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 중국 철강 산업의 구조변화와 대응전략
▲ 정철호 수석연구원
포스코경영연구원
중국 철강 산업이 경제 성장방식의 변화와 더불어 수요침체 및 공급과잉 심화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중국의 수출 급증으로 중국산 철강재의 국내시장 잠식이 확대되고 동남아 등 주력시장에서의 한·중 간 수출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중국정부는 향후 5년간 구조조정에 주력하는 한편 철강 산업의 질적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한국의 철강사들로서는 고급재 품질기술력을 제고하는 한편 원가절감형 대체 강종을 개발하여 기존 시장을 방어하고 신규 시장을 개척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급속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중국 철강 산업
중국 철강 산업은 2000년대 들어 경이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며 세계 철강 생산의 약 50%를 차지하는 철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2015년 중국의 조강 생산량은 8억 380만 톤으로서 세계 최대이며, 이는 2위부터 50위 국가의 조강 생산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큰 규모이다.
중국은 1996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으로 부상한 이래 20년째 1위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에만 해도 글로벌 10대 철강사 중 중국 철강사는 1개에 불과하였으나, 현재는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급성장을 보이던 중국 철강 산업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발생 직후 중국정부가 대대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실시하면서 2009년에 중국의 철강수요가 전년 대비 무려 23.4% 급증하는 등 경기침체를 막는 데는 성공하였다.
그러나 자산 가격 급등 등 경기부양의 부작용이 누적되고 투자와 부채에 의존한 성장이 한계에 직면하면서 중국정부가 성장 방식의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다.
철강 산업은 중국 경제가 뉴노멀기에 진입하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고 있는 산업이다. 심각한 설비과잉과 치열한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성장 방식 전환이 철강수요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투자보다는 소비 중심의 성장을 유도하는 한편, 공급과잉이 심한 전통 제조업의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철강수요의 주된 원천이 투자와 제조업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철강수요가 직격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중국의 철강 소비를 산업별로 보면 건설업이 57.3%에 달하며, 나머지는 일반 기계, 자동차, 기타 수송(조선), 금속제품, 가전 및 전기 장비 등의 제조업이 차지하고 있다.
중국 철강수요 2014년부터 연속 감소세 지속
중국 철강수요는 2010년부터 증가세가 급속히 둔화되다가 2014년과 2015년에는 2년 연속 감소를 기록하였다.
금년 4월 발표한 세계철강협회 전망에 따르면 중국의 철강수요는 금년과 내년에도 감소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중국의 철강수요는 무려 4년 연속 감소를 기록하게 되며, 중국의 철강 소비량(조강 기준)은 2015년 7억 톤에서 2017년에 6.52억 톤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수요부진이 지속되면서 중국 철강 산업의 공급과잉은 더욱 심화되고 철강사들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중국 철강 산업의 과잉능력은 약3억 5천만 톤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세계 철강 산업 전체 과잉능력의 약 48%에 달한다.
또한 중국의 공급과잉이 심화되면서 철강사들의 수익률도 지속 하락하고 있다. 2008년 이전에만 해도 중국 철강 산업 수익률은 6.0% 내외를 기록하였으나 이후 하락세를 지속하면서 2015년의 평균수익률은 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업 평균과 철강 산업 수익률 격차가 계속 확대되고 있어, 철강 산업의 공급과잉 및 경쟁 정도가 타산업들에 비해 매우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철강 산업 구조조정 성과가 회복의 관건
중국정부는 철강을 비롯하여 석탄, 조선 등 공급과잉이 심각한 업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년 11월 ‘공급개혁 정책’을 제시하며,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을 천명하였다.
특히 금년 2월에는 중국 국무원이 ‘철강 산업 과잉설비 해소 및 위기 극복에 관한 의견’을 발표하면서 향후 5년간 조강 생산능력을 1억~1.5억톤 도태할 것이라고 명확하게 밝혔다.
