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밀(주) 손출배 대표이사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등을 알아봅니다.
동종업계 유일의 연구소장 CEO '공부의 현장 적용만이 중소기업의 살 길'
공동 작성_ 정원일 교수(경북대학교)
김공숙 전문작가(프리랜서)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각 분야의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우량 기업을 히든챔피언이라 명명한 바 있다.
2001년 창업 이래 한 해도 정체 없이 매년 25% 이상의 매출 신장을 이루어온 작지만 강한 기업, 종업원 200여 명이 매출 5백억 원을 달성하며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정밀(주)(이하 한국정밀)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경남 김해의 대표적인 히든챔피언을 만들어 낸 주인공, 동종업계에서 유일하게 연구소장을 겸직하고 있는 손출배 대표를 만나본다.
한국정밀은 제품이 아닌 공정을 판다
▲ (좌)한국정밀 2공장 전경. (우)한국정밀 사무실 계단에는 수많은 표어가 붙어 있다.
경남 김해의 농공단지에 위치한 한국정밀 대표이사실로 올라가는 계단과 벽면 게시판에는 종합생산성(TPM, Total Productivity Management)과 관련된 슬로건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입구의 벽면에서 시작한 교육정보와 실천 강령들은 대표이사실의 회의용 탁자 옆 벽면까지도 가득 들어차 있다.
마치 고3 수능생의 공부방처럼 하나라도 기록하여 외어 두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손출배 대표는 회의용 탁자 위에 ‘누구나 오고 싶고, 머무르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회사’로 만든다는 현수막을 펼쳐놓고 손때 묻은 노트를 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정밀은 자동차 자동변속기용 유압 솔레노이드 밸브 핵심부품과 서스펜션(현가장치)/스티어링(조향 장치)의 볼 조인트 생산 전문기업이다.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자동차 부품 글로벌 기업인 (주)유니크, (주)센트랄과 돈독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매년 60억 원 이상의 신규 개발품 수주를 통해 안정적인 성장으로 이어가고 있다.
또한 생산제품의 70%를 간접 수출을 통해서 해외 유수 회사에 납품해 오고 있다고 한다.
“한국정밀의 제품들은 일반 가공품과 달라서 초정밀가공을 요구하고 반도체 공장도 아니면서 청정 환경을 요구하지요. 100% 자동차 관련 부품인데 작동 부위가 매우 좁기 때문에 단순 가공이 아닌 마이크론 단위의 정밀성을 따져야 합니다. 그러니 단순 가공으로만 볼 수 있는 제품들이 아닌 것이죠. 제품의 청정도 역시 이물질크기를 가로 및 세로 0.2㎜ 이하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밀의 사훈은 ‘올바른 마음(正心)이 올바른 행동(正行)과 올바른 제품(正品)을 만든다’는 것이다. 손 대표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해 왔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고객과 약속한 컨트롤 플랜(Control Plan)을 지키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약속한 제품관리 방식을 제대로 지켜 나가는지 관찰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3정·5S(정품, 정량, 정위치·정리, 정돈, 청소, 청결, 질서) 활동에서 우리 회사는 안전(Safety)를 추가한 3정 6S 활동을 합니다. 조반장이 안전을 유지하는지 스스로 체크합니다. 세 번째는 상향 평준화 모임인데 매주 금요일 4시 반에 관리자들이 모여서 2시간 정도 수준이 떨어진 부분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활동입니다. 그런데 이런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CEO 혼자 해서는 안 되고 구성원들이 함께 하나하나 꼼꼼하게 참여하고 체크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정밀가공에 더해 청정 관리까지 해야 하는 부품들이기 때문에 한국정밀은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을 판매하는 회사라고 강조한다.
“수험생 공부방처럼 회사나 공장 벽에 여러 가지가 많이 붙어있는 이유는 보여주고, 보고 확인해 주고, 확인하고 평가해 주고, 평가받는 일이 끊이지 않는 공정 중심의 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고객이 방문하면 제품을 보여주면서 설명하지요. 그런데 제품은 많은 것 중에 좋은 것만 골라서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제품 이상으로 제품 전체의 품질이 관리되는 공정을 보여주면서 팔 수 있어야 고객에게 더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품의 공정을 보여주기로 결정했고, 공정을 보여주어야 하니 작업 과정에 따른 작업 표준과 지도서, 작업 환경 등을 다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3정·6S 활동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지요.”
