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생명이야기 - 사람 염색체에 담긴 삶의 이야기
재미있는 생명이야기는 우리 일상과 연계되어 있는 생명과학의 주요 개념들을 살펴봅니다.
글_ 방재욱 명예교수(충남대학교 생명시스템과학대학 생물과학과
생명공학의 시대로 열려있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생명의 본질’인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는 염색체(染色體)에 관한 이야기는 생명과학 울타리에서 벗어나와 일상에서 알아두어야 할 상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생물의 세포 내에 간직되어 있는 염색체의 수와 모양은 종(種)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 실례로 고양이의 염색체 수는 38개, 소는 60개, 말은 64개, 애완견인 개의 염색체 수는 78개나 된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의 수는 60조개가 넘는다.
이들 세포에 들어있는 염색체 수는 몇 개이며,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남녀의 성(性) 결정은 염색체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으며, 성에 따른 유전 양상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사람의 염색체와 핵형
지금으로부터 70년 전만해도 사람의 염색체가 형태는 물론 수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학자에 따라 사람의 염색체 수가 46개, 47개 또는 48개 등으로 다양하게 제안되었다.
사람의 염색체 수는 1956년에 중국인 생물학자 치오(J. H. Tjio)와 스웨덴 학자 레반(A. Levan)이 시험관에서 배양한 사람의 백혈구 세포로부터 특정 염색법을 이용한 관찰을 통해 46개로 확인하며 확실하게 밝혀졌다.
이렇게 밝혀진 46개의 염색체에는 약 1.8m 정도의 DNA 분자가 들어 있으며, 그 속에 놓여있는 유전자의 수는 25,000~30,000개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사람의 염색체 수는 2n=46이라고 표기한다. 이는 세포 하나에 들어있는 46개의 염색체가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로부터 각각 23개씩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염색체들은 상염색체(常染色體)와 성염색체(性染色體)로 구분이 되는데, 상염색체는 염색체들 중 성염색체를 제외한 나머지 염색체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의 염색체는 44개의 상염색체와 2개의 성염색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염색체는 X염색체와 X염색체보다 크기가 훨씬 작은 Y염색체로 구분이 된다.
부모로부터 22개씩 물려받는 상염색체는 모양과 크기가 같은 염색체가 짝(22쌍)을 이루는데, 이렇게 짝을 이루는 염색체는 상동염색체(相同染色體)라고 부른다.
상동염색체들을 크기와 모양에 따라 쌍으로 구분하는 것을 핵형(核型, Karyotype) 분석이라 한다. 그림 1은 염색체들을 상동염색체 쌍으로 구분한 핵형(남성)을 보여준다.
그림에서처럼 상동염색체 쌍은 길이 순서로 1번부터 22번까지 고유번호가 정해져 있어, 염색체들은 고유번호에 따라 구분이 되며, 성염색체는 X와 Y로 따로 구분한다.
혈액형의 유전
상동염색체 쌍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들이 쌍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은 감수분열 과정에서 분리되어 정자나 난자로 들어가 후손으로 전해진다.
유전 현상은 겉으로 나타나는 표현형(Phenotype)과, 우성과 열성인자를 기호를 사용해서 나타내는 유전자형(Genotype)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유전자들이 상동염색체 쌍에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유전자형은 두 개의 기호로 나타낸다.
그 실례로 ABO식 혈액형의 유전에서 겉으로 나타나는 표현형은 A형, B형, AB형 및 O형으로 구분이 된다.
혈액형을 상동염색체에 쌍으로 놓여있는 유전자형으로 나타내면 A형의 AA와 AO, B형은 BB와 BO, AB형은 AB, O형은 OO로 표기할 수 있다.
유전자형 AO가 A형, BO가 B형으로 나타나는 것은 유전자 A와 B가 O에 대해 우성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며, A와 B 사이에는 우열의 관계가 없기 때문에 유전자형 AB는 AB형으로 나타나게 된다.