일단 중국정부의 철강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는 매우 강하고, 과거와 달리 실효성을 높일 만한 조치도 눈에 띈다.
중국정부는 철강 및 석탄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실직자를 지원하기 위해 1천억 위안의 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철강 생산능력을 1억~1.5억톤 감축하는 과정에서 약 50만 명의 인원감축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되며, 조성된 펀드에서 약 20~30%가 철강 산업 인력 조정에 배분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향후 5년간 중국의 철강수요가 5천만 톤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국정부가 목표한 대로 생산능력을 1억~1.5억 톤을 줄인다고 해도 과잉능력은 2015년에 비해 5천만 톤에서 1억 톤 줄어드는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정부의 생산능력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12.5규획 기간(2011~2015년)의 실적을 보면 중국정부는 노후설비 도태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서 5년간 약 9,400만 톤의 노후설비를 도태한 것으로 집계되었지만, 실제로 같은 기간 신규 설비의 증설로 인해 전체 생산능력은 거의 3억 톤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중국정부는 12.5규획 기간 중 10대 철강사 집중도를 6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10대 철강사 집중도는 2011년 49.2%에서 2015년 34.2%까지 낮아졌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중국 철강 산업의 수급 개선이 조기에 이루어지기보다는 완만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산 철강재와의 시장 경쟁 심화
중국 철강 산업의 구조조정이 완만하게 진행된다고 할 때 한국 철강 업계의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무엇보다 중국 내 과잉 물량의 수출 증가에 따른 국내 시장 잠식과 제3국에서의 수출경쟁 심화이다.
중국의 철강 수출은 이미 급증세를 지속하고 있다.
세계금융위기 영향으로 2008년과 2009년에 일시적으로 감소세를 나타내기도 했으나 2010년부터 급증세를 보이며 2015년에는 1억 톤을 돌파하였다.
중국의 2015년 철강 수출량(1억 1,160만 톤)은 세계 2위의 철강 생산국인 일본의 연간 생산량을 상회하는 규모이며, 한국의 연간 철강재 소비량의 2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중국의 철강수출이 급증하면서, 동북아 3국인 한·중·일 간 수출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 일본, 한국은 각각 세계 철강재 수출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3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핵심 시장이 되는 동시에 모두 ASEAN을 주력시장으로 삼고 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한·중·일 간의 철강 무역관계는 상호 간에 매우 긴밀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철강 수입에서 중국과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기준 각각 63.8%와 31%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철강수입에서 일본과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각각 43.9%, 32.1%로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철강 수입에서 한국과 중국의 비중도 각각 58.0%와 22.5%로 1, 2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무역수지 측면에서는 한국이 일본과 중국 모두에게 적자를 기록한 반면, 일본은 한국과 중국 모두에게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중국은 일본에게는 적자, 한국에게는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ASEAN 시장에서의 한·중·일 3국 간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ASEAN 시장의 중국점유율은 급등세를 보이는 반면 일본과 한국의 점유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ASEAN 6개국에 대한 중국의 시장점유율은 2009년만 해도 14.0%에 불과하였으나 2015년에는 55.1%까지 급등하였다.
이에 반해 일본과 한국의 ASEAN 시장점유율은 2015년에 21.1%와 10.8%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과의 시장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철강재 수출이 늘어나면서 전 세계 각국의 보호조치가 강화되고 있다. 2015년 철강 산업에 대한 AD/CVD 등 조사 개시 건수는 41건(제소국 기준)으로 과거 25년 중 최다를 기록하였고, 금년에는 더 많은 조사 개시가 예상되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27일 미국 상무부는 중국산 철강재(내식강과 냉연강판)에 대해 200%가 넘는 AD/CVD 관세율을 확정하였으며, 철강사 가격 담합 및 기업비밀 탈취에 대한 조사를 결정한 바 있다.
