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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아카데미 -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혁신이 보인다

혁신 아카데미는 혁신의 주요 이론과 개념을 소개하고 실제와 연계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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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현탁 교수 연세대학교


다양성의 이해: 양날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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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너던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걸리버가 소인국 릴리퍼트에 도착했을 때 소인국 사람들은 두 집단으로 나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큰 엔디안(Big Endian)과 작은 엔디안(Little Endian)으로 집단을 구분해 사사건건 다투며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걸리버는 처음에 왜 이들이 끊임없이 다투고 무조건적으로 서로를 배척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이들이 갈등을 겪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달걀을 깰 때 뭉툭한 끝(Big End)을 먼저 깨야 하는지, 아니면 뾰족한 끝(Little End)을 먼저 깨야하는지에 대한 논쟁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이슈이지만 이들이 너와 나를 구분하는 집단구분을 하고 이에 근거하여 서로를 배척하며 갈등을 겪기에는 충분한 단초로써 작용한 것이었다.

이렇듯 사소한 단서에 근거해 공통점, 차이점을 구분하고 유사한 특성을 공유한 사람은 내집단(Ingroup), 다른 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외집단(Outgroup)으로 구분하는 모습은 지난 수십여 년간 사회과학 연구를 통해 증명된 사람들의 보편적 경향성 중 하나이다.

또한 사람들은 내집단 멤버와는 우호적 태도 및 결속력을 강조하는 한편, 외집단 멤버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차별적 태도를 견지하려 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소설 속만이 아닌 우리의 현실상황 여러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성별, 국적 등의 개인적, 사회적 범주에 근거한 구분 및 편견, 학연, 지연 등에 근거한 차별의 모습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경향성으로 인해 다양한 배경, 경험,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할 때는 일반적으로 많은 갈등과 비효율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흔히 다양성이 양날의 검(Double Edged Sword)으로 표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다양한 정보의 활용, 문제해결의 유연성,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도출 등을 기대하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편협한 인간 본성은 이러한 다양성의 긍정적 측면의 발현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혁신의 원천으로서의 다양성

사실 다양성이 더 나은 문제해결 및 혁신의 기본 요소임을 보여주는 많은 연구결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미시건 대학의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실시하였다.

연구팀은 실험을 위해 두 그룹의 피험자를 모집하였는데, 한 그룹은 지능지수(IQ)가 130이 넘는 특정 분야 박사들로만 구성한 반면, 또 다른 집단은 IQ와 관계없이 다양한 분야에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을 하였다.

연구자는 이들에게 동일한 문제해결 과제를 부여한 후 어느 집단이 더 효과적으로 과제를 수행하는지, 보다 창의적인 대안을 도출해 내는지를 측정하였다.

실험결과, 팀 전반의 IQ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다양한 인력으로 구성된 집단이 IQ 수준이 월등히 높은, 하지만 동질성이 높은 집단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질성이 큰 팀의 경우, 개인수준의 높은 지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팀 수준에서는 정보의 중복, 제한된 사고와 견해, 이로 인한 집단사고(Groupthink)의 가능성 등으로 인해 창의적 대안 도출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다양한 개인들의 경험과 식견이 합쳐진 집단수준의 인지적 자원, 이른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개개인의 능력보다 문제해결에 훨씬 효과적임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문제의 복잡성이 크고 변화 또한 심해서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하기에는 어려운 기업 환경속에서는 다양성에 기반한 집단지성의 힘이 특히 중요함을 일러주는 연구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름의 이해: 자연스러운 접촉이 중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다양성이 갖는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는 한편, 집단지성을 활용한 창의적 문제해결을 도모하는 다양성의 긍정적인 측면을 현실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일 것이다.
 
픽사(Pixar)의 사례에서 중요한 가능성 하나를 확인할 수 있다.

픽사 본사는 스티브 잡스가 CEO이던 시절 직접 설계에 참여해 2000년에 세워졌다.

