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인사이트 - 사회혁신과 비즈니스 혁신
혁신 인사이트에서는 혁신의 트렌드, 전략 및 혁신사례를 살펴봅니다.
▲ 송위진 단장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사회기술혁신연구단
최근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활동이 등장하고 있다.
사회혁신은 교육·보건복지·주거·교통·에너지·환경·노동 등 ‘잘 해결되지 않는 사회문제’나 고령화·청년문제·기후 변화 등 ‘새롭게 나타난 사회문제’를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을 통해서 해결하는 활동을 지칭한다.
경제가 발전하면 사회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오히려 확대되거나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회문제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문제 해결이 중요한 혁신활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회혁신에는 사회 분야의 사회혁신과 과학기술 분야에서 논의되는 사회혁신의 흐름이 있으며, 최근에는 양자가 통합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 분야에서 전개되고 있는 사회혁신은 기술보다는 새로운 조직방식과 서비스를 도입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지역농민의 소득 증대와 안전한 농식품 공급을 위한 ‘로컬푸드’,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셰어하우스’, 디자인적 접근을 통한 ‘안심마을 만들기’ 등 다양한 실천이 전개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회혁신은 ‘과학기술 기반 사회문제해결 종합실천계획’,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개발사업’ 등으로 산업육성을 넘어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 향상을 위한 과학기술혁신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또 ‘디지털 사회혁신’과 같이 ICT를 활용해 사회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활동도 등장하고 있다.
사회혁신의 특성
사회혁신은 생활세계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 해결이 혁신활동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경제적·기술적 문제 해결에서 시작하는 비즈니스 혁신과는 다른 접근을 취한다.
우선 혁신의 목적이 수익창출보다는 사회문제 해결에 있다. 수익은 사회문제 해결 활동을 지속하고 더 확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다.
또한 사회문제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최종 사용자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사회혁신의 주요 주체는 최종 사용자인 시민사회와 연계가 있는 비영리조직이나 지자체, 사회적 기업, 소셜벤처 등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혁신에서 ‘딜라이트 보청기’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다.
동사는 소셜벤처로서 취약계층이 보조금을 지원받으면 거의 무료로 구매할 수 있는 저가 보청기를 개발·보급하여 취약계층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고 일반 소비자 시장에도 진출해 기업으로서의 발전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표준화와 공동구매·온라인 마케팅을 통해 보청기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것이 혁신의 핵심이었다.
서울시가 심야 이동자를 위해 도입한 ‘올빼미 버스’도 성공적인 사회혁신 사례다.
서울시의 교통데이터와 이동통신사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심야 수송에 적합한 노선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올빼미 버스는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큰 환영을 받았다.
선박에 연을 부착하여 보조 동력으로 풍력을 활용함으로써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는 Skysails의 친환경 혁신, 덴마크의 INDEX와 같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활동을 지원하는 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관련 기업들의 네트워크 형성 활동도 사회혁신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회혁신과 기업혁신
이렇게 사회혁신은 사회문제 해결을 지향하지만 비즈니스 혁신을 추진하는 기업에게도 새로운 전망을 제공할 수 있다.
사회혁신은 크리스텐슨(M. Christensen)이 지적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방식으로 새로운 사업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사회혁신을 추진하는 조직들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존 기업들이 수익성이 없어 무시하거나 멀리하는 시장에 초점을 맞춰 단순하고 낮은 가격의 제품을 공급하는 경우가 많다.
고수익을 제공해주는 기존 고객이 아니라 소득이 적거나 접근성이 떨어져 소비를 할 수 없었던 잠재고객에 주목하여 이들이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을 수행한다.
핵심 기능을 강화시킨 저가 제품을 통해 새로운 소비자를 발굴하여 시장에 진입하며, 이를 바탕으로 기존 시장까지 파고들어 산업을 재편하는 파괴적 혁신을 이룩하게 된다.
