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INTRO

특별기획 INTRO - 창업 생태계 변화와 ‘창업보국’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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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김광현 상임이사 겸 센터장 /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 khkim@dcamp.kr

1987년부터 27년 동안 한국경제신문 IT전문기자(부국장), IT부장, 생활경제부장, 기획부장 등 경제신문 기자로 주로 산업계을 취재했다. 현재 디캠프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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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창업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창업 활성화’를 국정 주요 과제로 추진하면서 창업이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세계적 이슈이기도 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국빈으로 방한해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운영하는 디캠프(D.CAMP)를 찾았고, 리커창 중국 총리는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찾았다.

창업이 뭐길래 세계적 관심사가 됐을까? 일시적 유행일까? 대세 변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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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


최근에 만난 창업자 중에는 대기업 출신이 유독 많다. (이 글에서는 ‘창업’의 의미를 ‘기술(IT) 기반의 창업’으로 국한한다.)

대기업 출신 비중을 측정해 보진 않았지만 현재는 ‘창업 주력부대’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유료 웹툰 서비스를 하는 사람, LG유플러스를 나와 손세차 배달 서비스를 하는 사람, 다음커뮤니케이션을 그만두고 모바일 광고 콘텐츠 플랫폼을 만든 사람, 한국마이크로소프트를 나와 모바일 구인구직 알선 서비스를 하는 사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창업자 중에 30대가 많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 기반의 창업인 만큼 30대가 많은 건 일면 당연하기도 하다.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다.

아직은 대학 졸업 후 바로 창업하는 젊은이가 많지 않다는 게 하나다.

대학마다 창업 강좌가 늘고, 창업 동아리도 늘고, 대학생 창업 사례도 늘고 있지만, 대다수 대학생들은 여전히 대기업이나 공무원 취업을 선호한다.

소수 젊은이들이 일찌감치 창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고, 일부 대학생들이 ‘취업이 안 되면 창업’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40대만 돼도 기술 기반의 창업은 쉽지 않다는 얘기도 된다.

기술 변화를 꾸준히 추적한 사람이라면 다르겠지만 최근의 급격한 기술 변화를 감안하면 40대가 기술 기반 창업을 주도하기는 쉽지 않다.

모바일 기술은 기본이고, 소셜 마케팅도 알아야하고,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AI), 기계학습 등도 알아야 한다.

이런 기술 측면만 놓고 보면 40대는 30대 후배들에 비해 불리하다.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젊은이들이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서 큰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취업준비생이나 대다수 국민은 아직도 대기업을 ‘안정된 직장’이라고 생각하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젊은이들은 불안을 느낀다.

유능하다고 평가 받는 사원이라면 임원으로 승진해 50대 중반까지 다닐 수 있지만 대부분 40대에 퇴사하는 게 현실이다. 젊은이들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40대에 퇴사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00세 시대’라는데 나머지 반평생을 등산이나 하며 소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취업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대기업 시절 대우를 해 주겠다는 곳은 극히 드물다. 하향취업이라도 하고 싶어도 받아주겠다는 곳이 없다. 뒤늦게 창업을 생각해 보지만 치킨집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대기업 다니는 30대 젊은이들이 과감히 뛰쳐나와 창업을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전국 곳곳에 창업지원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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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빈으로 방한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스타트업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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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캠프가 운영하는 한양대 창업 강좌. 이재석 JJS미디어 대표가 강연하고 있다.


창업 생태계가 개선된 것도 창업을 결심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수년 전만 해도 창업을 하려면 집에서 하거나 시내 카페를 전전해야 했다. 지금은 곳곳에 창업을 지원하는 공간이 있다.

은행권청년창업 재단이 2013년 3월 서울 선정릉공원 옆에 디캠프를 연 후 2014년에는 아산나눔재단이 역삼동에 마루180을 열었고, 스타트업 얼라이언스가 테헤란로변에 들어섰다. 2015년 들어서는 구글이 삼성동에 캠퍼스 서울을 열었다.

민간뿐이 아니다. 미래부는 한 해 동안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열었다.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손을 잡고 시·도마다 혁신센터를 하나씩 열게 했다.

