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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과학탐구 - 귀한 똥, 똥이 약이 되는 세상

생활 속 과학탐구는 일상생활 속 물리학, 첨단과학, 과학일반에 대해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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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은행나무가 가장 눈부신 계절. 가을 정취에 취해 길에 떨어진 노란 잎을 정처 없이 밟고 다니다간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은행 냄새 때문이다.
 
은행이 풍기는 냄새는 고약하게도 화장실 냄새와 비슷하다. 최근 몇 년간 은행 냄새에 대한 반감은 더 심해졌다.

가로수를 바꾸라는 민원이 쏟아지고 냄새의 원인이 되는 은행알(은행나무 종자)이 생기지 않는 수나무만으로 교체하겠다는 발표도 이어진다.

은행나무의 선조가 지구에 첫 출연한 때는 3억 5천만 년 전인 고생대 석탄기 초.

현재의 은행나무도 중생대 백악기에 도래하였으니 1억 년 넘는 세월 동안 지구에서 살아온 셈이다.

사람은 일생 10톤 이상의 똥을 눈다. 섬유질이 많은 식사를 하는 이들은 양이 더 많다.

한 해 지구에서 배출되는 인분의 양은 무려 2,900kg이다.

비슷한 냄새만 나도 고개를 돌리고 코를 막게 되는 똥이지만, 실상 똥의 가치에 주목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특히 의학 분야에서 관심이 높다.

지난 2012년 미국 보스턴에서 MIT대학의 마크 스미스와 제임스 버게스가 오픈바이옴(OpenBiome)이라는 세계 최초로 비영리 대변은행을 열었다.

두 번째 대변은행은 역시 비영리기관으로 2015년 3월에 캘리포니아 사크라멘토에서 문을 연 어드밴싱바이오(AdvancingBio)이다.

거기에 지난 2월 네덜란드 레이던대학교 의료센터도 NDFB(Nederlandse Donor Feces Bank)라는 대변은행을 열었다.

이러다 세계 각국에 대변은행이 문을 열게 되는 걸까?
 
대체 대변은행이 하는 일이 뭔지 궁금하다. 똥이 어디에 쓰이기에 은행까지 필요한 걸까.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Clostridium Difficile)이라는 병원균이 있다.

건강한 사람의 2~5%도 장에 있는 병원균이고, 생후 1개월 이내의 신생아 장에서는 더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병원균은 수술이나 여타의 이유로 항생제를 장기 복용할 경우 장내에서 독소를 생산하며 심한 설사를 유발한다.

이를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CDI)라고 하는데 이 병 때문에 미국에서 2011년에만 2만 9천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감염자수와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어마어마하다.

올해 새로 대변은행을 개설한 네덜란드도 한 해 CDI로 진단받는 환자 수가 3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항생제 때문에 생긴 병이니 항생제로는 치료할 수 없다.

이 균은 항생제에 내성이 있어, 치료를 위해 항생제를 쓰면 폭발적으로 증식해 버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감염을 치료할까?

그 방법으로 건강한 사람의 대변 속 미생물을 이식하는 방법(FMT: Faecal Micribiota Transplatation)이 제시되었다.

임상실험 결과는 탁월했다.

2013년 네덜란드에서 43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코를 통해 관을 삽입해 소장 상부에 이식했는데, 거의 모든 환자의 증상이 호전되었다.

최초의 대변은행 오픈바이옴은 2015년 10월까지 6천여 건의 대변을 미국 49개 주와 7개 국가에 제공했다.

그렇다면 대변은행은 어떻게 일을 할까?

혈액은행, 정자은행과 유사하게 대변은행도 대변을 수집, 가공, 저장하며 이를 연구와 치료용으로 활용한다.

물론 아무 똥이나 대변은행에 들어갈 수는 없다. 기증 자격은 무척이나 까다롭다.

최근에 항생제를 복용한 적이 없고 외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으며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 우울증 등의 질환을 앓은 적이 없어야 한다.

HIV나 식중독을 일으키는 O157균도 있어선 안 된다.

이런 조건을 다 갖춘 건강한 사람이 눈 건강한 똥이라면 여간해선 구하기 힘들 듯하다.

그래서인지 오픈바이옴은 기증자에게 1회에 40달러를 지불한다.

꾸준히 대변을 기증한다면 1년에 1천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NDFB는 기증자에게 별도의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다.

대변 이식은 현재까지는 CDI에만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앞으로 어떤 식으로 치료 영역이 넓어질지 미지수다.

아직까지는 정제한 용액을 관이나 내시경 시술을 통해 대장에 주입하는 방식을 쓰고 있지만, 캡슐 형태의 약으로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건강한 사람의 장내 세균을 실험실에서 배양해 캡슐형태로 담을 수 있다면 인간의 장 건강은 혁명적인 변화를 맞게될 것이다.

긴장된 시험을 앞두었다거나 낯선 환경 때문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과민한 대장을 지닌 이들의 에피소드는 모두 과거의 유물이 될 것이다.

인간의 장에는 무려 100조 개의 세균이 살고 있다. 그리고 장은 그저 음식을 소화하고 찌꺼기를 나르는 단순한 기관이 아니라는 사실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지난 2006년 장내 세균의 구성이 소화뿐 아니라 대사 물질 조절에 관여해 당뇨나 비만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있었다.

이에 기반하여 대사성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장내 세균 연구가 활발하다.

지난 6월 서울아산병원융합의학과 권미나 교수팀은 장내 세균 ‘박테로이데스 에시디페시언스’가 복부 지방과 체내 혈당을 감소시킨다고 학계에 발표한 바 있다.

자폐증 같이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질환도 장 속 세균의 불균형 때문이란 주장이 있다.

대변 기증이 헌혈처럼 친숙하게 여겨질 날이 올까? 대변은행 오픈 바이옴은 개인의 대변을 보관하는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고 한다.

타인을 위해서 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 건강한 날의 대변을 보관하려는 이들이 늘 것이다.

은행나무 얘기로 돌아가 보면, 은행 알이 고약한 냄새를 피우는 건 종자의 겉껍질에 있는 빌로볼(Bilobol)과 은행산(Ginkgoic Acid) 성분 때문이다.

이 성분은 피부염을 일으킬 정도로 독하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은행나무는 사실 멸종 위기종에 속해 있다. 야생에서 스스로 번식하는 은행나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때 지구상엔 11종의 은행나무가 번성했지만 지금은 남은 것은 한 종뿐이다.

그 시절 은행나무의 번식을 도운 동물은 덩치가 크고 썩은 내를 좋아하던 거대 파충류, 즉 공룡이었리라 추정된다.

공룡의 멸종과 함께 은행나무는 살아있으나 자생할 수 없는 화석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겉껍질이 풍기는 냄새를 걷어내고 보면 은행나무의 쓸모는 놀랍다.

애초에 가로수로 심은 이유도 은행나무가 질소, 아황산가스, 납 등 유해 성분을 정화하는 능력이 뛰어나서다.

은행잎은 말초혈관 장애, 노인성 치매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다른 동물들이 다 외면할 때, 악취와 독에도 불구하고 은행나무를 곁에 둔 건 인간의 필요 때문이었다.

서울에만도 수만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냄새 때문에 그 귀한 것을 없앴다 후회할 날이 오진 않을까?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