미국의 MinuteClinic은 주목할 만한 사례다. 동사는 오랜 경험을 쌓은 간호사가 건강 상태를 간단하게 측정할 수 있는 측정기기를 사용해 사람들의 접근성이 높은 쇼핑몰과 같은 공간에서 저가의 건강검진을 시행하는 혁신을 성공시켰다.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건강 진단서비스 영역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여 의료비를 낮추고 접근성을 높여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주요 1차 의료 진단서비스 조직이 될 수 있었고 의료비가 비싼 미국 의료체계를 뒤흔든 파괴적 혁신이 이루어졌다.
사회혁신은 종합적인 기업혁신의 비전이 될 수도 있다. 특정 산업이나 제품을 중심으로 사업의 비전과 영역을 정의하는 것을 넘어 문제해결 중심으로 사업의 프레임을 구성하여 종합적인 혁신을 이룩할 수도 있다. 히타치의 사례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전기·전자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해 왔던 히타치는 한국·중국 기업의 약진 때문에 2008년 사상 최대의 적자를 내면서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히타치는 디스플레이, PC, TV 사업을 정리하고 "Social Innovation: It’s Our Future"라는 비전을 내세우며 환경문제와 에너지문제 해결과 같은 비전을 내세우며 혁신활동과 사업을 새롭게 구성하였다.
제품 공급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를 정의하고 그것을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자원과 능력을 재배치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히타치는 교통·통신·환경·에너지 등 사회문제와 관련된 인프라 분야를 주 사업영역으로 정하고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여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
사회를 좀 더 살만하게 바꾸는 사회혁신으로 기업의 비전을 설정함으로써 기업의 존재이유를 성찰하고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혁신을 통해 기업은 개별 조직의 혁신을 넘어 사회 시스템 전체를 경제·사회·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전환시키는(Sustainability Transition) 선도자가 될 수도 있다.
기업이 축적한 자원과 능력,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경제발전, 사회통합, 환경보호가 선순환하는 지속가능한 시스템과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기존 시스템 내의 혁신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의 불확실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몇몇 기업들은 시스템 전환을 이끄는 사회혁신의 리더가 되기도 한다.
기업 주도의 시스템 전환 사례로서 ‘지붕 전환(Roof Transition)’을 들 수 있다.
네덜란드의 기업 ESHA는 건물의 지붕을 지속가능성 개념을 가지고 재구성하여 빗물을 흡수하고 단열효과를 높여 에너지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ESHA는 이를 위해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Earth Recovery Open Platform(EROP)를 구성해서 기업, 지자체, 시민사회 등 다양한 혁신주체들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거주 환경의 전환을 위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시스템 전환의 관점에서 지붕의 개념을 재구성하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새로운 비즈니스와 생태계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유가치창출과 최종 사용자 참여
기업이 사회혁신을 주요 전략으로 받아들여 혁신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창출과 경제적 가치창출을 동시에 구현하는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형 혁신 전략’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공유가치창출 전략은 글로벌한 사회·경제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기업이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문제 해결 영역에 진입해야 한다고 파악한다.
한마디로 사회문제 해결이 이제는 기업이 영속하기 위한 비즈니스 영역이라는 것이다. 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삼지 않으면 기업의 지속가능성도 약화된다.
사회문제 해결을 비즈니스 원천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사회문제 해결 요구가 있지만 아직 수요로 구체화되지 않은 사용자들의 니즈를 효과적으로 파악하고 구성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가격이 비싸서 그런 것인지, 제품·서비스의 전달체계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법·제도·문화적인 이유 때문에 그런 것인지를 파악해야만 사회문제 해결과 함께 비즈니스를 전개할 수 있다.
이때 최종 사용자인 시민사회를 파트너로서 같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찰자의 관점만으로는 사용자들 생활세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안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종 사용자들이 혁신활동의 주요 주체로 참여하여 현장의 문제 상황에 대해 암묵적 지식을 활용하여 전문가와 협업하는 ‘리빙랩(Living Lab)’과 같은 혁신방식을 채택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회혁신은 사회문제의 당사자들과 같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