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박성호 원장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등을 알아봅니다.
실용화 전문연구의 메카 RIST의 새로운 30년
공동 작성_정원일 교수(경북대학교)
김공숙 전문작가(프리랜서)
요즘에는 흔한 산학연 협업 시스템이 국내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정확히 30년 전이다. 국내 최초의 산학연 시스템을 구축한 (재)포항산업과학연구원, 즉 RIST(Research Institute of Industrial Science and Technology)가 설립된 지 30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RIST의 박성호 원장은 지나온 3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지속적 성장이 가능한 RIST의 새로운 30년을 만들어가기 위해 고심하며 구성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소를 표방하며 Another 30년의 대장정에 나선 RIST의 수장 박성호 원장을 만났다.
국내 최초의 산학연 시스템, RIST
RIST는 1987년 포스코가 전액 출연하여 설립한 실용화 전문 연구기관이다.
포항공대(포스텍)와 물리적으로 한 공간 안에 설립된 RIST는 ‘World Top 실용화 전문 연구기관’이라는 슬로건으로 미래에 대한 기술적 솔루션을 고심하고 있다.
RIST는 포스코가 혁신 기술로써 포스코와 국가의 기술개발에 공헌하는 길을 탐색하다가 그 해답으로 설립한 기관이다. 설립 당시만 해도 산학연 협동연구는 생소한 개념이었으나, 고 박태준 회장의 선진적인 아
이디어와 추진력을 통해 산학연 협동 연구의 시너지를 일으키고자 RIST를 설립한 것이다.
박성호 원장은 2016년에 RIST 원장을 맡아 그간 300건 이상의 연구과제와 430여 명의 인력, 1,800억 원 규모의 인프라를 운영하면서 포스코의 신성장 엔진을 키워나가고 있다.
“RIST의 정체성은 포스코의 패밀리로서 철강 산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첨단소재, 미래 에너지, 환경 분야에서 신기술 개발의 메카가 되어 신성장 분야를 책임지는 중앙연구소가 되는 것입니다. RIST는 철강, 리튬, 니켈 등 원천 소재 기술력을 바탕으로 티타늄, 탄소소재 등의 고성능 경량소재 기술, 항공소재, 반도체 및 전력소재 기술 등을 활용하여 포스코와 국가의 기술 경쟁력 강화는 물론 인류의 생활을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지요. 제가 해야 할 일은 RIST의 또 다른 30년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엔진과 체계를 구 성원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RIST가 올해로 설립 30년이 되었지만 박 원장과 포스코의 인연은 그보다 5년이 더 길다. 그는 1982년 11월 포항종합제철(주) 제강부 제강기술과에 입사해 지금까지 35년을 포스코와 함께하고 있다.
포스코와 함께한 35년
▲ 2013년 3월 당시 에릭 월시 주한 캐나다 대사 방문
청년 박성호는 서울대 금속공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6개월 특수전문요원(석사장교)으로서 군 생활을 끝냈다. 그는 사회에 복귀하자마자 지도교수로부터 포항제철에 입사할 것을 강력하게 권유받았다.
“석사과정 여름방학 때 일입니다. 지도교수님의 첫제자가 포스코 제철소장으로 근무 중이었는데 교수님께 특강을 요청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연구실 사람들과 함께 포항제철의 초청을 받고 가서 동문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가졌는데, 제자인 제철소장께서 교수님께 석사 졸업자들을 보내 달라고 했답니다. 당시로서는 지방에서 석사 이상의 인력을 구하기 힘든 시기였는데 저는 당시 교수님의 강권으로 포항제철에 가겠다고 깊은 생각 없이 약속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약속을 잊고 군 제대 후 서울의 다른 직장에 합격해 최종 면접만을 남겨두었는데 교수님과 예전에 했던 그 약속이 계기가 되어 포항으로 내려가서 입사시험을 치게 되었고 결국 포스코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우연찮게 덜컥 포스코와 첫 인연을 맺은 청년 박성호는 포스코의 생산 부서에서 근무하다가 물리야금의 전공을 살려서 포스코 철강연구소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의 상사는 현재 포스코의 회장인 권오준 실장(당시)이었다. 그는 권오준 실장의 조언을 듣고 연구개발 분야로 진로를 결정하고 1987년 캐나다 멕길대학교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권오준 실장님은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저에게는 철강 분야도 연구의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캐나다로 가서 다른 경험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하셨지요. 그래서 1991년에 캐나다에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귀국 후에는 RIST 강재연구부에 들어갔고, 그 후 자동차 가공 연구그룹의 리더가 되어 2001년부터는 광양에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광양은 그 자신이 자동차 가공연구 분야에서 큰 역할을 했고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곳이었다.