손 대표는 고객이 오면 제품을 보여주고 공장 투어 중에 고객과 약속한 관리 계획서에 따라 공정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준다.
고객 공정 확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고객 공정 감사에 가깝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고 유지하느라 여느 기업보다 힘이 들지만 이런 노력이 있기에 한국정밀의 유압 솔레노이드 밸브와 제품이 국내 최다의 납품 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
납품 물량이 증가한 이유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가격, 납기, 품질이 모두 고객을 만족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불량’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창업을 하기 전의 일이다. 회사 입사 3개월 만에 고객 공정에서 불량이 발견되었고 당시 현장 관리자였던 손출배 기사는 사장에게 불려가 단단히 혼이 났다.
사장은 인사 조치를 하라고 호통을 쳤는데 부서장과 공장장들이 수습과 변호를 해주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때 불량에 대한 호통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늘 불량품에 대한 긴장을 놓치지 않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꾸지람과 호통이 공정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기회가 되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고 한다.
배움에 한 맺힌 ‘손 회장’,
자동화학교 수석 졸업자가 되다
▲ 손출배 대표가 산기협 기술경영인상(연구소장 부문)을 수상했다.
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농촌 마을에서 2녀 2남의 막내로 태어난 손출배 대표는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부친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늘 ‘바르게 자라야 한다, 욕먹을 짓은 하지 마라’고 신신당부했다.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바른 가짐을 늘 훈계하셨다. 외진 시골 마을 출신인 소년 손출배는 거창고등학교로 유학을 왔다.
당시 그의 별명은 ‘손 회장’이었다. 미래에 사업을 하겠다고 늘 다짐을 하다 보니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어려운 집안 형편에 여러 업종의 제조업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다 해보았다.
그러나 어려움이 아니라 삶의 소중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는 활동이었다고 회고한다.
군 제대 후인 1985년 국내 거대 조직인 모 공공기관에 입사했다. 그러나 1년이 채 못 되어 그만둘 결심을 했다. 월급은 많았지만 정말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대신 월급은 반 토막 밖에는 못 받아도 일을 배울 수 있는 중소기업을 가기로 결정했다. 일을 배워 창업을 하여 회장이 되기 위해서다.
이듬해 초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친구의 소개로 부산의 모 기업에 입사지원을 했다. 부사장이 면접관으로 들어와서 물었다.
“여기 왜 왔어요?”
“현장에서 근무하면 일도 재미있고 여사원들도 많다고 해서 왔습니다. 입사하면 현장부터 배우는 것이 중요하니 생산부에 배치해 주십시오.”
부사장을 포함하여 모든 면접관이 웃으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대기업도 아니고 중소기업으로 제 발로 오겠다고 하는 청년, 현재의 급여보다 절반 밖에 안 되는 중소기업에 오겠다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참 엉뚱한 사람이구나라고 하면서도 합격 통지를 내어주었다.
이 생산부에는 여사원 백여 명이 근무하고 있었고 남자라고는 기사, 계장, 과장 등 서너 명이 현장 지도를 하고 있었다.
청년 손출배는 나중에 결국 사내 연애로 아내를 만나 결혼에 골인 했으니 애초에 이 회사에 온 목적 중 한 가지는 달성한 듯하다.
중소기업에서 기사로 일을 하다 보니 사장도 부사장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손 기사는 임원과의 대화가 자유롭고 문제에 대해서 함께 토론하고 지적받고 논의하고 개선하는 활동들 하나하나가 재미있었다.
