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 중국 반도체 산업의 동향과 시사점
▲ 김휘원 팀장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략기획팀
반도체는 IoT, 자율주행 자동차를 비롯한 새로운 혁신적 시스템 산업을 이끌어가는 핵심동력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혁신적 신산업은 기술혁신을 기반으로 한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수요시장이 된다는 의미이다.
국가 경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국가 전략산업이라 할 수 있는, 세계 2위의 한국 반도체 산업은 최근 중국의 반도체 굴기로 위기와 기회가 상존하는 격변의 시기에 이미 진입했다.
이 글에서는 최근 중국 반도체 산업의 역동적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짚어보도록 한다.
들어가면서 :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
1960년대 후반 외국 기업의 조립생산으로 시작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이제 우리나라 단일품목 수출 1위라는 국가 경제성장의 핵심동력이 되었다.
초기 한국은 반도체 산업을 위한 자본·기술·인력·시장·원부자재 등 어느 것 하나 갖추어지지 않은 불모지였으나, 1974년 전자손목시계용 칩을 시작으로, 1983년 64K DRAM 개발,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RAM 개발에 성공하면서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게 된다.
한국의 주력 반도체 제품인 DRAM은 PC보급 확대라는 세계적 추세에 힘입어, 과감한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를 통해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동력이 되었다.
현재, 한국은 세계 DRAM 시장의 2/3, NAND Flash는 2/5 수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2014년 메모리 역사상 최대 기술혁신이라 할 수 있는 V-NAND 상용화에 성공, 메모리 분야 기술과 생산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강자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한다.
이러한 메모리반도체 분야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세계 반도체 시장의 6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은 열세에 놓여 있다.
과감한 선제적 투자와 대규모 연구개발, 생산 공정의 효율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설계능력 중심의 시스템반도체는 전통적인 반도체 강국인 미국, 유럽, 일본을 비롯해 신흥 강국인 대만, 중국에도 뒤진 4~5% 수준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디스플레이 구동IC(DDI)·이미지센서(CIS) 등의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나, 시스템반도체의 원천적인 기술이라 할 마이크로프로세서·아날로그 등의 제품 영역에서는 확고한 시장지위를 갖지 못한 실정이다.
앞으로 우리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지속하는 데 있어 메모리반도체만으로는 제한된 성장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메모리의 경쟁력 유지와 더불어 시스템반도체의 균형적 발전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런점에서 지속성장이 가능한 반도체 산업을 위해 대내적인 혁신과 대외적인 환경변화에 대한 분석과 민첩한 대응이 필요하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환경변화와
중국의 반도체 굴기
글로벌 IT 시장의 수요 부진
반도체는 IT 기기 시장과의 상관계수가 0.86에 이를 정도로 IT 기기 성장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1980~1990년대 반도체와 IT 산업의 부흥을 일으켰던 것은 PC(Personal Computer)였으며, 출하량 및 메모리 용량의 증가로 반도체 산업도 PC 산업과 동반 성장했다.
2010년대 초 스마트폰의 출현은 반도체의 제1 수요시장이 컴퓨터에서 통신 분야로 바뀔 만큼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으며, 이는 반도체 산업의 제2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2010년 초반의 고속성장을 지나 현재 시장 정체 단계에 이르렀으며, 전통적인 수요시장인 PC 역시 2~3%대의 저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Smart Watch, Drone, IoT, Wearable, VR 등의 새로운 IT 애플리케이션들이 부상 중이며, 반도체와 자동차·전력 등의 전통적 산업과의 결합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런 신규 애플리케이션들이 과거 PC나 스마트폰 시장을 넘어설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글로벌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 침체된 IT 기기의 수요부진이 조기에 회복될 긍정적 시그널은 아직까지 보여주지 않고 있다.
