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아카데미 - 혁신을 위한 양손잡이 조직: 조직학습의 관점에서
혁신 아카데미는 혁신의 주요 이론과 개념을 소개하고 실제와 연계한 칼럼입니다.
▲ 이무원 교수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언더우드 특훈교수/
현대자동차 석학교수
혁신이라는 단어가 매일매일 조직의 모토가 되고 있는 뉴노멀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경영학자들과 경영인들이 함께 고민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성공적인 혁신을 위한 조직 설계이다.
매트릭스 조직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조직구조가 조직혁신을 위한 모델로 경영학 교과서를 통해 소개되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조직구조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무엇보다도 애플, 구글, 넷플릭스 등 혁신의 선두에 서 있는 기업들의 조직구조는 교과서에서 제안하고 있는 혁신구조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어 최근 혁신 구조를 지향하는 한국의 많은 기업들을 당황케 하고 있다.
이는 혁신을 위한 조직구조에 있어서도 The Best Way를 지향하면서 벤치마킹을 해나가는 구시대의 노멀을 버리고 개개의 기업 조직들이 자신에 맞는 구조를 추구하는 것을 일상화하는 뉴노멀을 받아들여야 함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필자는 최근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중심축을 이동해 가고자 하는 한국의 하이테크 기업들이 혁신을 달성하기 위해 너도나도 추구하는 양손잡이 조직(Ambidextrous Organization)에 대한 열광이 개개 기업의 개성을 무시한 맹목적 신화로 치닫고 있는 모습에 주목하고자 한다.
양손잡이 조직의 성공 신화는 구노멀 시대가 만들어 낸 허상일 수 있으며(이런 허상을 생산한 데는 경영학자들의 이론적, 실증적 오류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함), 오히려 대부분의 양손잡이 조직은 실패에 이르는 것이 다반사인 매우 위험한 조직상일 수 있다.
결국 뉴노멀 시대에서의 조직상은 그 실패 요인들을 제대로 직시하고(비록 양손잡이 조직 모드를 포기하더라도)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에 맞는 조직 모델을 구축하는 데 그 성패가 달려있으며 특히 동양적 사고가 서구 경영에서의 실패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음을 이 글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양손잡이 조직 설계를 필요로 하는 배경에는, 기업조직이 현재의 기회에 착안하여 현재의 역량과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하는 활용(Exploitation)과 새로운 기회를 발굴하고 새로운 역량을 개발하는 탐색(Exploration) 간의 적절한 균형을 통해 성장과 생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데 있다.
탐색 없는 활용은 조직을 역량의 덫(Competence Trap)에 빠지게 함으로써 혁신 역량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을 저해하는 반면, 활용 없는 탐색은 반복되는 혁신 시도의 실패로 인해 안정적 역량 축적을 방해한다.
따라서 수많은 경영학자들이 탐색과 활용의 균형을 달성하는 조직, 즉 양손잡이 조직을 위한 전략적, 기술적, 문화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사례연구들을 살펴보면 양손잡이 조직은 이론적 모델로서의 의의만 지닐 뿐 실제로 탐색과 활용 간의 균형을 성공적으로 성취한 조직은 거의 찾기 힘들다.
학자들마다 나름대로의 이유를 제시하고 있지만, 탐색과 활용 간의 관계에 대한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로는 둘의 공존이 힘들고 따라서 둘 간의 이상적인 균형점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탐색과 활용은 서로 완전히 다른 특성의 조직 디자인, 구성원, 루틴(Routine), 문화를 필요로 한다.
활용은 현재의 어젠다(Agenda)에 중점을 두고 효과적이고 시의 적절한 실행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비용절감, 수익/이윤 창출과 같이 계량적인 성과 지표에 기반을 둔 인센티브 시스템을 요구한다.
반면 탐색의 경우에는 조직의 활동 범위를 확장하면서 획기적인 기술 개발과 혁신적인 전략 수립에 비중을 두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요구한다.
이론적으로 보았을 때 성공적인 양손잡이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이 두 종류의 인센티브를 비슷한 강도로 균형 있게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할 수 있지만 실제로 실행하기는 매우 어렵다.
무엇보다도 탐색에 필요한 인센티브의 경우에는 성과측정이 정확하지 않고 성과 실현 시점도 모호하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입장에서는 탐색 모드보다는 활용모드에 초점을 두게 됨으로써 조직의 혁신 역량은 감소하게 된다.
또한 탐색 활동의 성패는 우연성이 많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위험 회피형(Risk-averse) 구성원들이 탐색 모드를 취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선택이다.
최근 많은 한국 기업들이 종업원의 혁신 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를 증가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그리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탐색 활동에 대한 인센티브의 불확실성과 모호성에 대한 구성원들의 두려움을 점진적인 인센티브 증가로 없애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탐색 활동에 대한 획기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마련할 수 있겠지만 이럴 경우 구성원들의 활동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활용 모드에서 탐색 모드로 이동하게 된다.
아울러 탐색 활동에 대한 지나친 인센티브는 조직 차원에서 비용 부담이 매우 크다.
이렇듯 탐색과 활용의 공존이 쉽지 않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일련의 서구 학자들은 몇몇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단계 모델(Stage Model)’이다. 사업 초장기에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탐색 모드에 집중하다가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들어서면 활용 모드로 전환하여 효율성을 제고하여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드 전환이 성공이 아닌 실패로 이어지는 실제 사례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노키아의 몰락이다.
