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인사이트 - 혁신,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혁신 인사이트에서는 혁신의 트렌드, 전략 및 혁신사례를 살펴봅니다.
미지(未知), 혁신이 시작되는 곳
▲ 김동준 대표 이노캐털리스트
혁신 인사이트는 총 6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이번 호에 실린 글은 그 중 네 번째 칼럼입니다.
아이디어는 개인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 대화 속에 존재한다.
Ideas don’t exist in an individual head. Rather they exist between people, in conversations.
- Jules Evans -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 나오는 공간”
혁신을 이루고 싶은 기업들이 표방하는 사무실의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창의적인 기업의 대명사 구글은 사무 공간을 직원들의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대표적인 기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사무실은 저마다 독특한 색채를 뽐내며 뭇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주 사무실에는 암벽 등반 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네덜란드 사무실에는 자전거 길이 있으며 벽에 낙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스위스 취리히 사무실에는 미끄럼틀과 허공에 매달려서 그네처럼 흔들리는 의자도 있습니다.
이 가운데 압권은 2012년 여름에 공개한 런던 사무실입니다. 이곳은 마치 고급 호텔처럼 내부는 화려하고 세련되기 그지없습니다.
마사지실을 비롯하여 옥상정원, 댄스 스튜디오 등 이곳이 사무실이라는 게 믿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 밖에도 구글에는 피트니스 센터, 카페테리아, 게임룸 등 직원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구글은 이 모든 사무실을 만들 때 절대로 잊지 않고 중요하게 고려하는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직원들이 자주 마주치도록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점입니다.
호텔처럼 꾸며 놓은 런던 사무실 역시 서로 마주친 직원들이 쉽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공간이 연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실리콘밸리의 구글 신사옥도 2분 30초 안에 직원들이 서로 마주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점이 특색입니다.
자주 만나면 대화도 늘 것이고, 그러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죠.
심지어 구글은 여성 개발자들의 사소한 수다도 장려하고 있는데 그게 아이디어 개발에 일조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연구진은 직원들이 자주 부딪힐수록 협력 가능성이 커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구글을 비롯한 미국의 수많은 기업들이 직원 간의 교류를 높이기 위해 사무실 공간을 새롭게 연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야후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2012년 여름, CEO에 취임한 마리사 메이어(Marissa Mayer)는 한동안 페미니스트들의 롤모델로 떠올랐으나 재택근무를 폐지한다고 밝히면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마리사 메이어가 사람들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재택근무 폐지를 밀어붙인 이유는 ‘임직원 교류를 높이기 위해서’ 였습니다.
마리사 메이어는 ‘최고의 결정과 통찰력은 사무실 복도와 카페에서 이루어진 토론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나 즉석 팀 미팅에서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직원 사이의 의사소통을 강조하는 발언이었지요. 물론 이런 야후의 결정에 이견도 존재합니다.
재택근무라는 게 단순히 직원 복지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생산성 증진이라는 측면도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벤 웨버 박사는 IBM팀과 함께 진행한 연구에서 ‘카페의 테이블 사이즈가 커질수록 직원 업무 능력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테이블이 클수록 함께 앉는 사람의 수도 증가하고 이는 보다 큰 관계망을 형성하게 만들고 나아가 아이디어의 흐름을 더욱 촉진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나아가 웨버 박사는 재택 근무를 폐지하면 직원 교류가 늘어나고 업무 효율성이 약 3%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았습니다. 물
론 야후의 실험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직원 교류가 아이디어 창출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구글과 공통된 의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혁신에 있어서 ‘소통’은 가장 중요한 기본 수단이라는 데 저 역시 동의합니다.
비즈니스에서 혁신은 독립된 어느 한 개인의 놀라운 사색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말이든 생각이든 표정이든 무엇이든 서로 주고받는 가운데서 탄생하는 소통의 산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의사소통과 거리의 관계를 밝힌 재미있는 이론은 알렌 곡선(Allen Curve)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토마스 알렌(Thomas Allen) 교수의 연구(MIT Press, 1997)에 의하면 의사소통의 빈도수는 물리적 거리가 증가함에 따라 급격히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부연 설명하면 근접한 곳에서 근무할 때 의사소통의 빈도수가 25% 정도인 반면에 10m 이상 거리가 떨어지면 의사소통 빈도수는 10% 이하로 급감한다고 합니다.
