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 과학 - 분자조리와 현대의 음식문화
푸드 & 과학은 영양소, 조리법 등 음식과 관련한 과학 이야기와 음식문화에 대한 이슈를 살펴봅니다.
글_ 정혜정 교수(전주대학교 한식조리학과)
조리와 과학의 융합, 분자요리
조리 분야에서 끊임없이 대두되는 이슈는 새로운 음식의 개발이다.
사람들은 보통 익숙한 음식을 찾기도 하지만,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크다.
이러한 호기심의 발로로 만들어진 새로운 음식 영역이 분자요리라고 할 수 있다.
분자요리란 음식을 분자 단위까지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음식의 질감이나 조직, 요리법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변형시키거나,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음식을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분자요리는 우리가 익히 알던 맛, 질감, 형태 등을 새롭게 창조해 우리의 오감을 혼동시키고 새로운 자극을 주면서 음식계의 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1988년 프랑스의 화학자 에르베 티스와 물리학자 니콜라스 커티가 요리와 과학을 결합한 요리법을 연구하면서 분자요리학이 완성되었다.
셰프와 과학자들이 함께 융복합하여 과학을 접시 위에 표현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과학자들과 셰프가 손을 잡고 제조 공정에서 효율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을 하였지만 이처럼 직접적으로 음식과 문화를 표현해 낸 것은 아니었다.
2000년대 들어와 분자요리가 가장 활성화된 곳은 스페인이다.
지금은 요리연구소가 된 엘블리 레스토랑은 분자요리를 연구하고 음식도 판매하였는데, 개발한 음식을 책으로 공개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들은 1년에 6개월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나머지 6개월은 요리연구에 몰두해 다양한 조리법을 적용한 음식을 만들어 냈다.
엘블리 레스토랑의 조리실은 화학 관련 제품, 새로운 기계, 식재료 등이 혼합되어 점차 요리연구소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이들은 새로운 맛과 향을 찾아서 세계 음식의 맛 프로파일을 정리하였고, 이들의 요리책은 항상 창조적인 요리, 맛과 형태로 구성되었다.
분자요리는 음식을 만드는 노동의 공간이었던 주방을 요리 연구 공간으로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조리 방식에 있어서도 두드리거나 다지는 등의 기술, 물과 불, 공기를 취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과학을 접목한 조리법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예술적인 감각을 넣어 조리제품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세계 레스토랑 업계는 매년 최고의 음식점에 등수를 부여하는 발전적 변화를 시작하였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는 분자요리를 적용하는 레스토랑들이 높은 점수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한편으로 상위권에 들기 위한 레스토랑은 분자요리를 하지 않고는 인정받지 못하는 정도가 되기도 하였다.
분자요리를 보는 다양한 견해
분자요리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인정하는 소비자들은 새로운 경험에 대하여 찬사와 경이를 표하기도 하고, 레스토랑들은 오감을 자극하는 음식이라고 하여 향기, 색채 그리고 일부에서는 그 음식에 어울리는 음악까지도 지정하여 주는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분자요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함께 표출되었는데, 이는 분자요리의 조리 방법에 많은 화학제품이 들어간다는 사실 때문이다.
분자요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기법에는 주사기 등을 이용하여 만드는 구체화 기법, Whip Siphon 등을 이용하여 만드는 거품 기법, 카본화 기법, 진공조리를 통한 수비드(Sous Vide) 방식, 퓨레, 에멀전 등이 있다.
과거에는 실험실에서 사용되었던 화학기기들이 오늘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우뭇가사리에서 추출한 한천, 카라기난, 칼슘 클로라이드, 레시틴, 알긴산 나트륨과 함께 질소가스도 많이 사용된다.
이들 제품이 사용되면서 화학제품 첨가로 인한 건강에 대한 염려와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융합이 창조를 만들어 낸다
과학은 천천히 우리 생활 속으로 스며들며 어느 순간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지만, 단지 우리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분자요리의 요소는 많은 제품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판되는 인스턴트 커리를 보면, 과거에는 커리 가루를 찬물에 미리 잘 개어 뜨겁지 않은 정도의 액체에 넣어 사용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펄펄 끓고 있는 냄비속에 커리 가루를 뿌리듯이 넣어도 뭉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본래 전분은 뜨거운 액체 속에서 호화(糊化, 녹말에 물을 넣어 가열할 때에 부피가 늘어나고 점성이 생겨서 풀처럼 끈적끈적하게 됨)되는 것이 어려운 특성을 가졌다.
이는 화학처리를 한 전분을 사용하여 새로운 물성을 형성하도록 만든 과학의 산물이다.
아직 분자요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 한국에서는 대중화가 덜 되었지만, 이제 음식은 배를 채우기 위한 것만이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눈으로 보면서 느끼는 존재로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분자요리는 먹는 예술이며, 앞으로 요리전문가가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도 분자요리가 더 많이 알려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가 조리에 관련된 일을 시작한 지도 20년 가까이 되어간다.
많은 변화가 생겼고 특히 조리와 관련된 우리의 인식이나 직접적인 삶의 변화는 이전에는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히 변해 가고 있다.
조리의 트렌드는 항상 인공과 천연 재료가 반복되어 왔다.
분자요리가 조리의 트렌드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다음의 트렌드는 자연과 천연을 소재로 한 조리의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트렌드의 반복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최고의 조리는 그 음식을 소비하는 소비자에게 최고의 만족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구성을 위해 분자요리는 앞으로 더 많은 변신을 시도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점차 고품격의 음식을 접하게 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분자요리와 같이 각자 영역에서 벗어나 융합하지 않고는 새로운 창조를 하기 힘든 시대라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식재료, 조리법, 과학기술 등이 융합되어 새로운 음식이 개발될지, 나아가 우리 음식문화는 어떻게 변화할지 다가올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