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아카데미 - 사용자 혁신과 사용자 창업
혁신 아카데미는 혁신의 주요 이론과 개념을 소개하고 실제와 연계한 칼럼입니다.
▲ 박태영 조교수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혁신의 새로운 주체인 사용자, 그들은 누구인가?
SK이노베이션이 설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중독성 강한 음악과 함께 ‘이노베이션’을 키워드로 광고하기 시작한 이후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혁신이 기업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혁신의 핵심 주체가 기업만은 아니다. 누구나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물론, 사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했을 때만 가능하다.
이 같은 노력을 ‘사용자 혁신(User Innovation)’이라고 하고, 그 혁신에 참여한 개인 및 기업을 ‘사용자-혁신자(User-innovator)’라고 부른다.
여기서 ‘사용자(User)’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함으로써 효용을 얻기를 기대하는 기업 혹은 개인 소비자를 의미한다.” 01
이 정의에 따르면 사용자는 최종 제품을 사용하는 개인 소비자와 산업재를 사용하는 기업 소비자 모두를 포함한다.
즉, 레고를 구매한 개인 소비자뿐만 아니라 레고 장난감 생산에 필요한 기계를 구매한 레고 업체도 사용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사용자는 소비자(Customer)와 구분되는데, 소비자는 생산자로부터 제공되는 제품 및 서비스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문제를 인식해도 ‘생산자가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사용자는 문제를 인식하면 ‘스스로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 및 수정’해서 자신의 사용 혜택을 극대화하려 한다.
사용자 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사용자를 ‘선도 사용자(Lead User)’라고 한다. 선도 사용자가 중요한 이유는 사용자가 만들어 낸 혁신 중 상업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도 사용자는 아래와 같이 다른 사용자와 구분되는 특성이 있다.02
첫째, 선도 사용자는 잠재력이 높은 시장 트렌드에 앞서 있다. 즉, 선도 사용자가 오늘 또는 올해 추구하는 니즈는 반드시 내일 혹은 내년에 다수 사용자들이 필요로 한다.
둘째, 선도 사용자가 혁신에 참여하는 주요 이유는 혁신된 제품 및 서비스를 사용했을 때 그 효용이 전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혁신을 외부로부터 구매하지 않고 직접 실행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03
첫째, 혁신을 통해 얻게 된 혜택이 혁신에 들어간 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둘째, 혁신을 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
셋째, 혁신 공동체(Innovation Community) 내에서 얻게 되는 명성 때문이다.
혁신에 참여한 사용자(사용자-혁신자)는 혁신을 하는 과정에서 자주 다른 사용자와 비공식적 또는 조직적 협력을 한다.
즉,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하나 이상의 공동체에 참여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보를 공동체에 공개함으로써 의도하지 않게 공동체 내 다른 사용자의 혁신을 도와주거나, 조직적으로 참여하여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예를 들어 산악자전거 마니아라면 더 높은 곳에서 더 안전하게 뛰어내리는 것이 가능한 자전거를 원할 것이다.
만약 산악자전거 마니아 공동체 내의 한 사용자는 정형외과 의사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용자는 항공공학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각자의 지식만으로 만들어낸 혁신은 안전 또는 높은 점프 중 하나만을 해결한 불완전한 혁신이 된다.
그러나 이 두 혁신이 공동체를 통해 공유된다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더 완전한 혁신을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이 된다.
때로는 공동체 내 모든 사용자들이 조직적으로 협력을 하는데 소프트웨어 오류 제거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렇게 하면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에러나 버그를 제거할 수 있다.
사용자-혁신자의 또 다른 흥미로운 특성은 그들이 소유한 정보를 ‘무상으로 공개’ 한다는 것이다.04
모든 지적재산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심지어 널리 확산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왜 그럴까? 무상 공개는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달리 그들에게 사적인 보상 또는 이윤 증대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프로그래머가 아주 어려운 코드를 만들어 무상 공개를 하면 그의 명성이 높아지고, 더불어 그의 몸값도 오르게 된다.
또한, 무상 공개는 혁신의 확산 속도를 높여주고 네트워크 효과를 발생시키거나 지배적 표준으로 채택되어 결국 기업 이윤이 증대된다.
또 다른 이유로 반도체 장비 사용자(반도체 제조업체)가 스스로 개선한 장비에 대한 지식을 장비 공급업체에게 무상으로 공개하면 이 공급업체는 장비 사용자보다 훨씬 싸고, 유지·보수 서비스까지 얹힌 장비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장비 사용 업체의 이윤이 증대된다.
사용자, 혁신을 넘어 창업으로
사용자 혁신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지 창업에는 관심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연구의 대상이 특정 분야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사용자 기업의 종업원, 과학자,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들이 만들어 낸 혁신을 연구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탄탄한 직장이 있거나 취미생활을 즐길 여유가 있는 사람들로 창업을 택하기에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 큰 사람들이다.
