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 저성장 시대, 기업 R&D의 중요성
Management는 최근 이슈가 되는 기술혁신 주제를 해당분야 전문가들이 심도있게 다루는 섹션입니다.
글로벌 저성장 시대가 고착화되면서 시장수요 자체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또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 경제가 위기에 봉착하고 우리 산업경쟁력이 추락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비록 최근 R&D에 대한 무용론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에서 유일한 기업생존의 방법은 R&D를 통한 경쟁력과 효율성 확보라는 데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된다.
여기에서는 악화되어 가고 있는 기업의 대외적 여건을 살펴보고 이에 대응하여 기업 R&D가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모색해 보았다.
글로벌 저성장 시대의 도래
글로벌 장기 저성장 시대가 고착화되고 있다
세계경제의 흐름은 굴곡을 가진다.
전반적인 경제성장률이 높은 수준을 보이는 시기도 있지만 저성장 국면이 상당 기간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흐름을 결정짓는 힘은 경제적 파급력이 높은 특정 국가나 산업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다.
1990년대 후반에 나타나는 세계경제의 호황은 미국 IT 산업의 고성장에 기인한다.
IT산업은 새로운 산업혁명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그 파급력이 거대해서 세계경제의 나머지 부분들이 이 새로운 성장 원천을 동력 삼아 견조한 성장을 보일 수 있었다.
이 시기를 일컬어 혹자들은 신경제(New Economy) 또는 골디락스(Goldilocks) 경제 시대라고도 한다.
이 시기는 고성장-저물가의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이해가 불가능한 특징을 가진다.
그러나 IT 부문은 2000년대 초반 ‘닷컴 기업의 버블 붕괴’라 일컬어지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당시 글로벌 IT 산업의 중심이며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놓고 싶지 않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게 된다.
그것이 부시(George Walker Bush) 행정부의 조세 감면 및 재정지출 확대정책과 그린스펀(Alan Greenspan)의 저금리를 통한 확장적 통화정책이다. 이러한 정책 조합(Policy Mix)은 유효한 듯이 보였다.
최소한 2007년까지 미국 경제와 세계경제는 다시 고성장-저물가의 새로운 골디락스 경제에 진입한다.
여기서 2000년대의 호황기와 1990년대 후반의 호황기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2000년대의 시기는 실물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2000년대 들어 IT 부문이 성숙 단계에 진입하면서 실체적인 힘은 크지 않았다.
즉 당시의 고성장은 과잉 달러 유동성에 기인한 바가 컸고 유동성의 대부분은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 버블을 키웠다.
다시 말해 풍부해진 유동성이 투자나 생산과 같은 실물 부문으로 연결되지 않고,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어 자산 가치를 급등시키는 요인이 된 것이다.
그 버블이 무너지는 과정이 2008년 이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이다.
실제 2000년대의 세계경제 성장은 허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버블 붕괴로 제자리를 찾아 온 것일 뿐이다.
앞으로도 세계경제는 상당 기간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세계경제 성장의 원천은 여전히 미국 등과 같은 선진국에 있기 때문에 중국에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선진국이든 신흥국이든 2000년대 전반기와 같은 고성장은 앞으로 상당기간 보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한국 경제의 위기와 원인
(1) 한국 경제의 성장 속도는 더 빠르게 추락중이다
글로벌 저성장 국면에서 한국 경제는 더 심각한 내부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바로 경제성장률의 급락이다. KDI(Korea Development Institute, 한국개발연구원)는 한국의 연평균 잠재성장률01이 현재 3%대 중반에서 2020년대에는 2.7%, 2030년대는 1.9%로 빠르게 하락할 것임을 전망하고 있다.
또한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제협력개발기구)도 한국의 2031~2050년 연평균 잠재성장률이 1.0%에 그칠 것을 예측하고 있다.
이는 같은기간 세계 평균인 2.4%와 OECD 평균인 1.9%에 미치지 못할 뿐더러 미국(2.1%), 유로존(1.4%), 일본(1.3%) 등의 주요 선진국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2) 한국 경제의 위기는 전통적 생산요소에 대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잠재성장률의 너무 빠른 추락은 상당 부분 경제의 노쇠화와 관련이 있다.
이미 대부분의 주력 산업이 성숙 단계에 진입해 있어 대규모의 신규 투자가 발생하기 어렵다.
또한 향후에는 저출산과 고령화의 영향으로 경제가 필요로 하는 충분한 노동 공급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이러한 투자와 노동의 전통적 생산요소 투입의 위축을 상쇄시킬 방어막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 방어막이 바로 효율성이다.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효율성은 TFP(Total Factor Productivity, 총요소생산성)로 대변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자본과 노동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빠르게 위축되고 있으나 TFP의 기여도는 거의 정체되어 있다.
