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POSCO 권오준 회장
제조업 중요성의 재고(再考)
세계 1위를 자랑하던 한국의 조선 산업이 흔들리면서, 조선 산업은 사양산업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조선 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기 불황의 여파와 함께 제조업 전반에 위기가 도래한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한국 제조업의 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에 13.7%를 기록한 이래로 지속 하락하고 있으며, 2015년에는 1.3%의 낮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제조업의 수익성도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IT 산업을 제외한 주요 산업의 영업이익률이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석유화학, 철강, 조선 등의 주요 제조업은 큰 폭의 하락을 보이고 있습니다.
위기를 맞이한 제조업에 대해 한편에선 과다한 제조업에 대한 의존이 우리 경제 성장률을 저하시킨다는 지적과 함께 서비스 산업에 대한 육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특히 서비스 산업의 일자리 창출 가능성이 제조업보다 높기 때문에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최근 나타난 현상을 보면 서비스업이 발달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제조업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자각하고 제조업의 부흥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독일의 지멘스는 Industry 4.0 프로그램을 통하여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의 도요타, 혼다, 파나소닉 등은 ‘혼신의 힘을 다해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 정신을 바탕으로 제조업 분야의 신사업 개척과 경쟁력 제고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GE는 한때의 성장 동력이었던 금융업을 정리하고 대신 산업 인터넷이라는 화두를 내걸고 제조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GE는 전체 수익에서 고부가가치 제조업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을 2014년 58%에서 2018년 90%까지 끌어올릴 방침으로, 다시금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GE가 산업 인터넷으로 명명하고, 적극 추진하고 있는 산업용 IoT 기술은 제조업의 완전한 자동 생산체제와 생산과정의 최적화를 통해 제조업의 혁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요 선진국들이 제조업 육성 활동을 강화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서비스 산업이 융성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조업은 유형의 가치를 창출하는 데 비해 서비스 산업은 무형의 가치를 창출합니다.
무형의 가치는 영화, 음악과 같은 문화적 가치를 포함하여, 금융, 의료 등의 폭넓은 산업 서비스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보면 서비스 산업은 제조업에서 만들어 낸 유형의 가치를 바탕으로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서비스 산업인 호텔/음식점의 경우 제조업이 활성화되어 충분하게 보수를 받는 종업원이 많아져야, 이용객이 증가하고 매출이 늘어나 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이 황폐화된 적이 있던 때의 미국 디트로이트 시가를 보면 황량하기 그지없었음을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외식을 하거나, 문화적 행사를 누릴 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시가가 황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융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조업이 융성해야 여유자금을 은행에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고, 대량의 투자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도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돈이 돌지 않으면 금융업이란 사업이 활성화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제조업은 유형의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부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서비스업은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므로 단지 부의 이동을 촉진할 따름입니다.
둘째, 제조업의 진입 장벽은 서비스 산업에 비해 훨씬 높아서 일단 경쟁력이 확보되면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투자 측면에서 보면 제조업은 많은 초기 투자가 필요하고 오랜 기간이 지나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조업은 일단 경쟁력을 확보하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으며 쉽게 경쟁력이 추월 당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미 튼튼한 제조업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국민들을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을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특히 지금까지의 제조업 발전이 선진국 기술의 모방 또는 개선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향후에는 창조적 역량의 발휘로 고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과제이며 향후 제조업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미래의 산업은 첨단 지식 집약형 스마트 산업인데, 이는 서비스 산업과 제조업과의 융합에 의해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선진국 산업의 새로운 움직임에 대해 기술한 바 있는데, 이 새로운 움직임을 종합하여 표현한다면 미래 산업은 현재 존재하는 다양한 산업 간의 융합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Smart화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각종 유형 및 무형의 가치를 다양하게 창출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생산되는 가치의 품질을 고도화 함으로써 인류의 삶을 보다 더 윤택하고 편리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스마트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식 집약형 서비스 산업과 함께 제조업이 굳건하게 존재하여야 하고, 산업 간 융합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스마트 산업 구축에 필수 요소인 IoT를 활성화할 수 있는 Data 무선 송수신 시스템의 구축과 각종 센서의 개발뿐만 아니라 고속 연산을 가능하게 하는 반도체 및 컴퓨터 시스템의 생산과 구축은 모두 제조업의 영역입니다.
우리나라는 근면 성실한 국민성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을 성장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제조업은 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 빠른 속도로 기술 추격을 해온 중국과 엔저로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된 일본 사이에 끼인 ‘신(新) 넛크래커(Nut Cracker)’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새로운 혁신과 성장의 기회 또한 맞이하고 있습니다.
주요 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다양한 전략적 접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미래 또한 이러한 변화를 선도하는 제조업의 기반 강화와 융복합을 통한 신시장 개척과 경쟁력 제고에 달려 있다고 가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금 강조하고 싶은 말은 제조업이 없다면 서비스업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제조업은 사양산업이 될 수 없습니다.
첨단 제조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바탕으로, ‘제조업은 영원하다’는 믿음으로 전 제조업의 스마트화를 통해 ‘신(新) 르네상스’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