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볼트공업(주) 김선오 대표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등을 알아봅니다.
약속·노력·창조의 정신으로 살아온 긍정의 기업가
공동 작성_ 정원일 교수(경북대학교), 이정선 전문작가(프리랜서)
우리 주위에서는 물론 일상에서 많은 나사(볼트·너트)가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용, 산업기계용, 건축용 및 일반 시중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나사의 종류만 무려 1,200여 가지 이상이며 자동차 한 대에만 수백 개의 볼트와 너트가 사용되고 있다.
모든 산업 분야의 기초소재인 볼트와 너트 생산을 전문으로 한길을 걸어온 금성볼트공업의 김선오 대표를 만났다.
방산, 항공, 우주, 자동차용 볼트·너트 전문기업 금성볼트공업을 가다
따스한 봄바람을 타고 부산 제조업의 메카인 화전산단에 위치한 금성볼트공업을 찾았다.
공장 현관에 들어서자 준공기념비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금성볼트 가족 여러분! 고객을, 아내를, 회사 가족을 부처님과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공들이고 눈물 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약속, 노력, 창조 정신으로 낙동강 흐르는 강물처럼 회사 번영과 가족 여러분의 행복을 기원하며 여기에 세웠습니다. 김선오 합장’
회사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김선오 대표의 염원과 열정이 담긴 발원문(發願文)을 뒤로 하고 대표이사실로 향했다.
부처의 미소를 닮은 초로의 신사가 합장하며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집무실 실내장식 역시 불교적 색채가 짙게 깔려 있어 방 주인의 깊은 불심이 느껴진다.
여섯 살 때 책상머리 맡에 부처님 사진을 붙여놓은 이후 불자(佛子)로 살아온 김 대표는 지역의 경제발전과 인재 육성 등 사회공헌 활동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CEO로도 잘 알려져 있다.
김 대표 역시 역경과 고난을 딛고 일어선 경영인으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창업 당시로 거슬러 올라갔다.
세 평짜리 가게에서 연매출 200억 원대 강소기업으로
“전남 광주에서 4남 1녀 중 둘째로 나고 자랐어요. 사회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에는 일거리를 찾아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도망치듯 부산으로 왔죠. 그리고 스물세 살에 대책 없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박봉의 샐러리맨으로 가장이 되었으니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를 시켜야 하는데 이렇게 살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조건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말이 좋아 사업이지 그야말로 작은 장사였다. 부산 서면의 세 평짜리 가게에 자전거 한 대로 볼트사업을 시작했다.
그날이 1978년 5월 15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8년 전이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영업망을 넓혀 가던 김 대표는 사상지역에 첫 제조공장을 설립했다.
말은 공장이었지만 논 한가운데 있는 기와집을 뜯어서 차린 무허가 건물이었다.
여름에 비가 오면 공장이 잠기기 일쑤여서 모터를 높은 곳에 올려놓고 경운기로 물을 퍼내면서 작업을 했다.
김 대표는 이렇듯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물건을 만들면 고객사의 생산라인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납품날짜를 정확히 지켰습니다. 고객이 요구하는 양 이상의 덤을 얹어서 자재부서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정성을 쏟았고요.”
고객사가 높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전 납기, 불량 최소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결과 사세는 순조롭게 성장하고, 성장한 만큼 확장을 위한 투자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40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연 매출 200억 원 이상의 건실한 회사가 되었다.
현재 금성볼트가 생산하는 부품은 600여 종류 이상으로 자동차용, 산업용, 항공·방산용으로 나눠 생산되고 있고 이를 위해 각각의 사업부를 두고 있다.
볼트·너트 외에 고압에서도 견딜 수 있는 부스터 파이프(배관용)를 생산하고 있다.
‘품질만이 살길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2007년 기업연구소를 설립해 각종 기술개발에 성공하며 중소기업청 100PPM인증, 한국능률협회 ISO9000인증, 한국표준협회 KS인증 등을 획득하며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있다.
현대·기아차, 현대위아, 효성, 센트랄, 지엠코리아, 삼성테크윈 등 국내 굴지의 기업과 상생의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강점이다. 이를 토대로 해마다 30%의 매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성능과 품질 강화를 위한 금성볼트공업의 지속적인 노력은 산업자원부장관상, 법무부장관상 등의 수상으로 이어졌다.