이는 선진국들과 같이 경제가 발전하면서 효율성(TFP)이 경제성장의 중심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그러한 경로를 따르고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3) 효율성의 부족은 산업 측면에서 경쟁력 취약으로 나타나고 있다
산업과 기업 측면에서 보면 경제 위기의 핵심은 산업경쟁력의 상실에 있다.
한중일 간의 산업경쟁력 구도는 한국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고 있다.
우리 주력 산업들의 경쟁력은 일본과의 격차는 줄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의 격차는 빠르게 축소되는 중이다.
특히 우려되는 바는 경쟁력의 핵심인 기술 부문에서의 한국과 중국 간 차이가 점점 좁혀지는 점이다.
중국은 정부 주도의 노력으로 국가전략기술 수준이 빠르게 높아져, 한국이 아직은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기술경쟁력마저 조만간 추월당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기초과학은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바이오, 전기차, 항공, 우주 등에서의 기술력은 이미 한국을 앞서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결국 산업경쟁력의 취약성 그리고 기술경쟁력의 위협은 수출시장을 내어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 주력 수출제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00년 3.4%에서 2013년 4.7%로 소폭 증가하는 데에 그쳤다.
반면 중국산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같은 기간 2.2%에서 11.7%로 급등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이미 확보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기술 및 품질 경쟁력을 높여가며 시장 잠식을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은 경제 성장의 상당 부분을 수출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시장의 잠식은 곧 한국 경제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이어질 것이다.
(4) R&D 투자 규모는 세계 수준이나 R&D의 전반적인 성과는 빈약하다
한국 경제의 위기와 주력 산업의 경쟁력 추락의 본질적인 원인을 생각해 본다면 충분한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동안 경제구조가 보다 고도화되어야 하고 산업경쟁력이 더 높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도국형의 투입 및 산출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혁신이 경제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되지 못했고, 기술이 산업경쟁력의 핵심이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비효율성이 기업의 발목을 잡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혁신과 기술 그리고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R&D 전략에 무엇인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밖에는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에 비추어 투자되는 R&D 규모는 결코 작지 않다.
국가 전체의 R&D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를 상회할 정도이며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R&D 규모 자체로도 세계 상위권에 해당될 정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막대한 규모가 투자되는 국내 R&D의 성과는 좋게 평가하기 어렵다.
산업계의 입장에서 볼 때 R&D의 최종적인 끝단에서의 결과는 비가격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지표가 기술무역수지비율이다. 기술무역수지비율이란 기술수출과 기술수입의 비율을 의미하며 한 국가의 전반적인 기술경쟁력 수준을 나타내 준다.
한국의 기술무역수지비(기술수출/기술수입)02를 보면 2012년 현재 0.48배로 무역적자 상태이다.
반면 독일(1.16배), 미국(1.43배), 일본(6.07배) 등은 기술수출이 기술수입을 넘어서는 순(純)기술수출국에 해당된다.
여전히 기술종속국인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막대한 재원이 투자되었던 R&D의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공공 R&D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전체 R&D의 약 4분의 3을 차지하는 기업 R&D는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지 의문이 간다.
불필요한 자원 낭비는 아니었는지, 쓸모없는 기술에 대한 개발에 매달렸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보게 된다.
저성장 시대, 기업 R&D가 나가야 할 방향
(1) 그래도 저성장 시대와 경제 위기 극복 방법은 R&D뿐이다
글로벌 저성장 국면이 고착화된다는 것은 우리 산업과 기업들이 치열한 생존 경쟁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국내외 시장 수요가 취약해지고 이로 인해 시장 공급자들 간의 경쟁은 더 격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경쟁력이 높은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고 그것의 핵심은 품질과 기술이다.
나아가 이를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R&D인 것이다.
(2) 어떤 기업들이 R&D가 필요한가?
그러나 모든 기업이 R&D를 할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R&D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설립 목적은 이윤추구이다.
기업의 모든 활동은 비용 대비수익을 생각해야 한다.
만약 R&D 없이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다면 언제 회수 될지 모르는 비용을 굳이 지출할 필요가 없다.
한국 기업들이 모두 첨단 기술을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개발이 필요할지라도 개발하는 비용이 필요한 기술을 사오는 비용보다 훨씬 더 크다면 R&D를 할 필요가 없다.
실패 가능성이 성공 가능성보다 높은 R&D에 대해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연구 시설 및 인력을 유지하며 모험을 걸 필요는 없다.
