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아카데미 - 연구개발 테마 발굴
혁신 아카데미는 혁신의 주요 이론과 개념을 소개하고 실제와 연계한 칼럼입니다.
▲ 남태영 대표
SBI consulting Korea Agent
희망에 찬 한 해가 시작되면 새로운 연구개발 방향에 따라 신규 테마도 제안하고, 세부 실행 방법을 정하여 신기술이나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중장기 전략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면 전략테마를 구체화하고 과제를 도출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혁신적인 기술이나 제품을 다루고 있는 경우는 수시로 전략 방향을 점검하면서 그에 맞는 테마를 발굴하고 제안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연구개발 테마 발굴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요건과 그 방법론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연구테마 발굴의 요건
많은 연구원들은 경영진이나 사업부로부터 자신들의 ‘취미생활’로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곤 한다.
적절한 프로세스를 통해 선정한 연구테마인데도, 연구원들이 자신들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려고만 하고 있으며, 사업에는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 연구테마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사내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가지고 철저히 회사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정말 억울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오해를 피하고 보다 효과적인 연구테마를 발굴하기 위한 요건을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1) 연구테마로부터 기대되는 Target Application 제시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현하려는 것인지, 혹은 어떤 사업을 성공시키는 데 필요한 테마인지를 명확히한다.
아무리 중요한 기술을 연구테마로 제안하더라도 경영진이나 사업부에서는 그 중요도를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발굴한 연구테마 수행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면, 이 테마를 통해서 얼마나 멋진 제품이나 서비스가 가능할지, 얼마나 큰 사업성과가 기대될지를 설명할 수 있는 ‘징표’를 내놓아야 한다.
아직 초기 단계라 정보가 부족하더라도 공감이 갈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애써야 한다.
특히 소재나 부품을 개발하는 연구라면 ‘Target Application’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휴대폰이나 TV 등 세트 업체와 협력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개발 방향을 협의할 때마다 달라지는 세트사의 ‘갑질’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연구테마의 성과로 드러나는 면을 명확히 하지못하면 사내에서도 계속 곤란한 일을 당할 것은 뻔한 일이다.
(2) 조기 과제 종료(Early or Fast Failure)
더 많은 아이디어를 검토하기 위해 깔때기를 더 넓힐 필요가 있고, 적절한 기준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자사가 점유하고 있는 사업이나 기술영역이 안정적이고 제품 생명주기(Product Life Cycle)가 충분히 길다면 상관없겠지만, 연구개발 성공의 영향력이 큰 혁신적 연구테마를 다루려고 한다면 수시 점검을 통하여 조기에 과제를 종료하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재활용하는 등의 활동이 필요하다.
한 방에 좋은 테마를 고르겠다고 욕심을 내기보다는 더 많은 씨앗을 뿌리고, 장래의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선별적으로 키워 나가는 부지런함이 요구된다.
(3) 연구테마의 잠재력(Potential Impact) 확인에 집중
테마 발굴에서 흔히 하는 실수는 ‘보다 정확한 평가 척도를 정하고, 정밀하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기술개발을 할 연구테마는 아직 걸음마를 하는 아기인데도, 10점 만점에 9~10점의 묘기를 요구한다.
발굴 테마를 지속적으로 검증하고 조기종료와 재생을 반복하다 보면 정말 잠재력 있는 테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므로, 선정 기준에 집착하기보다는, 기술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더 많은 아이디어를 넣을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
알 수 없는 연구테마의 시장성을 거론하기보다는 3~5년 뒤의 영향력을 고려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문짝 재질이나 냉각방식을 도입한 혁신적인 냉장고를 개발하기 위한 테마를 제안했더니, ‘향후 몇 년간 냉장고의 시장성이나 기술의 난이도는 뻔하다, 왜 이렇게 진부한 연구테마를 가지고 왔는가’ 하고 허물하는 의사결정자가 있을 것이다.
약간의 보강만으로도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실무자의 주장은 그럴 때마다 무시되곤 한다.
반면 새로운 방식의 AI(Artificial Intelligence)를 적용한 스마트폰은 너무나 혁신적인 것은 인정하지만, ‘당장 3~5년 내에 시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그런 생각은 하면서 테마를 제안한 것인가?’ 하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도 한다.