입사 후 일 년이 다 되어 가면서 회사는 자동차 관련부품 수주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손 기사는 1986년 말부터 생산라인 자동화에 참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학교에서도 배운 적도 없고 자동화의 ‘자’자도 몰랐습니다. 자동화에 대해서 국내 누구도 문외한이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일본이 앞서가고 있어서 일본 부품들을 사서 배웠습니다. 일본어를 할 줄을 몰라서 배워가면서 시작했어요. 국내 교육기관인 중소기업진흥공단 생산성본부에 가서 공압교육, 유압교육 등 교육이란 교육은 다 받았습니다. 2박 3일, 3박 4일, 4박 5일 교육을 모두 받으러 다니다 보니 나중에는 ‘너는 교육만 받으러 다니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부족함을 느껴서 휴가 때에는 별도 교육비를 내면서까지 교육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손 대표는 입사한 때부터 지금까지 공부를 멈춘 적이 없었다.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미래에 대한 준비였고 자신의 한계를 넓혀나가는 가장 경제적 활동임을 지금까지 몸소 체험해온 것이다.
그는 적자생존을 ‘적어야 산다’는 뜻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처음 입사했더니 노트를 나누어주는데 날짜, 내용, 결과에 대한 대응을 구분할 수 있게 페이지가 3등분이 되어 있었어요. 이것을 들고 생산직 기사로 활동했는데 신입 여사원이 배치되면 무조건 5시간 교육을 시켜야 했습니다. 기록 노트를 사용하는 방법, 3정·5S가 뭔지 알려주기, 안전교육이 필수 항목이었죠.”
당시 현장직은 인력 이동이 잦았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또 나갔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노트를 사용했다.
“당시 근무 부서원들을 1시간 일찍 출근시켜서 외국어도 모르는 제가 외국어 교육을 시켰습니다. 일본어 학원에서 조금 배운 것을 시간이 부족해서 못 배운 직원들과 공유했습니다. 어떤 요일은 유압, 어떤 날은 회로, 제도, 전기, 설계 등을 공부했죠. 우리 부서원을 정예요원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추진했습니다. 그때 일본어를 접했던 부서원들이 나중에 장비 수
입과 설치 조립 관리 능력까지 갖추게 되어 지금까지 잘 써먹고 있지요.”
회사가 자동화에 몰입할 무렵 고객사인 현대에서 자동화학교를 설립해 협력회사에서 각 1명씩 입학할 기회를 주었다.
손출배 기사는 회사 대표의 명을 받고 거주지인 부산 다대포에서 울산의 현대까지 매일 몇시간씩 통근하면서 과정을 이수했다. 4개월 과정을 수학하면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수석 졸업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월례회 조회시간에 회사 대표가 직접 수석 수료증을 공개하면서 기사에서 주임으로 승진시켜주었다.
1988년은 손출배 주임에게 정말 신나는 한 해였다. 이듬해 결혼을 했지만 집에는 주말에만 가고 자동화 라인을 구축하느라 회사에서 아예 살다시피 했다.
“신규 라인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집에 옷 갈아입으러 갈 시간 밖에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열심히 하다보니 공장자동화가 잘되어 있는 모범회사로 선정되어 업계의 견학코스가 되었습니다. 당시 현대의 정몽규 상무가 현대차 협력업체 직원들을 데리고 직접 우리공장을 견학 와서 우수사례발표 브리핑을 한 적도 있지요. 그렇게 15년 동안 회사 생활을 했습니다.”
정성이 만들어낸 뜻밖의 기회로
한국정밀을 설립하다
▲ 손출배 대표가 무역의날 천만 달러 수출의탑을 수상했다.
불성무물(不誠無物)이라 했다. 정성은 모든 사물의 근본이므로 정성이 없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기사에서 출발해서 부장이 된 손출배의 정성은 2001년 7월경 뜻하지 않은 곳에서 빛을 발할 기회를 얻었다. 회장이 직접 나서서 창업을 권유한 것이다.
“손출배, 자네 회사 한 번 해봐라.”
“······.”
“와? 바로 하라고 하니 어렵재? 아이도 일찍 태어나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하고 도와줘야 할 것이 많다. 회사 한 켠을 빌려줄 테니 5년 안에 성공해서 살림 나거래이.”
