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변혁의 시대, CEO가 지녀야 할 ‘3C’
▲ 신성철
DGIST 총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21세기는 대변혁의 시대입니다. 인류는 18세기 중반 증기기관 발명에 의한 1차 산업혁명, 19세기 말 전기 발명에 의한 2차 산업혁명, 그리고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 등 정보기술 발전에 의한 3차 산업혁명을 목격했습니다.
이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사물인터넷(IoT), 3D프린팅 기술 등의 발전으로 인해 4차 산업혁명의 도도한 물결이 인류 사회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20세기 경영학의 구루인 피터 드러커 교수는 “미래에 대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그것이 현재와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21세기 과학기술의 발전 추이로 볼 때, 그 변화의 폭과 속도가 엄청나리라 예상합니다.
인간이 맞이하게 될 향후 30년의 변화는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18세기 중반 이후 250여 년 간의 변화만큼이나 거대할 것이며, 우리는 과학기술의 혁명적 발전과 그로 인한 놀라운 문명의 진보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기업의 존망은 이런 놀라운 변혁의 소용돌이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포춘(Fortune)지가 2000년에 선정한 500대 기업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습니다.
필름 산업의 최강자였던 130년 역사의 코닥사가 지난 2012년 파산했고, 핀란드 국민기업인 노키아가 2007년 주가가 20분의 1로 폭락하면서 공중분해되었습니다.
지난달 한국에서 만난 핀란드의 명문 알토(Aalto) 대학의 투라 테리(Tuula Teeri) 총장은 “노키아는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씁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필자는 그와 대화하면서 냉혹한 변혁의 시대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2000년 미국 나스닥 상장 시가총액 기준 10위 안에 들던 기업 중 2015년 3월 현재도 10위 안에 드는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시스코 등 셋뿐입니다.
기업뿐 아니라 국가나 도시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20세기 초반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21세기에 들어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아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였습니다.
한편 20세기 자동차 산업의 메카였던 미국 디트로이트 시는 부채 20조 원, 실업률 18.6%, 미국 내 범죄율 1위 도시로 전락하면서 지난 2013년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21세기의 변화를 감지하고 발 빠르게 혁신하지 않는 조직, 기업, 도시, 국가는 쇠퇴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00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Edmund Phelps) 미국 콜롬비아대학 교수도 “이 시대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는 혁신”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혁신의 중심에는 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누구보다도 조직의 수장들이 CEO로서 ‘3C’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선 조직의 CEO가 ‘변화의 주역(Changing Executive Officer)’이 되어야 합니다.
찰스 다윈은 불후의 명저 < 종의 기원 >에서 ‘강한 종, 지능이 높은 종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생존한다’고 썼습니다.
아마 인간 세상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변화를 조직의 리더인 CEO가 먼저 감지하고 자신부터 스스로 변화해야 합니다.
나아가 CEO가 솔선수범하여 다른 모든 구성원들이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야만 조직의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조직의 CEO는 ‘도전의 기수(Challenging Executive Officer)’가 되어야 합니다. 기존의 관성에 젖은 조직을 움직여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지금까지 한국의 기업과 대학, 공공기관 등 조직의 일반적인 발전 전략은 선진국을 모방하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선진국의 성공 경험을 모방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적인 도전을 통한 ‘선도자(First Mover)’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곳의 사례를 배우고 모방하는 일에 성실한 노력이 필요하다면, 새롭고 창조적인 도전을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바꾸는 창의적 발상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CEO는 생각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빌 게이츠는 매년 ‘생각하는 주간(Think Week)’을 정해 외딴 곳에서 혼자 지내며 창조적인 구상을 했습니다.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직장 내에 편안한 분위기의 ‘상상실’을 만들어 CEO나 직원들이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거나, 우수한 직원들로 ‘미래전략실’을 구성하여 조직의 발전을 위한 창의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게 하는 등의 방법도 있겠습니다.
DGIST는 우수한 연구원에게 ‘High-Risk High-Return’ 프로젝트를 지원하여 파괴적 기술 혁신에 도전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 도전적인 연구의 결과가 실패로 끝나더라도 이를 용인하는 조직문화를 정착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조직의 CEO는 ‘소통의 달인(Communication Executive Officer)’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밀려오는 초연결사회에서는 개개인의 의견이 존중되면서 무엇보다도 협력, 협업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수평사회에서 CEO는 구성원들과의 쌍방향 소통을 이루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간부들과의 소통뿐 아니라 하위 직급 구성원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지난 5년간 DGIST 총장을 맡으면서 나름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평직원이나 학생들이 보낸 이메일 답신을 반드시 그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 결재서류를 통해 올라오거나 회의 자리에서 결정되어 전해지는 의견과 함께 현장에서 부딪치는 직원들의 의견과 정보를 날것 그대로 얻을 수 있었고, 구성원들은 구성원들대로 총장의 성의 있고 빠른 답신에 고마워하며 이전보다 더 깊은 신뢰를 보내주었습니다.
DGIST는 신생 대학이지만 ‘세계 초일류 융복합 대학’이라는 담대한 목표를 지니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세계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탁월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리더 한 명의 일방적인 비전과 전략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구성원들의 참여와 협조를 바탕으로 모두의 지혜가 일종의 집단지성을 이루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쌍방향 소통을 통해 기관의 비전을 공유하고, 전략을 함께 모색하며, 의사결정을 투명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구성원들이 CEO를 신뢰하고, 기관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며, 나아가 직장에서 일하는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몇 해 전 포춘지가 선정한 100대 기업의 종업원들을 상대로 자신이 일하는 직장을 표현하는 키워드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가장 많이 나온 세 단어는 신뢰, 자부심, 행복이었습니다.
새로운 변혁의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 각 조직의 CEO들이 변화와 도전, 소통이라는 경영철학을 몸소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또한 이것이 수많은 직원들에게 신뢰와 자부심, 행복을 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유념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