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05 - 일본 강소기업의 네 가지 성공 유형
이지평 수석연구위원
LG경제연구원
jplee@lgeri.com
일본 강소기업의 성공 사례를 네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각각 특징과 우리 중소기업에게 주시는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대기업과 함께 프로덕트 이노베이션을 이룬 유형, 전문화와 글로벌화로 도약한 틈새시장의 강자로 부상한 유형, 뉴비즈니스 트렌드 활용하여 성장경로를 전환한 유형, 지역적 강점을 활용하여 성장한 유형 등을 소개한다.
대기업과 함께 프로덕트 이노베이션
일본경제의 장기불황이라는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일본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
이들 일본기업의 사례를 보면 우선 기존 대기업과의 협력관계를 단순한 하청거래 관계에서 공동기술개발, 공동제품개발 단계로 발전시켜서 성과를 거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기존의 공정혁신, 개선활동을 중심으로 한 프로세스 이노베이션의 한계(신흥국의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캐치업으로 인해 발생)를 의미했기 때문에 이러한 한계를 타파할 수 있는 프로덕트 이노베이션에서 대기업과 협력하면서 성과를 거둔 중소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로덕트 이노베이션을 위해서는 기초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투자는 중소기업으로서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기초기술부터 투자하여 원천적인 기술우위를 확보할 경우 경쟁우위성이 상대적으로 장기간 유지되는 한편, 이러한 우위성을 다양한 제품 분야에 적용하면서 활용할 수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수익에 대한 기여도가 높아진다.
실제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중이 높은 일본 중소기업일수록 수익성이 장기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림 1 참조).
예를 들면 일본의 반도체 제조 장치 산업은 일본제 반도체의 세계시장점유율 하락과 함께 1990년대 이후 노광장치 등 핵심 장치 분야에서도 점유율이 하락했으나 중소형 기반기술 기업과 장치업체와의 협업을 통한 제품개발 성과가 높은 세정 및 건조기기, Coater·Developer, CMP(Chemical Mechanical Polishing, 화학적·기계적 연마장치)에서는 40~90%에 달하는 압도적인 점유율이 유지되고 있다.
세정장치 등에 쓰이는 약품 용제의 성분을 하드웨어 개발 과정에서 세밀하게 조정하는 중소형 기업과의 협업이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파나소닉, GS유아사 등의 대기업이 차세대 전지인 리튬이온전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는 제조 장치 관련 중소기업과 특수 화학품을 만드는 중소기업 등과의 협력이 중요했으며, 이들 기업에 의해 뒷받침된 기반기술이 오사카 등의 칸사이 배터리 클러스터의 경쟁력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배터리 베이의 현상과 장래 >, 일본 정책투자은행, 2013. 7).
예를 들면 차세대 전지인 전고체이온를 위한 장치를 만들고 있는 파우텍사의 경우 활성 물질의 분말에 코팅을 하는 장치 제조 능력에서 우수하며, 이 회사는 제약 분야에서 축적한 분체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양·음극재용 Coater 제조 기업인 히라노텍시드는 금속박에 양음극재 활성 물질을 도포 건조하는 장치를 생산, 균열이 생기지 않는 고도의 기술로 세계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염색기술을 PC→휴대폰→LCD→전지로 응용해 발전시키고 있다.
최근 일본 산업계가 세계를 주도하려고 주력하고 있는 수소 관련 기술 및 제품개발의 경우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동개발이 성과를 보이고 있다.
수소 관련 각종 기술특허를 보면 대기업-중소기업의 공동개발에 의한 특허가 대기업-대기업 공동개발 특허에 비해 보다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해외특허청 출원 성적이나 특허 인용건수 등이 우수, < 일본경제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산업재산권 출원 행동 등에 관한 분석조사보고서 >, 지적재산연구소, 2012).
전문화와 글로벌화로 도약한 틈새시장의 강자
일본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하청관계를 통해 제품 및 기술력을 높인 다음에 점차 독자적인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틈새시장의 강자로 부상한 경우가 있다.
이들은 전문적인 기술력으로 다른 일본 대기업이나 해외기업과의 거래관계를 강화하며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전문 분야 혹은 특수 분야의 기술력을 높여 프로덕트 이노베이션에 성공한 일본 중소기업의 경우 대부분 파괴적인 기술보다는 현장근로자의 숙련된 기술력을 축적하면서 제품을 개량하고 새로운 니즈를 개척하고 있다.
