경기에서 리스크 요인들이 어떤 양상으로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그 발생 가능성과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다. 기업 스스로가 선제적으로 검토하고 대응 방안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진 화학기업의 사업구조 혁신 사례
유럽과 일본의 화학 기업들은 1990년대 이후 내수침체와 범용 사업에서 후발 기업의 거센 추격으로 구조적인 경쟁력 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또한 석유화학 사업에서 원료(Feedstock)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중요한 약점도 공통점으로 갖고 있다. 그러나 유럽과 일본의 화학 기업 중 경쟁력의 위기를 극복하고 양호한 사업성과를 내는 기업들이 다수 있다.
독일 BASF는 후발 기업과의 경쟁으로 사업이 레드오션화가 되기 전에 포트폴리오의 최적화 및 고도화를 실행해서, 사업의 차별화를 유지하고 성장을 지속시키는 대표적인 화학 기업이다.
BASF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중장기 전망에 따라 그린·엘로우·브라운·레드로 구분하고, 차별적인 실행전략과 자원배분으로 시스템적인 사업구조조정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 도레이(Toray)는 솔루션 전략으로 경쟁력의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고객과 함께 신제품을 기획 및 개발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서, 양호한 성장과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보잉과 에어버스 비행기에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을 적용하여 장기공급 관계를 구축했다. 또 유니클로와 공동으로 히트텍 등 스마트 섬유/의류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벨기에 화학 기업 솔베이(Solvay)는 사업의 질을 중요시하는 구조 전환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과거 주력 사업이면서 글로벌 시장 지위를 갖고 있던 범용 플라스틱 중심 사업구조를 소량 다품종의 고부가가치 정밀화학 사업구조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까다롭고 복잡한 사업 관리와 새로운 시장 진출, 매출감소 등 또 다른 경영상의 위협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외형적인 매출 성장보다는 사업의 지속 가능성과 질적 성장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가능한 도전이었다고 보인다.
반면 일부 일본 종합화학 기업들은 위기를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추진했지만,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만큼 실행력이 담보되지 못하면서 성장이 정체되고 평균 수익성이 하향되는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사업의 경쟁력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중요
한국의 화학 기업들도 유럽·일본 화학 기업들의 어려움을 ‘남의 일’로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자사의 경쟁력 수준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다. 경영진의 자사 상황 인식에 따라서, 기업의 실행 전략 수위와 추진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업구조와 규모, 보유 역량, 지향점에 따라 전략 방향과 실행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이는 파괴적인 환경 변화에 직면해서도, 과거에 성공을 거둔 행동이나 조치를 더 열심히 하는 것으로 문제를 극복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London Business School)의 도널드 설(Donald Sull) 교수는 ‘활동적 타성’에 빠진 조직의 행동 양식으로 “회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반걸음, 그러나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기에는 충분한 반걸음만 내딛는다”고 설명한다.
여러 가지 추상적인 전략들을 나열하고 미흡하게 실행하는 ‘반걸음’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현재 상황은 타 장치 산업 대비 양호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이 우호적인 현시점이 향후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위기를 준비할 수 있는 적기이다.
우리 회사의 사업은 다를 수 있다는 낙관적 편향이 나타나는 순간, 내부 논리에 빠져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요한 것은 기업 내부에서 누군가는 사업의 객관적 상황과 리스크를 철저하게 검토하고 공유하면서, 충분한 대응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근본적으로는 기업 스스로의 경쟁력으로 사업을 성장시키는 체질 구축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변화를 주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