“당시 포스코는 전사적으로 ‘자동차에 집중하자’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철강회사는 철강제품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만든 철강제품을 자동차 회사가 잘 쓸 수 있도록 이용기술까지 개발해줘야 한다는 것이 그때 처음으로 깨달은 개념이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도 자동차 강재를 자동차 회사가 잘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포항연구소에서 연구하던 몇몇 연구원들과 함께 광양연구소로 옮겨갔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이용기술’에 대한 저의 생각과 노력들이 최근에는 철강 마케팅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 이제는 이용기술이 없으면 철강제품 자체를 판매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리고 몇 명의 연구원으로 시작했던 연구조직이 지금은 150명 이상의 대규모 부서로 확대된 것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성호 박사는 오랜 동안 광양연구소에서 임무를 수행한 후 포스코 기술연구원 부원장을 거쳐, 철강기술 전략실장을 맡게 되었다.
“2011년 당시 회사는 철강기술 전략과 성장기술 전략이라는 두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광양연구소장을 거쳐 철강기술 전략실을 맡아 서울에서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지금은 구조조정과 사업 위험관리 등으로 인해 경영전략 쪽이 강한 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포스코가 사업적으로 성장하고 확장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기술전략 분야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저의 가장 큰 고민은 기술은 사람이 하는 것인데 기술전략의 흐름을 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공감하고 교류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저만의 개인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자기 성찰을 통한 업무의 연도보고서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이것이 구성원과 지식을 공유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조직을 발전시키는 리더의 자질은 사소해 보이는 것에서 드러난다. 철강전략실에서 상무에서 전무로 재임하는 동안 그는 1년마다 자신이 수행한 업무를 기록해 정리했다.
말하자면 ‘임원수행 결과보고서’인 셈이었다. 처음에는 30여 쪽 정도였지만 해가 갈수록 양(量)은 물론 질(質)도 많이 향상되었고, 처음 1, 2년간은 부족한 점도 많이 있었지만, 3년 차부터는 제대로 된 결과보고서의 모양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정리된 임원수행결과보고서는 후임 책임자에게 인계되었는데 이 보고서는 후임자의 원활한 업무 수행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보고서를 통해 의사결정이 과거에는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수행되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고, 향후 수행해야 할 업무들의 경중완급(輕重緩急)과 의사결정시 위험 사항들을 파악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얻게 된 것이다.
박성호 전무의 임원수행 결과보고서는 후임자로 하여금 내부적으로 차질 없이 전문성을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게 되었다.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개인의 성심과 성의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조직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된 것이다.
그는 2016년 포스코 기술연구원장(부사장)직을 끝으로 퇴직했고, 이어서 RIST의 원장으로 부임해 다시 포스코와 함께하고 있다.
이처럼 오랜 세월 포스코와 함께한 박성호 원장도 입사 초기에는 계속 근무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히 고민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회사를 그만두려고 다른 곳을 찾아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철소에서 현장근무를 하다가 연구소로 옮겼던 시기였습니다. 연구실에 1년 후배가 있었는데 저는 현장에 있다 왔기 때문에 후배와 함께 3급 사원이 되는 승진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3급 시험은 ‘3급 고시’라고 불릴 만큼 어려웠는데 나름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후배가 있으니 속마음은 사실 좀 불편했지요. 후배는 후배대로 선배가 있으니 선배가 먼저 붙을 것이라 생각해서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과가 나왔는데 제가 떨어졌습니다. 승진시험에 탈락하고 나중에 보스를 만나 면담을 하는데 보스는 “자네가 선배였나?”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의외의 반응이라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저를 돌아보게 된 뼈아픈 시간이었습니다. 저로서는 좀 더 폭 넓은 교류가 부족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실패는 현명한 사람에게는 성장에 이로운 약이 된다. 이를 계기로 박성호 연구원은 본인의 부족함을 채워 나가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되었고 회사에 대해 더욱 강한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다른 기업에 근무하는 친구들을 만나보면서 포스코의 기업 문화와 환경을 비교하게 되었는데 전문 경영인으로서 계속 성장하려면 포스코가 오히려 적격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던 중 회사가 지원해주는 유학 프로그램에 선발돼 4년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포스코와 인생의 궤적을 함께하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우리가 살아온 세월에는 참으로 어려운 고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IMF다, 글로벌 금융위기다 해서 나라 전체가 술렁이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휘말리게 마련인데 저로서는 이러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서 포스코에서 지내온 세월이 참으로 감사하답니다.”