155㎜ 곡사포용 볼트·너트 제품을 국산화해 공급한 데 이어 2012년에는 국내 최초 고장력 항공용 볼트 개발 및 ‘원뿔지그를 이용한 중소형 금속 배관용 다중 T형 포밍 자동화 기술’ 기반 제품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신기술 인증을 획득했다.
올 초에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주관하는 ‘2016년도 기술경영인상’의 중소기업 최고경영자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고객의 기대를 넘어서는 감동
▲ 김선오 대표는 싱싱팀을 결성하여 한 달에 한 번씩 회사직원들과 함께 현장 및 사무실의 청결과 안전주의를 위해 청소를 하고 직원들의 화합의 의미로 싱싱팀 지원금을 지급한다. 이 싱싱 활동비와 지원금을 모아 연말에 불우한 이웃돕기 성금을 하고 있다.
김선오 대표는 스스로 말하기를 기업의 경영자가 아니었으면 군인이나 교사 또는 공무원이 되었을 거라고 한다. 그 자세한 속내를 들어보았다.
“성격이 사주팔자다,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한 번 원칙을 정하면 끝까지 지키려는 성향이 아주 강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회사의 사훈도 ‘약속을 지키는 회사, 노력하는 회사, 창조하는 회사’라고 정했는데 그것은 제 생활신조이기도 해요. 약속, 노력, 창조의 정신이야말로 지금의 금성볼트공업을 만든 원동력이라 믿고 있습니다.”
40년 가까이 한길만 걸어온 뚝심 있는 경영자다운 면모가 느껴진다. 구체적으로 그의 성향과 경영철학을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일화를 소개한다.
“김해에 최신식 공장을 증설할 무렵이었는데 도중에 그만 IMF가 터졌습니다. 이때 주 거래처인 기아가 제일 먼저 망하면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6개월 치 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직원 월급은 계속 나가야 하고 은행에 어음은 돌아와 만기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은행이자가 자그마치 38%까지 올라갔으니 담배를 하루 세 갑씩 피웠습니다.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병을 비우고 귀가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도 없었죠. 그래도 한 달에 두 번은 꼭 직원들과 고기 회식을 했는데 저보다 직원들이 더 불안해 했습니다. 회식을 하는 동안에도 공장 기계들이 계속 팔려나갈 때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죠.”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바로 그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기아의 사장님 한 분이 전화해서는 서울 본사에서 좀 보자고 하시는 거예요. 영문을 모른 채 바로 올라갔더니 7억 원 정도 되는 돈을 바로 변제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기를 30년 직장생활에 수많은 협력업체를 봐왔지만 처음처럼 늘 한결 같이 해준 기업은 금성볼트공업이 처음이라며 대단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그 분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고객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고객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이, 품질에 이상이 없도록 챙겨준 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고객사의 자재 담당 임직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사장님에게까지 보고된 것이었다.
이처럼 고객이 요구하는 납기와 품질은 철저히 준수하는 금성볼트공업의 노력은 기아의 주주가 바뀐 후에도 계속해서 거래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 되었다.
“1998년 기아차가 현대로 넘어가면서 모든 납품업체가 공급을 중단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기존의 납품업체가 모두 잘리는 형국이었는데 그전까지 납품을 담당했던 자재담당 부장은 회사의 주인이 바뀌더라도 금성볼트공업과 계속 거래해 달라는 뜻을 사측에 전달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현대로 넘어가기 전 기아차의 상황이 어려워지자 다른 업체들은 선 입금 후 납품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과 달리 금성볼트공업만은 변함없이 생산라인이 차질 없이 돌아가도록 배려해 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실제로 그는 언제나 직원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고객이 일만 개를 요구하는가? 그럼 일만 오천 개를 주라. 덤으로라도 더 줘라. 그리고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지 물어보고 챙겨주라. 절대로 고객 라인이 멈추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말 그대로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감동을 실현하는 것이다. 순간 이 같은 김 대표식 경영철학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지 궁금해졌다.
