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생명이야기 - 바이러스와의 전쟁,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재미있는 생명이야기는 우리 일상과 연계되어 있는 생명과학의 주요 개념들을 살펴봅니다.
글_ 방재욱 명예교수(충남대학교 생명시스템과학대학 생물과학과)
지난 5월 10일 동아일보가 메르스 감염 1주년을 맞아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 감염병 인식조사’에서 정부가 가장 신경 써야 할 감염병으로 메르스(MERS)가 1위로 지적되었으며, 그 다음은 인플루엔자(Influenza), 지카(Zika) 바이러스, 에이즈(AIDS), 에볼라(Ebola) 순이었다.
보건 전문가 10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메르스가 1위로 같게 나타났지만, 그 다음은 에볼라, 에이즈, 인플루엔자, 뎅기열 순으로 차이를 보였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가 보고한 지난 100년간 세계적으로 유행한 ‘10대 전염병(사망자 기준)’에서 1위는 에이즈였다.
2위는 스페인 독감이고, 아시아 독감, 홍콩 독감, 7차 콜레라 유행, 신종인플루엔자, 에볼라, 콩고 홍역, 서아프리카 뇌수막염에 이어 사스(SARS)가 10위에 올라 있다.
10대 전염병 중 5위인 콜레라와 9위인 뇌수막염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바이러스 전염병이라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인류가 치러온 전염병과의 ‘100년 전쟁’에서 전 세계적으로 1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질병은 에이즈, 스페인 독감, 아시아 독감 그리고 홍콩 독감으로 모두 바이러스성 질병이었으며, 최근 우리 사회에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는 메르스도 역시 바이러스 전염병이다.
이처럼 인류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하며 사회적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는 바이러스의 정체는 무엇이며, 지금까지 인류는 어떤 바이러스 질병들과 전쟁을 치러온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맞이하게 될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까.
바이러스의 실체와 전쟁사
바이러스(Virus)는 생명체 밖에서는 무생물과 같이 전혀 활동을 하지 못하지만, 일단 살아있는 생물체의 세포로 들어오면 왕성한 생명활동을 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바이러스는 크기가 매우 작아 광학현미경으로는 관찰할 수 없고, 전자현미경을 통해서만 관찰이 가능하다.
그 실례로 에이즈를 유발하는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의 크기는 110나노미터(㎚=1/10,000,000m) 정도의 크기로, 1마이크로미터(1㎛=1,000nm) 정도 크기인 미세한 세균보다도 훨씬 작다.
바이러스는 단백질 껍질에 둘러싸여 있는 유전자에 따라 RNA 바이러스와 DNA 바이러스로 구분이 된다.
독감(인플루엔자), 홍역, 사스, 에이즈, 소아마비, 황열병, 에볼라, 광견병, 메르스 등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이며, 천연두, B형 간염, 수두, 헤르페스 등은 DNA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
20세기에 발생한 전염병 중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 질병은 1981년 CDC에 의해 처음으로 보고된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불리는 ‘에이즈’다.
에이즈에 의한 사망자 수는 연간 200만 명 이상으로, 지금까지 3,6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독감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사망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그 실례로 1918년~1919년에 유럽과 미국 대륙에서 창궐했던 스페인 독감으로 적게는 2,500만 명에서 많게는 5,0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숫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 850만 명의 3배가 넘는 수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18년에 740만 명이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어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7년에는 아시아 지역에 만연했던 아시아 독감으로 200만 명이 사망했으며, 1968년에 발병한 홍콩 독감으로는 75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1997년 홍콩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류의 배설물과 분비물을 통해 사람에 전염된 조류독감(AI)으로 사망한 사람은 1,700명이 넘는다.
2002년 중국 광동성에서 발생해 전 세계로 퍼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인 사스로 8,000명 이상이 감염되어 774명이 사망하였다.
사스는 변형된 바이러스가 사향고양이와 너구리를 통해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에 북미대륙에서 발생해 전 세계로 전파된 신종플루(신종인플루엔자)로 1만 8,500명 이상이 사망하였으며(WHO 보고), 우리나라에서도 75만 명이 감염되어 263명이 사망했다.
작년 5월 20일 발병하여 우리 사회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는 낙타와의 접촉을 통한 감염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메르스는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인 코로나바이러스(MERS-CoV)의 감염으로 나타나는 질병으로, 전염성은 낮으나 치사율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년에 발생한 지카(Zika) 바이러스는 1947년 우간다 지카숲의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되어 명명된 이름이다.
지카 바이러스를 매개하는 것으로 알려진 흰줄숲모기가 우리나라에도 서식하고 있어 현재 방역 당국이 그의 확산 우려로 긴장하며 대응하고 있다.
바이러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염병의 발생에는 인구 증가와 도시화 그리고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쓰레기 배출과 오염물질 증대로 위생 상태가 나빠진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무분별한 자원개발에 따른 자연생태계의 파괴로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늘어나며, 새로운 병원균에 노출되고 있는 것도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WHO는 21세기를 ‘전염병의 시대’로 규정하고, 인류에게 항상 ‘현재 진행형’으로 다가오고 있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대응하고 있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메르스 위기는 지휘 체계에서 혼선을 빚은 정부의 부실한 대응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 이후 질병관리본부를 컨트롤타워로 지정하고 본부장의 직위를 차관급으로 높였다.
그리고 대국민 소통을 책임지는 위기소통담당관을 두고 24시간 긴급상황센터를 가동해 전세계 감염병 정보의 수집과 분석 그리고 긴급 상황에 대한 위기대응 체제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지만 방역 전문 인력의 확보는 아직 미진한 실정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최근 20년간 사람에게서 새로 발견된 질병 병원체의 60%가 동물에서 기원했으며, 이 중 75%가 사람과 동물이 함께 감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Human)과 동물(Animal) 그리고 환경(Environment)이 하나라는 ‘One Health(하나의 건강)’개념이 강조되며, 국제적으로 의사, 수의사 그리고 환경생태 전문가 등이 함께 활동하는 위원회와 기구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정부 차원에서 One Health 개념을 도입하고, 그의 실현을 위한 제도 마련과 기구 설립을 통해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바이러스는 위생 관리에 신경을 쓰고, 신중하게 대처하면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서는 바이러스 예방책으로 평상시 손 씻기 등 개인위생 수칙 준수,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입과 코를 가리고 하기, 발열·기침·호흡곤란 등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마스크를 쓰고 바로 의료기관에서 진료받기, 사람이 많이 붐비는 장소 방문 자제 등을 권고하고 있다.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대한 지나친 공포감으로 과잉 반응하는 것은 질병 자체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이제 메르스 사태를 거울삼아 ‘One Health’ 개념을 기반으로 바이러스와의 한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안 마련과 실천에 한 마음으로 동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