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인터뷰

LG전자 홍순국 사장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등을 알아봅니다.

사업이든 연구든 시스템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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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작성_ 정양헌 교수(KAIST), 김공숙 전문작가(프리랜서), 이동기 선임과장(KOITA)


2016년 LG전자 임원인사에서 관심의 초점은 LG전자 최초로 부사장 직급을 건너뛰고 전무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홍순국 신임사장에게 맞춰졌다.

LG전자 생산기술원장을 맡아오고 있는 홍순국 전무가 신성장사업인 에너지와 자동차부품 분야의 장비기술 개발로 성장사업에 기여한 성과를 인정받아 전격적으로 사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워 행동이 더욱 조심스럽다는 홍순국 사장은 ‘입사 이래 내내 생산기술이라는 한 우물을 팔 수 있었던 기회와 좋은 상사와 우수한 연구원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기 때문’ 이라며 겸손해 했다.


‘LG그룹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LG생산기술원

홍순국 사장은 2014년 생산기술원장으로 부임한 이후 LG그룹의 차세대 성장동력인 자동차 부품 사업 강화를 위해 부품소형화와 경량화기술 개발, 태양광모듈 사업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생산기술원은 조직상으로 LG전자에 소속으로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LG그룹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생산기술의 ‘중앙연구소’ 성격을 띄고 있다.

국내에서 그룹 차원의 다양한 생산기술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지원하는 조직은 LG생산기술원이 유일하다고 한다.

유수의 다른 대기업의 경우, 제품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은 종합기술원에서 하지만 생산기술은 개별 연구소가 맡고 있다.

홍순국 사장은 1988년 창원에 있던 금성사 가전생산기술연구소로 입사하여 정밀가공분야, 핵심장비국산화, 신생산공법 개발을 주도했다.

그는 이와 같은 다양한 분야를 두루 거쳤기 때문에 생산기술연구소의 역사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LG전자 생산기술원의 전신은 1984년에 창원에서 시작된 금성사 가전생산기술연구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1987년에는 그룹전체의 생산기술을 주도하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평택에 금성생산기술연구소가 만들어졌습니다. 한 동안 두 개로 운영되던 조직은 IMF 시기를 거치면서 하나로 합쳐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당시 평택 연구소는 생산시스템연구가 핵심이었고 창원 연구소는 자동화 기술과 생산요소 기술이 핵심이었는데, 두 조직이 합쳐짐으로써 생산기술 연구가 균형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통합의 영향으로 생산기술원이 추구하는 방향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단위 별 연구지원 형태에서 전체적인 종합 솔루션을 지원하는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당시 그룹에서는 PDP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생산기술원이 처음부터 전체 생산라인을 최적화시키고 직접 장비를 개발해서 라인에 설치하게 되었다.

나중에 PDP사업이 시장에서 도태되기는 했지만, 이때의 소중한 경험들이 LCD사업과 접목되어 그 위력을 발휘하였고 사업이 성장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새로운 사업의 생산설비를 구축할 때는 보통 외국의 검증된 장비를 도입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LG가 자체적으로 공법과 장비를 개발하여 사용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외국업체들이 설비가격으로 횡포를 부려 사업장의 발목을 잡히는 일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차별화된 생산기술을 확보함으로써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PDP나 LCD 등 디스플레이 생산설비를 개발하면서 기술의 내재화와 블랙박스화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러한 산업은 제조공정이 설비와 관련이 깊어서 설비에서 차별화 포인트를 찾지 못하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제조 경쟁력이 설비의 차별화에 달려 있다고 본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예전에는 모두들 설비기술이 강한 일본기술을 도입해서 사업을 해왔는데 이러다가는 언제까지 일본기술에 종속될지 모른다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도 사업을 리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만의 독창적인 기술을 미리 준비해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연구원들이 똘똘 뭉쳐서 노력한 결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이런 전략적 판단으로 OLED와 솔라셀 사업도 성공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OLED는 LG디스플레이와 LG생산기술원이 전략적으로 힘을 합쳐 성공시킨 좋은 사례이다.

두 조직이 힘을 합쳐 전 생산라인에서 최적의 조합을 찾고, LG생산기술원이 종합적인 생산시스템의 최적화 설계를 마친 다음 국내의 우수한 협력업체들과도 힘을 합쳐 공정을 완성한 것이다.