포스코의 경쟁력은 ‘솔루션 마케팅’
박성호 원장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때 자동차가공연구그룹의 리더가 되어 포스코의 주요 시장인 자동차강(鋼) 시장 확대에 기여한 것이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고객사에게 철강을 판매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고객의 상품을 만드는 것까지 고민하고 지원한 것이죠. 우리는 그것을 ‘솔루션 마케팅(Solution Marketing)’이라고 부릅니다. ‘솔루션 마케팅’은 오래전부터 권오준 회장님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경영철학인데 그것이 지금까지 발전해 와서 실천으로서 빛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포스코의 본사는 포항에 있지만 자동차 가공연구는 광양제철소에서 행해졌다. 나중에 생긴 광양제철소가 더 현대화되어 있고 포항제철소에 비해 설비상으로 더 유리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힘을 분산하지 말고 한곳에 집중하자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당시 박원장은 광양연구소에서 일하면서 고객 지원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포스코의 경쟁력은 객관적으로 볼 때 세계적이다.
세계 철강회사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기관인 WSD는 포스코의 경쟁력을 7년 동안 세계 1위로 평가해 오고 있다. 그러나 포스코의 최강의 경쟁력은 위기 속에서 구축된 것이다.
“자동차 판재 가공 분야의 경쟁력을 과거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한때 포스코의 주요 고객은 현대자동차였습니다만, 현대자동차는 현대제철을 설립해 수직 계열사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시장을 속수무책으로 빼앗긴 것이죠. 현대제철이 탄생할 당시 대다수 사람들은 자동차 산업은 더 이상 제조 산업이 아니라 디자인이 포함된 지식 산업인데 ‘왜 현대자동차는 현대제철을 설립하고 수직계열화를 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대가 엄청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내부의 제조분야를 밖으로 내보내기는커녕 오히려 철강소재까지 포함해 계열화한 것입니다. 물론 그로 인해 포스코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포스코는 위기속에서 오히려 더 강한 경쟁력을 가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초기에 포스코는 자동차강(鋼)을 2백만 톤 정도 생산해 50% 이상을 현대자동차에 판매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동차강을 1천만 톤 가까이 생산하지만, 현대자동차에 공급하는 물량은 예전의 절반수준으로 축소된 상황이다.
시장의 변화 속에서 포스코는 고객사에게 철강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객사 상품을 만드는 것까지 지원해 주는 솔루션 마케팅을 강화하여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강한 기업이 된 것이다.
“포스코의 경쟁력은 첫째로 설립 회장이었던 박태준 회장님께서 강건한 회사를 만들었다는 것이고, 더불어 임직원들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잘 개발하여 세계 최고의 운용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지금까지의 발전해 온 포스코의 50년은 포스코의 초기 구성원들이 기여한 공로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백년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Break-through의 획기적인 신성장 방안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RIST가 준비하는 또 다른 30년
▲ 2016년 4월 포항창조경제혁신센터 설비솔루션 기술지원단 발대식
▲ 2016년 10월 RIST인상 포상 수여식
포스코는 흔히 작업장 군화를 신고 다녀야 하는 용광로와 연관 지어진다. 제철 산업의 이미지로 인해 군대문화가 팽배한 회사라는 인상이 짙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박 원장은 실상은 그 반대라고 말한다.