“다섯 살쯤 됐을 때였죠. 쌀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는 추수를 하면 그 중의 한 가마니를 어머니한테 달라고 했지요. 그리고는 저를 데리고 읍내 주막으로 가서 가을 추수 때까지 인부들이 마신 술값을 갚았습니다. 마지막에 한 말 정도가 남으면 주막에 ‘내년 술값 미리 드리오!’ 하고는 막걸리 한 잔을 드시고 알사탕 한 봉지를 사서 제 손에 쥐어주고 휘파람을 불면서 돌아오셨는데 지금도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지금의 금성볼트공업을 만든 것은 어릴 적 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운 교육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다.
그렇게 늘 고객이 원하는 것보다 더 준 까닭에 고객사의 자재구매 담당 임직원들은 ‘지금도 라인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 충분하니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요청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경영방식은 다른 중소기업들에게 유용한 가치가 있다고 김 대표는 강조한다.
“생각해 보십시오. 회사가 창고에 물건을 쌓아두고 ‘이거 고객한테 갈 겁니다’라고 하는 것과 ‘고객의 자재창고에 충분한 양의 재고가 있으니 우리가 부도가 나도 고객한테 가서 받을 돈이 있다’고 설명하는 것, 둘 중 어느 게 나을까요? 전자보다 후자의 경우가 재무건전성에 대한 의심을 줄이고 확신을 높이는 길이지 않을까요.”
또한 김 대표는 자사의 하청업체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크게는 어음 결제 기간을 단축하는 것으로 동반성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업의 본질은 이윤추구보다는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30년 만에 지켜낸 약속
김선오 대표는 오른손 약지 한 마디를 잃은 산업재해 근로자다.
젊은 시절 사업장에서 일하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이후 군입대가 좌절되자 정신적으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군대에 가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습니다. 나는 정상인데 왜 군대를 못 가느냐는 생각이었죠. 당연히 군에서 퇴짜를 놓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특기가 있으면 입대할 수 있다고 하여 운전면허증을 따서 다시 입대신청을 했습니다.”
2년 동안 논산 훈련소를 무려 5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군입대에 좌절한 그는 군 복무 대신 방산장비 개발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그 후 회사가 안정권에 접어든 1984년부터 본격적인 국산 볼트 개발에 뛰어들었다.
“백령도에 가면 155㎜ 곡사포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144가지의 다양한 볼트가 들어가는데 결코 흑자가 나는 사업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라는 생각에 자진해서 국산 볼트개발을 약속했습니다. 그 후 일본에서 수입한 원자재를 가지고 가공, 생산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전량 수입해 쓰던 볼트가 원가의 100배 넘는 가격에 팔린다는 사실이었죠. 이렇게 비싸게 구입하면 세금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지금도 부지런히 국산 부품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군복무 3년 대신에 방산개발에 30년을 참여했으니 국익에 이바지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기업문화
금성볼트공업의 임직원은 사장과 이사 등 경영진 4명과 부서장급 직원 7명을 포함해 총 65명 수준이다.
업무 전반의 큰 흐름은 경영진이 맡지만 생산, 영업 등의 업무는 구성원들이 전문가가 되어 도와준다고 한다.
“종업원을 대함에 있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쌀 한 톨만한 자존심도 건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유치원생도 야단을 심하게 치면 시집가서도 기억하는 게 인지상정 이기 때문이죠.”
김 대표는 매월 1일 직접 1시간 조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아름다운 영상도 보여주고 지난 한 달간 직접 현장을 살펴본 소감도 말한다.
그리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간접적으로 언급하면서 개선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부족한 면이 있으면 틈틈이 교육도 시켜주고 있다. 그래도 안 되는 사람은 전문기관에 5박 6일 극기훈련을 보낸다.
그러면 가끔 이의를 제기하는 직원들이 있는데 ‘일이나 더 시킬 것이지 뭐 하러 돈 들여서 훈련을 보내느냐?’는 식이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훈련 기간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담은 반성문 비슷한 편지를 써오는 직원들이 있는데 그야말로 감동이 물결치는 순간이라고 자랑한다.
김 대표는 그것들을 모아 훗날 자서전을 쓰게 되면 첨부할 계획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업무 중 제법 큰 자동차 사고를 낸 직원이 있었는데 흔히 이런 경우 그 직원에게 책임을 물어 퇴사조치를 하게 된다. 하지만 김 대표는 달랐다.
