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Tech - 자연에서 배우는 생체모방 기술
Life in Tech는 우리 생활 속에서 활용되고 있는 각종 과학기술들을 하나의 키워드를 통해서 살펴보고, 그것이 다양하게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칼럼입니다.
글_ 최성우 과학평론가
자연은 여러 면에서 인류의 스승이다. 특히 생물들은 인간이 지니지 못한 뛰어난 능력을 많이 가지고 있고, 과학기술상의 많은 발전들이 다른 생물들을 흉내 내고, 그로부터 배운 데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도 온갖 생명체들이 지니고 있는 놀라운 행동과 구조, 신비로운 물질 등을 연구하여 배우려는 생체모방 공학(Biomimetics)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자리를 잡았고,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이러한 기술을 흔히 볼 수 있다.
상당히 오래된 생체모방 기술 중 하나로 철조망을 들 수 있다.
철조망이 가시넝쿨을 흉내 내어 발명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 일리노이 주에 살던 13살의 양치기 소년 조셉 글리든(Joseph Glidden; 1813~1906)은 양들이 보통의 철사 줄로 둘러 쳐진 울타리는 쉽게 넘어 다니는 반면, 가시넝쿨로 된 쪽은 넘어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철사 줄에도 인공의 ‘가시’를 만들면 양들이 넘어 다니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철조망을 고안하게 되었다.
예상대로 이 인공 가시넝쿨은 대성공이었고, 무명의 양치기 소년은 대장장이였던 아버지와 함께 철조망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조셉 글리든이 개선된 철조망에 대한 특허를 공식적으로 획득한 것은 노년기인 1874년이었는데, 특허분쟁에서 승리한 그는 철조망 회사를 차려서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그가 철조망 판매로 평생 벌어들인 돈은 10명이 넘는 회계사들이 1년 동안 일해도 다 계산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났다고 한다.
일명 ‘찍찍이’ 혹은 ‘매직테이프’라고 불리는 벨크로(Velcro) 역시 철조망 발명의 사례와 비슷하다. 아기용 종이 기저귀, 신발, 의류, 생활용품 등에 접착용 부재로 널리 쓰이는 이 벨크로테이프는 옷에 달라붙는 도꼬마리로부터 착안된 것이었다.
1950년대 초 스위스의 전기기술자였던 조르즈 드 메스트랄(George De Mestral; 1907~1990)은 시골길을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도꼬마리가 옷에 많이 달라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귀찮다는 생각에 도꼬마리를 떼어내던 메스트랄은 호기심이 생겨서 도꼬마리가 어떻게 옷에 달라붙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현미경으로 도꼬마리를 관찰해본 결과 도꼬마리의 갈고리가 옷에 쉽게 부착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꼬마리는 열매에 갈고리를 갖추고 있어 동물의 털에 달라붙어 이동함으로써 자손을 번식시키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도꼬마리의 갈고리를 본떠서 뭔가 유용한 것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 메스트랄은 갈고리와 루프가 한 조를 이루어 쉽게 떼고 붙일 수 있는 편리한 테이프를 발명하게 되었다.
우단(Velvet)과 코바늘 뜨개질(Crochet)의 앞 글자를 따온 ‘벨크로(Velcro)’라는 유명한 상표명으로 널리 알려진 이 물품의 정식 명칭은 ‘Loop and Hook Fastner’로서, 갖가지 분야에 이용되는 대단한 히트상품이 되었다.
또한 그 무렵 우주경쟁을 벌이던 미국과 소련은 무중력 상태인 우주선 안에서 여러 물건들이 이리저리 떠다녀서 사물을 정리하기가 매우 힘든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해 있었는데, 바로 이 벨크로가 탁월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였다.
벨크로처럼 작은 생활용품뿐 아니라, 고속철도 차량과 같은 덩치 큰 제품에서도 생체모방 기술을 유용하게 적용된 바 있다.
일본에서는 고속철도인 신칸센(新幹線)이 일찍이 발달하여 승객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지만, 터널 통과시에 발생하는 커다란 소음이 골치 아픈 문제로 대두되었다.
