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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 기성세대에 저항한 순수 영혼 -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인문학 칼럼은 다양한 인문학적 정보와 콘텐츠를 깊이있게 다루어 읽을거리와 풍성한 감성을 전달하는 칼럼입니다.


30여 년 전의 어느 겨울. 12월 1일. 미국 뉴욕의 맨해튼 한복판에서 여러 번의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뮤지션인 비틀즈의 존 레논이 쓰러졌다.

그때 암살자의 손에 들려 있던 한 권의 책이 < 호밀밭의 파수꾼 >이다.

보수적이고 부조리한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한 젊은이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책이다.


글_ 박은몽 소설가


미국을 뒤흔든 샐린저 현상

한 권의 책이 사회 전체를 사로잡는 일이 가끔 있다. J. D. 샐린저의 < 호밀밭의 파수꾼 >이 그런 경우이다.

1925년 발표한 < 위대한 개츠비 >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피츠제럴드나 1954년에 < 노인과 바다 >로 노벨상을 받은 헤밍웨이 못지않게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인물이 바로 < 호밀밭의 파수꾼 >을 쓴 샐린저였다.

샐린저의 < 호밀밭의 파수꾼 >은 1951년에 발표되었다. 작품이 처음 발표되던 때는 폭풍전야와 같은 시기였고 그 짧은 폭풍전야가 지난 후 곧이어 미국 사회는 체제저항의 길을 향해 황소걸음을 시작할 터였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난 전후사회로서 전쟁을 겪은 기성세대들은 안정을 원했기 때문에 사회가 점점 보수화되고 있었다.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마녀사냥을 일으킨 ‘매카시즘’이 정치판과 사회 전체를 뒤흔들던 때가 바로 1950년대였다.

그러한 보수화는 필요적으로 체제저항이라는 폭풍을 잉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직전에 < 호밀밭의 파수꾼 >을 발표한 샐린저는 마치 시대를 앞서보는 혜안이라도 갖고 있는듯 보수화되고 위선에 찬 기성세대의 속살을 작품 속에서 적나라하게 파헤쳐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사회를 향해 어떠한 사상적 메시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작품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로 시종일관한다.

샐린저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고등학교 졸업을 포기하고(사실 학교도 그를 포기했기에 퇴학당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초 단위로 쪼개듯 세밀하게 그렸다.

작품 속 홀든은 신경쇠약에 걸린 학생으로서 캘리포니아의 한 요양소에서 정신과 의사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그에게 학교는 보수적이고 위선적인 기성세대를 대표한다.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영혼의 성장을 이끌어 주기는커녕 기성세대에게 딱 맞는 영혼 없는 기성품을 찍어내기 원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는 학교에 머무를 수가 없고 학교로부터 달아나 서부로 떠나기를 원한다.

다만 마지막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여동생-아직 기성세대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간직한-을 만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집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부조리에 상처받고 아파하면서 또 저항하는 홀든의 모습은 1950년대 미국의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홀든은 서서히 미국 사회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체제저항의 물결과 조우한 것이다.

뒤이어 일어나는 1950년대 후반의 ‘비트운동’이나 1960년대 불기 시작하는 히피 문화 바람의 이면에는 홀든이 존재했다.

< 호밀밭의 파수꾼 >은 출간 후 수십 년 동안 금서로 되어 있었지만 홀든이라는 인물이 미국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책이 출간되고 수십 년이 지난 1980년 한 암살자의 손에 < 호밀밭의 파수꾼 >이 들려 있었다는 것은 그 책의 다소 위험하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커다란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암살자의 이름은 마크 데이빗 채프먼이었다.

그는 암살현장으로 갈 때부터 그 책을 품고 있었고,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서 20세기 최고의 뮤지션인 비틀즈의 ‘존 레논’을 향해 몇 발의 총성을 터뜨린 후 그 책을 꺼내 들었다.

존 레논이라는 위대한 뮤지션을 죽인 것은 어쩌면 암살자가 아니라 홀든인지도 모른다.


은둔하는 작가, 샐린저

< 호밀밭의 파수꾼 > 속 홀든은 서부로 떠나기 원했지만 결국 떠나지 못했다.

기성세대의 부조리로부터 떠나는 대신 그 속에 남아 순수한 영혼을 지키는 길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퇴학당한 것이 들킬까 봐 부모님 몰래 숨어 들어간 집에서 홀든은 사랑하는 여동생 피비에게 말한다.

“나는 늘 저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홀든은 자기 동생과 같은 순수한 영혼이 기성세대에 물들어 가는 것을 막고 싶다. 그래서 파수꾼이 되어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 정작 피비는 그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미궁 속에 빠져 들어가는 듯한 오빠를 걱정하며 자기도 서부로 따라나서겠다고 조르게 될 뿐이다.

홀든의 서부행은 결국 좌절되고 만다. 어쩌면 피비 곁에 남아서 부조리와 위선, 모순으로 가득 찬 이 세상으로부터 피비의 순수한 영혼을 지켜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샐린저는 사회모순을 비판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체제 전복이라든가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식으로 작품을 끌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홀든은 서부행을 포기하고 요양원에 들어가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치료를 마치는 대로 새로운 학교에 입학해서 제도권의 코스를 밟을 예정이다. 여기서 홀든의 방황과 아픔은 보편성을 획득하면서 청춘의 시절 누구나 관통해야 하는 성장통을 함축하게 된다.

샐린저는 이 작품으로 일약 대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그 화려한 명성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그도 홀든처럼 세상으로부터 떠나고 싶었던 것일까?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평생 은둔생활을 하며 독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럴수록 독자들은 그에 대해서 궁금해 했지만 그는 평생에 걸쳐 극도로 인터뷰와 외부 접촉을 꺼리면서 숨어 살았다.

자신이 창조한 홀든 콜필드라는 인물이, 원자폭탄 투하 등으로 점철된 전쟁 이후 시기를 지나면서 보수화된 사회에 대해 좌절하는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다니는 것을 지켜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