자동화만을 전문적으로 몰입해왔고 자동화 분야의 회사 설립에 관심은 두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당장 창업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샐러리맨이 사업 자금이 있을 리도 없고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사업 아이템의 이전은 물론 본사 옆 제2공장의 공간을 5년간 임대료만 내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어릴 때 꿈인 회장이 되는 첫 단추인 창업의 기회가 온 것이다. 회장은 평소 그의 성실함과 솔선수범을 눈여겨보고 가장 먼저 기회를 준 것이다.
손 대표는 가공 및 사출 부문 32명과 함께 한국정밀을 설립했다. 창업 후 첫해 매출은 11억 원이었다. 15년 엔지니어 생활에서 얻은 노하우를 살려서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영업활동을 강화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아이템을 추가하여 업종 다각화를 꾀했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도입해 아웃소싱을 원하는 다른 회사와 기존 모 회사의 제품을 생산하면서 부품을 공급했다.
5년이 지나 가공 부문만을 전문화하고 사출 부문은 매각했다. 그리고 현재의 공장 부지를 구입해 독립했다. 당시 이 지역은 땅값이 싸고 교통이 불편한 곳이었다. 5년 만의 약속을 지키면서 땅을 구입했을 때 감격스러운 마음에 회장을 모시고 와서 봐달라고 했다.
지나온 5년의 신용으로 은행 대출을 받아 공장을 짓고 그 다음 해에 지금의 공장을 지었다. 첫 공장은 가격이 올라 매각하고 그 대금으로 지금의 본사 공장을 지을 수 있었다.
2007년에 2공장, 2011년에는 3공장을 신축하면서 사세를 확장해 갔다. 자신을 늘 ‘손출배!’라고 직책 명 없이 친근하게 불러주던 회장은 2014년에 손 대표가 1,000만 달러 수출 탑을 받을 때 정말로 수고했다며 격려해 주었다.
손 대표는 전직 회사에서 배운 다양한 기술과 경험이 지금의 한국정밀을 만드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한국정밀의 눈에 띄는 성장의 이면에는 임직원의 역량을 끌어올리려는 손출배 대표의 의지와 지원이 크게 작용했다. 경영방침은 품질우선, 기본준수, 인재육성이다.
품질은 풀 프루프(Fool Proof, 착각이나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는 공정으로 불량 발생을 봉쇄시키는 보증수표이다)를 해야 하고, 기본적으로 마이크론 단위의 청정 환경을 유지하며, 인력은 교육을 통해 육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투자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대부분의 기업이 생산라인을 축소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안정지향을 추구했다.
손 대표도 금융위기 소식을 듣고 회사의 생산능력을 키울지 아니면 현상을 유지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는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는 뜻인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신조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불광불급이 쓰인 액자를 보여주고 투자를 결정했다.
“평소에 사업의 환경과 경영 변화를 학습하며 관찰한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금융위기를 곧 지나갈 일과성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투자를 그대로 결정했고 집행했습니다. 그러자 그 해에 전년 대비 42%, 이듬해에는 무려 122%의 성장을 거두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는 공부의 힘을 톡톡히 봤다. 공부는 단순히 현재의 개선을 위한 과거 지식의 습득만이 아니라 미래를 결정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몸으로 배워왔다.
‘교육 마니아’인 그는 김해에서 부산 해운대 집을 오고 가는 1시간 동안 CEO 교육 관련 동영상을 공부하면서 다닌다. 자동차는 유일하게 방해받지 않고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자기만의 교실이다.
CEO들과 함께하는 학습에도 열심이다. 중소기업 진흥공단 CEO 과정은 토요일에 열린다. 이 과정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이다. 그 외에 평일 저녁에도 수업에 참여한다. 경총에 가면 노사대학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하러 간다.
또 창원, 김해 조찬포럼이 아침 7시에서 9시까지 열린다. 공부할 곳은 찾아보면 엄청나게 많다. 부산, 김해, 창원으로 아침, 저녁 알음알음으로 갈 수 있는 무료교육의 혜택도 많다. 교육은 그에게 늘 새로운 정보를 얻는 기회의 창이었다.
“공부는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공부해서 지식을 쌓아야지요. 공부의 힘이 저 자신을 성장시키는 행운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제가 솔선수범해야 다른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교육에 관심을 가지지요.”
