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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아카데미 - 전략적 니치관리


 


혁신 아카데미는 혁신의 주요 이론과 개념을 소개하고 실제와 연계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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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현 조교수
한양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니치 플레이어의 성공 : 넷플릭스 사례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비디오 대여시장은 블록버스터(Blockbuster)가 지배하고 있었다.

블록버스터는 오프라인 대여점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는데, 지역의 소비자 특성을 면밀히 분석하여 그에 걸맞은 영화와 게임 타이틀을 구비함으로써 성공 가도를 달렸다.

반면, 1997년에 설립된 넷플릭스(Netflix)는 DVD만을 취급하며, 오프라인 대여점을 운영하지 않았으며 카탈로그와 우편 배송만을 고집하였다.

넷플릭스의 설립 초기에만 해도 영화를 보고 싶을 때 당장 대여점으로 달려가 원하는 영화를 집어 오지 않고 며칠씩 기다려서 우편으로 받아볼 소비자는 많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비디오 대여시장에서의 니치(Niche) 플레이어였다.

블록버스터의 매출은 2004년 정점을 찍어 61억 달러까지 올랐는데 이때 넷플릭스의 매출액은 5억 달러 정도로 블록버스터의 1/12에 불과했다.

넷플릭스는 월 정액을 지불하고 지속적으로 영화를 배송 받아보는 구독제를 도입하고, 블록버스터의 주 수입원이었던 연체료를 부과하지 않았으며, 이후 비디오스트리밍 배급시스템을 출시함으로써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기존 가맹점과 비즈니스모델을 고집하던 블록버스터의 매출액은 급감해 결국 2010년 9월 파산보호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반면, 넷플릭스는 2013년 44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린 데 이어 작년에는 68억 달러의 매출액을 달성해 전성기의 블록버스터의 성과를 능가하게 되었다.

다윗(니치 플레이어)과 골리앗(주류(Mainstream) 플레이어)의 싸움에서 결국 다윗이 이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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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와 블록버스터의 사례는 신규 기업이 하위시장으로부터 출발한 니치를 주류시장으로 전환시킨 좋은 예이다.

이 과정은 Clayton Christensen이 ‘와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 명명한 과정과 유사한데, 주로 기존 기업이 우량고객의 존속적 혁신 압력에 밀려 와해적 혁신을 적시에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자동차 시장의 니치기술 : 전기자동차

전기차는 자동차 시장에서 아직 니치이다. 2015년에 팔린 전기차는 세계적으로 55만 대가량으로 추정되며 시장점유율은 0.9%정도이다.

그러나 최근 전기차에 대한 기술과 시장에서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올해 3월 31일에 예약판매를 개시한 3만 5천 달러짜리 Tesla Model 3는 일주일 만에 32만 5천 대가 판매 예약되었다.01

전 세계 전기차 누적 판매 대수는 2015년 126만 대에 달해 2014년에 비해서 77%, 2010년에 비해서 100배 성장하였다(OECD/IEA 2016).

이와 같은 최근의 폭발적인 시장 반응과 배터리 등 핵심부품의 기술발전 속도를 보았을 때, 2020년에는 2천만 대 이상의 전기차가 보급되는 것은 물론 내연기관 차량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도 시간문제라 생각된다.

전기차의 이러한 발전과정은 니치기술이 어떻게 그 영역을 확대하고 Scale-up해 나아가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전기차의 니치발전 양상은 넷플릭스와는 사뭇 다른 형태를 보인다. 넷플릭스의 사례가 자생적 니치와 시장과 경쟁 메커니즘의 선택이라는 자연발생적 과정을 보였다면, 전기차 니치는 전략적 의도를 가진 플레이어들(기업, 과학기술계, 정책담당자, 환경단체 등 이익집단)이 복잡한 상호작용을 거치며 한 걸음 한 걸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거시적 환경, 제도/정책, 기업, 기술, 시장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 영역에서의 성과가 다른 영역으로 되먹임되며 증폭해 나아갔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실험(Experimentation)” 또는 “실증(Demonstration)”이었다.

1990년 1월 로스앤젤레스 오토쇼에서 제너럴 모터스가 EV1으로 명명된 전기차 개념모델을 전시하고 이후 생산계획까지 발표하자 대중과 정부는 전기차 상용화가 멀지 않았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대기자원국(California Air Resources Board)은 그해 9월 “저공해차법(Zero Emissions Vehicle Mandate)”을 채택함으로써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기차 기술개발과 상용화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1990년대 중반에 세계 굴지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기차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였으며, 전기차 도로주행 프로젝트가 유럽 각국에서 진행되었다. 일례로 프랑스 서해안 La Rochelle에서의 실증 프로젝트에는 전기차 2,000대가 동원되었다.

실증 프로젝트는 기술개발자와 제조사, 소비자, 정책담당자가 기술적 문제점과 시장의 니즈를 파악하는 학습의 장이자 상호 간의 네트워크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토요타가 RAV4, 혼다가 EV Plus를 출시하는 등 전기차의 상용화가 진행되는 듯이 보였으나 비싼 가격과 불충분한 배터리 용량 등의 문제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아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상용 전기차의 생산은 중단되었다.

