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과학탐구 - 돔구장의 과학
생활 속 과학탐구는 일상생활 속 물리학, 첨단과학, 과학일반에 대해 살펴봅니다.
▲ 고척스카이돔 내부 및 외관
글_ 문환구 변리사(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사진 협조_ 서울시설공단
한국 야구팬들의 오랜 숙원 중 하나였던 돔구장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2015년 9월 15일에 서울에 고척스카이돔이 개장한 것이다.
1994년 엘지트윈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다음해인 1995년부터 돔구장 건설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으니 우여곡절 끝에 무려 20여 년 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겨울철 실내경기로 시작된 배구나 농구는 실내체육관에서 경기를 치르면 되지만 들판에서 하는 운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야구(野球)까지 실내경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같은 야외 경기인 축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를 하는데 왜 유독 야구만 돔구장을 선호할까.
고대에는 신전처럼 중요 건물에만 적용했던 돔
돔구장은 반구형으로 된 지붕이나 천장을 씌운 운동경기장을 말한다. 돔이 지붕 형태로 올라간 건물 혹은 내부공간을 지칭하는 용어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로툰다(Rotunda)로, 원뿔형 건축물인 고대 그리스의 톨루스(Tholus)가 기원이다.
건축물을 톨루스나 로툰다로 짓게 되면 벽이 지붕을 받쳐주어 내부에 기둥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므로,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고난도의 건축기술을 요하는 데다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운 문제 때문에 고대에는 신전처럼 중요한 건물에만 적용하였다.
로마에서는 활이나 반달처럼 굽은 모양인 아치 건축술이 발달하였는데, 개선문이라 불리는 승리의 아치(Arch of Triumph)가 대표적이고, 스페인 세고비야의 수도교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아치를 앞뒤로 길게 늘이면 터널을 만들 수 있으며 아치를 중심에서 한 바퀴 돌리면 로툰다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최초의 로툰다는 기원전 27년에 로마의 아그리파가 건축하고, 서기 12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다시 세운 “모든 신의 신전”인 판테온(Pantheon)이다.
아치 건축은 중력이 가해지는 중심부의 무게를 양쪽으로 분산시키기 때문에 기둥이 없어도 버틸 수가 있지만, 로마의 판테온은 돔의 무게가 4,500톤이나 된다.
이처럼 무거운 돔을 버티기 위해서 소석회와 화산재를 섞은 콘크리트로 돌멩이를 반죽하여 만든 천장은 위쪽으로 갈수록 두께가 얇아지면서 돌의 무게를 가볍게 하였다.
게다가 돔의 중심에는 로툰다의 눈(Oculus)이라고 불리는 지름 9m의 구멍을 두는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였기에 20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낸 오늘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의 로툰다 건축은 통일신라시대인 771년에 완공된 석굴암에서도 발견된다.
고대 동북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발견되는 건축구조물이며, 한반도에서도 석굴암 이전이나 이후에 비슷하거나 발전시킨 양식이 보이지 않는 특이한 건축물이다.
석굴암의 건축 이전과 이후에 유사 건축물이 보이지 않는 데다 이미 8백여 년 전 로마에 판테온이 건축되었기 때문에 석굴암은 동서문명 교류의 결과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창조적 모방이 덧붙여졌으니 판테온은 콘크리트, 석굴암은 돌로 돔을 쌓아올렸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게다가 석굴암은 외부에 노출된 건축물이 아니었으니 로툰다의 눈이라고 불리는 지점에 천정돌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날씨에 관계없이 편하게 관전하자
이처럼 고대에는 성소건축에 사용되던 로툰다의 돔은 현대건축의 발달로 거대한 야외 운동장 지붕으로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우선 돌이나 콘크리트가 아닌 금속과 플라스틱 재질을 사용하게 되어 무게를 줄였고, 필요하면 외부에 지지구조를 덧붙일 수 있게 하였으며, 많은 사람이 동시에 들어가도 문제가 없도록 환기와 냉난방을 제어하는 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축구장에 비해 야구장에 유독 돔구장이 많은 것은 야구가 축구에 비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공이 작은 데다 방망이를 이용하여 멀리 날리고, 가죽을 이용한 장갑으로 공을 잡으며, 투수는 공에 난 실밥과 손으로 공을 잡는 모양을 달리하여 공의 움직임까지 조절하기 때문에 야구는 바람과 비의 영향을 축구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다.
지금까지 지어진 돔구장이 주로 야구장인 이유이다. 그렇다면 돔구장은 좋기만 한 것일까.
무엇보다 비가 와도 경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은 돔구장의 가장 큰 장점이다.
돔구장은 실내 공조시설을 갖추고 있으므로 무더위나 추위에도 선수가 경기를 하거나 관중이 응원하는 데 편안하다.
바람으로 인해 타구 방향이 바뀌거나 비거리가 변화하는 것도 막을 수 있으므로 실력보다 행운에 기댈 일도 줄어든다.
다만 투수보다는 타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이다.
투수의 변화구에 바람까지 더해지는 일이 돔구장에서는 없는 데다, 관중들의 체온으로 인해 구장 내부에 상승기류가 형성되어 상대적으로 타구가 멀리 나간다는 것이 정설이다.
돔경기장에서는 홈런이 많이 나온다고 돔런(Dome Run)이라는 비아냥이 생기기도 했다.
1982년에 문을 연 미국 미네소타 트윈스의 홈구장인 ‘메트로돔’에서는 공기순환 방향을 홈에서 외야로 향하게 했는데, 상대방이 공격할 때는 송풍기를 줄이거나 아예 끄기도 해서 승부조작 시비가 일기도 했다.
돔구장의 가장 큰 단점은 잔디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인데, 돔을 개폐식으로 하거나 외부에서 기른 잔디를 수시로 식재해주는 방식도 있지만 어느 경우이든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문제가 있다.
국내 최초 돔구장인 고척스카이돔도 인조잔디를 사용하며 선수들 말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조잔디의 길이가 짧아져서 어느 시점부터는 콘크리트 바닥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야구전용 돔구장만 6개를 가진 일본은 성능 좋은 인조잔디를 사용하여 선수들이 부상은 당하지 않지만, 미국 메이저리그에 가면 수비범위가 좁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조잔디에서는 공의 속도가 줄지 않고 강하고 빨리 구르기 때문에 천연잔디인 메이저리그 구장에 적응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는 야구보다 훨씬 더 잔디성능에 민감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축구장은 야외구장이며,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아레나’나 영국의 ‘뉴웸블리 스타디움’처럼 축구장으로는 드물게 돔구장인 경우에도 개폐식 돔을 사용하여 천연잔디가 자라도록 한다.
매년 9월초부터 다음해 2월초까지 경기를 하는 미식축구에서는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돔구장을 세우기도 한다.
축구에 비해 보호장구가 잘 갖추어진 데다 손으로 들고 달리는 경우가 빈번해서인지 세계 최대라는 텍사스 알링턴의 ‘AT&T 스타디움’처럼 인조잔디에 폐쇄식 돔인 경우도 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