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나침반

자기혁신칼럼 - 우리는 살면서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자기혁신 칼럼은 회원사의 기업인, 이공계 연구원 등에게 자기혁신과 리프레시가 되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자기계발 칼럼입니다.

글_ 오세웅 작가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세상에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후세에 남기는 업적, 유물은 영어로 메멘토(Memento)라고 한다. 메멘토를 남기는 방법은 대개 4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는 것이다. 윌리엄 허셜(1738-1822)은 군악대에 근무한 후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측하는 천문학에 흠뻑 빠졌다. 보다 멀리, 정확하게 별을 관측하려면 고성능 망원경이 필요하다.

당시는 구리, 주석, 안티몬의 합금으로 된 금속원판을 갈아 대형 거울로 만들어 망원경으로 이용했다. 천문학 초보자인 그는 망원경 유리를 전문으로 만드는 주조 공장에 발주했지만, 원하는 만큼의 성능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제작하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1781년, 천왕성을 발견했다.

천왕성은 지구보다 질량은 15배, 부피는 50배 이상인 행성이다. 영국학회는 아마추어 천문학도인 그를 명예회원으로 추대했고 매년 200파운드의 연금도 받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천문학에만 매달릴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주어졌고, 그가 평생 연구한 업적은 훗날의 천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두 번째 방법은 사상을 남기는 것이다. 공자, 예수, 석가는 직접 글을 써서 남기지는 않았지만, 제자들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인류에 남겼다.

가령, 유교사상을 담은 논어는 시대를 초월해 면면히 이어져온 동양 최대의 베스트셀러이다. 예수의 사상은 서양 기독교에 직접적이고 확실한 영향을 주었다. 석가의 불교는 삶이라는 고행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를 가르쳐준 친절한 지침서다.

위대한 사상은 인류가 기존에 가졌던 생각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강력한 힘이 있다. 공자, 예수, 석가는 그 사상만으로 세계를 움직였다.

세 번째 방법은 책을 남기는 것이다. 영국 태생인 존 로크는 ‘인간 지성에 관한 시론’을 썼는데, 개인의 자유는 국가가 제멋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이 담긴 책은 프랑스로 건너가 루소가 읽고, 몽테스키외가 탐독했으며 프랑스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어 1790년에 발발한 프랑스 혁명의 기초 사상이 되었다.

신으로부터 주어진 왕권을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역설한 그의 책은 프랑스에 이어 유럽 전역까지 뒤흔들면서 헝가리 개혁, 이탈리아 독립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물론 존 로크와 똑같은 사상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 전에도 있었지만, 그는 책이라는 메멘토를 후세에 남겨주었다. 존 로크는 병치레가 심했고 사회적 지위도 낮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오늘날의 유럽을 지배한 사람이었다.

네 번째 방법은 교육이다. 스즈키 신이치가 창안한 ‘스즈키 메소드’는 어린이 바이올린 교습에 가장 효과적이고 적합한 교재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그는 바이올린 공장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바이올린의 기본을 익혔다. 장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기에 독일 유학을 떠났다.

거기서 물리학자이자 바이올린 연주가 능숙한 아인슈타인을 만나 친분을 쌓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지인들은 가끔 모여 즉석으로 홈 콘서트를 열곤 했다.

어느 날, 스즈키 신이치도 아인슈타인의 초대로 홈 콘서트에서 연주한 적이 있다. 거기 모인 유럽인들은 스즈키가 클래식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소곤댔다.
 
‘동양인이 저렇게 연주를 잘하니, 신기하네.’ 신기하다는 표현 뒤에는 동양인에 대한 멸시가 섞여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는 천재입니다.”라는 말로 그를 옹호해 주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스즈키 신이치는 음악학교에 재직하는 한편 대외적 연주회 활동도 활발히 했다.
 
성인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는 힘들었다. 그는 성인보다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음악 교육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아이는 태어날 때 누구나 천재, 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적용시켜야 할지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떠들고 웃는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거야! 바로 저거라고!” 갑자기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 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그 나라 말을 할 줄 안다.

부모는 아이를 낳으면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쉴 새 없이 말을 건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와의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소통 수단이 될 모국어를 가르치려고 애쓴다. 아이의 말문은 그렇게 트인다.

스즈키 신이치는 바이올린도 모국어처럼 가르치면 된다고 여겼다. 클래식 발상지인 유럽인이라도 당시, 9살이 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바이올린을 가르치지 않았다. 배우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였다. 스즈키 신이치는 괘념치 않았다.

너무 어리다고 모국어를 9살 이전까지 안 가르치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 바이올린도 빠른 시기에 배울수록 밑그림이 잘 그려진다. 누구나 바이올린 천재가 될 수 있다. 그의 신념은 머지않아 결과로 증명되었다.

3살짜리, 5살짜리 아이가 비록 어린 이용이지만 자기 몸의 반 만한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리고 어려운 클래식 연주를 하는 모습에 세상 사람들은 놀랐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 순회공연을 할 때도 미국인들은 끊임없는 질문을 해댔다. 아이들을 혹사시킨 게 아니냐, 특별히 연주가 뛰어난 아이만 선발한 게 아니냐... 스즈키 신이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는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천재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남길 수 있는 메멘토는 무엇일까. 큰일을 벌이려면 위대한 목표와 당찬 실행력, 거기에 세상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큰 비전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상을 남기려면 인류를 향한 보편적인 외침이 분명한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

책을 남길 수도 있겠지만, 그 책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혼이 없으면 단지 ‘종이모음’으로 끝나기 쉽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쉽지 않다.

가르치기는 하겠지만, 위대한 가르침으로 남기는 결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일도 벌이지 못하고, 위대한 사상으로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에 불을 붙이지도 못하고, 책 한 권도 남기지 못하고, 제대로 남을 가르치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후세에 남길 메멘토는 하나도 없을까.

위대한 업적, 사상, 가르침은 그 위대함을 남긴 사람의 생애가 결코 따로 떨어진 게 아니었다.

삶 자체로 큰일을 이루었으며, 삶으로 자신의 사상을 증명했고, 삶이 책을 쓰게 만들었고, 삶 자체가 가르침이 되었다.
 
일과 삶은 결코 분리된 게 아니다. 삶 자체가 그들의 비즈니스이자, 일이며 목표이고 과제였다. 우리도 각자의 삶을 통해 후세에게 위대한 유산을 얼마든지 남길 수 있다.
 
삶은 사상, 책, 가르침, 거대한 비즈니스보다 우월하고 획기적이다. 평생 대단한 일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80세에 인류에 남을 위대한 시를 한 편 썼다면 그 인생이 과연 실패한 인생일까?

우리는 살면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고 떠나면 된다. 우리가 최고의 메멘토를 남길 수 있는 삶 자체다.

그러려면 우리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격려해서 황금빛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