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덕영 교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오늘날 전자상거래 무역이 점차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어 가면서 인터넷을 통한 자유로운 정보의 이동과 접근의 보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경 간 정보 이동을 제한하는 데이터 현지화 규제 조치가 증가하면서 전자상거래 무역의 새로운 장애를 구성하고 있다.
이 글은 데이터 현지화 조치의 유형과 구체적인 사례 및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논의 동향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새롭게 대두되는 전자상거래 무역 장벽에 대한 이해와 대응전략을 구축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들어가면서
한때는 아날로그 전화를 통한 통신 판매와 텔레비전 홈쇼핑 프로그램을 통한 방송 판매가 전자상거래의 중심축을 담당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디지털 컨버전스와 모바일 인터넷이 보편화된 시대에는 인터넷 기반의 온라인 전자상거래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사분기의 전자상거래 총 거래액은 5조 1,962억 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20.9%가 증가하였으며, 이 가운데 모바일을 통한 거래액이 약 2조 6,796억 원으로서 무려 50.6%가 증가하였다.
일본의 시장조사기관인 ‘노무라 종합연구소’의 조사에서도 일반 소비자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B2C 형태의 온라인 전자상거래 시장이 이미 2012년에 10조 엔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2018년에는 2배에 달하는 20조 엔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었다.
이에 더하여 글로벌 전자상거래 결제 서비스 제공자인 ‘페이팔(PayPal)’의 ‘크로스보더트레이드 연구소(CBT LAB)’는 2016년 현재 전 세계의 전자상거래 구매자를 13억 2천만 명으로 추산하면서, 온라인 전자상거래를 통한 상품 및 서비스의 구매가 2018년에는 약 2조 5천억 달러 규모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처럼 전자상거래 무역은 현재는 물론 가까운 미래에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달성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장밋빛 전망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통한 국경 간의 자유로운 정보 및 데이터의 이동이 안정적으로 보장될 것이 요구된다.
이는 오늘날 전자상거래를 통해서 제공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판촉과 판매, 고객서비스, 공급 사슬(Supply Chain) 등의 상당 부분이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자명한 것이라고 하겠다.
데이터 현지화(Data-Iocalization), 온라인 전자상거래의 새로운 무역 장벽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경 간 정보 및 데이터 이동의 자유는 온라인 전자상거래 무역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지난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Edwards Snowden)에 의해서 미국의 국가안전보장국(NSA)이 글로벌 인터넷을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된 이후, 자국의 영토 내에 구축된 인터넷 설비, 국내의 인터넷 서비스 또는 국내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를 통한 데이터의 저장 및 처리만을 허용하는 ‘데이터 현지화(Data-localization)’ 조치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 현지화 조치는 주로 국내산 네트워크 설비의 구축을 강제하는 것에서부터 국내 법인 또는 내국인에 의해서 제공되는 인터넷 정보처리 서비스를 제외한 다른 서비스를 불법화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구현되며, 해당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경우에는 국내에서 생성, 취득, 가공된 정보와 데이터의 국외반출을 금지하고 외국인 사업자의 인터넷 관련 서비스의 제공을 불허하거나 벌금을 부과하는 등의 제재 조치가 부과된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지난 2015년 9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러시아의 ‘개인정보보호법’을 들 수 있는데, 동 개정법에는 러시아인의 개인 정보는 오로지 러시아에 물리적으로 위치한 서버에서만 저장 및 처리될 것을 강제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그 때문에 기존에는 제3국의 인터넷 서버를 사용하여 러시아에 온라인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제공해 왔던 외국의 사업자들이 현재는 반드시 러시아 국적의 데이터 센터와 사용계약을 체결하거나 러시아 영토 내에 독자적인 데이터 센터를 구축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 밖에 특정한 유형의 정보만을 선별하여 데이터의 국경 간 이전을 금지하는 완화된 형태의 데이터 현지화 조치를 취하는 사례도 있다.
예컨대 호주의 ‘개인통제전자 건강기록법’(PCEHR Act) Section 77의 제1항은 전자화된 건강정보 가운데 개인 정보 및 식별 가능 정보의 국외 이전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공간 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제16조는 1대 2만 5천 이상의 비율로 축척된 지도 정보에 대한 국외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상의 데이터 현지화 조치가 가지는 문제점은 개인 정보 등의 국외 이전과 관련하여 정보주체의 동의 유무, 암호화 등의 기술적인 조치를 통하여 상술한 정보 등에 대한 안전처리 등이 제공되고 있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주로 자국의 영토 내에 물리적으로 주재하는 데이터 설비의 구축 또는 국내의 서비스 제공자를 활용하고 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데이터의 국제적인 이동을 금지한다는 데 있다.
