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영국, 중국의 핀테크 산업과 성공요인
▲ 정유신 교수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전통의 금융 강국인 영국에서 새로운 금융, 핀테크가 급성장하고 있다.
연평균 핀테크 산업 성장률은 600%에 육박해 실리콘밸리 성장률 190%의 3배 수준이고 핀테크 투자 규모는 2008년 이후 연평균 70% 이상의 성장세다.
과감한 영국 정부의 지원정책과 대형 은행들의 대규모 투자 및 인큐베이팅이 성장배경이다.
중국은 놀랍게도 금융의 후진성을 오히려 핀테크 급성장의 계기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IT, 인터넷업체인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의 경쟁을 바탕으로 핀테크를 통한 금융개혁과 금융 시장의 경쟁력 제고를 이뤄내고 있다.
현재 핀테크 산업은 세계의 금융 일번지 미국, 전통의 금융 강국인 영국, 정보기술(IT)과 인터넷으로 금융을 혁신하고 있는 중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디를 벤치마킹하면 좋을까.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금융기관이 주도하고 있는 영국과 상호 영향이 큰 중국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다.
우선 새로운 금융트렌드를 선도하는 영국부터 살펴보자. 2012~2014년 영국의 연평균 핀테크 산업 성장률(매출·고용 등 감안)은 600%에 육박해 실리콘밸리 성장률 190%의 3배 수준이고 핀테크 투자 규모는 2008년 이후 연평균 70% 이상의 성장세다.
최근 영국 정부는 ‘핀테크 주간(FinTech Week)’을 맞아 영국 내 핀테크 산업 현황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2015년 영국 내에서 핀테크에 따른 매출은 65억 파운드, 우리 돈으로 11조 2,000억 원에 달했고 새롭게 생겨난 일자리는 6만 1,000여 개에 달했다고 한다.
해리엇 볼드윈 영국 재무부 장관의 말처럼 핀테크 산업은 영국 경제를 위해 수십억 파운드를 벌어주는 효자 산업인 셈이다.
대표적인 핀테크 업체의 예를 들어보자.
첫째는 해외 송금의 수수료 혁신을 일으킨 ‘트랜스퍼 와이즈(Transferwise)’다.
고객이 트랜스퍼와이즈를 통해 해외에 송금할 때 돈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만 국가 간 송금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통신망을 통해 국내 송금만으로도 실제 해외 송금이 일어난 것처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를 이용한 이러한 핀테크는 사용자가 늘면 늘수록 서비스 안정성과 수익이 더 탄탄해지는 ‘눈덩이 효과’가 크기 때문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
최근 트랜스퍼와이즈는 기업 가치 평가에서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둘째 사례는 P2P(개인 간 거래) 대출 업체의 원조인 ‘조파(Zopa)’를 꼽을 수 있다.
P2P 대출은 개인과 개인 간의 직접 대부가 가능하도록 중개 업무를 수행하는 서비스다.
이는 전통적인 금융회사의 핵심 사업을 파괴하고 새 영역을 만드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현재 영국에서는 조파뿐만 아니라 펀딩서클(Funding Circle), 레이트세터(RateSetter) 등 다양한 P2P 대출업체들이 운영되고 있으며 2014년 3월까지 전체 P2P 대출 누적 중개액은 12억 700만 파운드였다.
그럼 이처럼 영국의 핀테크가 급성장을 보이고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업계에선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 런던 동부에 있는 스타트업 전용 단지인 테크시티(Tech City)에 투자한 금액만도 7억 8,100만 달러나 될 정도로 과감한 영국 정부의 지원 정책이다.
런던은 기존 금융 인프라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에 힘입어 핀테크 스타트업의 메카로 급부상 중이다.
전 세계 차원에서 볼 때 핀테크 산업 성장률은 27%인데, 영국 핀테크 산업의 거래 규모는 2008~2013년 동안 매년 74%씩 성장해 왔고 핀테크 투자 규모는 같은 시기 총 7억 8,100만 달러에 이른다.
2014년 3분기에는 런던 소재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액이 사상 최초로 10억달러를 돌파했다.
영국의 핀테크 산업 종사자는 13만 5,000여 명으로 추산되며 런던 내에만 1,800여 핀테크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런던시청 집계에 따르면 런던에 적을 둔 스타트업은 이미 3,000개를 넘어섰다.
베를린이나 스톡홀름 등 유럽의 다른 경쟁 도시들보다 훨씬 많다.
테크시티는 영국 카메론 정부의 지원으로 형성된 핀테크 스타트업 단지로 현재 5,000개 이상의 창업 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테크시티가 만들어진 2011년 이후 영국의 핀테크 거래 규모는 3배 이상 늘었다.