“포스코는 그동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신규 사업에 투자를 해왔습니다. 보수적이고 경직된 문화였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포스코는 선진적으로 산학연에 대한 고민을 해왔고 지금까지 대략 4조 원 가까이를 RIST와 포스텍에 투자해 왔습니다. 포스코는 언제나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포스코의 진취적인 도전의 뒤안길에는 아픔도 적지 않았다. 2014년부터 최근까지 신규 사업의 다각화 과정에서 발생한 취약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구조조정의 주요 내용은 수익성이 없는 부분에 대한 과감한 정리이다. 권오준 회장은 부임과 동시에 그간 공격적으로 투자한 부분을 면밀히 검토해 수익이 하락하거나 경험 부족으로 완성도를 높일 수 없는 사업들을 구조조정해 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RIST 또한 구조조정의 여파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박 원장은 스스로를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RIST는 올해가 창립 30주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RIST의 지속발전을 위해 앞으로의 30년을 어떻게 개척해야 할 것인가 스스로 물어보고 답을 해봅니다. 결국 답은 고객이 아닌가 합니다. RIST의 연구과제 중 75% 이상을 포스코가 지원하고 있는데, 포스코는 고객 입장에서 늘 뭔가 그 이상의 결과를 얻고자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줄여야 할 부분, 또 높여야 할 부분에 대해 큰 방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RIST는 비용의 25% 정도를 외부에서 들어온 연구과제를 수행하여 충당하고 있는데 정부과제가 대부분입니다. RIST는 연구과제비에 오버헤드비(간접비)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다른 연구기관에 비해 연구과제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입니다. 재무구조로 보면 정부로부터 매년 운영비의 일부를 지원받는 국책 연구기관보다 크게 불리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RIST가 연구에 주력하는 국책 연구기관들과는 달리, 개발기술을 사업화로 연결하는 강한 인프라를 갖추어 놓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제가 원장으로 부임한 후 검토해 보니, 포스코의 연구조직에 비해 RIST 행정인력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이러한 인력을 슬림화 하고 대신에 기술실용화실을 만들어서 우리가 가진 기술을 돈으로 만들어 보자고 했습니다. 내 임기 내에 다하지 못하더라도 다음 대에서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어 놓는다면 RIST가 오래 성장할 수 있는 한 가지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RIST는 현재 여러 연구기관들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KIST, ADD도 벤치마킹하고, 화학연구원, 에너지 연구원, 전력연구원, 전자통신연구원 등의 운영방식들을 공부한다. 박 원장은 RIST의 정체성은 국가 출연연구소의 영역과는 분명히 다른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은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RIST는 포스코의 차세대 먹거리를 만드는 데 집중하여 연구개발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개발, 나아가 실용화’를 하는 조직으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Open Innovation에 매진함으로써 개발효율을 더욱 높여야 합니다.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연구 좀 그만하라고 말합니다. R&D 조직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연구와 개발을 수행하는 조직입니다. 그런데도 대다수가 Research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고, 반드시 내부적(In-house)으로 해야 하는 Development 쪽은 오히려 취약합니다. 기업연구소의 R&D에서는 R을 줄이고 D를 강화해서 상용화 쪽으로 집중하는 것이 옳은 방향입니다. 우리는 어떻게든지 통합(Integration)하고 상업화(Commercialization)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 원장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2011년 2월 경 당시 포스코 총괄 CTO로 막 취임한 권오준 회장과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권 회장은 기업의 연구자는 Researcher가 아니라 Research Engineer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코의 모토는 R&BD-E(Research and Business Development, Engineering)으로서 Business Development와 동시에 Engineering에 역점을 둔다는 것이다.
선임자인 권 회장과 후임자인 박 원장이 가진 유사한 이야기를 통해 동일한 개념이 조직의 DNA로 전승됨을 발견할 수 있어서 놀라웠다.
“저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지고 개발(Development)을 하자고 합니다. 기반 기술은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사올 수 있다는 것이죠. 현재 대학의 산학협력단에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특허 1건에 싸게는 200만 원 정도에도 판매를 하는데 만약 그런 기술들을 우리가 개발한다고 하면 비용이 대략 4~5억 원은 들어갑니다. 물론 개발한 기술로 한두 건의 특허출원은 하게 되겠지만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죠. 그러나 대학이나 출연 연구소에는 상업화를 못해서 안달하는 개발기술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용화를 염두에 둔 응용개발(Development)에 방점을 찍고, 좀 심하게 말하자면 우리 구성원의 80% 정도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그런 기술을 찾아내야 한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많은 연구원들이 자체 Research를 하기보다, 그 연구비를 Open Innovation에 투입하여 Seed 기술을 도입한다고 하면, 기술의 실용화는 크게 스피드 업(Speedup) 될 것입니다.”
박 원장은 ‘RIST는 Profit Center인가, Cost Center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해본다고 한다.
“RIST는 포스코의 발전에 기여를 해왔지만 획기적인 것이 없어서 보는 시각에 따라서 평가가 다를 수 있습니다. 포스코는 RIST에 약 2조 원 가까이 투입했고 포스텍에도 유사한 규모를 투입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4조 원의 투자로 4조 원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 내었는가라고 묻는다면 서로들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도 포스코는 포스코 자체, RIST 그리고 포스텍에 상당한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상업화 연구는 포스코가, 응용연구는 RIST가, 기초연구는 포스텍이 수행하는, 국내 최초의 산학연체제에 걸맞은 Big Success Story를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해야 할 것입니다.”
