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 도시를 뒤흔들던 공포에 관하여 -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글_ 박은몽 소설가
인문학 칼럼은 다양한 인문학적 정보와 콘텐츠를 깊이있게 다루어 읽을거리와 풍성한 감성을 전달하는 칼럼입니다.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알베르 카뮈’는 국내에서 < 이방인 >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 이방인 > 외에도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어준 또 하나의 작품 중에 < 페스트 >가 있다.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공포가 온 도시를 덮쳐 올때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공포와 맞서 싸워 나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1947년 출간 즉시 주목을 받은 이 작품은 수십 년이 지난 2015년 여름에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재앙은 한 마리의 쥐에서 시작되었다
1940년대 중반의 어느 해 4월 16일.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프랑스령 알제리의 한 해변도시인 ‘오랑시’의 사람들은 머지않아 자신들에게 닥쳐올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평상시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저 그 도시에 사는 의사 ‘리유’가 그날 아침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발견했고 저녁에 또 다시 한 마리의 쥐가 피를 토하며 죽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건물 수위는 절대로 그 건물에서는 쥐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장난으로 죽은 쥐를 갖다 놓았다며 범인들을 잡겠다고 벼를 뿐이었다.
그날 이후 쥐는 의사 리유가 있는 건물뿐만이 아니라 도시 여기저기서 나왔다. 서너 마리, 수십 마리, 수백 마리가 나왔다. 도시 곳곳에서 온통 쥐 이야기가 무성했다.
관청에서는 매일 차를 끌고 와 쥐의 시체를 수거해서 화장터로 옮겼다.
처음 쥐가 발견된 날로부터 열흘 남짓 지난 4월 28일, 하루에만도 8,000마리의 쥐를 수거했다는 뉴스가 나자 어떤 사람들은 피난을 계획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오랑시는 도시의 환경을 걱정하고 있을 뿐 처절한 공포는 쥐들만의 것이었다.
더구나 절정에 달한 다음날부터 쥐가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안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쥐들에 대한 공포가 사그라질 무렵 의사 리유는 처음 죽은 쥐를 발견한 그 건물 앞에서 이번에는 팔다리를 뻗쳐 벌린 채 부축을 받고 나오는 수위를 목격하게 되었다.
수위는 목과 겨드랑이, 사타구니에 통증이 어찌나 심한지 혼자서는 도저히 걸을 수조차 없다고 했다.
의사 리유가 저녁 무렵 들렀을 때 수위 영감은 이미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로 호흡이 곤란할 지경인 데다 목의 멍울과 사지가 부어올랐으며 몸에는 거무스름한 반점마저 번져 나오고 있었다.
다음날 의사 리유는 헛소리를 해대는 수위를 내려다보며 수위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해야 했다.
“환자를 격리해서 치료해야겠습니다. 병원에 전화를 걸 테니 구급차로 옮깁시다.”
격리가 시작된 것이다. 두 시간 후 의사 리유와 수위의 아내, 그리고 환자인 수위는 구급차 안에 있었다.
< 페스트 >의 화자는 오랑시에 닥친 한 사건에 대해 담담한 필체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담담한 필체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독자들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긴장감 있게 흘러간다.
쥐들의 떼죽음 이후에 한 남자의 발병과 죽음은 오랑시를 공포로 몰아넣는 전조에 불과했다.
이제는 쥐들이 아니라 사람들이 쓰러졌다. 오랑시에 덮친 사건은 바로 페스트, 일명 흑사병이었다.
중세시대 유럽 인구 감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그 전염병이 20세기의 한 도시에 덮친 것이다.
죽음의 공포는 쥐가 아니라 사람들을 향해 창궐하기 시작했다.
시는 엄중한 조치를 취하고 외부와 연락을 차단했다.
아무도 시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아무도 시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사람들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격리된 채 누군가는 그 시간을 버티고 누군가는 가족들과 떨어진 채 외롭게 죽어간다.
또 누군가는 병과 싸우기 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의사 리유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의사로서 사설 위생기관을 설치하여 전력을 다해 페스트와 싸웠다.
사람들이 재난 속에 빠져 있으면, 인간들 속에는 경멸할 것보다도 찬탄할 것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알베르 카뮈의 소설 < 페스트 > 중에서
저항하는 영혼, 알베르 카뮈
필자가 처음 이 책을 읽은 것은 여고 시절이었다. 오랑시의 급박한 상황 전개가 흥미로우면서도 현실적인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세월이 훌쩍 흐른 지금 2015년 여름에는 그 작품에서 보았던 상황 전개가 현실적인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알베르 카뮈가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 페스트 >에서 전개되는 상황은 메르스로 혼란을 겪던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았다.
알제리 출신 작가 알베르 카뮈는 저항하는 영혼이었다.
그는 독일 나치가 저지른 만행을 목격하고 독일과 나치에 대한 저항을 결심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레지스탕스 조직 ‘Combat’에 참여하여 활동하는 등 나치에 저항했다.
알제리에 공산당이 수립된 1930년대에는 공산당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공산주의에 반대하였고, 사형제도에도 반대하는 한편, 인권운동에 매진했다.
인생이 가진 본질적인 부조리와 사회의 부조리함에 맞서며 평생 치열하게 펜대를 잡은 알베리 카뮈의 저항 정신은 < 페스트 >에서도 드러난다.
페스트라는 전염병을 물리치기 위해 의사 리유를 중심으로 모인 ‘자원보건대’ 사람들은 격리되고 고립된 오랑시에서 외로운 싸움과 저항을 계속해 나갔기 때문이다.
자원보건대의 페스트에 대한 저항은 독일 점령군에 대한 저항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페스트는 꼭 질병을 뜻한다기보다는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그 무엇이라면 모두가 페스트가 될 수 있으리라.
페스트는 얼마든지 이름을 달리하여 끊임없이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
오랑시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 가족들과의 이별 그리고 극한의 고통을 견디며 치열하게 페스트에 저항하는 과정을 담아낸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는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황폐화되어 있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오랑시를 덮친 페스트가 물러간 후 소설 말미에서 의사 리유는 자기가 이 기록의 화자임을 고백한다.
또한 “인간들 속에는 경멸할 것보다도 찬탄할 것이 더 많으며,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 않기 때문에 항상 경계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증언하고 있다.
메르스가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지금, 사회 각계에서 메르스가 남긴 교훈과 정부를 향한 주문들을 쏟아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개선이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알베르 카뮈가 증언하듯이 인간들 속에는 찬탄할 것이 더 많다는 믿음을 붙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