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01 - 일본의 중소기업과 성장 메커니즘
임천석 교수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
csimtj@konkuk.ac.kr
여러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포진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일본의 강점이다.
대기업은 이미 창업자적 경영자의 시대를 지나 전문경영인이 일반화되었고, 이것이 최근 대기업 체제가 경직된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경제의 경색현상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중소기업의 육성이 필요하다.
일본경제를 유지하는 중소기업
많은 경제예측 기관들이 금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당초의 3.5%정도에서 3% 이하로 낮게 전망하고 있다.
최근 심화되고 있는 중국경제의 급격한 불안정과 미국의 금융정책변화 등이 대외의존도가 큰 한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경제는 1960년대 이후 일본 등 선진국 산업의 적극적인 도입과 이의 수출화에 힘입어 세계 10위권의 수출국가가 되었고, 조만간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진입을 내다보는 선진국으로 급성장했다.
한국경제의 빠른 경제성장에는 재벌로 불리는 대기업 주도의 성장·발전과 핵심부품·소재, 장비의 대일수입이라는 정부정책, 기업의 전략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경제는 중국의 급속한 추격과 엔저에 힘입은 일본과의 경쟁에 직면하고 있고, 수출, 설비투자, 고용 등에서 대기업의 역할이 점차 축소되고 있다.
반면, 이 부문에서 대기업이 해 왔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상당히 취약하다는 데에 있어 문제가 크다.
그러면 일본은 어떤가? 일본에도 많은 대기업이 포진하고 있다.
포춘지가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에 2014년 일본은 57개의 기업이 랭크되었다.
여기에는 도요타, 혼다, 닛산과 같은 자동차 회사, HITACHI, SONY, PANASONIC, 도시바, 캐논, SHARP 등과 같은 유명 전기·전자회사도 눈에 띈다.
한편 1991년부터 최근까지 지난 20여 년간 일본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1% 이하로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장기간의 저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5% 이하의 낮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경제 및 사회는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아베노믹스에 힘입은 엔저효과 등으로 자동차의 수출증가와 주가상승 등에 의한 기업투자, 개인소비의 확대 등에 힘입어 취업여건도 크게 호전되고 있다.
오랫동안의 저성장 하에서도 일본이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 상태를 유지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최근 일본의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부품, 소재의 수출비중이 2010년대 들어 60%를 초과한 점이 눈에 띤다.
이의 상당부분이 중소기업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최근 일본경제의 안정은 상당부분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에서 중소기업은 사업자 수의 99.7%, 고용의 69.7%를 차지하고 있다.
보통 일본의 중소기업을 이야기할 때 대기업에 부품·소재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소기업에 주목하지만 최근에는 히든 챔피언으로서 독립적인 형태의 강소 부품기업이 많은 점도 주목되고 있다.
또 일본에는 1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점도 흥미롭다.
한국경제와 비교했을 때 여러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포진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일본의 강점이다.
대기업은 이미 창업자적 경영자의 시대를 지나 샐러리맨 경영자가 일반적인 시대에 있고, 이것이 최근 대기업 체제가 경직된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경제의 경색현상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중소기업의 육성이 필요하다.
일본경제가 장기간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비결은 혁신적인 수많은 중소기업이 포진하면서 경제에 나름대로의 활력과 혁신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중소기업이 부족한 한국에게는 일본의 사례가 대단히 흥미로운 주제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산업정책
일본이 비교적 단기간에 구미선진국의 캐치업에 성공한 원인으로 일본의 산업정책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일본의 중소기업정책을 살펴보면, 실제로 1930년대의 전시기부터 전후의 고도성장기, 그리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중소기업에 대한 다양한 정책이 실시되었고, 시기에 따라 중소기업에 요구되는 역할과 정책목표도 크게 변해왔다.
그런데 일본의 기업에 대해 분석할 때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가 통치한 에도시대(1603~1867년)에 오사카, 도쿄와 같이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대도시가 건설되었고 상공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많은 기업이 생겨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도시대에 등장한 이 기업들은 1800년대 말의 일본 근대화기에 근대기업으로 변신하여, 이들이 여러 산업의 중핵, 저변을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1930년대 전시기에 각종 병기 등 기계수요가 급증하면서 이 분야의 중소기업을 조직하고, 지원할 필요가 커지면서 중소기업의 하청조직화와 이들 기업에 대한 지원책으로 1937년에 ‘하청공업조성요강’이 제정되었다.
이러한 하청중소기업, 특히 부품공업육성정책은 1955년경부터 시작된 전후의 고도 성장기에 ‘기계공업진흥임시조치법(기진법)’ 등으로 이어졌다.
한편, 1960년대 자동차, 전기 등 조립기계산업의 본격적인 대량생산기에 중소기업-대기업 간의 격차시정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면서, 이를 지원할 목적으로 1963년 ‘중소기업기본법’이 제정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경기의 침체상태가 계속되면서 의욕과 능력 있는 중소기업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어서 1999년에는 독립중소기업의 다양하고 활력 있는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중소기업기본법’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저출산·고령화, 과소화·인구의 도시 집중, 여성·청년의 고용부진이 문제가 되고 여기에 국제경쟁의 격화, IT화 진전을 고려하여 종업원 수 20인 이하(제조업 기준) 소규모 사업자에게까지 초점을 맞춘 중소기업 시책이 추진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의 고용·활력 유지·향상과 새로운 사업의 전개, 새로운 상품생산과 서비스, 해외 전개를 지원하려는 목적이다.