좋은 인재를 뽑기보다 좋은 인재를 키울 것
▲ 손출배 대표가 중소기업 탐방을 온 고등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여러 어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구하기 어렵고 품질에 관한 원칙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늘 사람이 들고나갑니다. 통근버스를 운영하는데 마산과 창원에서도 인력이 출근합니다. 인력 충원은 모든 중소기업 사장들의 고민거리입니다. 현장직도 그렇고 관리직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급여를 준다고 해도 좋은 인재를 데리고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서 좋은 인재를 뽑을 것인가와 좋은 인재를 키울 것인가에서 후자를 택하기로 했습니다. 인재들이 떠나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지속적으로 교육을 시킵니다.”
손 대표는 부산중소기업진흥원에 교육을 많이 위탁하다 보니 그곳의 HRD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한국정밀의 외부교육은 연 1회 이상 3일 정도이고 집체교육은 외부 명장들을 수시로 초빙해 사내에서 진행한다.
단발성이 아닌 연속 강좌로 주 1회씩 진행하며 평일 저녁 6시부터 2시간의 교육을 업무 시간으로 인정해주며 수당을 줘가면서 실시하고 있다.
기계 전문가도 모시고 공정 전문가도 초빙하여 구성원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 인력은 자신의 무기가 생기고 스펙이 생겨야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습니다. 이는 교육으로 가능합니다. 하지만 교육을 시켜놓으면 다른 회사에서 숙련된 인력들을 스카우트해 가버립니다. 그들이 이동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현장직이든 관리직이든 배워서 다른 회사에 간다고 해도 결국 대한민국 안에 있지 어디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저도 교육을 시켜서 누구나 오고 싶고, 머무르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회사로 만들어 나가면서, 바보도 할 수 있는 Fool Proof 공정을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바뀌더라도 품질이 안정되고 공정을 유지하는 시스템의 확보가 중요하지요. 인력 부족과 인력 이동이 엄연한 현실인데 사람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회사의 조직도를 보면 사람을 키운 흔적이 있다. 현재 3명의 공장장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업무 완결형으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인력 이동에 따른 품질 저하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Fool Proof 공정 운동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현장의 반장은 최하 4년 이상 근무하고 있다. 관리자들은 이보다 근무기간이 짧은데 훈련된 관리자들이 갈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정밀은 동종업계에서도 인력의 자질이 높기로 유명해서 육성된 인재들을 더 높은 임금을 주고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해 갈 정도로 경쟁력이 있다.
“직원이 들어올 때는 아무것도 몰라도 나갈 때는 이것저것 배워서 어느 정도 갖추었다는 확신이 들 때 이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 옮긴다고 사직서를 제출할 때 정말 옮기겠는가라고 정확하게 물어봅니다. 재미난 것은 옮긴 직원들이 다시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받아줍니다.”
미래의 신성장 동력의 준비는
개방형 이노베이션으로
손 대표는 한국정밀을 2020년까지 매출 1천억 원 이상을 올리는 회사로 만들겠다는 꿈이 있다. 그 해법으로 교육과 학습을 통해 M&A 훈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제조업이 위기라고 말하지요. 한국의 삼성, 현대, LG, SK라는 4대 기업을 구글,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4대 기업과 비교하면 창조력 면에서 엄청난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미국 기업들은 한국 기업보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GE같은 경우 가전을 다 팔아버리고 비행기 엔진 등 다른 쪽을 하고 있는데 10년 동안 M&A를 500여 건 이상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GE는 살아가는데 우리나라 대기업은 그렇게 되지를 못했지요.”
그는 큰 기업도 어렵지만 작은 기업들도 새로운 것을 M&A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중소기업은 작기 때문에 오히려 CEO가 쉽게 결정을 할 수가 있다.
“우리 회사는 연간 7천 2백만 개의 자동변속기와 볼 조인트부품 등을 단품으로 생산하고 있고 ZDQ(Zero Defect Quality)-100%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고객 공정에서 불량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압 솔레노이드와 볼 조인트로 갈 수 있는 시장의 성장 한계는 조만간 포화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저는 그 한계를 1천억 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 성장하기 위해서 부품을 중심으로 전(前)공정 또는 후(後)공정으로의 확장에 도전해야 하는데 시장의 지배 구조가 엄연해서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사업 다각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워서 실행하는 M&A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지요.”
