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INTRO - 일본경제를 지켜온 온리 원(Only One) 기업
Editor 오태현 교수
경희사이버대학교 일본학과
ohth@khcu.ac.kr
노무라총합연구소 서울지점 부지점장, 대우경제 연구소 동경지점 대표, 대우경제연구소 해외지역 연구센터 연구위원 등을 역임했다.
일본의 강한 중소기업을 흔히 온리 원(Only one) 기업이라고 한다.
일본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100%에 가까운 제품을 생산하는 작고 강한 기업이 적지 않다.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만들 수 있는 힘은 일본 특유의 고다와루(こだわる)성향에서 찾을 수 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조잡한 물건을 만드는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기업, 그러한 집념과 꼼꼼함이 지루할 정도로 계속되어야 유일무이한 존재로 남는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아베노믹스와 중소기업
경기는 심리라는 말이 있다.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는 기대심리가 경기를 이끌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아베노믹스는 일단 일본 국민의 심리를 움직여 경기를 자극하는 데는 성공했다고 평가해도 된다.
돈을 풀어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자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주가도 급등했다.
물론 역사적으로 성공한 경제정책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산적해 있다.
경기가 제대로 살아나려면 임금이 오르고 소비가 늘어나야 하는데 아베노믹스의 힘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소비세 인상으로 물가는 올랐는데 임금 상승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니까 실질 임금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나마 수출 대기업과 일부 금융기관은 호황을 체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약 90%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니 지난 6월 닛케이와 TV도쿄가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75%가 경기회복을 실감하지 못한다는 답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지금도 심리적으로 경기회복을 느끼지 못하지만 여전히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일본 중소기업은 지난 20여 년의 경기침체기를 어떻게 헤쳐 나온 것일까.
썩어도 준치라고 했다. 20년 넘는 경기불황과 디플레이션을 경험하면서 버텨낸 일본경제의 뚝심은 분명 나라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일본의 온리 원 기업
일본에서 강한 중소기업을 흔히 온리 원(Only One) 기업이라고 한다.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유일무이한 무언가를 가진 기업이란 뜻이다. 그것이 반드시 기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혁신적인 생산체제 개선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거나 해외시장에서 일본 중소기업의 저력을 세계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는 기업도 여기에 포함된다.
단순하게 경제의 구조변화와 중소기업의 관계를 생각하면 중소기업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변혁의 주체가 되는 중소기업이며, 다른 한쪽은 변화의 영향을 받는 중소기업이다.
전자는 여러 경제현상에 다양한 영향을 끼치는 중소기업이며, 후자는 오로지 경제변동의 영향을 받는 중소기업이다.
전자는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자 이노베이터(Innovator) 역할을 수행하는 중소기업이다.
이에 반해 후자는 경제변동에 대해 항상 수동적 입장을 취하는 중소기업이다. 일본에서 말하는 온리 원 기업은 경제현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노베이터이다.
고다와루와 온리 원 기업
온리 원 기업의 탄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무엇인가에 몰입해서 끝을 봐야 손을 놓는 철저한 모습을 일본사람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얽매이는 것 같지만 성급하지 않고 대충 끝내지 않는 까다로움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이런 일본사람의 성향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고다와루(こだわる)이다.
일반적으로 고다와루는 명사 뒤에 붙어서 ‘~에 까다롭다, ~에 구애받다, ~에 얽매이다, ~에 집착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작은 일을 그냥 넘기지 않고 완벽을 추구하는 것과 어떤 사물에 집착해서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일본사람들이 보여주는 고다와루 성향이다.
이러한 일본사람의 성향은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장인정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업으로 물려받으면서까지 한 가지 일에 파고드는 일본의 장인정신이 오늘날 일본 기술력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장인정신의 상징적인 사례는 일본의 대표적인 상인(기업인)을 많이 배출한 오사카(大阪) 지역에 많다.
오사카 상인들의 투철한 신조가 바로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노렌(暖簾)은 지킨다.’이다.
노렌은 상점 입구의 처마 끝이나 점포 입구에 치는 무명천으로 만든 막을 말한다. 초밥집, 우동집, 소바(메밀국수)집 등 일본 전통 음식점들은 노렌을 걸어놓고 자신들만의 철학이 담긴 음식을 판다고 굳게 믿는다.
노렌 속에 깊이 새겨진 뜻은 무엇 하나를 만들어도 우리 손으로 만드는 것이 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장인정신의 표현이다.
이것저것 옮겨가며 깊이를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에 매달려 몇 대에 이르기까지 한 우물을 파는 몰입과 집착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임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소비자들은 점포 앞에 걸린 노렌을 보면 그 가게의 신용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또 다시 그 점포를 찾게 하는 힘이 된다.
이들 온리 원 기업들은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을 거뜬히 이겨냈다.
일본 제조업이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건재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는 배경에는 제품에 혼을 불어넣는, 예술에 가까운 높은 기술력과 이를 지탱하는 뜨거운 현장의 장인정신이 있었다.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며 장기불황을 극복한 대표적인 두 개의 온리 원 기업 사례를 소개한다.
불황을 극복한 온리 원 기업 1: 톤보연필
1913년에 창업한 톤보연필(2014년 말 현재 자본금 2억 엔, 종업원 394명)이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은 일본의 버블경제가 붕괴했던 1990년 초였다.
국내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고 제조비용은 폭등하면서 경영에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1992년부터 3년 연속으로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실적부진은 구조조정으로 이어졌고, 60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운을 걸고 새로운 아이템 발굴에 착수했다.
바로 수정테이프였다. 그런데 수정테이프 개발에 투자하는 것은 제살 깎아먹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내부에서 강하게 제기되었다.