△대구-삼성 △대전·세종-SK △전북-효성 △경북-삼성 △광주-현대기아자동차 △충북-LG △부산-롯데 △경기-KT △경남-두산 △강원-네이버 △충남-한화 △전남-GS △제주-다음카카오 △울산-현대중공업 △서울-CJ △인천-한진 이렇게 엮여 있다.

중소기업청은 지난 7월 서울 역삼동에 ‘팁스타운’을 열었다. 도로변 낡은 건물을 임대해 창업공간으로 개조해 창업자들을 돕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서울 청계천변에 있는 옛 관광공사 건물을 ‘문화 창조벤처단지’로 리모델링해 2017년까지 400개 스타트업을 입주시킬 예정이다.

현재 5개인 콘텐츠코리아랩도 11개로 늘리기로 했다. 이밖에 서울시는 서울 공덕동에 있는 산업인력관리공단 건물을 리모델링해 ‘공덕창업허브’로 탈바꿈하기로 했고 개포동 일본인학교 부지도 창업지원 공간으로 바꾸기로 했다.

대다수 창업지원 공간은 우수 스타트업을 선정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동안 무료로 입주할 수 있는 혜택을 주고 있다.

이제 창업을 준비 중인 젊은이들은 일할 공간이 없어 시내 카페를 전전할 필요가 없게 됐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거나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최신 설비를 갖춘 공간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이런 곳에 머무는 동안 함께 일할 개발자를 만날 수도 있고 디자이너나 기획자를 만날 수도 있다.


앤젤과 벤처캐피탈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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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캠프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강원창조혁신센터가 공동으로 개최한 스타트업코리아x제주 해커톤


창업자에겐 일할 공간만큼 절실한 게 있다. 돈이다. 창업지원 공간을 이용하면 당장 사무실 운영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도 돈이 필요하고, 마케팅을 하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 전에는 자기 돈이 아니면 부모 돈, 친척 돈, 친구 돈을 끌어다 써야 했다.

이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은행 돈을 빌려야 했다. 그래서 “창업했다가 실패하면 패가망신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금은 달라졌다. 정부가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걸고 모태펀드가 대대적으로 매칭 투자에 나서면서 엔젤이나 벤처캐피탈이 펀드 조성하기가 쉬워졌다. 투자자들은 이렇게 조성한 펀드로 유망한 스타트업에 경쟁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제는 유망한 스타트업이라면 “돈이 없어서 사업 못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게 됐다. 이런 펀드가 강남권에 몰려 있는 게 아쉽지만 1990년대 벤처 붐 때와 확실히 달라진 건 사실이다. 모태펀드 뿐이 아니다.

성장사다리펀드도 창업 생태계에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성장사다리펀드는 KDB 산업은행 1조 3,500억 원, 은행권청년창업재단 3,500억 원, IBK 기업은행 1,500억 원에 민간자금을 매칭해 3년 동안 6조 원의 자금을 창업 생태계와 벤처기업에 쏟아붓는다.
 
성장사다리펀드는 자펀드와 운영사 선정을 착착 진행하고 있고 조만간 자금을 관리할 한국성장 금융을 설립할 예정이다.


산업 패러다임의 혁명적 변화

창업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유사 이래 창업이 없는 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요즘 창업이 주목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걸었기 때문일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산업 패러다임이 혁명적으로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이라도 끊임없이 혁신적인 제품,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지 못하면 바로 궁지에 처하는 세상이 왔다. 대기업이 자체 연구소에서 개발한 제품으로 3년, 5년 버틸 수 있는 세상은 갔다.

분수령은 2007년 아이폰 등장과 2008년 애플 앱스토어 론칭이라고 할 수 있다.

모바일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고 기술이 개방되면서 누구든지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로 판을 엎을 수 있게 됐다.

우버는 택시 한 대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전 세계 택시운송업계를 흔들고 있고, 에어비앤비는 호텔 하나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전 세계 숙박업계를 흔들고 있다.

한두 업종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거의 모든 업종에서 판을 엎는 플레이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유례없는 초고속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이런 판에서 자유로운 기업은 없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애플도 그렇고 구글도 그렇다. 이들이 밀려나지 않고 오히려 혁신을 주도하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그게 바로 창업이다.