조직의 지속가능성이 가장 중요
▲ 2016년 11월 독일 아헨공과대학교 방문
RIST는 포스코의 눈으로 보면 좀 더 자유로워 보이는 조직이다. 구성원의 평균 근무 기간은 14년 정도이다. 과거에는 RIST의 연구원들이 대학의 교수로 가고자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대학의 전망도 불투명 해지면서 이직이 많이 사라졌고 구성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도는 매우 높다고 한다.
연구원들이 Output을 잘 만들 경우 성과에 대한 보상도 엄청나다. 그러나 제도가 만들어져 있어도 실제로 Output을 잘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포스코가 참 좋았습니다. 현재로도 큰 문제는 아니고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큰 시련은 없을테지만 포스코가 지금의 세계 1위 위치를 유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신성장 엔진의 구축도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리저리 해보아도 잘 안돼서 애를 먹었지만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그냥 현재의 위치에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앞으로 5년 정도를 전망해 볼 때 철강 산업이 나아질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철강생산은 과잉입니다. 세계적으로 약 16~17억 톤 정도가 사용되는데 철강 생산량은 8억 톤 정도가 오버캐퍼입니다. 철강회사들의 경우 생산 가능량의 3분의 2만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고, 철강이 다시 돈이 되면 멈추었던 공장을 다시 가동시키겠지요. 철강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큰 수익이 났지만 앞으로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고 중국의 엄청난 과잉투자로 사업성에도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이는 RIST로서도 다양한 기술에서 도전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또 다른 30년의 기간 내에 RIST가 포스코의 성장엔진으로서 기여를 해야 한다는 미션,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와 방법, 인재를 키우는 것은 온전히 RIST의 몫입니다.”
“구성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대기업들은 나이 오십이 가까워지면 구성원들에게 무언의 이직압력이 있는데 포스코는 그렇게 인위적으로 강하게 몰아가는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문화가 많이 변화하고 있으며, 최근 포스코 엔지니어링과 건설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보면 더 이상 평생직장의 개념이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욱 보편화될 것입니다. RIST는 이를 직시하고 자체적으로 체질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연구 역량은 훨씬 더 강화해야 하고 연구과제 비용은 많이 줄여야 합니다. RIST가 개발을 해야 포스코가 상업화를 할 수 있고 이것이 포스코의 미래 성장동력이 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박 원장은 RIST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포스코 기술 연구원장의 위치에서 회사의 전체 기술에 관한 정책을 고민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RIST라는 독립기관의 CEO로서 조직을 바라보아야 하니 경영에 관한 부분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경영환경이 예전보다 나아지게 하기 위한 노력으로 점심 미팅 시간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원장인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은 RIST가 지속 가능성을 가질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변화가 후임 원장이 와도 지속될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때 전문경영인들의 경우 자기만의 컬러를 주입하는 것을 지양해야 합니다. 특히 과거 자신의 성공 경험에서 만들어진 사상과 철학을 입혀나가는 것보다는 무엇이 이 조직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 생각해 보고 경영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과거의 성공이 오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손자병법에 전승불복(戰勝不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싸워 이긴 방법이 반복되지는 않거든요.”
그는 구성원들에게 개인 박성호의 철학을 묻지도 따라오지도 말라고 조금은 비약해서 강조한다.
“저는 일정 기간 동안만 업무가 주어진 전문경영인 입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은 RIST와 운명을 같이 할 주인들입니다. 이해관계자 모두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이슈들을 찾아서 올바른 길을 나아가면 되는 것이지 자주 바뀌는 원장의 개인적 철학에 따라 이리저리 쏠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지속 가능한 이슈를 찾는 게 중요하지 ‘원장이 자주 바뀌어서 일관성이 없었다라고 변명하지 마!’라며 웃으면서 말합니다.”