하지만 대상을 넓히면 더 많은 사용자 창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증명해준 연구에 따르면 2004년에 창업하여 5년 이상 생존한 미국 기업의 10.7%가 사용자 창업(User Entrepreneurship)이고, 동일한 조건의 미국 혁신기업의 46.6%가 사용자 창업이라고 한다.05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지식 공유의 보편화, 웹 및 모바일 기반의 소자본 창업의 수월함, 3D 프린팅과 같은 제조 기술의 발달로 사용자 창업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사용자 창업은 일반 창업과 구분되는데, 사용자 창업가(User Entrepreneur)는 반드시 사용자여야 한다.
즉, 사용자 창업가는 특정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사용 경험, 그에 대한 문제 인식, 여러 번의 솔루션(혁신) 제공 경험, 그 솔루션을 기반으로 한 상업화를 해야 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없다면 사용자 창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용자 창업은 최종 소비자 창업(End User Entrepreneur)과 전문 사용자 창업(Professional User Entrepreneur)으로 구분된다.06
예를 들어 조깅을 좋아했지만 아내의 등쌀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시켜야 했던 미국의 한 아버지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조깅 스트롤러(Jogging Stroller)라는 것을 만들고 결국 창업까지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최종 소비자 창업의 전형이다.
한국의 한경희 스팀청소기 역시 최종 소비자 창업의 예가 된다. 전문 사용자 창업은 사용의 경험이 일상생활에서가 아니라 직장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최종 소비자 창업과 다르다.
즉, 반도체 장비를 사용하는 사용자 기업이 사용의 편의를 위해 장비를 개선했다가 그 장비로 창업을 하거나, 치과 의사가 환자들의 특성을 고려해 기성 임플란트를 개선하고 그것으로 기업의 사장이 되는 경우를 모두 전문 사용자 창업이라 한다.
사용자 창업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혁신성, 경제적 성과, 지속 가능성이 일반 창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07
생산자 및 정부에 주는 시사점
사용자 혁신(User Innovation)이 등장하기 전 시장은 생산자 혁신(Manufacturer Innovation)에 의해 지배되었다.
즉, 모든 제품 및 서비스는 생산자의 기획 및 혁신 하에 일방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제공되는 생산자 중심의 패러다임이었다.
그렇다고 생산자들이 소비자의 니즈를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산자는 끊임없이 소비자의 니즈를 발견하고 만족시키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자는 기존 고객 기반의 니즈에 매몰되어 미래 잠재적 고객의 니즈를 바라보지 못하는 허점이 자주 드러났다.
그러나 사용자는 생산자와 달리 미래에 부상할 새롭고 다양한 혁신을 더 잘 만들어내었다.
특히 선도 사용자가 만들어 낸 혁신의 상업적 매력이 뛰어남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반면 사용자들은 생산자에 비해 투자, 마케팅 및 생산 능력이 한참 뒤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생산자와 사용자 간의 역할 공조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미 많은 생산자들이 사용자 패널을 활용하여 신제품을 기획 및 평가하고, 선도 사용자의 혁신을 구매 및 라이선싱하며, 더 최근에는 집단지성(Crowdsourcing)을 이용해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기업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생산자의 대응 방식은 환경이 급변할수록 더욱 요구될 것이다.
한편, 사용자 혁신은 극단적으로 세분화(Fragmented)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용자마다 느끼는 문제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생산자 중심의 패러다임에서는 잠재적 시장 규모가 클 것으로 기대되는 사용자 혁신만이 상업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조 기술의 발달과 인터넷 기반의 저렴한 유통 채널의 확보는 잠재적 시장 규모가 작은 사용자 혁신도 창업을 가능하게 한다.
창업이 중요한 이유는 고용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가 이구동성으로 ‘창업(Entrepreneurship)’을 외치는 이유도 고용이 없는 저성장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 역시 창업을 위해 다각도의 지원을 하고 있지만 사용자 창업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지한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용자 창업은 일반 창업에 비해 혁신 및 경제적 성과와 생존 가능성 측면에서 우수하기 때문에 사용자 창업의 지원은 한국 창업의 성과를 양적 팽창에서 질적 제고로 바꾸어 놓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필자는 정부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01 von Hippel, E. (1988). The Source of Innovation,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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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von Hippel, E. (2005). Democratizing Innovation, MIT Press.
04 von Hippel, E. (2005). Democratizing Innovation, MIT Press.
05 Shah, S. K., S. W. Smith and E. J. Reedy (2012). Who are user entrepreneurs?: Findings on innovation, founder characteristics and firm characteristics, Working Paper.
06 Shah, S. K. and M. Tripsas (2007). The accidental entrepreneur: The emergent & collective process of user entrepreneurship, Strategic Entrepreneurship Journal 1(1) pp. 123~140.
07 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