일본의 철도 기술자들은 물속의 먹이를 재빠르게 사냥하는 물총새에서 이 문제 해결의 힌트를 얻었다.
즉 수면 아래로 빠르게 진입하는 데도 요란하게 물이 튀거나 큰 파동이 생기지 않아서 사냥감인 물고기가 눈치채지 못하고 당하는 이유가 물총새의 날렵하고 길쭉한 머리와 부리 모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96년 이후 새로운 신칸센 차량에는 물총새의 모양을 본 뜬 디자인이 적용되어 터널에서의 소음 문제를 크게 해소할 수 있었고, 멋진 모습으로도 인기를 끌게 되었다.
현재 활발히 연구개발 되고 있는 각종 첨단기술에도 생체모방기술은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질지 몰라도 거미줄의 놀라운 물성은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거미줄은 아주 가볍고 탄력성이 뛰어나면서도, 같은 지름의 강철보다도 훨씬 강하다.
거미가 줄을 뽑아서 먹이도 잡고 등산용 밧줄처럼 자유자재로 이용하듯이, 인간도 거미줄과 같은 섬유를 여러 방면에 이용하려는 연구가 한창이다.
거미줄의 탄력성을 살린 방탄복을 만들면 지금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으로 총탄도 튕겨낼 수 있다.
우주개발 시대를 맞이하여 우주비행선, 인공위성 등을 묶거나 고정시키는 데에도 거미줄 섬유(Spider Silk)로 만든 로프가 이용될 수 있다.
더구나 거미줄 섬유는 나일론과 같은 합성섬유나 플라스틱과는 달리 생분해성 물질이기에 환경오염을 일으키지도 않아서 ‘생물강철(Bio-steel)’이라고도 불린다.
다만 거미줄 섬유를 인공적으로 대량생산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제인데, 유전공학 등을 적용하여 거미줄 섬유를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려는 연구가 국내외에서 한창이다.
바다에 사는 동물들 중에도 본받을 만한 것들이 많다. 커다란 몸집을 날렵하게 움직이는 혹등고래도 그중 하나이다.
혹등고래의 지느러미 앞쪽에 난 작은 혹들은 유체인 바닷물의 흐름을 교란시켜서, 지느러미 표면에 소용돌이가 생기게 해준다.
이로 인하여 지느러미에 가해지는 압력과 양력이 커짐으로써, 혹등고래는 훨씬 빠르고 효과적으로 수영을 할 수 있다.
캐나다의 풍력발전소에서는 혹등고래의 지느러미를 본떠서 회전날개에 요철 모양을 입힌 풍력발전기를 개발했는데, 종래보다 회전 속도도 훨씬 빠르고 효율도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석회와 천연고분자로 된 전복의 껍질은 사람이 만드는 기존의 세라믹보다 훨씬 강해서, 탱크의 철갑이나 새로운 세라믹을 개발하는 데에 응용될 정도이다.
상어 비늘의 미세 구조는 비행기와 수영복의 마찰저항을 줄이는 데에 적용된 바 있다.
홍합이 바위에 붙어사는 원리를 이용하여 물에 젖어도 떨어지지 않는 새로운 접착제를 개발하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어 왔는데, 최근 우리나라 연구진이 그 원리를 밝혀내고 응용 제품을 만드는 데에 성공한 바 있다.
홍합의 접착단백질을 이용한 접착제는 수중용 접착제로도 이용될 수 있지만, 의료용 접착제 등으로도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즉 의료용 순간접착제는 수술용 실을 대체할 수 있는데 기존에 쓰던 수술용 실은 몸속에서 이물질로 작용하여 염증이나 흉터를 남길 수 있고, 약한 조직에는 사용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었다.
홍합에서 추출한 순간접착제를 사용하면 인체에 염증을 일으키지 않고, 수술용 실보다 빠르게 흉터를 아물게 할 수 있어서 임상시험과 제품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과학자이자 저술가인 재닌 베니어스(Janine M. Benyus)는 1997년에 낸 저서에서 생체모방을 통하여 혁신과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앞으로도 생체모방 기술이 활용될 수 있는 분야는 거의 무궁무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