영국 정부는 테크시티를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경쟁할 수 있는 핀테크 산업 클러스터로 육성하기 위해 페이스북, 구글, 맥킨지 등 전 세계 유수의 IT기업과 컨설팅 회사들의 투자를 유치했다.
런던왕립대와 런던시립대 등 여러 대학들과 파트너십을 형성해 단기간에 실리콘밸리와 뉴욕에 이어 전 세계 3위의 핀테크 스타트업 클러스터로 도약했다.
또한 영국은 테크시티의 기술력과 금융 산업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2013년 초 ‘레벨(Level)39’라는 유럽 최대의 핀테크 클러스터를 조성했다.
둘째, 영국에선 대형 은행 주도로 핀테크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는 것 또한 주목할 부분이다.
영국은 미국이나 중국에서와 달리 IT업체가 아니라 대형 은행들이 핀테크 산업 발전을 주도한다.
거대 은행과 기민한 핀테크 창업 기업들은 제휴·투자, 인수·합병 등을 활발히 진행하면서 이상적인 협업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최근 HSBC나 ‘퍼스트 다이렉트(First Direct)’ 등 대형 은행들은 핀테크 업체 잽(Zapp)과 제휴해 비밀번호만으로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금융사들이 공동으로 ‘금융테크혁신 연구소’를 설립해 핀테크 기업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중국은 어떤가? 놀랍게도 핀테크 산업의 선두주자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중국의 전략이 미국의 기술을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결제와 예금 그리고 대출 등 전 분야에 걸쳐 중국의 핀테크 산업 규모는 미국의 4배 수준에 달하고 있다.
미국에 비해 현저히 적은 기술 투자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앞선 이유는 핀테크 산업의 본질을 파악하고 대처한 결과다.
핀테크 산업은 플랫폼 산업이다. 특히 비정형 빅데이터의 역량이 핀테크의 경쟁력이다.
이러한 역량을 가진 알리바바와 텐센트를 중국 정부가 확실하게 밀어줘서 낙후된 중국 금융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셈이다.
중국 핀테크 열풍의 선두주자인 알리바바의 핵심은 2004년 시작한 전자상거래 결제시스템인 ‘알리페이(Alipay)’다.
10년 만에 중국 회원만 무려 3억 명, 해외 240여 개국에 5,400만 명이 쓰고 있다.
결제금액은 하루 평균 106억 위안(1조 2,000억 원)으로 중국인 하루 소비액의 17%나 된다.
중국 1위 펀드로 등극한 MMF(머니마켓펀드) ‘위어바오(余额宝)’는 2013년 6월 출시 후 1년 만에 가입자 9,000만 명, 규모 100조 원으로 늘었다.
알리페이로 결제하고 남은 자투리 돈을 모아 운용하는 펀드가 이 정도니 알리페이 회원 증가에도 단단히 한몫한 셈이다.
알리바바가 중국 핀테크 시장의 최강자로 떠오른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규모 모바일 금융 수요를 꼽는다.
알리바바는 1999년 기업 간 모델(B2B)인 알리바바닷컴에서 시작,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모델(B2C) 티몰, 소비자 간 모델(C2C) 타오바오, 기업과 소비자까지 택배로 연결한(B2B2C) 알리익스프레스, 온라인결제 알리페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알리윈까지 전자상거래 생태계를 구축했다고 평가받는다.
일단 알리바바 사이트만 들어가면 온갖 거래를 원스톱으로 할 수 있다. 따라서 고객 충성도도 높다.
이 생태계 구축효과는 대단해서 중국에서 알리바바닷컴과 타오바오의 전자상거래 점유율은 이미 80% 이상이다. 따라서 결제와 대출 등 다양한 모바일 금융 니즈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둘째로는 3자 담보결제 등 중국 여건에 맞는 결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알리페이를 시작하던 2004년에는 특히 온라인 쇼핑에 대한 신뢰가 낮았다.
따라서 소비자가 물건을 확인한 후 판매업자에게 돈을 보내는 결제시스템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결제 때마다 수수료를 받는 이베이와 달리 ‘고객만 늘릴 수 있다면 돈은 따라온다’는 마윈 회장의 전략에 따라 연회비만 받은 것도 적중했다.
셋째, 중국 금융 시장의 비효율성을 파고든 것도 요인이다.
위어바오가 1년 만에 100조 원까지 늘어난 것은 시장금리가 13~14% 고공행진하고 있는데도 3~4%에 머물고 있는 은행상품 시장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형편없는 금리가 불만이었던 중국 전역의 소비자들이 앞다투어 펀드에 가입했다.
