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세상에 없던, 없는, 없을 것을 보여주는 CG 기술

 

과학과 문화는 과학과 인문, 사회, 문화, 예술 등을 접목,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학기술 이야기를 다룹니다.

글_임동욱 연구교수(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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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으로 세계가 분주하다. 2016년이 시작되는 즈음에 세계경제포럼(WEF)이 화두로 처음 던질 때는 ‘연결성’과 ‘자동화’가 중점 부각되었다.
 
정보통신기술(ICT) 덕분에 온갖 종류의 기기가 하나로 연결됨으로써 단순 반복적인 일거리를 넘어서 인간의 판단이 요구됐던 고차원적 업무까지 자동으로 처리된다는 개념이다.
 
‘산업혁명’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초반에는 제조업의 효율을 극대화시켜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문화콘텐츠 관련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며 관련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주목받는 분야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다.

‘가상현실’은 실제가 아닌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서 현실처럼 느껴지게 하는 기술이다. 실제 현실이 보이지 않도록 고글 형태의 커다란 안경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머리에 화면을 씌운다 해서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HMD)라고도 부른다. 대표적인 업체가 2014년 페이스북이 2조 원 넘게 투자해 인수에 성공한 오큘러스(Oculus)다.
 
이후 삼성, 소니, HTC가 각각 ‘기어 VR’, ‘플레이스테이션 VR’, ‘바이브 PRE’를 내놓으면서 4파전을 벌이고 있다.

가상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처럼’ 보이는 기술이다. 그러나 우리 눈과 뇌는 실제와 가짜를 구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위치를 파악하는 GPS 센서, 회전 움직임을 인지하는 자이로 센서, 속도와 충격을 감지하는 가속도 센서 등 여러 센서들과 결합하면서 더욱 성능이 높아졌다.

VR 기기를 처음 사용할 때는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 주변 환경이 순간적으로 반응해 실제 세계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투박한 화면에 피곤해 하고 과도한 시각적 자극에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증강현실이다.

‘증강현실’은 말 그대로 실제 현실에 무엇인가 덧붙여서 시각적인 증강 효과를 높이는 기술이다.

맨눈으로 볼 때는 탁자 위에 아무 것도 없지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의 카메라 기능을 켜면 입체적인 모습을 띤 동물이나 기계장치가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이다.

증강현실의 장점은 실제 현실을 배경으로 삼기 때문에 그 위에 덧붙일 특정 물체만 정교하게 묘사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제작과 적용이 쉽다.

덕분에 증강현실을 이용한 콘텐츠도 계속 개발되고 있으며 큰 인기를 끈 상품도 등장했다. 요즘 길거리를 다니면 스마트폰을 공중에 대고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느릿느릿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대부분 포켓몬을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이다. ‘포켓몬’은 일본 닌텐도에서 만들어낸 게임과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큼 작은 몬스터들을 수집하고 대결을 붙여서 점점 큰 힘을 갖게 된다는 내용이다.

게임회사 나이앤틱이 스마트폰용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PokémonGo)로 재탄생시킨 뒤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에 필수적인 것은 실제 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CG, Computer Graphic)
기술이다.

게임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미디어 파사드 등 시각을 이용하는 문화콘텐츠 대부분은 CG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가상현실처럼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기보다는 현실을 영상으로 촬영하고 그 위에 덧칠을 하는 방식이 주로 쓰인다.

실제와 가상을 구별하기 어렵게 하려는 목적이다. 덕분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할 리가 없는, 존재한다고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모습들을 눈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

1950년대 미국은 군사용 레이더 기지에 활용하기 위해 주변 상황을 글자로 표현하지 않고 그림으로 직접 보여주는 방식을 개발했다.

컴퓨터가 그려낸 그림이라 해서 컴퓨터 그래픽스(Computer Graphics)라 불렸다. 이 팀에 소속돼 있던 아이븐 서덜랜드(Ivan Sutherland)는 1963년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컴퓨터를 이용할 때 글자가 아닌 그림을 입력하는 방식도 개발해 냈다.

스케치패드(Sketchpad)라 이름 붙은 이 기계는 사람이 도구를 들고 화면에 그림을 그리면 이것을 컴퓨터가 인식해 수학적 또는 공학적계산을 해내는 원리였다.

그보다 앞선 1961년에는 같은 학교의 스티븐 러셀(Steven Russell)이 우주전쟁(Spacewar)이라는 최초의 비디오 게임을 개발하기도 했다.

1968년에는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이 CG를 적용시킨 최초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내놓았다. 컴퓨터를 이용해 시각적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우주, 괴물, 미래 기술, 전쟁 등의 장면을 찍을 때 사람이 분장을 하고 직접 움직이거나 미니어처를 만들어 조종하는 방식으로 특수촬영을 진행했다. 그러나 CG가 등장하자 영상 산업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기술 수준이 높아진 오늘날에는 이전에 없었던 방식으로 영상을 제작한다. 화창한 날씨에 촬영을 한 다음 CG를 이용해 눈이나 비를 덧씌우는 기법은 이제 구식으로 취급될 정도다.

움직이는 물체를 촬영한 후 또 다른 움직이는 물체를 CG로 그려서 감쪽같이 붙이기도 한다. 영화 ‘명량’에서 조선 수군과 왜군의 역동적인 전투 장면은 바다, 배, 군사, 물보라, 포연이 모두 따로 촬영 제작된 후 CG를 이용해 덧붙여진 것이다.

배우가 세상을 떠나거나 나이가 들어도 CG를 통해 예전 모습을 되살려 새로운 대사를 읊게 만든다.

영화 ‘스타워즈 로그원’에서는 개봉 직전 세상을 떠난 여배우 캐리 피셔(Carrie Fisher)의 젊은 모습을 등장시켜 레아 공주 역할을 부여했고, 이미 사망한 배우 피터 쿠싱(Peter Cushing)을 CG로 만들어 타킨 총독 역할을 성공적으로 재현해 냈다.

사람의 몸동작을 그대로 따와서 동물이나 로보트의 모습을 덧씌우는 모션 캡처(Motion Capture) 기술은 보편화된 지 오래다.

영화 ‘아바타’에서는 배우들의 얼굴 근육까지 캡처해서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완성하는 이모션 캡처(Emotion Capture) 기술을 적용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과 ‘혹성 탈출’에서는 동물 흉내의 달인이라 불리는 배우 앤디 서키스(Andy Serkis)의 연기 위에 CG를 덧붙여 마치 살아 있는 듯한 골룸과 유인원을 탄생시켰다.

극장 스크린뿐만 아니라 거실의 TV에서도 CG의 활약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에서는 가슴에 박힌 칼을 뽑아내고, 저승사자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귀신들이 몸을 뚫고 지나가는 등 자연스러운 CG 화면이 스토리 몰입을 높여 주었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는 중세 유럽을 연상시키는 건축물에 뛰어난 풍광을 결합시켜 독특한 판타지 세계를 만들어 냈다.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는 실존하지 않는 슈퍼히어로들을 현실로 불러들인 것처럼 완벽한 CG를 선보였다.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시각 기술은 군사, 건축, 공학 분야에서 출발해 발전을 거듭해 왔다.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 장르와 결합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고 게임 장르에 쓰이면서 전 세계 사용자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이후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에까지 고화질 CG가 적용된다면 우리의 눈과 뇌는 진짜와 헛것을 제대로 구별해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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