그때까지 톤보연필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던 제품이 수정액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러 경쟁사가 수정테이프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지만 소비자의 만족도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
시장반응을 긍정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수정테이프를 개발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던 수정테이프의 단점은 종이에 잘 붙지 않을 뿐 아니라 테이프가 잘 끊어지는 것이었다.
사실 종이에 쓴 글씨를 고치기 위한 수정테이프가 자기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정테이프가 이미 구축되어 있는 수정액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인 상태였다.
그래서 신제품의 개발 방향은 테이프가 끊어지지 않는 구조를 개발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거듭되는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테이프를 부드럽게 밀어내는 클러치를 케이스 안에 넣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수정테이프에서 하얀색 테이프가 벗겨지고 남은 투명테이프가 케이스 안에서 자동으로 감기는 기구도 개발했다.
톤보연필이 개발에 성공한 수정테이프는 경영학에서 말하는 자기잠식 효과(Cannibalization, 동족 포식)로 설명이 가능하다.
새롭게 도입한 기술이 기존의 자기 사업 영역을 갉아먹는 현상을 뜻한다.
예외 없이 모든 새로운 기술은 필연적으로 일정 수준의 자기잠식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신기술에 어떤 방법으로 대응하는가는 기업마다 차이가 나고, 그에 따른 결과 역시 극명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새롭게 도입한 기술이 기존의 영역을 잠식하기 시작할 때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가를 톤보연필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불황을 극복한 온리 원 기업 2: 올겐 바늘
올겐바늘에서 연구개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직원은 60여 명 정도이다. 전체 직원의 10%가 넘는다.
1920년 창업 당시 생산하던 제품은 축음기용 바늘이었다. 여러 용도의 바늘을 생산한지 머지않아 100년이 된다.
실제로 주력 제품인 산업용 재봉틀에 들어가는 바늘을 생산하기 위해 기술개발에 착수한 것은 1936년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80년 가까운 세월을 오로지 재봉틀용 바늘만 만든 것이다.
197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재봉틀 바늘은 물론 봉제용 바늘 생산에 있어서 선두자리를 놓고 미국과 독일 업체와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던 일본 업체가 올겐바늘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봉제용 바늘 생산은 이렇듯 미국과 독일 그리고 일본의 올겐바늘에 의한 3각 구도로 짜여있었다. 그런데 이런 구도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그 원인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제조회사가 급격히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봉제용 바늘은 산업용과 가정용을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35~40억 개 정도 생산되고 있는데, 현재 중국 제품이 그 절반을 차지하는 약 20억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봉틀용 바늘은 기계만 있으면 간단하게 생산이 가능하고 자본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으며, 인건비 비중이 높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재봉틀용 바늘의 제조공정에는 반드시 고가의 전용기기가 필요할 뿐 아니라 제품단가가 낮기 때문에 대량생산은 물론 대량판매가 가능해야 수지를 맞출 수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관련 시장에 올겐바늘을 위협할 만한, 신규로 시장에 진입한 기업이 거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세계시장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아시아의 기업들이 활발하게 시장진입을 시도하고 있고, 중국만 하더라도 이미 50여 개 기업이 난립해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한국, 대만, 베트남 등의 기업이 가세하고 있다.
중국 제품은 올겐바늘과 미국, 독일제품에 비교하면 품질 측면에서 아직 열세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품질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저가제품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이들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올겐바늘은 이런 시장상황이 앞으로도 지속되면 기업의 위상이 위태로워질 것으로 예상하고 기술개발로 승부수를 던졌다.
그 결과 바늘 끝이 100분의 1밀리에 불과한 미세한 바늘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해외업체들이 흉내 내기 어려운 고도의 기술력으로 무장하고 다시 시장공략에 나선 것이다.
재봉틀용 바늘은 구조가 단순하고 크기가 작은 제품이지만 제조하는 공정은 절삭, 프레스, 연마, 열처리, 표면처리 등 금속가공에 필요한 대부분의 공정이 포함된다.
바늘 종류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지만 최종제품으로 만들어지기까지는 30단계에서 40단계의 공정을 거쳐야 하며 각 공정마다 나름대로의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재봉틀용 바늘 종류는 무수히 많을 뿐 아니라 제조공정과 형상도 천차만별이다.
올겐바늘이 규격도면을 가지고 있는 제품만 하더라도 4,000종이 넘는다.
그 중에서 월 생산량이 100만 개에 달하는 제품이 있는가 하면 실제 생산량이 불과 500개에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도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제품이 팔리는 것은 약 1,500여 종으로 절반 이상은 소량생산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주로 하면서 일부 제품에 대해서는 대량생산을 해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육안으로 보면 바늘 끝이 모두 같아 보이지만 그 크기는 수십 종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봉제기계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고속으로 회전시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실을 꿰맬 수 있는 바늘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늘의 강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너무 강도가 높으면 옷감에 흠집을 내기 십상이다.
반대로 너무 낮으면 바느질 눈이 가지런하게 되지 않고 바늘이 부러질 우려가 높아진다.
섬세한 기능적 요소를 두루 갖춘 제품이 바로 재봉에 쓰이는 바늘이다. 올겐바늘과 같이 100분의 1밀리의 바늘 끝 굵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에 몇 개 되지 않는다.
글을 마치며
일본 중소기업은 고유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난 장기불황 속에서도 원천기술과 응용기술 확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 결과 디지털전자, 미래형 자동차, 정밀화학, 부품·소재 등 핵심기술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을 찾아온 장기불황은 ‘잃어버린 20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다 나은 기술축적을 위해 ‘준비한 20년’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한 분야에 까다롭게 얽매여 일말의 타협도 용납하지 않으며 몰두하는 현장의 작업자가 있기에 일본은 제조업 왕국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