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플러스 엣세이 - 기초와 응용을 넘어선 제3의 지식, 아키텍트

플러스 엣세이는 사회 원로와 저명인사, 각계 전문가가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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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공대 교수 26인이 저술한 < 축적의 시간 >이라는 책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요 일간지에서 소개되고, 출간된지 하루 만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고 있다. 현재 한국인에게 새로운 경쟁력의 전환이 가장 절실한 화두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골자는 현재 한국 산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공과대학 학자들의 시각에서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거시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 그리고 전 세계적인 이슈인 경제 침체를 벗어나는 대안으로 ‘창업’이라는 슬로건과 맞물려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한국의 산업계가 처한 현실과 돌파 관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 산학협력을 포함한 대학의 역할, 그리고 사회와 국가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질문과 방향 설정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한국 산업계(특히 제조업)가 처한 현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너트 크래커’이다.

과거 50년 성공 신화에서 물려받은 마인드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정부에서 발간한 Vision Korea에서 예측하고 있는 바로 그 너트 크래커에 2015년 한국이 걸려있다.

당시에서는 잘 믿지 않았던 중국의 빠른 추격에 중요 제조업 구조가 무너지고, 금융을 비롯한 서비스업은 성장동력을 받쳐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공 부분이 효율화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과거 성공 신화에서 물려받은 경쟁력의 핵심은 ‘잘하는 일류를 모방해서 빠른 시간에 따라잡기 전략’을 쓰는 것이다.

이 전략이 반도체부터, 스마트 폰, 건설, 자동차, 조선까지 잘 동작을 했다. 그러나 최근 화려한 후발국의 추격에 갑자기 코너에 몰린 형국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경쟁력의 원천이었던 한국 교육(특히 공과대학 교육) 등 공적 부분 또한 대안을 내놓을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영어 공부를 18년 해도 고객에게 자신 있게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못한다.

세계에서 수학공부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도, 소프트웨어 하나 제대로 짜지 못한 채 대학에 들어온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1~2년간은 고등학교 때 했던 교양 공부로 또 허송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대학이 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경쟁한다. 정부의 연구비 또한 비슷한 기준으로 나누어 준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할 개선 프로세스를 정부가 지속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문제의 해결법으로 도서 < 축적의 시간 >은 ‘창조적 축적의 시간’을 제안한다.

우리 사회 전체의 틀을 바꾸어 국가의 총체적인 창조 역량을 축적해 나가는 방법이다.
 
어차피 내수 시장이 작고, 산업 크기가 열세인 한국에서 산업체의 창조역량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시각이다.

또 다르게 보면,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서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교육 역량, 민주화 역량, 그리고 경제 창조 역량은 균일하고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국가 전체의 ‘창조 역량’을 집약적으로 모아 승부하는 전략은 어느 나라보다도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창조역량 제고를 위해서 ‘축적의 시간’을 가지자는 것이다.

이러한 창조 역량 축적에는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열린 사회문화, 실패 경험을 용인하고 창조역량으로 전환되도록 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이 포함된다.

이에 덧붙여서 필자는 ‘기초와 응용을 넘어선 제 3의 영역; 아키텍트’ 를 기르자고 주장한다.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70%를 점하고 있는 한국 반도체산업계의 성공 비결은 빠른 기술적 진화를 선도해 갈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을 구축한 데 있다.

그리고 이 플랫폼은 지난 3, 40년간 한국의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로 얻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 신화 이면에는 IT시스템을 이해하고 다양한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시스템을 창조, 설계할 수 있는 아키텍트를 키우지 못한 그림자가 있다.

애플, 샤오미, 알리바바, 구글, 텐센트와 같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아키텍트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다. IT시스템뿐 아니라, 도시 건설, 새로운 자동차 개념 설계 등에서도 모두 밀리고 있다.

이제 다시 시작할 때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수많은 양질의 리소스가 있다.

높은 교육열, 시장 장악력, 그리고 첨단산업을 구축한 경험을 가진 인재가 있고, 한동안은 효율적이었던 정부시스템 운영경험도 있다.

이제 축적의 시간을 가지자. 좀 더 느긋하게 좋은 대학, 국민의 세금을 많이 쓰는 대학이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아키텍트를 교육하도록 기다리자.

반드시 10~20년 안에 단단하고 효율적인 순양함 급 대한민국호가 탄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