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인터뷰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 - 성신전기공업(주) 이기현 대표이사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그리고 향후계획 등을 알아봅니다.


진정, 긍정, 열정으로 큰 그림을 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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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작성_ 정원일 교수(경북대학교)
김공숙 전문작가(프리랜서)
이동기 선임과장(KO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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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산업단지에 자리한 성신전기공업(주)(SSEco)은 인근의 다른 업체 건물들과는 달랐다.

어찌 보면 삭막하기 만한 산업단지 내에 사옥을 둘러싸고 피어 있는 보라색 허브들이 눈길을 끌었다. 누가 이런 곳에 허브를 심을 생각을 했을까. 그 답은 이기현 대표를 만나고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사옥 설계해서 처음 짓는 건데 조경에 신경을 썼습니다. 다니다 보면 허브가 향도 좋고 꽃도 피다보니 벌도 많이 오고 좋더라고요. 공장에 허브가 있는 것도 좀 특이할 거 같고요.”

이기현 대표는 조용한 말투로 사옥 얘기를 시작했다. “2년 정도 찾아보고 고민해서 고른 곳입니다. 입지, 자금, 발전 가능성이 가격대비 좋은 것 같고요.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인력수급에 문제가 생겨서 여기 정도가 좋았습니다.” 성신전기공업(주)은 군포의 임대공장에서 오래 있다가 이곳에 온 지 이제 1년 남짓 됐다.

1992년 고척동 상가 2층 5.5평에서 500만 원 자금으로 시작한 성신전기공업㈜은 내년이면 창립 25주년이 된다.

그동안 차근차근 비전을 넓혀온 결과 평상시 고품질의 안정된 전원 공급과 정전 발생시 축전지를 이용하여 UPS(무정전 전원공급장치, Uninterruptible Power Supply)개발과 인증 상품화로 제1호 정부조달 제조기업이 되었고, 독보적인 기술로 중대형 용량의 UPS 시장을 목표로 삼아 틈새시장을 확실하게 공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회사 매출이 수입 시장에서 몇 % 점유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차근차근 기존 시장에 새로운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무정전 전원장치(UPS) 제조기업 성신전기공업(주)

Q1. 성신전기공업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우리 회사는 전력변환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무정전 전원장치인 UPS와 신재생 에너지 변환 설비를 연구, 생산하여 판매하는 회사로 앞으로도 전력 품질을 향상시키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Q2. UPS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저는 강원도 화천공고를 나왔습니다. 공고 시절, 학교가 전력변환 기업인 이화전기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는데 실습을 이화전기에서 하게 된 것이 첫 인연이 되었습니다.
 
시골 출신으로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라 공부도 제대로 많이 못했고, 군대를 다녀와서부터 이 일을 시작했는데 어려서 했던 일을 평생 하게 되리라고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그때는 스물여섯 살 때라 단순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했는데, 그러던 중에 전력변환 기술과 다시 만나게 된것입니다.

이후 이 분야 기술의 무한한 성장가능성을 깨닫고 서른 살쯤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기본 기술만 있었지 그때까지 UPS기술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죠. 그로부터 3년 동안 UPS 기술력을 체득할 수 있는 제조회사를 다니며 많이 배우고 차장까지 근무하다가 창업을 했습니다.

1992년 서른네 살 때였죠. 창업 2~3년 후에야 UPS를 개발했습니다. 전력변환이라는 것은 받은 전력을 어떻게 제어하고 가공해서 좋은 전력으로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현재는 전압 조정 부분은 물론 정전까지 대응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전력변환 기술의 쓰임새는 계속 확대될 것입니다. UPS 기술은 미래의 환경에너지와 연관되어 있고 신재생에너지 사업과도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Q3. 여유 자금 없이 시작한 사업이라 가족들이 힘들었을 수도 있겠는데요?

1992년 창업하고 그해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2003년도까지 가족들이 함께 고생을 많이 했죠. 저는 2남 6녀, 8남매 중의 일곱 번째이고 차남이었습니다.