애플이나 구글이 창업을 많이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들은 직접 창업하는 대신 제품이나 서비스를 혁신하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인수해 자사 제품, 서비스에 결합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끊임없이 제품과 서비스를 혁신하고 있다. 이런 방식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창업을 통해 판을 바꾸려는 스타트업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상생 선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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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전자가 디캠프 6층 다목적홀에서 개최한 웨어러블 기기 해커톤


삼성은 모바일 결제 경쟁에서 애플이나 알리바바에 뒤졌다. 애플은 애플페이로 미국 시장에서 기반을 다진 뒤 영국, 중국 등으로 세를 확대해 가고 있고, 알리바바는 중국 시장에서 알리페이로 기반을 다진 뒤 세계로 나가고 있다.

경쟁에서 뒤진 삼성이 채택한 전략이 바로 스타트업 인수였다. 삼성은 지난 2월 미국 스타트업 루프페이를 2억 5천만 달러(약 2,728억 원)나 주고 인수했다.

이어 6개월 후인 지난 8월 삼성페이를 내놓고 단숨에 애플을 뒤쫓고 있다. 직접 개발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1, 2년 사이에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관계가 빠르게 달라졌다. 수년 전만 해도 대기업들은 ‘상생경영’을 하겠다고 발표해 놓고도 뒤로는 중소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베끼거나 사람을 빼가곤 했다.

상생경영은 ‘쇼’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자발적으로 스타트업들에 다가서고 있다.

자기 돈을 들여 스타트업을 키우기도 하고, 스타트업에 투자도 하고, 아예 인수하기도 한다.

많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투자팀이나 CVC(Corporate Venture Capital)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삼성은 그동안 해외에서 우수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도 하고 인수도 했는데 요즘엔 국내에서도 드러나지 않게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 5월 ‘김기사’ 서비스를하는 록앤롤을 626억 원에 인수했고,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10월 스킨케어 스타트업인 웨이웨어러블에 투자했다.
 
SK플래닛과 현대백화점은 전자상거래 스타트업을 직접 키우고 투자도 했다. 네이버는 올해 서울 강남역 인근에 ‘D2 스타트업 팩토리’를 열어 7개 스타트업을 입주시켰고 4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창업을 통한 혁신은 세계적인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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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엑스에서 열린 ‘2016 창조경제박람회’ 입구에서 어린이들이 안내 로봇을 만지며 좋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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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엑스에서 열린 ‘2015 창조경제박람회’ 카카오 부스. 어린이 관람객이 3D 게임을 즐기고 있다.


현재의 창업 열기를 삐딱하게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끝나면 열기가 식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산업의 변화나 각국의 움직임을 보면 ‘창업을 통한 혁신’은 새로운 비즈니스 방식으로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산업, 거의 모든 국가에서 창업을 통해 혁신을 꾀한다면 이것을 멈추는 순간 산업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이 약해질게 뻔하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창업을 통한 혁신’과 ‘혁신을 통한 경쟁력 제고’를 거역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국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벤처투자자가 최근 여의도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재밌는 일화를 밝혔다.

금요일 밤 11시쯤 투자 협의를 하려고 베이징의 어느 스타트업 사무실에 갔는데 300명이 넘는 임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금요일 밤 11시에 대기업도 아닌 스타트업 사무실에 그렇게 많은 임직원이 남아서 일한다는 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나중에 그 투자자한테 “어떤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이었냐?”고 물었다.
 
P2P(개인간) 대출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이라고 했다. P2P 대출의 경우 한국에서는 선두주자라 해도 직원이 10여 명에 불과하다.

대표적 O2O(온라인과 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로 꼽히는 음식배달 분야에서도 격차는 크다. 중국 얼러머는 이미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이 됐다. 지난 8월엔 7,4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F 펀딩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배달의민족’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배달의민족이 음식배달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 얼러머를 벤치마킹했다는 얘기도 있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다. 드론의 경우 세계 최대 메이커가 중국 DJI다. 올해 아시아에서 유니콘이 된 스타트업이 15개인데 이 가운데 10개가 중국, 3개가 인도, 2개가 이스라엘 스타트업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이 뒤늦게 창업을 통한 혁신을 꾀하고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창업을 정부가 주도하다 보니 전시행정이 많다.

공짜 공간이 넘쳐나고 돈도 넉넉하다. 자칫 좀비 스타트업을 양산할 위험도 커졌다.

하지만 창업을 통해 혁신을 꾀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이런 단점을 보완해 ‘창업→혁신→기업경쟁력→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