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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인사이트 - 사용자 주도형 혁신모델, 리빙랩


 


혁신 인사이트에서는 혁신의 트렌드, 전략 및 혁신사례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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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위진 단장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사회기술혁신연구단


리빙랩(Living Lab)은 살아있는 실험실, 생활 속의 실험실이다. 연구자들만 모여 새로운 지식을 개발·실험하는 폐쇄적 공간이 아니라, 기술 사용자와 연구자가 같이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찾는 열린 실험실이다.
 
리빙랩은 학교, 양로원, 아파트, 도시와 농촌의 마을, 공단과 같은 생활 세계를 대상으로 운영된다. 최종 사용자가 혁신의 주체로 참여하기 때문에 리빙랩은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여 수용성이 높은 제품·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리빙랩은 사용자 주도형, 문제 해결형 연구개발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추진체제로 인식되면서 유럽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대만이 사용자 지향적 제품개발을 위해 리빙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리빙랩을 연구개발 사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리빙랩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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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에그몬트 리빙랩은 장애인이 참여하는 리빙랩이다. 사용자 주도형 혁신 방식을 채택한 Handi Visio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기업, 장애인 관련 기관, 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프로젝트 팀은 장애인 학교인 에그몬트 고등학교를 리빙랩으로 지정하고 ‘혁신적 사용자 과정’을 운영하여 학생들에게 참여적 설계와 소통 방법을 교육했다.

리빙랩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할 수 있는 조이스틱이 부착된 휠체어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 제안을 받은 회사는 사업 가능성을 보고 프로토타입을 제작했으며 장애학생들이 제품을 시험하는 과정을 거쳐 제품을 개선함으로써 의미 있는 성과를 얻었다.

국내에서도 리빙랩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최근 산업부는 ‘에너지기술 수용성 제고 및 사업화 촉진사업(2016)’을 리빙랩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미 개발됐으나 제대로 보급되지 못한 에너지 기술을 선정해서 리빙랩을 운영하여 보급률을 향상시키는 사업이다.

도서 지역 마이크로그리드, 전기차 충전시설, 빌딩의 에너지 관리 시스템 등은 에너지 기술혁신의 중요한 사례이지만 현장에서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최종 사용자와 이해관계자가 공동연구팀으로 참여하는 리빙랩을 통해 보급이 지체되는 원인을 파악하여, 기술이 부족한 경우는 후속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자들의 행태가 문제가 있다면 행태 변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및 가이드라인을 개발·확산시키며, 인프라나 법·제도의 문제가 있으면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래부의 사회문제 해결형 기술개발 사업에서도 리빙랩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사회문제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최종 사용자와 연구자가 공동으로 작업하면서 수요를 구체화하고, 제품의 개발 방향을 함께 고민하며, 시제품을 실증하고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청소미화원이나 야간 작업자를 위한 자체 발광 의복을 개발하는 기술개발 사업에서 지자체의 청소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청소미화원노동조합과 사용자 요구 사항을 같이 구성하여 시제품을 개발·시험하는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서울시와 미래부는 북촌 한옥마을 IoT 리빙랩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은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다.
 
이로 인해 주차 문제, 쓰레기 및 환경 문제, 주민들의 소음문제, 비즈니스 활성화 문제 등이 심화되고 있다.

서울시와 미래부는 북촌에 IoT 기반 리빙랩을 도입하여 문제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주민들과 협의를 통해 민원사항을 파악하고 기업들이 참여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서울시는 CCTV 정보, 관광 정보, 와이파이 망과 같은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으며, 기업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혁신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리빙랩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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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랩은 최종 사용자 및 시민이 연구개발 기획·개발·실증 과정에 참여하는 사용자 주도형, 개방형 혁신 모델이다.

최종 사용자를 혁신의 주체로 참여시켜 그들의 니즈를 반영하고 능력을 활용한다. 민산학연(民産學硏)이 협력하여 혁신활동을 수행하는 4P(Public-Private-People-Partnership)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리빙랩은 주도하는 조직에 따라 정부·지자체 주도형 리빙랩, 연구기관 주도형 리빙랩, 기업 주도형 리빙랩, 시민사회 주도형 리빙랩으로 나눌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사례들은 주로 연구기관 주도형 리빙랩이다.

북촌 리빙랩만 지자체 주도형이다. 마을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리빙랩도 있고 광역단위의 지자체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리빙랩도 있다.

에너지·환경, 교통, 보건·의료, 관광, 농어업, 행정관리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리빙랩이 운영되고 있다.

리빙랩은 크게 문제와 대안을 탐색하는 단계(Exploration), 대안을 실험하는 단계(Experiment), 대안을 평가하는 단계(Evaluation)를 거쳐 진행된다.

탐색단계에서는 사용자들의 니즈와 문제를 구체화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제품·서비스의 개념설계가 이루어진다.
 
많은 경우 연구자만이 아니라 기업, 심지어 최종 사용자도 자신의 잠재적 수요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리빙랩에서 이들이 상호 숙의하면서 문제를 구성하고 해결책을 검토하게 된다.

실험 단계에서는 기본 개념을 토대로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고 실험하게 된다. 최종 사용자가 생활공간에서 그것을 경험하면서 제품·서비스의 개선방안을 제시하게 된다.