젊은 연구원들에게 드리는 당부
박성호 원장은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다 알 수는 없으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세대차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자신의 세대가 가졌던 문화 활동을 젊은 세대에게 요구하는 것도 때에 따라 결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높은 사람들은 소통을 한다고 주말에 같이 산에도 데리고 가곤 했는데 ‘그게 과연 소통이 될까’하고 박 원장은 궁금했다고 한다. 술자리는 자신도 좋아해서 같이 즐겼지만 그것도 오래하면 건강에 좋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금요일 오후에 모아놓고 회의하고 월요일에 결과물을 제출하라고 지시받은 경험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주말에 쉬려고 하면 ‘산에 가자’고 하거나 습관적으로 단합이란 명목으로 동원을 많이 당한 세대이죠. 저는 이런 것을 되풀이 하지 말고 일단 젊은 사람들끼리 ‘생각의 인큐베이팅’을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회사의 전략이나 같이 가야 될 큰 방향에 대해서는 당연히 같이 고민해야 하지만, 새로운 30년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되도록 자기들끼리 같이 설정하고 공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끼리 뭉쳐서 하다보면 소통이 더 잘 될 것이라 보고 원장인 저에게 지급되는 업무추진비를 원내 동호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했습니다. 이는 서로 마음이 맞는 젊은 사람들끼리 동호회 모임을 통해 소통하고 공유하라는 저의 뜻이었습니다. 저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점심 모임을 자주 합니다. 내가 과거에 싫어했던 것을 연구원들에게 시키지 말자는 것이 제 소통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젊은 세대의 연구원들에게 살아가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참모들에 따르면 박 원장은 기술전략실에 근무할 때부터 어떤 논리를 세우면 예제를 만들어 비유를 통해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잘해주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저도 젊은 연구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가진 세대가 되었네요. 저는 T자형 인재, 심지어 파이(π)형 인재에 대해서 의견을 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시대가 융합이 필수적인 세대라서 T자형, π형 인재에 대해서 말하지만 우리나라의 융합연구는 I가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T로 가면서 기초가 약하게 되었다고 느낍니다. 예를 들어 기계공학자를 생각하면 5대 역학에 능통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 올리지 않습니까? 융합이 중요하지만 자기 전공에 대한 깊이를 가진 다음에 학문 간, 학제 간 융합으로 발전해 갈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현재 산업계에는 예전과는 달리 학위를 가진 사람이 너무도 많지만 과연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공부를 많이 했어도 기본이 충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
“1953년에 인류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한 이후, 한국인이 최초로 등반을 성공한 1977년까지의 25여 년간,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사람은 모두 58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랬던 것이 2010년경에는 1년에 1천여 명 이상이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올라섭니다. 이는 사람의 체력이 좋아졌다기보다는, 베이스캠프 자체가 높아진 기술력의 성과입니다. 예전의 베이스캠프는 통상 2,000m 고지에 설치되었는데, 최근에는 베이스캠프를 7,000m의 고지에 설치하기도 한다더군요. 따라서 학창시절에 학업역량의 베이스를 키우면 키울수록 정점(Peak)에 도달하기가 수월해진다는 것이지요. 너무 시류를 타고 흘러 다니는 연구는 지양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있겠지요. 하지만 깊이 있는 연구역량 없이 연구과제비에 따라서 이것저것 단기적으로만 연구를 수행하다보면 깊이가 없어집니다. 각자 자신만의 튼튼한 기초(핵심 역량, Core Competence)를 가지고 연구에 임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박 원장은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이 너무 노벨상에 연연해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확실한 영역이 있어서 그 부분을 잘 키워 자연스레 노벨상으로 연계된다면 좋겠지만, 지금부터 장기적으로 노벨상만을 목표로 해서 연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노벨상은 꾸준한 연구에 의해 자연스런 성과물로서 도출되는 보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계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국가와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이보다는 응용연구에 투자하여 상용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실용적이지 않겠습니까? 독일을 보면 한국과 달리 출연 연구소가 크게 3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래연구는 막스플랑크, 생산연구는 프라운호퍼, 그 사이의 응용연구는 헬름홀츠 연구소가 진행하는데 한 연구소가 대략 5조 가까이를 지출한다고 합니다. 또한 프라운호퍼의 경우 전국에 60여 개의 연구소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각각의 연구기능이 하나의 큰 방향성을 가지고 한 우산 아래에서 꾸준히 각자의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훨씬 더 효율적이고, 또한 노벨상을 만드는 데에도 더 효과적이 아닐까요?”
RIST는 현재 스스로가 보유한 본연의 기술역량을 바탕으로 우수기술을 자체적으로 사업화하고 또한 기술확산을 통한 지역 강소기업 육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RIST가 World First, World Best를 추구해 온 포스코의 미래 신성장 엔진을 공급하면서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발전시켜 진정으로 인류의 생활을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열어가는 연구기관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