그러나 결혼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결혼도 늦은 터라 자연스럽게 총각 때 같이 살던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죠.

결혼 후에는 정신없이 뛰어 다니느라 집사람을 많이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아이 셋 키우고 어머니 모시고 열심히 살면서 경제적으로 늘 넉넉하지 못했을 터였는데, 사실 이 자리에 올 때까지도 아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잘 몰랐습니다.

남편이 사업한다고 돌아다니니 말도 못하고 마음고생이 심했을 겁니다. 마음이 착해서 술을 좋아하는 저를 많이 참아준 것도 같고요.

당시 돈 없이 사업을 시작했으니 전세 집부터 시작을 했고 신월동, 신정동, 부천 등 외곽으로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그 와중에도 어려운 살림을 알뜰하게 살아주고 제사까지 지내느라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늘 고마움을 느낍니다.

Q4. 개인 사업으로 시작해 현재의 성신전기로 성장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직원 1명을 데리고 고척동 상가 2층에서 구멍가게처럼 시작한 성신전기공업(주)은 1년 정도 후 온수공단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점차 규모가 커져갔습니다.
 
7~8년이 지나니 직원이 10명 가까이 되었고 모두들 먹고 살 정도가 되었죠. 그 당시에는 납품하다가 시간이 비고 여유가 생기면 직원들과 고기도 구워먹고 잘 지냈습니다.

매출이 10~15억 원 정도 되면 이걸 가지고 직원들을 책임지고 그냥 열심히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살았죠.

사장들이 직원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날 믿고 열심히 하자! 좋은 일이 있지 않겠나?” 저도 이러면서 지냈는데 어느 날 문득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직원들이 날 어떻게 믿지?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또 ‘내가 직원들에게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닌가? 비전도 없으면서 비전이 있는 것처럼!’ 그런 질문이 ‘퍼뜩’ 떠오른 것입니다.

그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영업하고 일했는데 스스로에게서 시작된 질문은 답을 찾지 못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잦아들지를 않았습니다.

우리는 뭐든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냥 열심히만 하다보면 그냥 그 상태에서 열심히 머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사기 치는 건 아닌가? 뭘 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 하나가 성신전기가 더 크게 가야할 길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었고, 변화를 모색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민한 결과가 2002년도의 법인 전환이었습니다. 사업 시작한 지 딱 10년 만인 44세에 구멍가게 시대를 접고 성신전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이죠.
 
1999년 말 스친 생각이 이렇게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입니다.

Q5. 법인 전환 후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모색하셨나요?

법인 전환을 하고 보니 우리가 제일 부족한 것이 뭔가를 알아내는 것이 가장 시급했습니다. 가진 기술이 대단한 기술은 아니었지만 이것을 토대로 하면서 자금도 그런 대로 굴려가며 성장도 하려니 어떤 거래처를 뚫어야 할까가 고민이었습니다.

어떻게 신규 고객을 창출할까 고민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가장 큰 시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정부 조달시장이었죠.
 
그 다음은 정부 조달시장에 진입해서 고객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습니다. 방법은 이미 그 시장에 진입한 기업들을 벤치마킹하는 것이었죠.

당시 KD파워라는 기업을 기본으로 벤치마킹하면서 업계에서 잘하기로 소문난 3개 기업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인증을 잘 받아서 성장한 기업, 외국 제품을 잘 모방해서 국내에 출시한 기업, 인증은 받았지만 자사 제품이 아닌 다른 제품을 판매한 기업이었는데 이들의 핵심역량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관찰을 통해 중소기업은 ‘기술인증과 신제품’이 핵심이고, 이것이 결국 시장을 선도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민하고 생각하다 보니까 자꾸 무엇인가가 보이고 알게 되었죠. 결론은 정부 조달시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신기술을 확보해야 하고, 신기술을 얻으려면 특허나 제품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UPS 원천기술 개발로 제1호 정부 조달기업이 되다

Q6. 신기술 개발은 어떻게 하셨나요?