‘보상은 회사가 할 테니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라!’며 퇴사의 뜻을 밝힌 직원을 만류했다고 한다. 그 직원은 지금까지도 일을 아주 잘하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김선오 스타일의 창조적 활동
지난해 5월, 금성볼트공업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 왔었다.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하는 우수 강소기업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부산지역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이 회사를 방문한 것이다.
이날 회사를 방문한 학생들을 보면서 김 대표는 한 가지 생각한 것이 있었다.
국내 산업의 발전을 위해 유치원 때부터 산업시찰을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네 살과 다섯 살이 된 아이들이 배를 만드는 것을 봤습니다. 그렇게 직접 체험을 통해 각인된 이미지는 평생을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의 표상이 되어 꿈이 되고 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세 평짜리 구멍가게에서 시작해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시킨 김 대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볼트·너트업계의 발전은 물론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인력 양성을 위한 관련 학교 및 학과 개설의 필요성 또한 강조하고 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스스로 창조와 혁신의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아직도 국산화가 되지 않은 재질의 제품 생산을 위해서는 늘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무엇보다 창의적인 사고와 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의 캐릭터상표를 만든 것 역시 창조활동의 하나였다.
“20년 동안 GSB라는 상표를 등록해 사용 중이었는데 어느 날 금성볼트공업만의 캐릭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 우연찮게 디자인을 하는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바로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 오셨는데 어찌나 놀랍던지요. 제가 그동안 생각했던 것과 꼭 같은 디자인이더라고요.”
코뿔소의 이미지와 볼트라는 재료가 주는 질감으로 금성볼트공업의 캐릭터를 완성했다고 한다.
사회와 더불어 성장하는 진정한 리더
▲ 2015년 12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신기술인증 획득
김 대표는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목욕탕에 가서 깨끗한 물로 목욕재계하고 법문을 외우는 일로 일과를 시작해 밤 11시 경에 귀가한다고 한다.
“법문을 외우는 새벽에는 오늘 할 일과 내일 할 일들에 대한 직관적 사고가 왕성해집니다. 이러한 직관적 사고를 통해 스스로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합니다.”
결코 부자가 되기 위해 일을 한 것도 사업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는 김 대표는 사회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현장에서 배운 정보와 경험들을 부지런히 나누고 있다. 그러다보니 회사 운영 외에도 하는 일이 많다.
OTIS 협력회장, 경남벤처협회 부회장, CTR 협력회장 등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30년 이상 지속해오며 국민훈장 석류장, 목련장을 받았다.
“저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지식이나 정보는 물론 부유함 또한 나눌수록 더욱 튼튼한 사회생태계가 구축되어 간다는 것이었죠. 물론 사업적으로도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다양한 나눔 활동들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업에 접목한 경험도 부지기수입니다.”
나눔활동 역시 ‘김선오’식의 창조적 활동이라고 믿는 김 대표는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저는 일요일에도 자주 회사에 나옵니다. 종업원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건 결코 아닙니다. 집무실에서 책을 보든, 글을 쓰든 제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죠.”
그러면서 오래된 스크랩 자료들을 꺼내 보여주었다. 30년 넘게 신문스크랩을 하고 있다는 그는 좋은 글이 있으면 바로 적어본다고 했다.
“주옥같은 글들은 내 눈으로 찾지 않으면 없어요. 수고를 해야 내 것이 되지요. 글들을 적어서 파일로 저장해 두면 나중에 주례사나 취임사, 인사말들을 요청할 때 주제에 맞는 좋은 재료가 됩니다. 국문과를 나온 것도 아니라서 유명한 분들이 써놓은 글들을 보면서 내 생각에 맞게 정리해 놓으면 좋은 소통의 재료가 되죠.”
초로의 신사가 소년 같은 웃음으로 한 장 한 장 자신의 산문집을 보여준다. 순간 그에게는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고 노력하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자 크게 두 가지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먼저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차분히 준비하는 것과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신제품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아우라가 느껴지는 경영자였다. 그의 말과 행동에서는 가까이 하고 싶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어려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는 약속에 대한 인간 김선오만의 원칙, 그 원칙을 추진하고자 하는 지속적인 노력, 남과 다름을 인정하면서 자신만의 창의적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만이 가지는 품격일 것이라 여겨졌다.
그는 인간적인 사람이고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기업인이다. 그의 아우라를 통해 볼트와 너트라는 부품소재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기술이 자라고 더욱 발전한 세상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