만일 20m 이상 떨어지게 되면 수 Km떨어진 사람과의 의사소통 빈도수와 비슷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15m 공간 안에 함께 있어야 한다고 해서 ‘15m의 법칙(15m Principle)’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연구에 따르면 물리적 근접성(Proximity)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아이디어가 생각난 순간 바로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로의 거리가 멀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대화가 그 순간에 일어나지 않게 되고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 아이디어가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거나 대화를 통해 발전시켜 나갈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창의적인 기업에서는 기업 내부의 공간을 찰나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이슈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을 질문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요즘 일하기 위해서 가장 많이 머무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최근 우리는 많은 경우 디지털 공간에서 업무를 하는 시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공간 속에는 물리적 거리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공간 내에서도 의사소통의 빈도수는 아주 중요합니다.
현재까지 가장 많이 활용하는 디지털 의사소통 도구는 ‘이메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메일이 가장 편리한 디지털 의사소통 도구인 반면에, 의사소통의 비효율화를 가져오는 주범이라는 의견도 최근 대두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즈니스에서는 물리적 공간이던 디지털 공간이던 다수가 한 공간에서 의사소통 여야 하는데 이메일은 1:1 혹은 1:N의 일방향 의사소통의 강력한 도구이지 다수가 동시에 혹은 실시간으로 양방향 의사소통을 하기에는 부적절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SNS 방식의 디지털 의사소통 도구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카카오톡을 활용하여 비즈니스 업무를 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카카오톡과 같은 개인적 SNS 도구가 업무용으로 활용되게 되면, 일과 사생활이 분리되지 않아서 일과 개인 생활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최근에는 슬랙(Slack)과 같은 비즈니스 전용 SNS 도구가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비즈니스적으로 SNS 등을 활용하는 방식을 사회적 협업(Social Collaboration)이라고 부릅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가상(Virtual) 공간에서의 협업을 통한 혁신은 이미 화두가 된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이상으로 혁신의 중요한 도구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저만해도 최근 이러한 이유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의 사회적 협업을 위한 UX전략을 컨설팅 하기도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지면 관계상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이러한 분야와 도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앞으로 혁신이 어디에서 일어날지에 대해 예상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지금까지 혁신이 발생하는 장소와 관련된 요소로 물리적 거리와 가상 공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상기 두 가지 요소보다 혁신에 있어서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인지적 영역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재되고 있는 ‘혁신 인사이트’의 이전 글에서도 강조했듯이 혁신은 ‘새로운 방법(New Ways)’으로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혼돈에서 질서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직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쏟아 붓자고 다짐하면서 혁신을 시도하곤 하지만 여지없이 곧 혼란에 부딪치게 될 때가 아주 많습니다.
이럴 때면 불쑥불쑥 의구심이 찾아오면서,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매 순간 의심스럽습니다.
팀원과 팀 리더뿐만 아니라 경영진마저도 방향을 찾지 못해 신경이 곤두섭니다.
그래서 힘을 쓰려다가도 멈칫거리는 순간이 증가하다 보면 어느 사이에 혁신의 원동력은 서서히 꺼지게 됩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비즈니스 모델의 탄생’에서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점은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실행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비즈니스 모델 혁신의 상당 영역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예측불가인 상태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각각의 세부적인 것에 대해 좋은 해결책이 도출될 때까지는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잘 다루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린다.”
그렇습니다 혁신의 여정을 끝내려면 혼돈이나 모호함 그리고 불확실성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 방법에 대해 지금부터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혼돈을 다르게 표현하면 ‘방향을 못 찾겠다, 길을 잃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무엇이 옳은지 알지 못한다’와 같습니다.
이들 표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무지(無知)’, 즉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때 ‘모른다’의 주체는 누구인가요? 내가 모르는 것인가요? 만일 개개인이 답을 찾아야 하는 일이라면 내가 모르는 게 곧 무지입니다.