그 결과 세계 최초의 TV용 OLED 양산 라인은 한국만이 만들 수 있는 생산기술로 인식되고 있다.

홍순국 사장은 우수한 국내 장비업체의 제작기술과 LG생산기술원의 개발/설계 기술이 합쳐져 새로운 글로벌 경쟁력을 만들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얻은 또 하나의 소득은 연구원의 자신감이라고 한다.

어떤 어려운 과제도 못할 게 없다는 연구원들의 자신감이 현재 LG생산기술원을 이끌어 나가는 힘이 되고 있다.


제품에도 품격이 있다

LG생산기술원에는 아주 독특한 조직이 있다. 제품의 품격을 연구하는 ‘제품품격연구소’이다. 제품의 품격이라니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했다.

“애플이 한창 스마트폰 붐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을 때, 우리는 왜 애플과 같은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지 못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애플 제품을 가진 사람들은 그가 가진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데 왜 국내 제품들은 그게 안 될까 싶었지요. 제품을 개발하는 조직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빠진, 혹은 등한시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생각이 제품의 품격을 올려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개발부서의 몫인 것도 같고, 또 어떻게 보면 디자인연구소 몫인 것 같았지만 어쨌든 이 불분명한 부분을 제대로 해주는 조직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엔 외관기술센터라는 이름으로 외부에 보이는 부분의 고급화를 타깃으로 시작을 했었는데, 이 생각을 들은 윗선에서 좀 더 큰 시각과 조직규모로 추진해 보라는 의견을 주셨지요. 그래서 보다 포괄적으로 조직 기능을 기획하여 만든 것이 바로 제품품격연구소입니다.”

이 조직을 홍순국 사장이 직접 관장하여 셋업시켰다고 하며, 지금은 LG의 제품개발 프로세스 상에서 중요한 조직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이 품격연구개발 역할을 수행하면서 아쉬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금형기술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IMF 시기에 금성사는 금형기능을 외부로 분사시켰었는데, 품격 구현의 마무리가 상당 부분 이 금형기술에 달려있음을 다시 깨닫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자사 제품의 품격이 외부 금형업체의 수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금형업체들은 중소기업이라 새로운 기술과 설비에 대한 투자가 어렵고, 그로 인해 기술의 발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금형기술의 획기적인 발전 없이는 제품의 품격을 높이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2011년 금형기술센터를 설립하였다.

이제는 제품품격연구소와 금형기술센터가 시너지를 발휘하여 스마트폰의 케이스, 냉장고와 에어컨의 외관 등 제품 경쟁력 강화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물론 금형기술센터를 물리적으로 만든다고 해서 그 기능이 쉽게 구축되는 것은 아니다.

“금형을 시작했을 때, LG내에는 금형기술사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반면 경쟁사는 20여 명이나 있었지요. 특히 금형은 기술자가 중요한 분야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과감하게 금형기술사를 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술사가 몇 명이냐도 중요하지만 금형을 하는 사람들이 이 과감한 육성방법을 보고 미래에 대한 비전과 기술에 도전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습니다. 이제 4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사내의 금형기술이 빠르게 안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금형기술사도 20명 넘게 양성되었고요. 이제 금형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균형 있게 준비되었다고 봅니다.”

제품품격연구소와 금형기술센터가 이러한 역할을 감당해 줌으로써, LG의 제품개발력과 디자인개발력은 한층 향상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부수적인 기능을 하는 생산기술원이 있기에 제품과 디자인 담당자들이 본연의 개발 업무에만 몰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계한 제품이 쉽게 양산할 수 있을까’, ‘이런 디자인이 실제로 양산할 수 있는 아이디어인가’ 하는 고민을 예전에는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찾아보고 걱정해야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들은 전부 생산기술원에서 감당해 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생산기술원은 이렇게 그들의 생각을 구현하는 것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 앞서 다양한 재료와 소재, 공법 등을 아웃 소싱해서 그들이 골라서 적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들은 생산기술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기술들을 보고 쇼핑을 하는 식으로 선택해서 개발에 적용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모든 욕구를 다 만족시킬 만큼은 아직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원하는 것을 언제든 제공해 줄 수 있는 수준으로 준비해 가겠다는 것이 생산기술원의 숙제라고 한다.