물론 당국도 인터넷펀드 수요 덕분에 금리가 떨어지고 은행들도 떠밀려 상품 경쟁에 나섰으니 싫을 리가 없다(그림 1 참조).
중국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핀테크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원래 중국에서 비금융기관이 지급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중국인민은행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정부는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전자상거래 시장을 양성화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IT기업 및 비금융업자의 금융업 진출을 적극 허용하고 있다.
심지어 국영은행들이 비금융기관의 금융업을 규제할 것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IT기업에 대해 민영은행 설립 시범사업권을 부여할 만큼 핀테크 산업 육성에 적극적이다.
또한 국내 비금융기업의 금융업 진출만이 아니라 외국 기업의 중국 금융 시장 진출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5월, 중국 정부는 외국 기업의 은행 및 카드 결제 시장 진출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는 중국인민은행이 운영하는 유니온페이가 카드 결제 시장을 독점해왔으나 이제 비자나 마스터 카드를 중국 결제 시장에서 볼 수 있게 됐다.
13억 명 인구를 가진 중국 시장으로 글로벌 금융기업들이 진출한다면 세계 금융 시장의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
중국이 결제 시장을 개방한 데에는 미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소송이 있다.
미국은 중국 신용카드 결제사업을 국영기업이 독점하는 것이 불공정하다며 WTO에 소송을 제기하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의 막강한 자본력, 경쟁력 있는 자국 기업들의 존재 또한 중국이 결제 시장을 개방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중국 결제 시장에 진출하려면 신청일로부터 1년 전 기준으로 자본금 10억 위안 이상, 모기업 총자산 20억위안 이상이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또한 신용카드사, 카드 발급 은행, 전표매입사로 이뤄진 중국 결제시장에서 현지 금융의 네트워크 없이는 외국기업이 안정적인 진출을 이루기 어렵다.
중국은 IT기업의 금융업 진출을 통해, 스마트금융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은행이 고객을 찾아 사업을 넓혀가는 뱅크 3.0을 기반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
중국 금융사와 IT기업에서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힘입어 세계 온라인 결제시장의 주도권을 차지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정책과 시장 성장에 힘입어 IT기업들은 물론 이제껏 꿈쩍 않던 기존 은행들까지 행동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텐센트는 회원 5억 명의 위챗에 주요 은행의 계좌를 연동시켜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텐페이(Tenpay)를 개발했다.
위어바오보다 늦었지만 1월에는 리차이퉁(理財通) 펀드를 출시, 지금은 5조 위안 가까이 늘어났다.
검색업체 바이두도 지난해 10월 말 바이파(百發) 펀드를 출시해 하루만에 10억 위안을 모았다.
전통 은행들도 위기극복을 위해 예금금리의 인상, 경쟁력 있는 신상품 개발, IT업체와의 제휴를 통한 모바일 금융 시장 진출 등을 추진하고 있다.
1월 중국 우체국은행은 인터넷은행인 웨이보은행 등과 제휴해 모바일 서비스를 출시했고, 2월에는 베이징은행과 스마트폰 업체인 샤오미가 모바일 결제 및 간편 대출협약을 체결했다.
앞으로 중국의 핀테크 사업은 어떻게 될까. 일각에선 국유은행들의 강력한 반발, 인터넷 금융의 보안이슈 등 때문에 제약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은행의 대출 확대 때문에 부담이 큰 중국 정부로서는 자투리 돈을 모아 운용도 하고 중소기업 자금난을 해결해 주는 인터넷 금융이 미울 리 없다.
또 효율적 자금운용으로 중국 정부가 원하는 개인소득 향상과 소비 확대에도 기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 소비진 작책에 힘입어 소비증가가 성장률 목표 7%보다 높은 10%로 늘어나고 특히 온라인 소비가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핀테크 열풍과 경쟁은 더 뜨거워질 것이라는 게 시장평가다.
해외진출과 M&A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향후 적극적인 M&A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 세계시장 진출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중국 민간 기업을 통한 해외 유수기업 M&A 정책과도 맥을 같이 하기도 한다.
금융기관과는 경쟁과 협력이 함께 이뤄질 것이다.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이들 IT업체의 수익성과 편리함을 갖춘 금융상품과 경쟁하기 위해 한편으론 신상품 개발에 뛰어들고, 또 한편으로는 경쟁력 있는 IT업체와 제휴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은행, 자산운용 업계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훨씬 빠른 금융의 IT화, 거대한 인터넷 금융기관이 출현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