그 결과 해외에서 인터넷을 통하여 전자상거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인 사업자들은 데이터 현지화 조치를 도입하고 있는 국가에 추가적인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거나 해당 국가의 사업자와 협약을 체결하는 등 불필요한 재원과 시간을 소모할 수밖에 없게 된다.
데이터 현지화 관련 TPP 협정의 새로운 논의 동향
데이터 현지화 조치는 데이터가 저장 및 처리되는 장소 또는 데이터 처리자의 국적을 기준으로 데이터의 국외반출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 조치가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 간에 국적에 따른 차별 대우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16년 7월을 기준으로 164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회원국인 상황에서, 각국이 도입하고 있는 데이터 현지화 조치가 WTO 협정의 내국민대우의 원칙 또는 시장접근에 관한 약속에 위반될 수 있다는 연구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WTO 협정의 내국민대우 원칙의 위반과 관련해서는 데이터 현지화 조치로 인하여 외국을 원산으로 하는 ‘동종’의 상품, 서비스 혹은 서비스 제공자에게 ‘보다 불리한 대우’가 제공되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또한 데이터 현지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가 온라인 전사상거래 분야에 대해서 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경우 또는 개방을 했더라도 과도한 제한 사유를 부과하고 있는 경우에는 애초에 시장접근에 관한 약속 위반의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난 2015년 10월에 체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TPP: Trans-Pacific Partnership)’협정은 전자상거래에 챕터를 통하여 데이터 현지화 조치를 직접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의무조항을 포함하고 있어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 동 협정 제14.11조 제2항은 “당사국은 개인 정보를 포함하여 전자적인 수단을 통한 정보의 국경 이동을 허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전자적인 수단’은 인터넷을 포함한다고 해석된다.
그 밖에 TPP 협정 제14.13조 제2항 역시 “당사국은 자국의 영토에서 업무수행을 위한 조건으로 컴퓨팅 설비를 해당 영토 내에서 이용하거나 위치할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동 조항에서 언급한 ‘컴퓨팅 설비’는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정보의 처리 또는 저장을 위한 컴퓨터 서버와 저장 장치”를 의미하는데(제14.1조), 이에 따르면 온라인 전자상거래 서비스의 제공을 위한 조건으로서 데이터 센터 등의 인프라 시스템을 자국의 영토에 설립할 것을 요구하거나 국내 사업자와의 계약을 강요하는 데이터 현지화 조치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이러한 점에서 TPP 협정이 발효된다면 개인 정보 보호, 보안 등을 이유로 증가하고 있는 데이터 현지화 조치가 효과적으로 규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을 마치며
여전히 국내에서는 데이터 현지화 조치 그 자체는 물론이고, 이러한 비관세 무역 장벽에 대응하기 위한 TPP 협정의 새로운 전자상거래 무역규범에 대한 관심 또한 저조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TPP 협정의 원당사국이 아니며, 아직은 동 협정이 발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해가 된다.
하지만 TPP 협정은 세계경제를 견인하는 미국과 일본이 참여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미 TPP 협정에 참여하고 있는 베트남을 포함하여 향후 한류문화의 긍정적인 영향 속에서 우리나라의 전자상거래 기업이 시장 진출을 노릴 수 있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대만 등도 후발주자로 참여할 의사를 표명하였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우리나라 역시 이미 TPP 협정에 참여할 의사를 표명한 상황이다.
따라서 동 협정의 전자상거래 챕터에 포함되어 있는 데이터 현지화 관련 조항이 향후 우리나라의 전자상거래 관련 국내 제도의 운영 및 관련 산업의 진흥과 발전에 어떠한 함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산업계와 이해관계자들 역시 관심을 기울이고 산관학 간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구글(Google)이 우리나라 지도 정보의 국외 이전을 신청한 사안에 대해서 내려질 관계 부처의 최종 결정과 근거는 향후 데이터 현지화에 관한 국내 정책방향의 큰 줄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물론 지도 정보의 국외 이전에 대해서는 국가 안보, 산업 육성, 과세, 국내법 적용 등 다양한 관점의 분석과 찬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글의 독자들은 인터넷을 통한 국경 간 정보 이동의 중요성 및 국가의 정당한 제한사유, 나아가 과도한 정보이동의 제한이 비관세 무역 장벽으로서 전자상거래에 미치는 영향의 관점에서 동사안을 재평가해 보는 것은 어떠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