기술인증과 신제품 개발을 위해서는 연구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회사 전체 인력이 9명 정도였으니 우리의 역량은 뻔했습니다.

연구 역량은 부족했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은 했습니다. 지금도 중소기업이 원천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다행히 당시 포항공대 교수님 중에 버지니아공대에서 교환교수로 있다가 돌아온 분과 인연이 되어 우리를 포함해 모두 3개 업체가 각각 연구개발 과제를 의뢰하면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2개 업체는 실패를 하고 우리 회사만 성공을 했죠.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 회사가 이 방법밖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절박함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우리가 선택했던 용량이나 크기가 국내 시장, 관급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감당하기에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이후 대용량화가 되면서 중소기업의 물품으로 최대용량인 500㎸암페어까지 커버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최대 용량은 슈나이더라는 외국 대기업이 90% 이상 시장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중소기업으로 중대형 용량의 UPS 시장을 표적으로 틈새시장을 확보하면 된 것이죠.
 
그렇게 1년 계획을 세워 2003년 연구소를 설립했고, 이듬해 업계 최초로 정부 조달시장에 진입하는 개가를 올린 것입니다.

Q7. 개발 후 KT마크 인정을 받을 때 강렬한 인상을 남기셨다고 들었습니다.

포항공대와 함께한 기술개발 성공이 2003년도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계획한 대로 회사에 연구소를 신설하고 정부 조달시장 진입의 교두보인 KT마크 인정(당시 과학기술부 신기술인정, 이후 NET 인증으로 통합됨)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KT 인정을 받을 때 생각하면 참 순진하기도 하고 열정에 넘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과학기술회관에서 신기술 인정 심사를 받는 자리에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물론 장비까지 가지고 가서 시연을 했습니다.

나름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발표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 나처럼 한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 보면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열정이 넘친 것 같기도 해서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납니다. KT 인정을 받고 다음은 이 성과를 가지고 제품화를 시도해야 했습니다.

Q8. 기술인정을 받고 바로 정부 조달업체가 되었습니까?

KT 인정을 받았지만 그것은 기술 인증이지 제품 인증은 아니었습니다.

시제품 시연을 열심히 해서 인정을 받았지만 제품으로 출시할 정도의 실력은 없었던 것이죠.

판매할 자신도 서지 않아 시장 출시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했고, 그리하여 스스로 시장 출시를 지연시켰습니다.

그 사이 개발비용은 계속해서 들어가고 경제적으로 상황이 어려웠지만 섣불리 제품을 출시했다가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고객에게 신뢰가 쌓이기도 전에 관계가 무너지기 때문에 조심스러웠습니다.
 
UPS는 정전시 비상상태에서 전력을 공급해주는 저장장치인데 만약 불량제품 때문에 사고를 막아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방법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 오류를 잡아내어 제품을 개선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1년간 20군데에 시제품을 보내서 필드 테스트를 했습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드디어 2004년에 조달청 우수제품 인정을 받고 조달청 제3자 단가계약(UPS 무정전 전원장치)을 맺게 되었습니다.

Q9. 정부와 단가계약을 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무엇입니까?

국가기관 입장에서는 구매행위를 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물건을 삽니다. 단가계약의 의미는 바로 그것입니다.

확실한 품질, 인정받을 수 있는 제품이라야 신뢰를 얻고 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기술 인증, 신제품 인증을 받고 구매 제안을 받아 2006년까지 단독 계약을 했습니다.

그 전에도 다른 업체가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업체는 기술만 개발했지 스스로 제품 개발까지 가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타 회사에 제품을 의뢰해서 공급하다가 정부 조달시장에서 탈락했죠. 결과적으로 우리 성신전기공업(주)이 UPS 개발과 인증을 받아 상품화한 업계 ‘제1호 정부 조달기업’이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지금도 자부심을 느낍니다.

