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혁신의 열쇠 - 원점에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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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욱 센터장/교수
서울대학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혁신의 열쇠는 우리 사회 및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혁신의 키워드와 마인드에 대해 조망하는 칼럼입니다.


“자동차 공장에 원가절감을 지도하러 갔다. 첫눈에 뜨인 것이 수많은 종류의 연료탱크 뚜껑의 재고더미들이었다. 신차를 개발할 때마다 연료탱크를 다르게 디자인한 결과였다. 왜 자동차마다 뚜껑이 다른가 물었더니 차마다 연료탱크 크기와 모양이 다르니 뚜껑도 다르다고 대답했다. 또 질문했다. 주유소의 주유기도 차종마다 다른가? 뚜껑의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결국 뚜껑을 통일하게 되었고 재고의 산더미는 사라졌다”

일본 최고의 컨설팅회사 JEMCO의 창업자 사토 료의 베스트셀러 < 원점에 서다 >에 실린 이야기다.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은 ‘목적의식’에 있음을 깨달아야 하고 획기적인 변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원점으로 돌아가 근본 목적을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1970년대 제1차 석유위기를 겪으며 일본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부활하여 10여 년의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승승장구하던 일본산업계가 유가 상승과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원가 생산성 품질 등 근원적인 경쟁력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이때 일본기업들을 일깨운 것이 ‘원점에 서자’는 외침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혁신에 성공하여 ‘Japan as No.1’의 제조 왕국으로 도약했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구호로 피나는 노력을 거듭하며 전사적 품질관리(TQC), 도요타 생산방식(TPS), 극한 원가절감(RIAL) 등 합리화방법론을 발전시켜 세계적으로 보급하고 있다.

내년 정부의 R&D 예산을 올해보다 2.3% 줄어든 12조 6,380억 원으로 확정했다고 한다.

1982년 정부 R&D사업이 시작된 지 34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한 것이다. 내년에만 고생하면 다시 증가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정부는 제로베이스 예산편성 방침을 강조하고 있다. 비상경영체제로 모든 예산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R&D 예산은 당연히 늘어나는 것이다”라는 안이한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원점에 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내가 수행하고 있는 R&D과제의 참 목적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목적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지나치거나 부족한 점은 없는가? 원점에 서서 심사숙고해야 한다.

과학기술 없이 창조경제는 꽃을 피울 수 없다는 당위성만으로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1987년 삼성종합기술원이 설립되었다.

무한탐구(無限探求)의 정신으로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첨단기술의 산실이 되는 것이 이병철 회장이 제시한 설립 목적이었다.

그리하여 세계 수준의 연구시설을 갖춘 기흥 반도체단지가 400명의 박사를 비롯한 1천여 명의 고급인력들의 희망을 품고 출범했다.

이병철 회장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명분으로 연구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연구원들의 열정은 식어가고 연구비를 부담하는 그룹 계열사 사장들은 “왜 기술원이 필요한가? 도움이 안 된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높여갔다.

1999년 원장으로 부임하여 우선 ‘원점에 서서’ 함께 토론했다. 기술원의 설립 목적을 상기시키고 우리의 고객이 누구인가, 고객기업이 연구비를 지원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키려면 목표를 어떻게 세우고 고객들의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기술원이 자체 평가한 과제 성공률은 100%에 가까웠다. 고객사에서 과제를 이관해 가면 성공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고객사는 기술원 과제를 가져가면 해당사업의 권리를 인정받으므로 경쟁적으로 인수했다.

고객사를 순방하며 이관해 간 과제의 사업화 성공 여부와 만족도를 직접 평가받았더니 놀랍게도 성공률은 18%에 불과했다.

우선 과제의 목표를 원점에 서서 재설정했다. 과제의 목적을 고객의 가치혁신에 두고 고객이 원하는 품질, 납기, 원가경쟁력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원천특허가 확보되는가? 국제표준이 될 수 있는가? 고객의 가치창출로 연결되는가?

이와 함께 기술원의 비전도 꿈과 전략이 있는 초일류 연구소로 정했다.

전략은 삼성의 경영전략의 핵심역량이 되자는 것이고 꿈은 연구원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연구소가 되는 것이었다.

연구원은 연구가 좋아서 몰입하고 열정을 기울이며 그 성과를 세계로부터 인정받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연구과제는 고객사의 전략목표에 부합하고 연구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가슴 뛰는 목표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으로 산업화시대의 성공모델이 되었으나 창조경제시대에 들어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여 GDP 3만 불을 눈앞에 두고 뒷걸음질 치고 있다.

중국의 기술이 부상하여 이미 많은 분야에서 추월당하고 있고 일본도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나 첨단기술 분야에서 우리의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

새로운 넛크랙커에 끼인 형국이다.

창조경제시대 경쟁력의 원천은 융합 창조력이고 그 근원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혁신에 달려있다.

위기에 처한 나라의 경제를 구하기 위해 과학기술자들이 원점에 서서 목적의식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근본 목적으로 되돌아가 획기적인 변혁의 선두에 서야 한다.

최근 서울공대가 백서를 통해 “홈런(탁월함)을 목표로 하지 않고 번트를 대서 일루에 진출하는 안일한 목표에 머물렀다.”고 반성하여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난 34년간 과학기술입국의 기치 아래 안주해온 틀에서 깨어나야 한다.
 
나는 왜 연구를 하는가? 나의 연구과제의 목표는 세계 초일류이고 고객의 꿈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나는 나의 연구목표에 가슴이 뛰고 열정이 우러나는가? 나는 연구성과를 통해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가?

과학기술인들이 변하면 나라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