중국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조치에 대해 WTO 제소 등을 통한 맞대응을 시사하였는데, 이러한 미국과 중국 간 철강통상 마찰은 한국에 불똥을 튀길 가능성이 크다.
중국 철강 산업의 질적 성장 가속화
중국 철강 산업의 위협은 비단 양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정부가 오래전부터 R&D를 통한 제품의 고부가가치화, 선도제품 및 핵심공정 개발을 주도해 왔을 뿐 아니라, 에너지 및 자원 절감 기술개발 등 철강기술 전반에 걸친 업그레이드에 중점을 두며 질적 성장을 추구해 왔기 때문이다.
작년 포스코경영연구원(POSRI)의 한 연구에 따르면 중국 철강 산업의 종합적인 기술 수준은 한국의 약83% 정도, 기술격차 기간은 약 2.9년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기술 수준은 한국 대비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특히 기술적 난이도가 높지 않은 열연, 선재, STS 등은 상당 수준 추격해 온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한편 중국정부는 향후 5년간 구조조정에 주력하는 가운데 중국 철강 산업의 질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전망이다.
현재 중국정부는 철강 산업 13.5규획(2016~2020년) 초안을 마련하였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 중이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작년 3월에 발표된 ‘철강산업조정정책(2005년 철강 산업 발전정책의 개정판)’과 기본 윤곽이 언론에 공개된 ‘철강공업발전전환 행동계획(2015~2017년)’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향후 5년간 중국정부는 공급과잉 억제에 주력하면서 인수합병을 통한 산업집중도 제고를 추진해 나가는 한편, 중국 철강 산업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높여나가는 노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철강산업조정정책’에는 2017년까지 평균 가동률을 80%까지 높이고, 2025년까지 10대 철강사 비중을 60%로 높이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3~5개의 초대형 철강집단을 구축한다는 목표가 담겨 있다.
또한 철강 산업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서비스 혁신(EVI) 강화, 정보화와 공업화의 융합발전(스마트 제조), 친환경 발전의 강화 및 철강 산업의 글로벌화 등이 핵심 정책 방향이 될 전망이다.
한국 철강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산업정책 시급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러한 중국 철강 산업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국의 공급과잉 해소가 지연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가열되고 있는 국제통상 마찰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므로 시장 방어 차원의 수입재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등 국내시장을 보호하는 노력과 더불어 민관 합동의 통상 대응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한국 철강 산업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제고하기 위한 기업과 정부의 노력이 시급하다.
기업들로서는 고급재의 품질기술력을 제고하여 중국과의 격차를 최대한 벌리고, 고객지향적인 제품개발 능력을 일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국산 저가 일반재에 대해서 원가절감형 대체 강종을 개발하여 기존 시장을 방어하는 한편 신규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부로서는 창조경제형 철강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기술 고도화 및 융복합 추세 하에서 기업 단독으로 장기간에 걸친 고위험 기술개발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민간 투자 확대를 위한 조세지원을 강화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산·관·학의 협력 확대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제도적 지원을 강화하여 한국형 기술혁신 시스템을 구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철강기술의 인력 육성 및 수급불균형 해소를 위한 정책도 중요하다. 청년층의 전통 제조 산업기피, 공공연구기관 인력 정체 및 고령화 등으로 철강기술 인력의 질적·양적 수급불균형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철강 산업의 경쟁력을 고려한 환경정책의 추진이 필요하다.
국내 철강업체는 중국 대비 연간 1,000~3,000억 원의 탄소배출권 구매부담으로 가격 경쟁력이 크게 저하된 상태이므로, 중국 등 비규제국에 대해 온실가스 감축노력을 유도하는 한편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해 국가적 차원의 대응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철강 산업은 산업 경쟁력의 원천인 철강소재를 제공하는 국가의 기간산업이자 전략산업이다.
따라서 철강 산업의 주도권을 중국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비단 한 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금은 한국 철강산업의 위기 극복과 재도약을 위해 국가적 역량을 모아 대처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