기업의 목적은 철저하게 이윤에 국한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러나 기술개발이 정말 필요한 기업들이 있다. 즉 성과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기업들이다.
외형적인 규모는 점점 축소되고 그래서 이 기업들은 역동성이 사라진 지 오래고 현상만 유지하자는데 급급해 있다.
탈출구가 절박한 기업들이다.
둘째, 지금은 문제가 없고 당분간도 괜찮은데 먼 미래가 없는 기업들이다. 이러한 기업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시장지배력도 있다.
그러나 지금 발을 담고 있는 시장의 성숙화 정도가 높아 기업의 성장성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
다른 부문으로 사업 다각화가 필요한데 그 대상이 보이지 않는 기업들이다.
이러한 기업들이야말로 반드시 R&D가 필요하다.
(3) 어디에 R&D를 집중할 것인가?
기업이 R&D를 집중할 기술 혹은 대상 산업을 선정하는 데에 있어 가장 최고의 선(善)은 미래지향성이다.
R&D의 대상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는 기술과 산업의 관점을 넘어서 반드시 미래 경제·사회적 트렌드에 부합해야 한다.
그래서 미래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중요한 흐름을 포착해야 한다.
또한 그 트렌드의 변화로부터 유발되는 기술의 진화를 예측해야 한다.
어렵지만 변화를 읽어 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둘째, 경쟁기업들의 추격이 쉽지 않은 기술이어야 한다.
기술과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분야가 가장 바람직하다.
국가 단위에서나 아니면 기업 단위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은 기술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누가 봐도 조만간 범용 기술이 될 분야에 대한 투자는 자원의 낭비밖에는 안 된다.
추격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는 분야가 기업이 집중해야 될 분야이다.
셋째, 시장수요에 부응하는 기술이어야 한다.
일부 기업은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상용화만 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집착하기도 한다.
비록 그 기술이 뛰어나고 독창적일 수 있으나 시장이 요구하는 기술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이는 최근 일본이 불필요한 고품질, 고기능 제품 개발로 해외시장의 수요에 부합되지 않아 R&D 투자 대비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는 결과를 보이는 상황에 해당된다.
일본에서는 이를 제품의 ‘갈라파고스화’ 현상이라 부르고 있다.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고 시장이 원하는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
(4) 공공 R&D와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공 R&D 정책과 관련된 정부의 지원을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된다.
가능하면 기업 R&D 재원에 대한 정부 의존성을 낮추어야 한다.
최근 정부 R&D 정책의 방향이 확장보다 내실화와 효율성으로 흐르고 있다. 그 이유는 저성장에 따른 세수 부족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2014년 정부의 세수 결손 규모는 사상 최대 규모이다.
특히 복지·고용 등 분배 문제와 관련된 분야에 대한 재정지출 투입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반면 시급하지 않은 다른 분야들은 예산의 감축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과가 금방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 성과도 정량화하기 어려운 공공 R&D 분야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 R&D 정책의 무용성과 비효율성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평가까지도 나오고 있다.
관련된 정부 사업들이 지속될 수 있을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 R&D특성상 장기간에 걸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어느 한 순간 지원이 중단되면 거기서 끝이다. 그 중단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공공 R&D가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기술에 대한 공공 R&D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공공 R&D에서 사업 대상 분야로 선정된 기술은 그래도 어느 정도 시장의 중요한 트렌드를 쫓아가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업의 입장에서 어디에 R&D를 집중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에 좋은 한 가지 기준이 될 수 있다.
글을 마치며
“저성장 시대에 맞는 R&D 전략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정형화 된 해답은 없다. 국내외 시장의 여건, 산업적 특성, 개별 기업이 가지는 장점과 한계 등에 부합되는 유연한 전략이 답이라면 답이다.
본 특별기획은 불확실한 시대에 기업들이 R&D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고자 진행되었다.
이하의 내용에는 국책 및 민간 연구소들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그리는 바람직한 기업 R&D의 모습들이 담겨져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작은 영감이라도 받기를 기대해 본다.
끝으로 아무리 R&D에 대한 좋은 전략이 서 있고 우수한 인력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도 그 성공 여부는 오로지 기업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R&D를 통한 기술 확보만이 저성장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01 잠재성장률이란 잠재GDP의 성장속도이며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중장기 성장 추세를 의미한다. 잠재GDP란 적정 인플레이션 수준 하에서 한 국가가 사용가능한 자원을 활용하여 생산할 수 있는 최대 생산수준이다.
02 특허 등 기술 수출액을 기술 수입액으로 나눈 값으로, 이 비율이 1 이하라는 것은 기술 수입액이 수출액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