각종 중소기업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중소기업이 가지는 여러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와 함께 거래기업, 지역사회, 지역대학과의 협조적인 관계가 중소기업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기업 간에 장기적이고 계속적인 거래관계를 갖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리고 거래기업을 자기 기업의 일부로 보고 많은 지원과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기업 간의 장기적이고 계속적인 관계가 많은 하청부품기업들의 기술, 설비투자, 신제품의 개발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많은 연구결과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하청형 중소기업의 발전에서는 이 부분이 대단히 중요하다.
도요타와 같은 일본자동차 기업과 주요 부품기업과의 거래관계는 20년 이상의 장기거래가 일반적인데, 양자 간 거래관계를 같은 기업 내 거래에 준하는 관계로 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경쟁력 있는 부품기업의 확보를 통해 자신의 투자와 분야를 특정한 범위에 집중시킬 수 있고, 중소부품기업 역시 거래 대기업과의 안정적인 거래관계의 확보를 통해 자기 분야에 대한 기술, 설비투자 등을 통해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한편, 많은 일본의 중소기업이 특정한 대기업의 하청기업 형태로만 존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세라, 무라타 등과 같이 독립형 부품기업이 많다는 점도 일본의 특징이다.
물론 이들 기업은 현재는 대부분이 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창업 초기에는 소규모의 중소기업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부품중소기업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 독립형 기업들은 특정한 대기업에 종속하여 발전하는 많은 부품중소기업의 발전방식을 택하지 않고,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상대로 수요처를 개척하고 발전하는 길을 택했다.
교토에 이런 종류의 독립형 기업이 많은 것은 교토가 오랜 기간 일본의 수도로서 왕실과 귀족 등의 대규모 고급 상품 수요를 바탕으로 상공업, 정밀공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한 지역 상공인들의 지역에 대한 애착, 자존감, 자부심이 상당히 크고 근처에 도요타와 같은 큰 수요 대기업이 없다는 시장 환경도 계열하청거래 보다는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수요처를 개척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부품·소재 강국이라는 일본의 명성은 이러한 기업이 존재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수출로 성장한 한국의 입장에서 앞으로의 과제인 부품·소재 중소기업의 성장전략으로 크게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에도시대 250여 년간 200여 개의 소국가로 분리된 채 상당히 독립적인 지방자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근대에 들어서는 각 지역에 지역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지역대학이 많이 설립되었다.
이들 지역에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체가 설립한 국립, 현립, 시립대학 등과 함께 지역의 상공인 등이 설립한 사립대학도 많다.
그래서 지역의 대학에도 우수한 연구시설, 연구자가 많으며, 자기 지역에 위치하는 중소기업과 공동연구를 추진하여 연구결과를 상품화하는데 기여하거나 이를 이용해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벤처기업도 적지 않다.
일본 유수기업의 창업자가 지방대학 출신이며, 지방대학 연구원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사례가 나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일본 최고 수준의 반도체 클린룸을 확보하여 기업과 협력하는 도호쿠 대학의 사례도 많이 알려져 있다.
한편, 지방대학의 입장에서도 졸업생의 취업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역 내 능력 있는 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기업도 자신의 고향, 지역에 회사를 설립해 고용을 제공하는데 자부심을 느끼는 기업가가 많다.
이런 점에서 일본경제와 기업의 저력은 지역을 매개로 하는 향토정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각 처에 1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이 많은 것도 이러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중소기업정책으로 강조되는 지역고용의 증대, 지방의 과소화·도시집중화 해소 노력은 이러한 일본의 사정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중소기업 문제를 지자체, 지역대학 등과의 협력을 통해 해결하려는 자세가 엿보인다.
맺음말
일본에서는 기업을 사람들에게 일터를 제공하고 아울러 부를 창출하는 원천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중소기업 경영자는 뚜렷한 기업목표와 고용창출을 통해 지역에 공헌한다는 자신감, 자존감과 당당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일본은 오래전부터 정부, 지역, 기업이 동반자로서 중소기업을 중요시하고, 그 바탕 위에 기업의 발전을 추구하는 전통이 있었다.
일본이 장기간의 경기침체라는 어려운 경제 환경에도 불구하고 낮은 실업률과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많은 중소기업이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대로의 활력과 혁신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대기업의 역할과 기여가 축소되는 가운데, 이를 대체할 많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중소기업의 출현이 필요하다.
일본 중소기업의 성장과정에서 알 수 있는 바는 정책적 지원과 함께 대기업이 거래 하청중소기업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동반자로 생각하고, 이를 육성하고, 협력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또 일본과 같이 독립형의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노력이 요구된다.
중소기업도 지역에서 기업에게 요구하는 역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한국도 지방대학의 존재 의의를 지역기업과의 협력에 두고, 지역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의 추진, 인재의 육성이라는 관점에서 지자체, 기업, 대학 간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