Q10. 기술 인증을 받고 상품화하기까지 1년이 가장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기술개발부터 시작하면 상품화까지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이 시기가 재무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2003년도 신기술 인정을 받고 연구소를 설립하던 때가 특히 어려웠죠.
 
인생에서 돈 문제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거의 열 달 정도를 하루 한두 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걱정이 되어 잠이 깼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오직 이 생각 때문에 모든 대외 활동을 접고 상품화를 빨리 해야 한다는 당면과제에 몰입했습니다.
 
여기서 멈춰서는 죽도 밥도 안 되고 빨리 상품화를 하는 길 밖에는 없었죠.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시기였는데 직원들도 많이 도와주고 협력해 주었지만 직원들에게만 맡겨둘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회사를 접어야 하나? 아니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나? 다른 영역으로 방향 선회를 해야 하는가?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는데 어쨌든 그 위기를 직원들과 잘 극복했던 것 같습니다.

참 어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런 위기를 극복해냈기에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성공한 경험은 나중에 엄청나게 중요한 자산이 된다는 것을….”


산학 협동의 성공적 모델, 기업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Q11. 성신전기공업(주) UPS 기술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시장을 먼저 보았고 민수시장보다는 공공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기술개발을 했습니다. 당시의 3레그(leg) 방식의 기술은 있기는 했지만 상용화가 되지 못한 기술이었습니다.
 
기술 수준도 불완전하여 3레그(leg) 방식의 IGBT 는 인버터만 이용하고 컨버터는 이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버터는 교류를 직류로 변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입력 쪽의 역률, 고주파의 품질을 올려주지만 효율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블 컨버전이라고 하는, 인버터와 컨버터를 함께해도 효율이 올라가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전류가 흐르는 것에 상쇄하여 효율을 올려준 것이죠. 이것이 IGBT를 이용한 최초의 제품이었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상용화 기술을 토대로 새로운 기술을 파생적으로 만들어 내면서 오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별것 아닌 기술 같지만 당시는 이 기술이 원천기술 확보의 시작점이었습니다. 회사로 보아서도 3레그(leg) 방식 기술이 성장의 동력을 이끌어 낸 코어 기술이 된 셈입니다.

Q12. 그 기술을 포항공대와 함께 개발한 것인가요?

당시 포항공대는 기술을 구현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실제 제품화의 가능성은 10%도 안 되었습니다.

우리가 노력했던 부분은 원천기술을 상품화해 가는 과정에 여러 가지 노하우를 집어넣어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3일 만에 40~50번의 기본 구조가 바뀔 정도였죠.

포항공대 팀도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대학과의 기술개발은 보통 정부과제에 의존하는데 우리는 기업에서 개발 비용을 대학연구실에 직접 지불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것은 기술개발의 상용화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만약 정부의 돈을 받아 개발한 경우, 기술의 사용 제한을 받고 자유롭게 개발하기도 어렵고 연구행정의 비중이 커지고 출시 시간이 길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개발 리더십을 기업이 확실하게 가지고 있으면서 자유롭게 기업과 대학이 협력하고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대학과의 연구개발 활동을 더욱 강화하여 실용화, 상품화, 개발 재투자의 선순환 사이클을 십여 년 이상 이어오고 있습니다.

연구개발 비용은 회사가 전액을 부담해 왔으며 매출액의 7~8%를 지속적으로 연구개발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으로서는 부담이 되지만 성장을 위한 투자는 10년 이상 확실하게 실행해 나가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03년 처음 기술개발에 성공하고 2004년 상품화에 성공해 매출이 조금씩 올라가면서 연구개발 3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연구개발의 아이템, 그 중에 무엇에 집중할까를 정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나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결정하면 3년 단위로 나누어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계속 진행했습니다.

Q13. 현재 연구개발 체제는 어떤가요?