인재들이 일하기 좋은 직장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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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 동안 최고의 성과를 낸 연구원을 시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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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원들에게 먼저 다가가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생산기술원이 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은 기술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술은 연구원, 즉 사람의 몫이다.

생산기술원이 하고자 하는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하려면 결국 좋은 인재를 뽑아서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꾸준히 전문가로 양성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생산기술은 다분히 경험기술이고 노하우가 근간이 되는 기술입니다. 그래서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도 곧바로 이 분야의 일을 잘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미리 인재를 확보하고 앞서서 준비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인재를 확보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위치상으로 수도권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평택이라는 것이 인재확보를 어렵게 하는 한 요인이고, 생산기술이라는 것이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힘든 분야라는 인식을 주는 것이 또 하나의 요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홍순국 사장은 좋은 인재를 구하기 위해서 대학 교수들과의 교류를 강화한다고 한다.

교수들이 맡고 있는 랩 학생들과의 공동연구과제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입사 전부터 생산기술에 대한 경험을 갖게 하고, 더불어 입사 후에 쉽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미리 알게 하는 효과를 얻는다고 한다.

그리고 랩 출신의 선배들을 통해 생산기술의 가치와 생산기술원의 비전을 지속적으로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인재를 확보한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하려면 현재 생산기술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연구원들에게 조직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 우리 생산기술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연구원들이 좋은 후배를 데려오는 일입니다. 선배들이 여기 와서 일해 보니 참 좋다라고 얘기해 주는 것이 그 어떤 리크루이팅 활동이나 세미나 보다 효과적입니다. 그런 입소문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조직문화 활동에 대해서도 가장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래서 홍순국 사장은 ‘The Best Place to Work’을 조직관리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

그가 말하는 ‘일하기 좋은 직장’은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곳,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직장이다.

좋은 사람을 뽑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인재가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일하기 좋은 직장’이다.

홍순국 사장은 동기부여만이 인재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일에 진정한 만족과 보람을 느끼고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로 두 가지 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첫 번째는 크리에이티브 리프레시(Creative Refresh) 제도이다.

교수들의 안식년과 비슷한 개념으로 5년 이상 근무한 연구원에게 안식 월을 주는 것이다.

자기 분야의 새로운 기술을 보충하기 위해 세미나도 참석하고 해외 우수업체도 돌아보게 하며, 연계해서 개인휴가를 사용하여 가족들과 해외여행도 하게 함으로써 꾸준히 새로운 기술수준으로 자기를 채워가게 한다.

연구원들의 아주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제도이다. 두 번째는 프로젝트 리프레시(Project Refresh) 제도이다.

장기 프로젝트가 끝나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기 전에 1주일 정도 자신이 수행한 프로젝트를 되돌아 보며 정리하고, 다음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적절한 휴식이 더 높은 효율을 가져올 수 있음을 강조한다.

홍순국 사장이 ‘일하기 좋은 직장’을 위해 노력하는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전문성이 있고 실력이 있는 연구원은 은퇴 이후에도 위탁 연구원으로 근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퇴직한 임원도 마찬가지이다.

전문성만 있으면 누구든 은퇴 이후에도 일할 수 있게 기회를 줌으로써, 연구원들로 하여금 로열티와 전문가가 되겠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연구원 개개인에게 생일/결혼기념일 문자를 보내는 사장

홍순국 사장이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연구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결국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보니 사람을 신바람 나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설비가 좋고 제도가 좋아도 좋은 성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과에 몰입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조직구성원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해야 하나를 항상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홍순국 사장은 구내식당이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출근할 때 자주 식당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연구원들과 눈을 마주치며 소통한다.

친근함을 높이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 홍순국 사장의 소통 노력은 진심을 담은 것이기에 의미가 있다.

그것은 직원들 생일을 전부 챙기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책상 위에는 직원 전체의 생일이 기록된 자료가 있다.

조직문화 관련 부서에 조사한 자료를 출근 후 보고 생일을 맞은 직원에게 아침에 직접 문자를 보낸다. 문자를 보내면 대부분 답장이 온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제 번호를 입력해 놓지 않았으니 잘 모르더라고요. 문자를 보내니 누구냐고 답장이 와서 친구라고 보내기도 했는데, 지금은 원장이라고 적어서 보냅니다. 받으면 요즘 젊은 친구들은 모두 답장을 해요. 가끔 전화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소통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가끔 출장을 가서 문자를 못하면 사원들이 원장님 왜 제게는 문자 안 해주십니까?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합니다.”