기술과 산업의 Convergence
반도체는 전통적 수요시장인 PC(Computing), 가전(Consumer), 통신(Communication) 등의 분야를 넘어 다양한 신산업을 열어가는 핵심적인 부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IoT(사물인터넷) 분야 역시, Low-power Processing·Sensing·Connectivity 등이 결합되어 구현되는 시스템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의 자동차 및 향후 실현될 자율주행 자동차도 각종 편의성 및 안전성을 담보하는 반도체를 통한 전장시스템의 구현이 우선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반도체는 단일한 기능의 제품을 넘어 복합적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신기능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있다.
응용 분야 역시도 자동차·방송통신·바이오·헬스케어·전력·항공·농업 등 기존 산업의 고유한 영역에 반도체의 기능이 추가되어 산업 간 융합을 주도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기술·기능·제품 간의 융합으로, 각종 제조업 내에서 반도체의 원가비중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생태계 내 Player들의 협업과 M&A
반도체 제품 및 기능의 융합과는 달리, 산업의 내부구조는 지속적으로 분화되고 있다.
산업의 생태계에는 반도체 설계기술, 제조기술, 제조용 장비기술, 제조용 재료기술, 조립 및 테스트 기술 등에 전문화된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는 해당하는 모든 기술이 통합된 폐쇄형(집중형) 생태계를 갖추고 있으나, 시스템반도체는 각각의 전문적 역할로 분업화된 생태계가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이 점차 고도화되고 기술이 첨단화되면서 반도체 사업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는 데 막대한 투자와 연구개발비 부담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에 전문화된 각 사업영역의 주체들은 공동의 목표를 위한 협력체계 및 생존경쟁을 위한 M&A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굴기
최근 반도체 산업에 있어 가장 뜨거운 변화는 기술이나 기업의 변화가 아닌, 중국 반도체 산업의 부상이다.
중국의 자체적인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확보는 물론 거대한 자금을 이용한 중국발 M&A 소식도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칭화유니그룹의 Micron 및 SanDisk 인수 시도, 반도체 조립기업인 JCET의 StatsChipPAC 인수와 같은 업계 선도기업에 대한 인수와 더불어 피델릭스, 제주반도체 등과 같은 국내 설계전문 기업 및 동부하이텍, 매그나칩반도체 등 제조시설을 인수하기 위한 중국 SMIC의 움직임 등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 있다.
제조업의 고도성장을 이루어 온 중국은 우리나라 무역의 상당 부분과 연계되어 있기에 우리는 중국의 변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IT 기기의 생산을 위한 거대한 반도체 수요시장, 시스템반도체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에 성공적 진입, 메모리산업 진출을 통한 반도체 산업의 완성과 세계시장 주도, 이러한 환경과 목표를 가진 중국은 우리에게 상존하는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아래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좀 더 세부적인 현황과 정책적 과제를 살펴보고, 이것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시사하는 바를 기술하도록 하겠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현황과 정책
세계 IT 기기의 생산기지에서 소비대국으로
중국은 세계 IT 기기의 공장으로, 전 세계 반도체 수요의 약 55%를 차지하는 막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과거 중국은 대규모 내수시장 및 저임금을 유인책으로 한 해외 기업의 투자유치를 통해 전자 산업의 기반을 형성했으며 끊임없는 반도체 수요를 촉발하였다.
이런 중국은 이제 해외 기업의 현지 투자, OEM 생산, 단순 조립을 넘어 부품의 자립화 기반 구축 및 본격적인 산업의 성장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중국의 전자·반도체 산업은 IT 기기의 조립생산에서 자체생산으로, 부품의 수입에서 자립화·세계화로 이어지는 성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중국은 전 세계 모바일 제품의 80%, PC의 62%, TV의 57% 이상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를위해 세상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의 절반 이상을 소비해야 한다. 이는 중국이 연간 원유를 수입하는 금액보다 높은 금액이다.