올해부터는 포항공대와 건국대로 이원화해서 연구개발 체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업화 관련 연구개발은 포항공대와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국내 시장보다 수출할 수 있는 제품 개발을 목표로 하는 연구개발은 건국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출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용이 다른 업체보다 높습니다.

2008년 IMF로 시장이 어려울 때에도 나름 투자를 지속했습니다. 기업 경영에서 침체기가 있으면 호황기도 있기 때문에 여유가 있든 없든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하는 것입니다.

기술경영이라는 것은 기술을 실현하고 그걸 통해서 경영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투자는 기술경영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기술로 성공한 경험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성공하고 나면 성공했던 경험을 적용하고 활용해서 반복적으로 또 성공을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개발투자를 멈춘 적이 없습니다.

Q14. 산학협력으로 좋은 성과를 내었는데, 산학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기업의 상용화 리더십이 성패를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연구개발을 할 때는 대학으로부터 원천기술 도움을 받았지만 산학협력을 통해 개발된 결과물을 상품화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기업이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기업이 의사결정을 지속적으로 해야만 끝까지 상품화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구개발을 하면서 기술이나 제품군 쪽으로 개발 로드맵을 구성했습니다. 그 구성에 따라 대학이나 연구기관과 같이 관심 분야의 세미나를 하고 거기서 다음 목표과제를 결정하고 연구개발을 수행합니다.
 
대학과 함께 연구개발을 하는 중에 새롭게 발생하는 일들은 수시로 논의하고 기술개발 로드맵을 기술상품화 로드맵에 맞도록 수정해서 적용했습니다.

기업의 이와 같은 노력이 결국 대학에도 더욱 정진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주고 기업이 성공적인 상품 개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Q15. 향후 산학협력에 대한 전망은 어떤가요?

우리는 대학과의 연구개발을 매우 효율적으로 진행합니다. 포항공대는 처음부터 오랫동안 함께해 오면서 성공을 경험하였기에 오히려 우리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발 빠르게 대응해 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산학협력 기관인 건국대는 시작 단계지만 담당 교수님과 오랫동안 친분을 이루어 왔고, 관련 교수님들도 활발하게 움직여 주고 있습니다.

현재 월 2회 건국대에 있는 성신전기공업(주)의 랩에서 상호 세미나를 하는 등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CEO의 기술 확보에 대한 의지와 연구개발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EO로서 현재는 이렇게 가야하겠다고 정하고 연구를 진행하지만 항상 전체를 보고 다음 것을 염두에 두고 연구를 진행하도록 요청해야 합니다.
 
연구하면서 방향은 늘 조정될 수 있습니다. 산학협력에서는 기업의 기술사업화 의지가 대학의 연구개발능력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상용화 로드맵에 따른 기술개발의 지도를 제시하고, 대학이 그것에 따라 맞추어 콘텐츠를 채워나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새로운 시장 개척보다는 기존 틈새시장을 공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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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6. 그동안 상복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뭔가 성과를 내기 시작한 2006년도부터 계속 상복이 있었습니다.

기술개발이 성공하면서 2007년 산업자원부장관상 신기술 실용화, 2008년 과학기술부장관상 국가과학 발전 유공, 2009년 국무총리상 전기기기산업 발전 표창, 2012년도 산기협 기술경영인상 등을 받았습니다.

기업 규모가 어느 정도 확고해지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독보적인 기술이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지난 11월 초에 2015년 신기술 실용화 촉진대회에서 두 번째 큰상인 산업포장을 수상했습니다.

Q17.산업포장은 매우 큰 상인데 수상 이유와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상 주신 분들 말에 따르면 국내 UPS 신기술 개발을 선도해 국가전력절감과 전력품질에 기여하고, 수출상품으로의 초석을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20여 년 동안 오직 UPS 한길만 걸어왔는데 그것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습니다.

특히 국내 최초의 3레그(leg) 방식의 고효율 UPS를 시작으로, 부하패턴과 입력상태 분석에 따라 동작설정이 가능한 UPS 등을 개발한 것이 수상의 큰 이유였다고 합니다.