전문적 기능을 가진 중소기업 중에서 고객을 세계로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데 성공한 기업이 글로벌 틈새시장의 강자(GNT, Global Niche Top)라고 지칭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GNT 기업으로 인정받는 중소기업의 경우 전반적으로 소재 및 부품 등 BtoB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좁은 업계에서 명성을 구축한 다음에 다양한 고객과 상대하여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술력이 더욱 높아지는 패턴을 보였다.
다양한 고객의 니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공기술, 공업디자인, 설계 능력을 높여 브랜드 파워와 함께 차별화된 경쟁우위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대학 등과의 산학연계를 통한 기초기술의 공동개발을 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이들은 차별화된 기술 및 제품력으로 인해 수익성이 높고 종업원의 교육이나 대우도 대기업 못지않게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종업원의 근속연수가 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신체 암 조직을 채취하기 위한 의료용 바늘을 생산하고 있는 타스크사(본사 도치기현)의 경우 금속 연마 가공기술을 높여가면서 시판의 연마기계를 독자적으로 개량하는 기술도 축적했다.
이를 통해 동사는 암 조직이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채취할 수 있는 바늘을 생산해 30개 이상의 선진 및 신흥국에 수출하여 스페인에서는 60%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일본경제신문, 2015년 4월 6일 조간).
물론 일본의 강소기업이 순탄하게 성장한 것만은 아니다.
Industria(사이타마현 소재)의 경우 발전소의 분석 장치를 만드는 하청 사업이 수입품의 공세로 어려움에 직면하자, 새로 브랜드를 만들고 보유기술을 활용해서 필터를 사용하지 않고 금속 절삭 과정에서 사용된 물을 정화하는 장치를 개발해 기사회생할 수가 있었다.
이 제품이 자동차 공장 등에 채용되어 일본의 Element less Filter 시장의 80%를 점유하게 되었다.
도요타자동차와의 협의를 통해 기술지식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을 보강하고, 개발 과정에서는 정확도 향상을 위해 히로시마대학과 산학연계 연구를 하면서 기술적으로 해결했다.
일본 내에서 틈새시장을 철저하게 개척한 후 해외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국내 범용시장에서 시작하더라도 점차 틈새를 개척하여 해외시장 개척, 차별성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시장과 영역을 압축할 뿐만 아니라 자사의 핵심 역량을 엄선하면서 정의하여 여기에 경영자원을 집중화해, 1~3가지 정도의 기술영역에서 세계적인 경쟁우위성을 확보하는 경영이 효과를 보았다.
그리고 이 회사는 이러한 핵심 역량을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특허의 취득뿐만 아니라 지적재산 관리 인력을 내부적으로 육성했다.
종업원과의 장기신뢰관계를 형성해 기술유출의 가능성을 낮추면서 종업원들이 지적재산권 관리 마인드를 높이고 기술보호 노하우를 축적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뉴비즈니스 트렌드 활용한 성장 경로 전환
일본의 장기불황 과정에서는 많은 산업이 위축되고 상품의 매출이 감소하기도 했으나 어떤 분야가 축소됨으로써 다른 분야가 성장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오프라인의 각종 도소매 매출이 감소하는 한편, 장기불황기에 온라인 전자상거래가 급신장세를 보이기도 했다.
장기불황으로 인한 기존 제품, 기업의 어려움으로 시장에 일종의 틈새가 생김으로써 신규비즈니스나 신규사업자가 진출하게 되는 경우다.
전 세계적으로 IT혁명 트렌드를 잘 포착한 중소형 벤처기업 중에서는 초거대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있듯이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IT혁명, 친환경 그린 비즈니스화, 고령화 등의 트렌드들은 뉴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한 중소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일본에서도 소프트뱅크나 온라인 쇼핑몰의 라쿠텐이 유명하며, 최근에도 모바일 SNS 게임으로 순식간에 도약하고 프로야구팀까지 갖게 된 DeNA 등이 급성장했다.
친환경 트렌드의 포착도 효과가 있다. 일본의 우량한 중소기업의 경우 소재 및 부품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강점을 새로운 시대 트렌드에 맞게 조정하여 성과를 거두고 있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일본 중소기업의 상당수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확대 트렌드에 맞게 자사의 기술을 개량하면서 활용하고 이들 산업을 뒷받침하여 새로운 성장영역을 개척하는 패턴이 확대되었다.
