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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아카데미 - 재조합(Recombination)과 혁신, 그 불확실한 공존

혁신 아카데미는 혁신의 주요 이론과 개념을 소개하고 실제와 연계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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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현 조교수 연세대학교


혁신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은 재조합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미 슘페터(Schumpeter)는 1939년 “혁신은 부분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조합함으로 이루어진다”(“innovation combines components in a new way”, p.39)고 주장함으로써 혁신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재조합에 있음을 명시하였다.

이후 혁신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모델을 제시한 진화경제학의 선구자 넬슨(Nelson)과 윈터(Winter)는 그들의 가장 유명한 1982년 저서에서 기술뿐 아니라, 예술, 과학, 그리고 삶의 전반에 걸쳐서 새로운 무언가가 출현하는 과정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개념 혹은 사물이 재조합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혁신에 있어서 재조합의 중요성은 학자들의 주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생활에 엄청난 변혁을 가져온 많은 혁신의 결과물들 중 재조합을 통해 탄생한 예는 수없이 많다.

인류의 미래를 환히 밝혀줄 것으로 예상되는 청색 LED의 예를 살펴보자.

일본의 과학자 아카사키 이사무, 아마노 히로시, 나카무라 슈지에는 청색 LED의 개발을 실현함으로써 201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의 방법 또한 재조합에 기반한 것으로 갈륨 나이트라이드(GaN)를 알루미늄 나이트라이드(AlN) 층을 씌운 사파이어 위에서 성장시키는 개념적 재조합을 통해 수천 번의 실패 끝에 청색 LED를 구현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이미 우리의 분신이 된 스마트폰을 보자. 이 또한 재조합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쯤에서 정리해보자.

대부분의 혁신은 기술, 혹은 지식의 재조합을 통해서 일어나는가? 아마도 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그렇다면 혁신을 꿈꾸는 조직의 혁신 담당자가 조직원들에게 “당장 재조합에 힘쓰라!”고 조언할 수 있을까?

실제로 재조합에 많은 자원을 투여하는 기업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을까? 답은 “글쎄요”일 것이다.

혁신 연구가 리 플레밍(Lee Fleming)은 2001년 그의 논문에서 재조합의 활동이 쉽게 진행될 수 없는 이유를 “재조합의 불확실성(Recombinant Uncertainty)”으로 표현했다.
 
아마도 많은 기업들이 재조합을 혁신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론으로 강조할 수 없는 이유는 재조합이라는 활동에 공존하는 불확실성 때문이 아닐까?

결과적으로 노벨상을 탈 정도의 중요한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몇 십 년이라도 기다릴 수 있겠지만, 그 결과는 불확실하다.

이러한 활동에 지속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깊은 주머니(Deep Pocket)”를 가지고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재조합이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확실성의 원인에 대한 이해가 이를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학자들과 혁신가들은 기술 혹은 지식의 재조합이 불확실성을 갖는 이유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종종 확률의 모델로 단순화시켜 버린다.

마치 재무적 리스크를 이야기할 때처럼 “그 결과물은 어떠한 확률분포를 따른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경우 혁신의 노력과 결과물의 인과관계도 일정 수준의 변동성을 갖는 확률 분포의 모습으로 이해되곤 한다.

확률적 모델을 넘어선 인과관계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까? 재조합의 불확실성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먼저, 재조합에 대한 근대적인 개념을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한 한가지 이미지를 살펴보자.

바살라(Basalla, 1988)는 크로버(Kroeber, 1948)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기술의 진화를 설명하였다.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연의 영역에서의 진화에서는 하나의 종이 하나의 가지를 형성하면 다른 종과의 뒤섞임이 일어나지 않고, 바깥쪽을 향해 진화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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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자연의 영역에서 매우 특이한 상황이 아니면 이종교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을 포함한 문화의 영역에서의 진화는 다르다.
 
오른쪽 나무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의 근원에서 시작한 나뭇가지가 다른 근원에서 시작한 가지와 섞이기도 하고, 다시 갈라지기도 한다.

바살라는 재조합을 통한 기술의 진화를 오른쪽의 나무 그림을 통해 묘사하였다.

이러한 나무의 이미지를 이용한 설명이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 그림은 재조합을 통한 기술의 진화를 묘사하는 데 자주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한 가지 중요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재조합을 경험한 거의 모든 가지가 끝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다.

즉, 재조합에 의한 불확실성이 이 그림에는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재조합에서의 불확실성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이미지로 기술 지형(Technological Landscape) 상에서의 재조합의 과정을 부각하고자 한다.

기술전략 혹은 경영전략에서 지형(Landscape)은 가능한 기술적, 혹은 전략적 선택지들과 각각에 대한 성과를 연결해 놓은 일종의 함수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품의 가격과 매출 간의 관계를 함수로 표시했다면 이 또한 한 가지 종류의 전략적 지형이 될 것이다.