부하패턴 UPS는 기존 더블·컨버전 방식의 큰 단점인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해 UPS 입·출력 상태에 따른 운전모드를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게 특징입니다.
 
이를 토대로 안전하고 효율이 높은 운전이 가능합니다.

또한 이 신기술이 적용된 제품은 에너지 절감효과가 뛰어나고 탄소배출량도 저감할 수 있습니다. 올해도 특허를 7~8개 출원하는 등 앞으로 신기술 개발에 꾸준히 나설 예정입니다.

Q18. UPS 시장 현황과 전망을 어떻게 보시나요?

세월이 흐르면서 경쟁자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2006년에 이화전기가 진입하고 코스닥에 상장도 했고 2008년에도 2개 업체가 조달시장에 들어오면서 지금은 8개 회사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성신전기가 여러 면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지만 어려움은 늘 있습니다. 국내 UPS 시장에서 소형과 중형은 중국과 동남아 저가 제품이 들어오고 대용량은 다국적 기업이 밀고 들어와 있습니다.

국내에서 기술 개발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은 얼마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시장을 지키고 시장을 만들어 나가는 일에 늘 긴장하고 많이 배우러 다닙니다.

해외 제품들보다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국내 UPS 업체들이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데 많은 기업들이 심정적으로 포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현재 국내 기업이 점유한 것만을 생각하면 이 시장은 너무 작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국내 시장만을 염두에 두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저는 매번 어려울 때마다 우리가 가진 매출 규모가 수입 시장의 몇 %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기존 국내 시장만이 아니라 수입 대체 시장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제품, 그 아이디어와 프로세스가 있다면 성장성이 엄청나게 크다고 봅니다.

더 큰 글로벌 시장도 있는데 우리가 시장을 차지하지 못할 뿐입니다. 시장을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있는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합니다.

관찰해 보면 글로벌 업체들은 모든 생산을 중국에서 하기 때문에 글로벌 브랜드를 붙이지만 중국산입니다. 이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는 없지만 그 업체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틈새들이 있습니다.

그 틈새시장도 글로벌을 상대로 공략해 나가다보면 틈새가 결코 틈새가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큰 시장입니다. 한국의 중소기업으로서 이 시장에 들어가는 방법이 뭔가를 찾아내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Q19. 학습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요?

산기협을 통해서 NET 인증을 받은 것을 계기로 협회에서 기술경영 교육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기술 분야 학습모임은 5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전기 쪽으로 많이 알게 되어 전문가들과 교류하고 있고 특히 포항공대, 건국대 쪽과 정기적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Q20. 이곳 수원 사옥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하는데 무엇입니까?

수원 사옥은 제 스스로 설계했던 첫 번째 건물입니다. UPS 사업을 하면서 이 정도 규모는 작은 규모가 아닌데 글로벌 수입제품과 경쟁하기 위한 공간으로 염두에 두고 지었습니다.

기술력에 대한 경쟁도 있지만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가격에 대한 경쟁우위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수출을 제외한 기업들은 시장 규모가 작아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 제품을 자동차 조립하듯이 해나가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모듈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래에는 회사가 표준 부품을 개발해 놓으면 그것을 가지고 필요에 따라 여기에 3개, 저기에 5개 하는 식으로 조합을 하면 완전히 다른 제품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듈화 공정을 통해 양산하는 시기가 곧 오리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진정, 긍정, 열정으로 끝없이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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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1. 사업하는 분들이 힘들 때가 자금 문제인데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지요?

워낙 작은 규모로 없이 시작하다 보니 힘은 들었지만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려웠지만 그걸 어렵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 뒷심이 있는데 온수동에서 사업을 할 때부터 저축하는 습관을 들인 점입니다. 처음에는 30만 원을 적금에 넣었습니다.

그 다음 1년 지나면 또 30만 원을 넣었죠. 이렇게 누적해서 보면 3년 정도 지나보면 재무구조가 적자로 갈 때에 적금을 타게 됩니다.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월 5천만 원을 적금에 넣고 있습니다.