사원과 사장이 그만큼 서로 가까워졌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방법으로 소통을 시작한 지 3년 정도가 되었다.

“저는 생산기술원은 여느 조직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우리 조직은 ‘사장이 얘기한 이런 일들이 정말로 이루어지더라’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처갓집에 가서도 우리 회사 같은 곳이 없다고 자랑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사람들이 이 입소문을 듣고 이곳으로 오지 않겠습니까?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면 사람도 잘 뽑을 수 있고, 오래 근무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생산기술 측면에서 세계 1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 사람과 인간관계 소중히

홍순국 사장은 연구원들에게 항상 사람과의 관계를 잘 가지라고 당부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람과의 관계가 어긋나면 고객은 함께 일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의 호감도와 사업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연구원들에게 고객과의 대응방법을 꾸준히 훈련시킨다.

“연구원이 연구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개발한 결과를 실제 생산 현장에 적용해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고객과의 좋은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엄청난 연구결과를 얻었다 하더라도, 마지막 1~2%는 고객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고객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휴지조각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고객과 한뜻이 될 때 가장 아름다운 결과를 드러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점을 항상 연구원들에게 강조합니다.”

사람을 중시하는 이러한 경영철학은 홍순국 사장이 지금까지 가르침을 받은 선배들의 영향이라고 겸손해 한다.

특히 정광수 前 원장의 가르침이 컸다고 한다.

“그분은 부하직원들이 모든 역량을 동원할 수 있도록 끄집어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PDP의 하판 재료를 개발하는데 거기에 사용되는 장비를 누가 개발할 것인가가 회의의 주제였습니다. 그때 당시 책임연구원이었던 제가 해보겠다고 나섰지요. 그 적용공장이 청주에 있어서 이동을 많이 해야 했는데 왔다 갔다 할 때 힘들 테니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몰입하라며, 임원이 아닌 제게 기사와 차량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단편적인 이야기지만 매사에 사람을 중시하는 그분의 조직관리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때 참으로 신바람 나게 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홍순국 사장은 공학도들도 사람과의 관계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학을 방문해 학생들을 만날 때에도 지도교수와 호흡을 잘 맞추고 랩 생활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한다.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논문과 실험지도를 받으면서 사회를 배울 수 있습니다. 진짜 사회를 접하는 전 단계가 대학원 생활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학부생들도 3, 4학년들은 랩에 들어가서 생활하는데 지도교수님과의 관계가 사회를 이해하는 시작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실 사회에 나오면 ‘저 사람은 전형적인 엔지니어’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전형적인 엔지니어라는 소리는 융통성이 없다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재형에는 두 유형이 있다고 봅니다. I형과 T형인데, 한 우물만 깊게 파는 I형이 되기 위해서도 주변의 협조가 없으면 안 됩니다. 혼자서 성과를 내는 시대가 아닌 거죠. 그러므로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인간적인 측면을 많이 탐구하고 지도교수와의 관계를 좋게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술 부문만의 T자형 인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구축에서도 T자형 인간을 추구하는 것을 저는 좋게 생각합니다.”


‘백척간두 진일보’의 정신으로 우직하고 재미있게 일한다.

홍순국 사장은 마지막으로 한국 전자산업의 선구자로서 지난 12월에 세상을 떠난 고 이헌조 LG전자 회장이 강조한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문구에 대해 말했다. 회사 곳곳에 이 문구가 걸려 있다.

백척간두의 위기의 순간에도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시도, 이러한 도전의 정신이 바로 LG전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문구는 홍순국 사장이 항상 되새기며 모든 업무의 화두로 삼고 있는 문구이다. 힘든 고비와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전의를 가다듬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할 때 인간은 가늠할 수 없는 무한한 능력을 맛보게 된다는 것이다.

LG전자 창사 이래 처음 파격적인 인사로 승진한 홍순국 사장은 이로써 회사의 새로운 역사를 하나 더 썼다.

홍순국 사장이 말하는 승진의 비결은 특별하지 않고 오히려 평범했다.

“내 엔지니어 사전에 ‘사장’은 없었는데 우직하게 재미있게 일해 온 결과인 것 같습니다.”라고 간단하게 말하는 홍순국 사장의 모습에서 겸손과 함께 백척간두 진일보의 뚝심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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