그러나 기업은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설령 내가 모르더라도 동료가 알고 있다면 이는 무지가 아닐 수 있습니다.
동료가 내게 알려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동료가 모르고 내가 안다면? 이것 역시 무지가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알려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조직이나 팀 차원에서 무지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즉 ‘우리 모두 모르는 영역’입니다.
여기서 ‘너’는 넓은 범위에서 소비자까지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소비자 조사를 해도 알 수 없는 무지의 영역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미래의 일이라면 그 누가 100% 안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무지(無知)의 영역을 지(知)의 영역으로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이를 혼돈에서 질서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할듯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지의 영역을 어떻게 지의 영역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이 과정을 잘 보여주는 한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조하리의 창(Johari Window)입니다.
조하리의 창은 그림 3처럼 네 개의 방이 있다고 가정하면서 시작됩니다.
1번 방에는 창이 두 개 있고, 2번과 3번 방에는 각각 하나씩의 창이 있습니다. 4번 방에는 창이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나’의 위치에 서 있다면 당신은 1번 방과 2번 방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반면 3번 방과 4번 방은 볼 수 없습니다(3번은 시야가 닿지 않아서, 4번은 창이 없어서).
반대로 ‘너’의 위치에 서 있다면 1번 방과 3번 방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반면 2번 방과 4번 방은 볼 수 없습니다(2번은 시야가 닿지 않아서, 4번은 창이 없어서).
이 가운데 4번 방이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미지의 공간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미지(Unknown)를 지(Known)로 바꿀 수 있을까요?
설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위 입체 이미지를 다르게 표현하겠습니다.
표현하는 언어는 다르지만 내용은 앞선 그림과 동일합니다.
창을 통해 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경우를 ‘아는 것’으로, 들여다 볼 수 없는 경우를 ‘모르는 것’으로 대치했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4번 방입니다.
내용을 보시면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것을 우리는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있는데 말입니다. 사실 이 미지의 영역은 현재 상태에서는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직접적으로 공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간접적인 방법은 존재합니다.
하나는 2번 방, 즉 ‘은폐’의 영역을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3번 방, 즉 ‘맹점’의 영역을 줄이는 것입니다.
2번 방 은폐의 영역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은폐란 나는 알고 상대는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에게 알려주면 됩니다.
내가 공개하면 상대가 알게 되고 그러면 은폐의 영역은 줄어들고 개방의 영역은 넓어집니다.
3번 방, 즉 맹점의 영역은 반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피드백을 주는 과정을 통해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동시에 개방의 영역은 넓어집니다. 이와 같이 2번 방과 3번 방이 줄어들면 1번 방은 커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이 4번 방(미지의 영역)은 어떻게 될까요?
사실 4번 방(미지의 영역)이 그대로인지 줄었는지 우리는 확정 지어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림에서는 4번 방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것으로 그렸기 때문에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공간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역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전보다 4번 방에 한 걸음 가까워졌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우리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즉 이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이 미지의 영역에 한 걸음 다가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그게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미지의 영역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서는 2번 방과 3번 방의 공략, 즉 나와 너의 커뮤니케이션(공개와 피드백)이 중요하다는 것이 조하리의 창이 시사하는 바입니다.
혁신은 놀라운 아이디어를 찾는 데서 시작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아이디어는 어떻게 찾아집니까?
베일에 가려져 있던 아이디어는 어떻게 찾습니까? 진흙 속에 묻힌 아이디어는 어떻게 꺼냅니까?
그 시작은 나와 너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습니다.
따라서 서로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와 의사소통이 혁신의 기본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혁신은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함께 나눈 그곳, 즉, 마음이 공유된 그곳에서 나누는 미지에 대한 대화에서 시작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혁신에 있어서 지름길이란 없다. 오히려 아이디어를 비즈니스 성공으로 전환하기 위한 핵심은 처음부터 모든 선수를 한 장소에 모으는 것이다.
There’s no such thing as a good handoff when it comes to innovation. Rather, the key to turning an idea into a business success is to gather all players around the table from the beginning.
- Ram Char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