자금을 한꺼번에 운용하려면 어렵지만 이렇게 저축액을 떼어놓고 살다보면 또 그냥 그렇게 한 달이 살아집니다. 이 씨앗 저축액들이 모이고 모여 시간이 지나 적금을 타게 되면 그 자금으로 새로운 구상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드머니는 기술개발 자금이나 위기를 타개하는 자금원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덕분에 성신전기공업은 부채비율이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Q22.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사옥 설립이 부담이 될 수도 있는데요?

앞서 말한 시드머니가 회사 이전이나 증축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기 오기 전, 군포에서 공장매입을 할 때에도 20억 원 중 10억 원은 회사에서 부담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 수원으로 신축건물을 짓고 이사 오면서 무리한 것은 아닌가하고 지인들이 묻는데, 현재는 군포 공장을 매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채가 있지만 매각하면 부채가 제로가 됩니다.
 
군포 공장을 헐값이라도 매각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수원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군포 공장 건물에 애정이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군포 공장은 성신전기가 성장하는 시기의 사옥이라 증축하고 개축하는 작업을 직접 했으니까요.
 
그런 애정 때문에 딱 좋은 임자가 아니면 팔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임대를 주고 부채는 천천히 갚아나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입니다.

Q23. 입지전적 스토리의 주인공인데 롤모델은 누구입니까?

뚜렷하게 누구라고 말할 분은 없습니다. 사업 시작을 돈이 있어서 여유 있게 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뭔가를 개척해 나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롤모델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남기 위해서 정신없이 달려왔지요. 그러다 보니 뚜렷한 롤모델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굳이 롤모델을 생각한다면 UPS 시장의 기업 리더들이 롤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업계에서 종사하는 분들의 성공과 실패의 발자취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중국과 동남아 저가 경쟁업체와 선진국의 다국적 대기업 사이에 끼어 있는 현실에서 어떻게 난국을 타개해 나갈 것인가가 관건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Q24.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무엇입니까?

사실 특별하게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보다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모르는 것을 창피해 하지 마라’ 이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창피해 하기보다는 모르는 것을 감추는 것을 창피해 하라’고 말합니다. 모르는 것을 드러내고 새롭게 알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그러려면 그에 따른 공부를 해야 하고 이때 모르는 것이 더 좋은 기술로 습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미래에 대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사훈을 진정, 긍정, 열정으로 정했습니다.

첫째, 진정은 내부고객이 되었든 외부고객이 되었든 ‘진실 하라’는 것입니다.

거짓말하지 말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그대로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표현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었을 때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둘째, ‘긍정적인 생각을 항상 가지라’는 것인데 관점에 따라서 모든 일이 결정이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옵니다.

셋째, 이러한 마음과 생각들을 실현하려고 하면 결국 ‘실천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무슨 결과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실천적 행동을 잘하려면 열정이 필요합니다. 생각해 보면 창업을 해서 하다보면 처음 세웠던 계획의 30% 미만일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사업계획서를 짜고 현장에서 시작하지만 그 계획들은 경험적으로 30% 이상 성취되기 어렵습니다. 계획도 물론 열심히 짜야겠지만 새롭게 발견되는 리스크 관리가 더욱 중요한 이유입니다.

따라서 관리의 가장 핵심 부분은 열정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다 보면 그 열정에 의해서 바라고 이루고자 하는 일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직원들한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도 진정, 긍정, 열정의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다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기현 대표의 이야기는 스스로 겪은 숱한 경험과 지식이 몸에 그대로 배어 있는 느낌이었다.

특별한 롤모델이 없다고 했지만 경험으로 배우고 그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장해 온 자신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의 성신전기공업(주)으로 크게 발전시킨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대표가 말한 ‘거대한 틈새시장’ 공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국내만이 아닌 세계에서 인정받는 UPS 강소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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