1990년대 전기차 시장에서의 유일한 성공은 토요타와 혼다의 하이브리드 전기차인 Prius와 Insight정도였다(Dijk et al. 2013).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거시경제 환경의 변화와 기술적 진보가 전기차 니치의 발전을 추동했다. 2005년의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기후변화의 폭발적 위험성에 대한 대중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교토의정서가 2005년 발효되면서 CO₂ 배출 규제가 현실화되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연구개발에 168억 달러를 투입하고 이 중 2억 달러를 배터리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유럽도 2020년까지 회원국들이 에너지 효율 20% 향상과 신재생에너지 사용비율 20%를 달성할 것을 골자로 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기술 차원에서는 리튬이온 전지를 중심으로 배터리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이에는 자동차 부품업체와 완성차 업체 간의 다양한 기술개발 협력이 큰 역할을 했다.

인프라 측면의 개선과 시장 환경의 변화도 전기차의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 배터리 수명이 전기차 확산의 걸림돌이 되는 현상을 완화하고자 각국 정부는 충전인프라의 설치를 위한 대형 프로젝트를 가동하였다.

시장 측면에서는 많은 수의 차량을 운용하는 배송업체 등이 전기차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였다.

2015년까지 이들 배송업체가 창출한 전기차 수요는 10만 대에 달한다. 또한, ZIPcar와 같은 모빌리티 서비스 회사(차량공유 서비스)의 등장도 전기차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

전기차의 단순한 구조와 각종 지원책이 일반 소비자보다 유가나 차량운영 및 유지비용에 보다 더 민감히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전략적 니치관리

넷플릭스의 성공사례는 새로운 시장니치와 기술니치에 직면한 기존 기업의 대처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교훈을 던져준다.

또한, 기존의 강자가 버티고 있는 시장을 점진적으로 와해시켜 주류시장으로 올라서고자 하는 신규 진입자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사례는 정부나 소비자, 산업가치 사슬의 다른 플레이어, 외부의 기술개발 주체들이 니치의 전략적 발전을 위해 협력을 하거나 세부 발전 목표를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

반면, 전기차 니치의 발전과정은 이상의 모든 주체들이 전략적 의도를 가지고 상호작용의 과정을 거치며 내연기관이 지배하고 있는 강력한 영토를 잠식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이 바로 “전략적 니치관리”가 주목하고 있는 영역이다.

전략적 니치관리(SNM, Strategic Niche Management)는 1990년대 후반 지속 가능한 기술의 확산과 도입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해 주창된 개념이다.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바람직한 기술이 현재의 주류(Mainstream) 기술에 밀려 니치에 머물고 만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사회적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니치기술은 아직 기술적으로도 성숙하지 않았고, 그 기술로 만들어질 제품이 시장의 요구에 맞는지도 검증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소비자들이 이러한 기술과 제품에 대해 필요성을 인식조차 하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이들을 시장의 선택에만 맡겨둘 경우, 바람직한 기술이 꽃도 피기 전에 사장되거나 상용화 시점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

니치기술의 발전을 추동하기 위해서 기업만이 아니라 시장과 정책담당자들을 모두 지원하고 학습시키기 위한 수단이 필요한 이유이다.

전략적 니치관리의 핵심은 기존의 시장경쟁 논리에서 보호되는 구역을 창출하고 이 안에서 관련 주체들이 상호학습을 하며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Scale-up 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중요한 정책수단이 실증 프로젝트이다. 실증 프로젝트에서는 현실을 모사하되 기존의 경쟁구도에서 자유로운 보호지대를 설정함으로써 기술적 아이디어가 시장의 요구에 맞는지 검증해 볼 수 있고, 필요한 인프라와 추가적인 기술적 요구사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다.

전략적 니치관리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기술, 사용자, 정책이 상호학습을 통해 공진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다음의 세 가지이다(Schot and Geels 2008).

1) 기대와 비전의 명확화: 학습방향의 설정, 이해당사자의 관심 제고, 니치의 보호와 육성에 대한 법적/제도적 정당성 확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요소이다.

2) 네트워킹: 니치의 확장을 위해서는 관련 이해당사자의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는 핵심기업만이 아니라 관련 전후방 산업종사자, 정책담당자, 소비자, 자원공급자 등을 포괄한다.

3) 다양한 관점에서의 학습: 기술과 설계, 시장과 사용자 선호도, 문화적 의미, 인프라 및 유지·보수, 규제 등 정부정책, 산업 및 생산 네트워크 등 다양한 관점에서의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글에서 설명한 전략적 니치관리의 개념을 기업 내의 소규모 신제품 프로젝트에 적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신제품 개발팀에 보호지대를 설정하여 기존성과평가와는 다른 방식을 적용하고, 새로운 기술을 기존 제품에 일부 적용하는 실증 프로젝트를 가동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연구개발 부서만이 아니라 회사 내 다양한 부서가 참여하여 네트워킹하고 기대와 비전을 정제해 나아감으로써 니치기술의 확장과 안착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01 Tesla Motors 홈페이지(https://www.teslamotors.com/blog/the-week-electric-vehicles-went-mainst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