손 대표는 2020년 1천억 원 이상 달성과 더불어 주식상장을 목표로 두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아이템만으로는 투자자들이 더 관심을 가지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에 다른 사업군의 제품을 추가해 규모의 성장을 달성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는 자신의 솔루션에 대해 의미심장한 얘기를 전했다.
“앞으로 성장의 정체가 올 것이고 어려움이 찾아온다면 해결 방안을 끊임없이 찾아야 합니다. 사업을 성장시키려면 아이템도 중요하고 그 아이템에 대한 투자도 외부에서 들어와야 한 단계 점프 업을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라는 것이 결국 나눔인데 나눔의 실천은 이해관계자와 함께 해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사업모델을 잡고 해나가야 할지가 대표의 고민이지만 막상
실행하려고 하면 조심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저는 성장의 축을 얻기 위해 개방형 이노베이션에 관심이 많습니다. 현재 김해시 시장이 추진하는 청년창업자 양성 활동에 봉사하고 있어요. 아이디어는 있는데 구현할 수 있는 방향도 모르고 멘토도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 젊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아이디어를 찾고, 제가 사업화에 접목하는 방편을 찾아주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한국정밀은 새로운 사업 세계를 구축해서 다변화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청년창업기관에게 3억~5억 원을 지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경우 소재부품 쪽이 아닌 다른 분야일 수도 있다.
기존에 해오던 업종이 아닌 다른 업종이면 위험 부담의 우려가 있지만 사실상 업에 대한 기본 관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투명한 관리, 인재 육성, 공정 관리 등은 어느 업계나 공통으로 구축해야 하는 관리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99%가 중소기업이지만 막상 중소기업에 취직을 원하는 젊은 층은 매우 적습니다. 매년 졸업하는 대학생 중 과반수가 안정적인 공무원을 지향합니다. 중국과 미국의 대학생들의 과반수가 창업을 하겠다는 것과는 다르지요.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데 우리도 이제는 정년퇴직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기업에 가서 시키는 일만 하다가 10년 되어 나오면 할 것이 없습니다. 정년퇴직 후 해야 할 일이 있도록 전 국민에게 창업 붐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해법이 있습니다. 우리 세대가 잘못한 것이 큽니다. 자식들이 하나, 둘 밖에 안 되다보니까 그냥 안전하게 밥 먹고 살 길을 찾으라고 한 것이 잘못입니다. 젊은 층이 창업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김해시에도 청년 창업 붐을 일으킬 멘토단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습니다.”
김해시의 자랑 손출배 대표는 마지막으로 엔지니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안정지향적인 조직은 질문이 적습니다. 유태인은 아이가 학교에 갔다 오면 ‘오늘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물어본다고 하지요. 우리는 대개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니? 선생님 말씀 잘 들었니?’라고 묻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질문이 많았는데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라는 핀잔을 듣고 난 후부터 질문을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못하다가 초등학교 졸업식 때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행동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평생 바보 되지 말고 5분 바보 되라’는 말씀이었는데 결국 모르면 물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보 되는 것은 순간이지만 질문은 끝없이 생각하는 힘 즉, 창조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손출배 대표는 전자, 산업경제학 학사와 기계공학석·박사 등 매우 드물고 다양한 학력으로 연구소장과 CEO를 겸직하며 기술과 경영을 분리하지 않고 기술을 사업으로 완결하는 최고책임자로서 뛰고 있다.
‘출배’라는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는데 날(나갈) 출(出)에 북돋울 배(培)를 쓴다.
이름이 독특하다고 하니, 아마도 출배라는 이름이 한국정밀을 통해 ‘한국의 수출을 북돋우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며 웃었다.
배움과 학습의 힘을 함께 나누고 경험하면서 서로의 데이터를 정보로 묶고, 정보를 통해 지식을 발굴하고 이로써 결정을 내리는 지혜를 가진 교육 마니아 손출배 대표,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배출한 진정한 히든챔피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