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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in Tech - 최장수 스파이 영화 시리즈 - 007 스펙터(SPECTRE, 2015)

MOVIE IN TECH에서는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과학기술에 대해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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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액션영화로서 가장 오랫동안 인기를 끌어온 007 시리즈의 24번째 작품인 ‘007 스펙터(Spectre)’가 최근 국내외에서 개봉되었다.

샘 멘데스 감독에,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 역은 전편에 이어서 다니엘 크레이그가 맡았는데, 역대 여섯 번째 제임스 본드인 그의 마지막 007 시리즈 출연작이 될 것으로 얘기되기도 한다.

007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 등과 함께, 관련 첨단기술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글_ 최성우 과학평론가 I
사진출처_ 네이버영화
(http://movie.naver.com)


스펙터와 GPS 혈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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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프롤로그인 멕시코에서 일어난 폭발 테러 이후, MI6는 영국 정부에 의해 해체 위기에 놓이게 된다.

자신의 과거와 연관된 암호를 추적하던 제임스 본드는 악명 높은 범죄 조직인 ‘스펙터’와 자신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MI6조차 그를 포기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악당들을 추적하며 싸워 나간다는 이야기이다.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스펙터는 007 시리즈에 자주 나오는 국제 범죄조직이다.

스펙터(SPECTRE)란 ‘SPecial Executive for Counterintelligence, Terrorism, Revenge and Extortion’의 약자로서 첩보, 테러, 복수, 강탈을 하는 조직이라는 의미이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로 나왔던 최근의 시리즈에서도 악당들의 배후가 스펙터임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007 시리즈의 초창기에 더욱 자주 등장한 바 있다.

즉 007 시리즈가 시작된 1960년대부터 숀 코너리가 초대 제임스 본드역을 맡아 활약했던 ‘007 위기일발(2편)’, ‘007 썬더볼작전(4편)’, ‘007 두번 산다(5편)’,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7편)’ 등에서 주로 핵폭탄, 로켓 등을 탈취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으로 나오곤 했다.

스펙터의 두목인 블로펠트는 흰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트레이드마크처럼 묘사되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오래 전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오버하우서(크리스토프 왈츠 분)가 바로 블로펠트라는 설정으로 나온다.

MI6 내에서 각종 기발한 신무기를 개발하여 제임스 본드에게 공급하는 역할의 천재적 엔지니어가 ‘Q’라는 인물인데, 이번 영화에서 그는 사람 몸 안에서도 GPS 추적이 가능한 ‘스마트 혈액’을 개발하여 제임스 본드에게 주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위치추적 및 내비게이션 등에 널리 쓰이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는 GPS 위성에서 보내는 신호를 수신하여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계산하는 위성항법시스템이다.

원래 GPS는 미 국방부에서 폭격의 정확성 등을 높이기 위해 군사용으로 개발하였으나, 이후 민간에서도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지구 상공에는 현재 6개의 백업용 위성을 포함하여 모두 30개의 GPS 위성이 궤도를 돌고 있는데, 최소 3개의 GPS 위성으로부터 신호를 수신하면 그 거리를 계산하여 자신의 좌표값을 구할 수 있다.

GPS위성시스템은 처음부터 미국에 의하여 독점적으로 구축, 운영되어 왔으므로, 다른 나라들은 미국 의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하여 독자적인 시스템을 추진해 왔다.

유럽연합(EU)이 추진하는 갈릴레오 프로젝트(Galileo Project)에 우리나라도 참여해 왔으며, 러시아의 글로나스(GLONASS), 중국의 베이두(北斗) 역시 자국의 독자적 위성항법시스템이다.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GPS 기능을 부과한 혈액을 인체 내에 주입하여 그 사람을 항상 추적할 수 있을까?
 
GPS수신칩은 갈수록 초소형화되고 있으므로, 앞으로 나노과학기술 등이 더욱 발전하면 인체 내에 주입할 정도의 크기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GPS 추적이 가능해지려면 수신칩 이외에도 신호 송수신용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배터리가 필요한데, 배터리를 혈액 속에 넣기란 어려울 듯하다.


다국적 감시망과 에셜런

그동안 주디 덴치가 열연했던 ‘여성 M국장’이 전편인 ‘007 스카이폴’에서 사망함에 따라, 이번 영화에서는 남성 배우 랄프 파인즈가 M역할을 맡게 된다.

그는 MI6가 해체 위기를 맞으면서 역시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새로 통합된 정보부서의 수장이 된 ‘C’는 이른바 ‘00X’로 일컬어지는 살인면허 프로그램의 폐지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C는 구시대적인 살인면허 요원 대신에, 드론 등의 첨단기술 도입과 다국적 감시망의 구축을 서두르게 된다.

여기서 C가 추진하는 첨단의 다국적 감시망은 곧 실존하는 전 세계적 도청망인 ‘에셜런(Echelon)’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영화에서 스펙터와 연계된 다국적 감시망의 안테나 모습이 에셜런의 그것과 유사해 보일 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도중에 탈퇴한다는 설정으로 보아서 다국적 감시망 역시 에셜런과 마찬가지로 영어권 국가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보인다.

에셜런은 흔히 ‘21세기의 빅 브라더’라 불릴 만한데, 에셜런의 도감청 시스템에 대해서 1988년 8월 영국의 한 월간지가 기사를 실은 이후 그 정체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에셜런에 관한 상세 보고서가 1998년 1월 유럽의회에 발표되기도 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주도의 전 세계적 통신감청 시스템인 에셜런이 유럽 기업의 산업 정보 및 일반인들까지도 감청을 일삼는다고 한다.

에셜런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승 당사국인 미국과 영국은 통신 정보를 공동으로 수집하고 공유하자는 비밀 합의를 하고, 이후의 냉전시대에 주로 공산권 국가들에 대한 군사정보 수집용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는 군사적 목적뿐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더욱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에셜런은 1972년 미국과 영국이 먼저 시작한 UKUSA라는 국제 통신 감청망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3개 영어권 국가를 포함시켜 이들 회원국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종류의 통신 정보를 수집, 분석, 공유하면서 세계 최대의 통신정보 감청시스템으로 발전하였고, 각 나라들의 정보, 보안기관들이 연합된 시스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원래의 취지는 국제적인 안보를 위하여 테러리스트나 마약상과 같은 위험인물들에 대한 정보, 그 밖의 중요한 정치적, 외교적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기업이나 국제무역 등에 대한 정보들까지도 감청하여 자국의 경쟁기업 등에 넘겨준다는 의혹들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에셜런은 국제적인 분쟁거리로도 등장한 바 있다.
 
물론 미국과 영국 측은 에셜런이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산업스파이 활동을 한 적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하였다.

그러나 에셜런의 최대 피해국으로 보이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은 자국의 개인이나 기업이 정보를 유출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암호를 철저히 활용하라고 촉구할 정도로 여전히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