ABO식 혈액형에서 아버지가 A형이고 어머니가 B형인 집안에서 O형인 자녀가 태어날 수 있을까? 그 답은 ‘그렇다’이다.
그 이유는 A형인 아버지의 유전자형은 AA나 AO이며, B형인 어머니의 유전자형은 BB나 BO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유전자형이 AA이고 어머니가 BB라면 아버지의 정자에는 A 유전자만 있고, 어머니의 난자에는 B 유전자만 있기때문에 자녀는 모두 AB형으로 태어난다.
그에 비해 아버지의 유전자형이 AO이고, 어머니의 유전자형이 BO라면 그림 2에서 처럼 자녀들에서 AB형(AB), A형(AO), B형(BO) 및 O형(OO)의 4가지 유전자형이 모두 나타날 수 있다.
A형인 아버지와 B형인 어머니 사이에서 O형인 자녀가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 유전자형이 AA이고 어머니가 BO인 경우와 아버지가 AO이고 어머니가 BB일 경우에 자녀들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혈액형에 대해 생각해보자.
성염색체와 유전
X와 Y로 구별되는 성염색체 조성에서 여성은 X염색체가 두 개(XX)인데 비해 남성은 X염색체와 Y염색체를 하나씩(XY)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의 염색체 조합을 나타낼 때, 상염색체와 성염색체를 구별해 남성은 2n=46=44+XY, 여성은 2n=46=44+XX로 표기한다.
핵 안에 들어있는 22쌍의 상염색체와 한 쌍의 성염색체는 감수분열 과정을 통해 반으로 나뉘어져 정자와 난자로 들어가기 때문에 남성에서는 22+X와 22+Y의 두 가지 정자가 생성되지만, 여성에서는 22+X의 한 가지 유형의 난자만 만들어진다.
그래서 난자에 정자가 들어가 수정이 될 때, 22+X의 정자가 들어가면 딸이 태어나고, 22+Y의 정자가 들어가면 아들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유전자가 성염색체에 놓여있으면 유전 양상은 성(Sex)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그 실례로 X염색체에 놓인 열성유전자에 의해 나타나는 색맹(色盲)의 유전에 대해 알아본다.
색맹의 유전에서 열성유전자를 가진 염색체를 X’로 표기할 때, 남성에서의 성염색체 조합은 XY와 X’Y의 두 가지이지만, X염색체가 두 개인 여성에서는 XX, XX’ 및 X’X’의 세 가지 유형이 나타난다.
남성은 X염색체를 하나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X’Y 유전자형에서 열성유전자가 발현되어 색맹이 된다.
그에 비해 여성의 경우 XX는 정상, X’X’는 색맹으로 나타나지만 X’X는 색맹을 유발하는 열성유전자(X’)가 우성유전자(X)에 눌려 외형적으로는 정상인 보인자(Carrier)로 나타난다.
아버지가 색맹(X’Y)이고 어머니는 정상(XX)일 때 태어날 수 있는 자녀들의 유전자 조합에 따른 표현형은 그림 3-a에서 보는 것처럼 딸들은 모두 색맹유전자를 지니지만 외형으로는 정상인 보인자(X’X)로 태어난다.
그에 비해 아들들은 아버지가 색맹이지만 우성유전자를 지닌 어머니로부터 X염색체를 물려받기 때문에 모두 정상(XY)으로 태어난다.
아버지가 정상(XY)이고 어머니가 색맹(X’X’)일 경우 자녀들의 성염색체 조합은 그림 3-b에서 보는 것처럼 딸들은 모두 보인자(XX’)로 태어나지만, 어머니로부터 X’염색체를 물려받고 태어나는 아들들은 모두 색맹(X’Y)으로 태어난다.
X염색체에는 천개가 넘는 유전자가 간직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 성의 결정에 관여하는 Y염색체는 X염색체에 비해 크기가 작을 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유전자의 수도 40여 종 이하로 매우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