이러한 지형 속에서 기업의 의사결정자들은 전략적, 기술적 선택을 변화시켜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위치로 옮겨가기를 원할 것이다.

마치 안개가 자욱한 날씨에 산을 오르는 등산가를 상상하면 적절한 비유가 될 것이다.

만일 어떠한 기술 지형이 그림 2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고, A의 기술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어떠한 혁신 주체가 재조합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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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 주체가 B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조합을 이룬다면 그 결과는 A와 B를 잇는 점선 어디에선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물의 성과는 A의 성과물보다 더 우월한 것이다.

즉, A의 재조합의 결과는 성공적이다. 그러나, 만일 C의 위치를 가진 기술과 재조합을 이룬다고 생각해보자.

본 기술 지형의 성질로 인해 재조합의 결과물은 A와 C를 잇는 점선 위 어디에선가 나타날 것이고, 그 결과는 기존 성과에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즉, 기술적 재조합의 성과는 각각의 기술 요소가 위치한 기술 지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논리를 확장해보면 기술 지형에 여러 개의 봉우리가 있을 때 기술적 재조합의 결과물은 높은 불확실성을 갖게된다.

기술 지형에 하나 이상의 봉우리가 있다는 것은 해당 기술의 영역이 매우 미성숙하여 표준화의 단계 이전에 있는 상황일 수도 있고, 소비자의 욕구가 다양하여 다양한 기술적 틈새 혹은 니치(Niche)가 존재하는 경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이다.

소셜 네트워크 시장에서 혁신을 이루고자 하는 누군가가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의 장점을 섞어 재조합 된 서비스를 출시한다고 생각해보자.
 
네크워크 효과에서 오는 후발 주자의 약점을 배제하더라도 그 결과물은 부정적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각각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이용자의 필요와 욕구는 각각 다르며, 각 서비스는 각 영역에 이미 특화된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즉, 그림 2의 지형 양쪽 끝에 각 서비스가 위치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두 서비스를 재조합한 결과물의 성과는 각각의 성과 보다 낮을 것이다.

기술 지형의 모양새가 하나의 봉우리를 가진, 마치 U자를 거꾸로 해놓은 것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면 재조합의 결과는 부정적인 성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재조합이 기술혁신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고 있는 혁신 담당 전문가는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가?

다음의 몇 가지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작은 규모의 재조합을 시도해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실패를 하더라도 감내할 만한 규모의 손실을 경험하도록 재조합의 실험을 설계해야 한다.
 
재조합의 결과물을 최소 기능 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의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시험해보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둘째, 재조합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아야 한다.

감내할 만한 수준에서 손실을 입었다면, 설사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

재조합의 결과물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한다면 혁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속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릴 것이다.

셋째, 성공과 실패 경험을 모두 망라해 기술 지형의 전체적 형태를 조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재조합의 결과물이 실패였다고 하더라도 그 기록을 성공의 기록과 동등한 지위로 취급하고 문서화, 지식화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기업은 기술 지형의 전반적인 모양새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에만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재조합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다.

넷째, 재조합에 특화된 인력을 골라 선별적으로 대우할 수 있어야 한다.

재조합의 결과물은 대개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기 때문에 조직 내 일반적인 성과측정 지표로는 개인별, 팀별 단기 성과를 측정하기 어렵다.

반복적인 재조합의 실패 속에도 이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인력들을 따로 모아 재조합에 특화된 팀을 만들어야 한다.

비록 기술 혁신의 영역은 아니지만 재조합의 불확실성을 잘 보여주는 문구가 있다.

미국의 소설가 토마스 핀천(Thomas Pynchon)은 그의 소설 “메이슨과 딕슨(Mason & Dixon)”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썼다.

“와인이든 맥주든 한가지만 마셔라. 둘을 결코 섞어 마시지 마라”(“Grape or grain, but never the twain”).

저자는 아마도 익숙한 두 가지 요소를 재조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실패를 경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실패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 누군가는 끊임없는 재조합의 노력을 통해 혁신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지면에 직접 언급하기는 적절치 않을 수 있으나, 소주와 맥주를 섞을 때 이용되는 황금비율이 있다.

이것은 끊임없는 재조합의 노력 후에 탄생한 황금비율일 것이다.

하지만, 이 황금비율이 해당 지형의 최고의 봉우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술혁신을 추구하는 누구이든, 더 훌륭한 맥주와 소주의 조합을 만들어 내려는 누구이든 기억해 둘 것은 우리가 모르는 어떠한 영역에 아직 시도되지 않은 혁신적인 재조합의 결과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