연구테마의 가치를 정밀하고 정량적으로 평가하려는 기준 그 자체에만 집중하다 보니, 연구테마의 실제적 효용성이나 잠재력을 고려하는 데에 소홀히 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이상에서 검토한 테마 발굴의 요건을 감안하여, 기회 발굴(Opportunity Search)과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 등의 방법론의 활용법을 보고, 이들을 통하여 확인된 테마를 어떻게 R&D 과제로 정하고 계획해아카데미야 하는지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기회 발굴(Opportunity Search)
연구테마 발굴을 위한 브레인스토밍법의 하나로 알려진 SBI consulting의 기회 발굴(Opportunity Search)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Ideation), 유사한 것들을 모으고(Clustering), 적정 기준으로 선별하고(Screening), 구체화(Profiling) 과정을 통하여, 불완전한 초기 아이디어를 훌륭한 제품이나 연구테마로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간단한 양식을 제출한 후 정리해 나가는 과정은 타 프로세스와 유사하지만, 선정 기준(Screening Criteria)을 정밀하게 하기보다는,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사전에 인지할 수 있도록 하여 중복을 피하고, 더 나은 변종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과정이 특징이다.
테마 발굴의 요건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초기 단계의 설익은 연구테마를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하기보다는 더 많은 가능성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
가치 제안은 발굴된 테마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장래에 우리 회사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조금은 ‘과격하게라도 포장’하려는 과정이다.
구체화(Profiling)하는 과정은 꼼꼼하게 찾은 많은 정보를 단순히 구겨 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들로 하여금 공감하고 더 중요한 정보를 채워 넣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통상 NABC(Need, Approach, Benefit, Competition)로 정의되는 가치 제안은, 발굴 테마의 개발 필요성, 자신만의 독특한 추진방법, 기대성과, 차별화 방안 등의 내용으로 구성하는데, 이는 기존의 사업계획서나 과제제안서에 포함되어 있는 항목이다.
다만 서너 장의 양식으로 핵심만을 제시함으로써, 부서 내에서 쉽게 공감하고 쉽게 정보보완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물론, 보고받는 의사결정자들도 명확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존 제안서와의 차이점이다.
‘30~40장이나 되는 과제제안서나 사업계획서를 보고 얼마나 많은 관련자들이 공감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보태어 줄 수 있을까? 항상 시간에 쫓기는 연구소장이나 경영자들이 이 많은 자료를 보고 얼마나 확신에 차서 결정을 내려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본 적은 없는가? 혹은 왜 저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보고할 때마다 사소한 오탈자만을 트집 잡을까 하고 화를 낸 적이 있는 연구원이라면 한 번 사용해 볼만한 방법론이다.
지면 관계상 혹은 적용한 기업들의 보안상 상세한 예를 들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소위 잘 나가는 기업들에서는 정제된 제안을 공감하고, 의견을 더 채우면서 더 나은 제안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치 제안은 테마나 과제 발굴 단계에서뿐만 아니라 개발, 사업화를 거처 고객에게 제안하는 단계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최근 인기 있는 요리연구가이자 사업가인 유명인의 설명에서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2번 티스푼 둘, 100㏄ 조리 컵 하나입니다’라는 전문 셰프들의 설명보다는, ‘종이컵 반 컵이면 됩니다’ 하는 가이드가 더 쉽게 귀에 들어오고, 배우는 사람들에게 요리에 대한 자신감을 더 심어 주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가치 제안은 실리콘밸리에서 벤처 투자자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서 2~3분 내에 자신의 사업 구상을 설명하려던 창업 후보자들의 엘리베이터 피치(Elevator Pitch)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창업 후보자들은 기술도 모르는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기술적 특장점을 설명하기보다는 그에 기인한 기대성과나 차별점을 짧은 시간 내에 설명하려고 한다.
기술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 함부로 한다고 경영진을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이 감동받을 수 있는 특징을 부각시켜 전폭적인 지원을 이루어 내야 하는 것이 이젠 연구원들의 추가적인 숙제가 된 것 같다.
중장기 전략에 충실해야 하지만, 시퍼런 날이 선 연구테마
‘에지(Edge) 있게 한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전사의 전략 방향에 맞추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연구테마를 발굴하고 제안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경쟁자의 움직임, 관련 기술의 발전, 정부의 규제 등 외부인자들이 수시로 변화하는 사업 환경에서 연구개발 테마 발굴도 유연하게 변신하면서도 발굴 당시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에지 있는 모습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연구테마를 구체화한 과제계획(R&D Project Plan) 역시도 이런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환경 변화의 동인(Drivers of Changes)을 규명하고 그에 따라 어떻게 전략을 유연하게 운영할 것이며, 발굴한 테마의 에지는 어떻게 해야 여전히 예리하게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