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Tech - 유전자와 함께하는 우리 생활
Life In Tech는 우리 생활 속에서 활용되고 있는 각종 과학기술들을 하나의 키워드를 통해서 살펴보고, 그것이 다양하게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칼럼입니다.
글_ 방재욱 명예교수(충남대학교 생명시스템과학대학 생물과학과)
지구상에 영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은 계속 종족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생물들이 종족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생물의 특성과 다양성의 근원인 유전자(DNA)의 매뉴얼이 그대로 자손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린 시절 부르던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라는 동요는 유전의 주제가로 볼 수도 있다.
2절에 나오는 ‘두 귀가 얼룩귀 귀가 닮았네’라는 내용은 더 구체적인 유전적 표현이다.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자녀들이 서로 닮은 점들도 있지만, 아들과 딸로 성(性)이 다르게 태어나고, 생긴 모습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는 DNA의 구조적인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생명체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세포를 유전자들이 작동하고 있는 화학공장에 비유해 본다면, 우리 몸은 그 공장들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보관하며 이용하는 창고 역할을 하고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처럼 세포의 핵 안에 간직되어 있는 DNA는 복제된 다음 생식과 발생의 과정을 거쳐 후대로 전달되어 발현되는 생명의 본질이다.
유전자가 ‘갑’이라면 우리 몸은 ‘을’인 셈이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모양만 변해가는 무생물과 달리 생명체는 자신의 역사 기록을 지니고 있는데, 그 기록들은 바로 DNA에 담겨져 있다. 이런 생명의 본질인 DNA는 어떻게 발견되었을까.
그리고 DNA 연구의 성과물들은 우리 일상생활에 어떻게 다가와 있으며,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생명의 원천 DNA
진화 이론을 확립한 다윈(Charles Darwin)은 진화의 기반이 되는 획득형질이 생물의 기본 단위인 세포에 들어 있는 자기증식성을 지닌 입자인 ‘제뮬(Gemmule)’이라는 요소에 의해 자손에게 전달되어 발현된다고 주장하였다.
유전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멘델(Gregor Mendel)은 1865년에 완두 교배실험을 통해 ‘젠(Gen)’이라는 인자에 의해 형질이 영속적으로 자손에 전해진다고 제안하였다.
1890년대까지 중요성이 인식되지 못했던 멘델의 연구는 1900년대 초에 ‘멘델 유전법칙의 재발견’으로 정립되며, 유전물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1903년 서튼(Sutton)은 유전물질이 세포의 핵(核) 안에 있는 염색체가 있다는 ‘염색체 이론’을 확립하였고, 1909년 요한센(Johannsen)은 유전자(遺傳子; Gene)의 개념을 제안했다.
그리고 유전자의 본체가 DNA라는 사실은 1928년 그리피스(Griffith), 1944년 에이버리(Avery) 그리고 1952년 허쉬(Hershey)와 체이스(Chase) 등의 실험을 통해 확실하게 밝혀졌다.
생명과학의 오랜 관심사였던 DNA 구조의 실체는 1953년에 왓슨(Watson)과 크릭(Crick)에 의해 이중나선 구조임이 밝혀졌다.
‘DNA 혁명’ 또는 ‘나선 혁명’이라고도 부르는 이 발견을 통해 DNA가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DNA를 인공적으로 다루는 생명공학(生命工學) 기술이 개발되며, 20세기가 생명과학의 장으로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13년에는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 60주년을 맞이하는 기념행사가 전 세계적으로 개최되었다.
유전자와 우리 생활
“이세돌의 타고난 ‘바둑 DNA’… 가족이 합치면 39단”,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가는 유전자변형농산물 GMO”, “DNA 분석으로… 밍크고래 불법 포획 검거”, “국내 기업 지속성장 DNA 글로벌 기업보다 낮다” 등의 최근 뉴스 제목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유전자의 본체인 DNA에 대한 이야기들이 생명과학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와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DNA의 특정 부위를 잘라주는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를 이용해 서로 다른 DNA를 결합시키는 유전자 재조합(再組合, Recombination) 기술은 생명과학 분야에서 20세기 후반에 이루어낸 가장 핵심적인 성과 중 하나이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은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 물질의 대량생산에 이용되고 있다.
그 실례로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당뇨병치료제인 인슐린이나 성장호르몬 유전자를 박테리아에 삽입시켜 다량의 인슐린이나 성장호르몬을 쉽고 값싸게 얻고 있다.
재조합 DNA 기술을 이용해 전염병 예방에 쓰이는 백신도 생산되고 있다.
간염이나 헤르페스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로부터 유전자를 분리해 인체에 무해한 우두 바이러스의 DNA에 재조합시켜 만든 바이러스(백신)를 인체에 주입하면 이에 대항하는 항체가 만들어져 간염이나 헤르페스에 대한 면역성이 생기게 된다.
사람의 유전자를 이식하여 유전질환을 치유하는 유전자치료 분야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는 유전질환이 하나의 유전자 결함으로 나타날 경우 그 유전자를 정상유전자로 대치해주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암, 혈우병, 류마티스 관절염, 황반변성 등 많은 유전질환에 대한 유전자치료의 임상실험이 진행 중에 있다.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재조합 기술은 농업 분야에도 널리 응용되고 있다.
유전적으로 변형시켜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을 갖거나, 제초제에 대한 내성을 갖는 GM(Genetically Modified)작물이 개발되어 재배되고 있다.
팬지의 파란 색소 유전자를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장미에 집어넣어 개발한 파란장미도 있다.
또한 백신 유전자를 토마토와 같은 식물에 도입해 주사가 아닌 먹는 백신의 개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1990년에 처음으로 형질전환 담배와 감자로부터 사람 혈청의 알부민이 생산되었으며, 현재 형질 전환 작물을 이용해 20가지 이상의 단백질이 생산되고 있다.
형질전환 식물에서 척추동물의 혈구세포에서 만들어지는 항체를 생산하는 기술로 많은 치료용 항체가 개발되어 일부는 임상실험 단계에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고 유전자검사에는 ‘DNA지문(DNA Fingerprinting)’이 이용되고 있다.
DNA지문이란 사람마다 DNA를 이루는 염기의 배열순서가 다르기 때문에 특정 제한효소에 의해 잘린 DNA 절편의 크기가 손가락의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DNA지문은 범죄자의 식별이나 친자 확인뿐만 아니라 비행기 추락사건이나 대형 교통사고, 쓰나미 피해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 등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