그런데 이 건물에는 특이한 점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남녀 화장실 4개, 회의실 8개, 카페, 식당 등이 모두 거대한 중앙 로비에 몰려 있고, 사무실은 중앙 로비를 기준 삼아 좌우로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엔지니어, 애니메이터, 제작팀 등에 속한 직원들이 각자의 사무실에서 나와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장소라고 할 수 있는 중앙으로 나와야 했고 이를 위해 최소 4~5분의 시간은 필요했다.
 
다소의 불편함, 비효율성을 초래할 수도 있는 구조이나 이 과정 속에서 직원들이 빈번한 우연한 마주침을 가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잡스는 공동작업, 협업, 팀워크 등이 공간적 설계를 통해 촉진될 수 있다고 보고, 픽사의 본사 건물 디자인 설계를 통해 각기 다른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뛰어난 공동 작업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다.

의도적으로 계획해서 만나는 회의가 아니라 소위 ‘자연스러운 접촉’을 통해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창의적 발상의 단초가 된다고 잡스는 굳게 믿었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유사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끼리 매일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올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픽사는 스토리와 애니메이션을 담당하는 파트는 오른쪽에, 컴퓨터 기술을 담당하는 파트는 왼쪽 공간에 배치했는데, 이는 잡스가 인간의 뇌 구조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좌뇌와 우뇌의 스파크가 일어날 때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태어난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다양성의 부정적 영향력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자연스러운 만남이다.

빈번하고 지속적인 사회적 접촉은 이질적 사람들이 서로에게 갖고 있던 편견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하고, 보다 개인 자체의 정보(실제 성격, 견해, 지식, 경험 등)에 집중할 수 있게끔 한다.

이러한 보다 본질적인 특성에 근거한 판단 및 정보처리는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한 개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촉진시킬 수 있고, 이는 조직 내 집단 및 개인 간 활발한 상호작용, 의사소통,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중요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접촉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보다 면밀히 이해하게 되면 혁신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보다 가까이 상호작용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편협한 인간 본성을 극복하고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풍부한 인지적 자원을 활용할 기회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양성 수준이 큰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의 혁신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조직이 돕는 것이다.

비록 스티브 잡스의 영화제작 과정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컸는지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무엇이 혁신의 원천이고 이를 위해 조직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통찰력은 확고하고 정확했다는 점은 픽사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맺음말

다양한 인력이 함께 일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또는 조직 내 혁신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수직적이고 통제 중심적 의사결정, 업무수행 구조는 유사한 생각, 태도, 관심사를 지닌 동질성이 큰 과거의 조직에서는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도 있겠지만, 서로 다른 경험과 태도, 가치관을 지닌 이질적 구성원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는 효율적, 효과적으로 작동하기에 어려움이 클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 간 자연스러운 접촉을 유도할 수 있게끔 업무수행 방식에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협업의 기회를 주는 한편 활발한 논의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다양한 멤버로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고 이들에게 공동의 목표를 제시한 후 책임과 권한을 충분히 부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물론 업무수행 과정에 있어서 충분한 토론, 의견 교환이 보장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공동의 문제 해결을 위해 활발한 의견 교환을 시도하다 보면(자연스러운 사회적 접촉) 편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서로의 본질적 모습에 초점을 둘 수 있고, 또한 서로에게 필요한 인지적 정보(다양한 경험, 견해, 지식 등)에 집중한 상호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인지적 상호작용은 과업 갈등(Task Conflict)으로 발전할 수 있는데, 과업 갈등은 보다 나은 정보 처리, 문제 해결, 창의적 대안 도출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리더의 역할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상명하달, 개인의 권위나 경험, 카리스마를 앞세운 업무진행 방식은 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

대신 리더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논의할 수 있게끔 팀의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구성원 모두가 공평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지, 의견 교환이 강압적이지는 않는지, 권한 위임은 잘 이루어졌는지, 공통의 문제 해결을 위한 목표 설정은 잘 이루어졌는지 등의 이슈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앞으로 다양한 구성원들을 관리해야 하는 리더들에게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격언을 이쯤 다시 한 번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과거와 다른 다양한 인력으로 혁신을 이뤄내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는 조직이라면, 이제는 과거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일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