평가 단계에서는 프로토타입을 개선한 제품·서비스를 바탕으로 실증을 하게 되고 사용자로부터 피드백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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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은 소극적으로 한두 번의 설문조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구자와 최종 사용자가 초기 단계부터 대면하여 설문조사, 포커스 그룹 인터뷰, 합의회의 개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면서 나선형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면에서 사용자에 대한 몇 번의 설문조사, 개발된 제품에 대한 소극적 의견청취에 입각한 실증사업과 리빙랩은 다르다.

리빙랩은 기술개발 초기부터 연구자, 기업, 최종 사용자가 함께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으로 제품·서비스를 진화시켜 나간다.

전문가가 전략기획을 통해 잘 설계한 제품·서비스를 개발·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 연구자가 함께 도출한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공동학습을 통해 수정·보완·진화시키는 활동이 이루어진다.

리빙랩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되고 조직화된 사용자의 참여가 중요하다.

단순한 민원 제시가 아니라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공익적 동기, 여러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조직과 틀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과, 연구자와 최종 사용자의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도 요구된다.


리빙랩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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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랩은 우선 선도형 기술개발의 실용화 모델로서 의미가 있다.

선도형 기술개발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은 기술·시장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수요를 명확히 알 수 없고 개발된 기술이 작동할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
 
연구기관·기업·최종 사용자도 정확한 수요를 잘 모르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일련의 공동학습을 거쳐 수요를 구체화하고 개발 기술을 실증·평가·개선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리빙랩은 이를 잘 구현할 수 있는 모델이다. 최근 산업을 선도하는 기술을 검증하는 테스트베드에 대한 논의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리빙랩은 이것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기존의 공급 중심, 사후적 대응 방식의 테스트베드와는 다른 사용자 중심형 모델이다.

사회문제 해결형 기술개발에도 리빙랩은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최종 사용자의 니즈와 지식에 바탕을 둔 사회문제 정의와 대안 모색이 중요하다.

기업과 연구자가 파악하기 어려운 사회문제와 수요에 대한 종합적 인식과 기술개발이 필요한 것이다.

이때 사용자가 문제 정의부터 참여하는 리빙랩은 매우 효과적인 기술개발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미 이런 측면을 반영하여 사회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혁신활동에 리빙랩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리빙랩은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중소기업들은 사용자의 수요를 조사·분석하고 개발된 제품을 실증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하다.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사용자 친화적으로 그것을 진화시키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리빙랩은 관련 중소기업들이 최종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면서 제품·서비스를 개선하고 개발된 제품을 실증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제품 검증을 위한 공공 플랫폼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리빙랩은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 모델로서도 매우 효과적이다. 그동안 기술개발 사업은 범용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지역의 수요 및 문제와 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러 지역혁신 사업이 추진되었지만 지역에 착근해서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신시장을 모색하는 모델은 거의 없었다.

리빙랩은 지역에 살고 있는 최종 사용자들이 참여하여 문제를 공유하고 제품·서비스를 개발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지역문제 해결형 혁신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여러 지역에서 스마트시티 사업, 도시재생 사업, 농촌 활성화 사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중 다수가 기술 시스템 구축 방식으로 추진되어 지역문제 해결과는 큰 상관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리빙랩은 이런 기술 중심적·공급 중심적 경향을 극복하는 대안이다.

리빙랩은 참여형 융합교육 모델이 될 수 있다. 유럽에서는 대학 자체를 리빙랩으로 설정하여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의 에너지·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과 교수들이 참여하여 기술을 개발하고, 참여형·문제 해결형 교육을 시행하며, 학교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당히 준비되고 조직화된 사용자인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유형의 리빙랩은 매우 생산적이다.

서울시에서 가장 에너지를 많이 쓰는 서울대학교를 리빙랩으로 삼아 대학의 에너지·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리빙랩을 운영해서 기술개발, 융합형 교육,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하면 다른 대학이나 유사한 기관에 확산시킬 수도 있다.

또한 리빙랩은 참여형 과학문화 모델로서도 활용될 수 있다. 전통적인 과학문화 활동은 전문가가 시민을 대상으로 과학·기술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이다. 리빙랩은 이것을 뛰어넘어 참여형 모델을 제공한다.

리빙랩에서 과학·기술 전문가와 시민이 문제해결을 위해 문제에 대한 인식과 과학·기술 지식을 상호 학습하는 과정, 지식을 적용하는 과정은 참여형·실천형 과학문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을 보고 캐나다의 몇몇 과학관은 리빙랩 방식으로 과학관을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과학·기술 지식을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그것을 전문가와 함께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모델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리빙랩은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트렌드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운영하는 연구자에게는 큰 부담감을 준다.

리빙랩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현장 문제에 대한 종합적 인식, 다양한 혁신주체들과의 의견 조정, 최종 사용자 조직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다차원적인 능력이 요구된다.

제한된 시간·자원·능력을 가진 연구자가 혼자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지원하기 위한 하부구조가 필요하다.

문제 발굴과 상호작용을 위한 도구 개발, 인력의 교류, 교육 프로그램, 경험 공유가 이루어질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한 것이다.
 
유럽이 ENoLL(European Network of Living Lab)을 설립하여 리빙랩 활동을 지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리빙랩이 이제 시작되고 있는데 이를 지원하기 위한 하부구조와 네트워크 구축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