니이가타의 나믹스라는 기업은 1947년에 도료 제조업체로서 창업한 후 고객의 요구로 전자부품용 절연 도료 분야에서 성장한 후 1990년대 말부터 은이나 알루미늄을 페이스트 상태로 만든 전극제(電極劑, 태양전지 웨이퍼에 스크린 인쇄하여 전극으로 만듦)를 개발, 세계시장의 10% 정도를 확보하고 있다(< 일본정책금융공고 총합연구소 리포트 >, 2012.3.27).
뉴비즈니스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여 제품을 개량할 뿐만 아니라 고객의 새로운 삶을 제안하기 위해 새로운 문제를 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쿄 소재의 Footmark Corporation(종업원 75명)의 경우 학교 수영 모자에서 일본 시장 50%의 점유율을 확보한 후 각종 노인 간호 상품을 개발하는 아이디어로 성공한 기업이다.
이 기업은 고령자용 간호 수영복의 개발에서 신입사원을 프로젝트 리더로 발탁해서 성공한 경험도 갖는 등 이색적인 경영을 펼치고 있다.
동사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일반에서 수영할 때 모자를 쓰는 관행을 보급시키는 등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창조 및 보급에 성공했다.
수영 모자를 쓰면 교사가 학생을 식별하고 관리하기 쉽다는 것을 강조하여 체육교사에게 적극적으로 홍보, 수영모자-청결이라는 가치관도 일반화하였다.
올바른 해답을 외부에서 열심히 찾겠다는 자세보다 자신의 이상, 내적 발상을 현실에 적응시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역적 강점의 활용
장기불황기에 매출감소로 쇠약해진 지방 중소기업들이 지역 차원의 강점을 활용해서 신흥국 기업 제품과의 차별성을 강화하는 노력도 전개되었다.
일본의 각 지역경제는 공동화가 진행되었으나 각종소재, 부품, 기계 등의 숙련된 가공 능력을 가진 기업들이 밀집하고 있는 강점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지역 강점을 활용해서 고부가 가치 제품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섬유 등의 경공업 산업의 경우, 공동화가 급격히 진행된 이후 이를 극복하는 노력이 일정한 효과를 거두었다.
이마바리시의 수건 산지의 경우 지역 자체 브랜드를 만들고 고품질 수건임을 강조해 백화점 등의 고급 시장 공략에 주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수건전문가 제도를 만들고 지역 차원에서 철저한 품질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고도의 경험을 축적한 기술자를 활용해 초대형 기계를 활용한 생산자동화와 함께 물의 흡수성, 친환경성을 강조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유기 원료를 강조한 피부에 부드러운 수건이 이마바리 브랜드로 판매되고 일본 소비자의 호응을 얻고 있다.
도쿄 등 대도시에서의 이마바리시 자체 제품 박람회를 개최하는 한편 대도시의 디자인 학교와 공동으로 고급 수건 디자인 개발에도 노력하고 있다.
한편, 일본 안경테 시장의 96%(재무성 호쿠리쿠 재무국, 2011.8, 세계시장 20% 추정)를 차지하고 있는 후쿠이현의 사바에시(鯖江市, 2010년 인구 6만 7,463명, 증가세 유지)의 경우 브랜드 육성, 패션성 제고에 고전하고 있지만 초경량 신소재를 개발하는 등 기술적 차별성 강화하고 일본 시장뿐만 아니라 아시아 부유층을 대상으로 시장 확대 중이다.
도쿄 오타구와 같은 금형, 주조, 단조 등의 기계가공 뿌리 산업을 중심으로 한 고도기술 중소기업 집적지 등에서는 일본정부의 모노즈쿠리 지원 정책도 활용하면서 소형 공장의 아파트형 공장으로의 집약화, 각종 지역 교류회 및 커뮤니티 활동 활성화, 지역 외 우수가공 기업의 유치 등을 통해 고부가가치 분야의 숙련 가공 거점으로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산업은 기존의 분업 생태계에서 구축해 왔던 고도의 기술과 숙련 기능을 활용하고 보다 개방적인 오픈이노베이션을 모색하면서 지식의 집약기능을 강화하는 클러스터 구조로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재 및 부품 등 뿌리 산업의 중소기업을 활성화시키고 연구수준도 높이면서 공업집적 기능뿐만 아니라 연구 및 제품 개발에 능한 지역경제의 강점을 강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