1990년대 노키아는 우수한 연구 역량과 획기적인 기술 혁신을 통해 휴대폰 시장의 일인자 자리를 굳건히 지켰으며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그 당시 노키아를 성공적인 탐색 모드의 롤모델로 거론하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와서 상황은 달라졌다. 1990년대 성공을 등에 업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노키아는 활용 모드로의 전환을 시도하여 비용 절감과 수익성 증가에 중점을 두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전환은 노키아에게 대 파국을 안겨주었다. 탐색 모드에서 활용 모드로의 전환이 노키아에 가져온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원래 노키아의 탐색 모드에 매력을 느끼고 몰려온 인재들이 모드 전환과 함께 회사를 떠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떠나지 않은 잔류 구성원들도 모드 전환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 했다.
둘째, 탐색 모드에서 활용 모드로의 전환은 투자자와 소비자를 포함한 여러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에게 정체성 혼란을 가져옴으로써 그들의 일탈을 초래하였다.
셋째,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스마트폰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여 시장은 계속 혁신적인 상품을 기대하는 가운데 활용 모드로의 전환은 노키아로서는 큰 패착이었으며, 구조적, 전략적 관성(Inertia)으로 인하여 다시 탐색 모드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단계 모델의 이러한 한계로 인하여 최근에는 직무 설계(Job Design) 또는 조직 설계(Organizational Design)를 통해 양손잡이 조직을 달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즉 어떤 구성원들에게는 탐색적 직무를 부여하고 다른 구성원들에게는 활용적 직무를 부여하여 전체 직무 배분 차원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방안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부서들에는 탐색적 활동에 집중케하고 다른 부서들에는 활용적 활동에 집중케 함으로써 조직 차원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IBM이나 GM(General Motors)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러한 전략은 탐색 역할을 맡은 구성원들/부서들과 활용 역할을 부여받은 구성원들/부서들 간에 갈등과 비생산적인 경쟁을 낳는다.
각자 자신들이 맡은 역할이 조직 운영의 핵심이 되도록 하기 위해 소모적인 권력 다툼에 가담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IBM과 GM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동안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겨온 거의 유일한 효과적 방법은 소위 말하는 ‘비밀 실험실(Skunk Works)’을 구축하여 기존의 활용적 활동을 하는 구성원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탐색 활동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이 조직 내 탐색적 활동과 활용적 활동의 공존을 허락하면서도 둘 간의 갈등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됨에도 불구하고 탐색 활동의 성과가 종료된 후 일상적인 조직 구조 내로 복귀한 후에는 다시 본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어 한시적인 방안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활용과 탐색의 장기적인 공존은 불가능한 과업인가? 최근의 조직학습 연구에서 둘 간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새롭게 정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연속선 위에서 반대 방향에 서 있는 두 대척점의 관계로 설정한 기존의 탐색-활용 도식을 넘어서, 여러 연속선 위에서의 탐색-활용 관계를 규명하려는 시도, 탐색과 활용을 직교적(Orthogonal) 관계로 보는 시각 등 다양한 접근이 소개되고 있다. 심지어 탐색과 활용이 변증법적(Dialectic)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서구 형식논리학에 기반한 학자들과 경영인들의 이분법적인 시각으로는 탐색과 활용의 상호보완(Mutual Complementation) 가능성을 받아들이기 힘들며 무엇보다 탐색과 활용 간의 장기적인 순환은(위에서 언급한 노키아 사례에서 보듯이) 요원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이렇게 탐색과 활용의 공존, 즉 양손잡이 조직 모델이 정상이 아닌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드문 경우라면 한국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어중간한 또는 실패가 자명한 양손잡이 조직 모델을 추구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에 적합한 최고의 한손잡이 조직으로 남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손이 필요한 시기가 오면 기존 비즈니스를 버리고 기존의 손이 필요한 비즈니스를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한다는 또 다른 챌린지에 직면해야 한다.
다른 대안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오랫동안 사상적, 철학적 기반이 되어온 음양적 사고(Yin-yang Thinking)로 탐색과 활용에 접근하여 새로운 양손잡이 조직상을 개발하는 것이다.
음양적 사고에 의하면 탐색과 활용 간의 관계는 이분법적 사고에서의 대립적 관계도 아니고 변증법적 사고에서의 모순적(Paradoxical) 관계도 아닌 상호보완과 상호강화(Mutual Reinforcement)의 관계로 규정될 수 있다.
따라서 탐색과 활용 간의 갈등을 넘어 서로 포용하는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문제의 초점이 ‘탐색과 활용 간의 균형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서 ‘탐색과 활용이 어떠한 모습으로 협력적, 유기적 조화를 이룰 것인가’로 움직이게 된다.
조선 초기 성리학의 사상과 문화로 인해 활용만이 보상을 받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 치하 일련의 엄청난 기술 혁신 및 발명 사례는 아마도 음양적 사고가 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나아가 음양 간의 상호배태(Mutual Embedding) 과정에 따라 활용적 활동 내에 이미 탐색의 씨앗이 배태되어 있고 마찬가지로 탐색적 활동 내에 이미 활용의 씨앗이 배태되어 있기 때문에 음양적 사고는 탐색과 활용 간의 선순환 고리를 찾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아마도 위에서 언급한 노키아의 실패는 이런 선순환 고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상과 같이 한국인의 DNA에 스며있는 음양적 사고는 효율성을 강조해온 기존의 활용 모드에서 혁신과 창의에 무게 중심을 두는 탐색 모드로 전환하는 현시점에서 매우 유용한 전략적 틀이 될 수 있다.
그 틀이 조직 운영에서 어떻게 구체화되어야 할지는 학계와 기업인들 모두 풀어나가야 할 당면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