이러한 중국이 반도체를 수입이 아닌 수출 품목으로 바꾸려는 원대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IT 기기의 엄청난 시스템 반도체 수요를 바탕으로 부품 국산화를 위한 장기간의 육성계획을 실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스템반도체의 성장을 바탕으로 메모리반도체의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낮은 자급률, 유기적 생태계를 통한 반도체 강국을 꿈꾸다
중국은 반도체 소비수요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자급률이 2013년 기준으로 11.7%에 불과해 중국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반도체 산업을 육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의 반도체 생산액은 2013년 기준으로 408억 달러에 이르나, 이의 대부분은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이 생산한 금액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진출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중국 내 반도체 기업 매출 순위에서 2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분업화된 생태계가 요구되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선행적인 투자를 진행하였으며, 이는 가까운 대만의 반도체 생태계와의 인적·물적 교류를 기반으로 한 벤치마킹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단기적으로 반도체펀드를 통해 산업구조의 재편 및 M&A 확대, 대규모 IC 지원정책을 통한 부문별 글로벌 기업의 육성과 자급률 확대를 위한 국산화 촉진이라는 2-Track 산업 육성전략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자국의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가속화 할 것이며, 향후 성장궤도는 부품과 소재로 이어질 것이다.
제품으로는 메모리 설계 및 메모리 제조기반의 사업으로 진출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로 인해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의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이다.
결국, 자본을 통한 끊임없는 인수합병, 핵심기술 및 인력의 흡수, 수요를 바탕으로 한 산업 생태계가 중국 중심으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시스템반도체의 성공, 메모리반도체로 이어가
앞서 말한 대로, 중국은 최근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남은 분야는 우리나라가 강한 메모리 시장에 중국이 진입하는 것인데, 현재 메모리 시장은 국내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의 Micron, 일본의 Toshiba로 과점화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메모리 산업은 시스템반도체와 같은 분업화된 생태계가 아니라, 하나의 종합반도체기업(IDM)이 제품의 설계, 제조, 판매를 일괄적으로 운용하는 집중형(폐쇄형) 생태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메모리 산업은 기술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순간 갑자기 산업을 일으킬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을 명확히 알고 있는 중국은 풍부한 자금으로 M&A 및 인력 유치를 통해 일시에 시장에 진입하려 하고 있다.
칭화그룹의 Micron 및 SanDisk의 인수 시도, 국내 전문인력의 유치를 위한 파격적 조건 제시 등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 기업들과 격차를 벌려가야 하는 끊임없는 기술경쟁과 더불어,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중국의 도전에 동시에 맞서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글을 마치며 - 경쟁과 협력, New Game을 준비하자
2011년 12월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12차 5개년(2011년~2015년) 개발계획에서 < 집적회로산업 12.5 발전규획 >을, 2014년 6월에는 국무원에서 중장기 반도체 산업 육성계획인 < 국가 집적회로산업 발전추진 강령 >을 발표하였다.
2015년 매출액 3,500억 위안을 달성하고, 2020년 업계의 연평균 성장률을 20% 이상으로 제고하며, 2030년 세계 첨단수준 도달 및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명확한 의지를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의 달성 가능 여부보다는 중국정부의 명확한 산업육성 어젠다와 의지를 읽어내는 데 있다.
이후 중국정부는 반도체 분야 투자를 위해 1,180억 달러의 ‘National IC Industry Investment Fund’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220억 달러가 조성이 되었으며, 해외기업의 M&A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금액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규모임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성장하는 중국 반도체 산업은 우리에게 경계의 대상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경계의 대상이 경쟁의 대상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화로 우리는 미국, 일본과 경쟁해 온 DNA를 갖고 있다.
어쩌면 거대한 중국의 생태계에 접근하는 데 있어 다른나라 기업에 비해 지리적·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유리한 점들을 갖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과 경쟁하지 말라는 것은 서로 Win-Win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Ecosystem을 활용해 생태계 내부의 협력관계를 Leverage로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중국과의 JV, M&A 등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국 역시도 단기간 내에 성장한 반도체 후발국가로서 해결하지 못한 난제가 많이 존재한다.
원천기술과 핵심부품, 소재의 개발에 대해서 우리와 장기적 관점에서 협력을 유도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 거대한 중국 시장에 올라탈 새로운 게임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