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 과학 - 설탕, 그 달콤한 유혹의 역사와 과학
푸드 & 과학은 영양소, 조리법 등 음식과 관련한 과학 이야기와 음식문화에 대한 이슈를 살펴봅니다.
글_ 정혜경 교수(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얼마 전 우리 사회에서 ‘설탕 전쟁’이 벌어졌다. 아마도 슈가보이인 백종원 씨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유럽에서 ‘설탕 쇄신설’ 같은 강력한 당줄이기 정책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당류 저감화 정책을 발표하고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나트륨·당류 줄이기 범국민 참여행사까지 개최했다.
먹방, 쿡방에서 비롯된 설탕 논쟁이 정부 정책으로 채택되는 등 그간 별 생각 없이 먹던 설탕이 갑자기 독성물질로 등극한 느낌이다.
설탕은 단맛을 추구하는 인류의 오랜 친근한 식품이다. 과거에는 설탕을 약으로도 활용하였으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단맛을 찾기도 한다.
또한 우리 두뇌는 ‘글루코스’만을 에너지원으로 쓰는데, 당은 이에 가장 효과적으로 쓰인다. 그러니 설탕을 최악의 식품으로 보는 견해는 지극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인류가 설탕을 먹기 시작한 역사는 2,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인도에서 사탕수수즙을 추출해 설탕으로 정제하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인도 요리에서 여전히 사용되는 짙은 갈색 덩어리 설탕 ‘구르(Gur)’가 설탕의 초기 형태이다.
유럽 사람들이 설탕을 처음 맛본 때는 11세기로, 십자군에 의해서 알려졌다.
팔레스타인에 상륙한 유럽의 십자군은 설탕의 단맛에 빠졌고 설탕을 수입해 유럽에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설탕은 수입되는 양도 적고 가격도 비싼 사치품이었다.
설탕이 대중화된 계기는 유럽 국가들이 서인도제도와 인도양의 섬 식민지에 대형 사탕수수 농장을 건설하고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노예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해 설탕을 대량생산하면서였다.
18세기에 접어들자 설탕은 대중 식품이 됐다. 당시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설탕은 공장 노동자들의 식생활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식품이 되었다. 설탕만큼 싸면서 고열량인 식품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는 카리브해에서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설탕과 권력’(1985)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서문에서 18세기 프랑스 작가인 베르나르뎅 드 생 피에르의 말을 인용하여 “나는 커피나 설탕이 유럽의 행복을 위하여 꼭 있어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들이 지구상의 커다란 두 지역의 불행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아메리카는 경작할 땅으로 충당되느라 인구가 줄었으며, 아프리카는 그것들을 재배할 인력으로 충당되느라 허덕였다.”
이제 설탕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한국까지 괴롭히는 식품이 되었다.
그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설탕을 먹었을까? 최초 기록은 12세기 말경인 고려 명종 때 이인로가 쓴 ‘파한집(破閑集)’에 나온다.
고려 때 설탕은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오는 값비싼 수입품이었다. 설탕이 우리나라에서 대중식품으로 보급된 것은 1950년대 중반 제당 공장이 설립되면서였다.
설탕을 음식에 넣게 된 때는 1980년대부터이며, 그 전까지 설탕은 한식에 거의 쓰이지 않았고 꿀이나 조청이 조금 들어가는 정도였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값이 저렴해진 설탕은 이제 우리 식탁을 지배하게 되었다.
설탕을 많이 먹는 것은 건강에 분명히 해롭다. 특히 설탕은 과잉 섭취시 비만과 고혈압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전 세계적으로도 설탕과의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미국의 경우 당류섭취량을 119g 이하로 설정하고, 2005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공립학교 내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하였고, 2015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첨가당 음료에 경고 문구를 넣기 시작하였다.
설탕세 도입 문제가 이슈가 된 유럽의 경우, 영국은 당류 섭취량을 85.5~107.5g으로 정하고 2016년 3월 설탕세 도입 방침을 결정하였다.
요즘 비만이나 고혈압 증가 현상의 원인에는 최근 늘어난 첨가당 증가가 있다.
따라서 국민 건강을 위해서 당류를 줄이는 것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당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 당류 줄이기가 필요하다.
최근 설탕은 기피되고 오히려 액상 과당의 소비량이 늘어난 것은 이 캠페인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좋은 예이다.
또한 단맛을 위한 합성감미료 소비가 늘어난 것도 문제이다.
먼저, 당류의 정의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총 당류는 식품 내에 존재하는 당과 첨가당(Added Sugar)으로 나뉜다.
보통 당이라고 하면 설탕을 떠올리지만, 자연식품 특히 과일에도 상당히 많은 당이 존재한다.
과일과 같은 자연식품 자체에는 당이라고 표현되는 포도당, 과당들이 많이 들어 있으며(100g당 딸기 3g, 우유 4g, 토마토 5g), 우유 속에도 유당(갈락토오스)이 들어 있다.
그리고 첨가당은 설탕, 액상 과당, 물엿, 당밀, 꿀, 시럽, 농축과일주스 등의 당류를 말한다.
우리가 자주 먹는 가공식품이나 케이크, 과자, 떡 그리고 불고기, 갈비찜 등에 들어가는 당류들은 자연식품이 아닌 식품에 첨가하는 당이라는 의미다.
총 당류의 섭취는 주로 가공식품으로부터 56.9%, 과일류 24.9%, 우유 5.7%, 원 재료성 식품 12.5%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 우리는 당류를 얼마나 먹고 있을까? 우리나라 국민 하루 평균 총 당류 섭취량은 2007년 59.6g(13.3%)에서 2013년 72.1g(14,7%)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섭취 기준 이하이다.
그런데 어린이, 청소년, 청년층의 첨가당 섭취량은 2013년에 이미 기준치를 넘어서고 있다.
아직 서구에 비해서는 적은 양이지만 젊은 층에서 섭취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이다.
최근 서구식 디저트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데 이 디저트가 바로 엄청난 첨가당 섭취의 주범이다.
당의 하루 섭취 기준은 얼마일까? 2015년 보건복지부는 ‘한국인의 1일 당류 섭취 기준’으로 ‘총 당류 섭취량은 총 에너지 섭취량의 10~20%로 제한하고, 특히 식품의 조리 및 가공시 첨가되는 첨가당은 총 에너지 섭취량의 10% 이내로 섭취하도록 한다’고 제안했다.
국민 1인당 1일 평균 섭취량을 2,000㎉로 볼 때 총 당류의 양은 50~100g, 첨가당은 50g을 섭취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세계보건기구 WHO(2015. 3)에서는 건강위해를 줄이기 위해 첨가당의 섭취를 5%로 하향 조정해서 25g을 권장하고 있다.
따라서 당류 감소에서 중요한 것은 첨가당을 줄이는 것이다.
당류 줄이기로 인해 과일이나 우유 같은 자연식품들을 기피해서는 안 된다.
설탕 못지않게 케이크나 과자류, 가공 음료, 아이스크림 같은 가공식품에 첨가되는 액상 과당, 그리고 시럽, 물엿 같은 첨가당과 합성감미료를 잘 파악하여 피해야 한다.
설탕 자체는 독성물질이 아니다. 에너지를 내기 위해서도 그리고 심리적이나 미식추구 측면에서도 현대인들은 설탕 없이 살기는 어렵다. 당류도 이제는 내재당과 첨가당으로 구분하고, 첨가당을 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식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를 적절히 즐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