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 - 한국 3M 정병국 사장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그리고 향후계획 등을 알아봅니다.
‘겸손’과 ‘넘침’이 균형을 이룬 소재 부품의 혁신기업가
공동작성_ 정원일 교수(경북대), 김공숙 작가(한국교육방송공사), 이동기 선임과장(KOITA)
한국 3M의 한국인 사장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여의도 한국 3M 본사. 한국에 3M이 들어온 것은 1977년.
그로부터 34년 만인 2011년 한국 3M의 13대 사장으로 한국인이 부임하게 된 것이다. 로컬 기업의 사장은 본사와의 잦은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시차에 관계없이 회의를 합니다. 아시다시피 날짜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에 비디오 컨퍼런스는 의무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전화 컨퍼런스는 매일 시도 때도 없이 합니다. 직원들은 쉬어야 하지만 대표이사인 저는 신속한 사안에 대해 보통 밤 8시부터 12시까지 컨퍼런스를 합니다. 서울에서 미네소타 본사로 출장가기가 쉽지 않은데 그것보다 훨씬 낫지요.”
한국 3M은 생산 제품이 다양한 만큼 사업본부가 6개로 이뤄져 있고 지원 부서까지 합치면 16개 부서가 있다.
정병국 사장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매주 월요일 아침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일이었다.
업무와 관계없이 세상사는 방법, 유머 넘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말단 직원이 사장으로부터 이메일을 직접 받는 경험은 새롭고 고마운 일이다.
이메일이 소통의 수단으로 정착되면서 애사심, 주인의식이 밑바닥에서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정병국 사장은 이런 교감에 대해 직원들에게 감사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매일 월요일 아침에 전 직원에게 보냅니다. 특별한 내용은 없고 업무적인 것 대신에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한 주의 첫 시작을 무겁게 가져갈 필요가 없지요. 이메일은 같은 샐러리맨으로서 직원들에게 즐거운 한 주를 시작하라는 격려인 동시에 직원 개개인들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한국인 사장으로서 과거의 외국인 사장 재직시 직원들과 사장 간에 있었던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사장의 관심이 직원들을 향하고 있다는 표현이면서 회사의 방침 때문에 100% 수용은 못해도 직원의 애로사항을 들어 주겠다는 의미이지요. 그러다 보니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애정도가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정병국 사장은 연 2회 전국 6개 사업장을 방문해서 커뮤니케이션 미팅을 하고, 연 1회 전 사업체에서 직원들과 비어파티를 진행한다. 이메일 외에도 여러 가지 소통 채널을 마련하여 적극 활용한다.
“솔직담백하게 직원들과 대화하고 민감한 급여 인상폭 등에 대해서도 편하게 이야기하면 모두 이해를 합니다. 아무리 기술력이 좋고 품질이 좋다 하더라도 인적자원이 가장 중요하지요. 직원들의 주인의식, 로열티, 애사심 등이 잘 배양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저의 몫입니다.”
한국 3M과의 인연
정병국 사장은 인하대학교 재료공학과 75학번이다.
학생회장을 지내며 활발한 대학 생활을 마치고 공학도로서 기술영업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기술영업에 뜻이 있었던 그가 처음 입사한 곳은 대우그룹 해외영업부였다.
약 1년 가까이 지금의 서울역 맞은편 대우그룹 본사에서 일했다.
그러다 당시 두산그룹 합작회사인 한국 3M에 지원을 하게 됐는데 그것이 3M과 인연의 시작이었다.
당시 한국 3M은 기술영업을 할 인재를 찾고 있었고 본인 또한 기술영업직이 적성에 맞았기에 입사를 결심했다.
현재 한국 3M의 매출은 1조 7천억 원에 달하지만 당시에는 연 매출 1백억 원이 안 되는 신생 회사였다.
그는 입사 후 12년 동안 샐러리맨으로서는 승진 가도를 달렸다.
회사의 성장과 함께 자신의 역량도 성장했고 1996년부터 마흔이 안 된 나이에 현지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인 전자제품 사업본부 본부장을 맡게 된다.
그때부터 1998년 말까지 정병국 본부장은 한국인으로서는 3M 최상위의 직위에서 일했다.
하지만 당시로는 현지인이 사장직에 오른 케이스가 없었기에 본부장 다음 단계에 대한 성취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드디어 마흔이 된 정 본부장은 자기 발전과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 위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미국계 반도체 회사인 에블레스틱 코리아 사장으로 부임하기로 결정한다.
최고위 임원이 회사에서 퇴직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의 의지로 그만두고 나간 사례는 전 세계 3M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당시 정병국 본부장은 큰 도전을 시도했다.
2003년 말까지 에블레스틱 코리아 사장으로 일하던 그는 자신의 사업을 펼칠 결심을 하고 2004년부터 싱가포르에 반도체 소재 분야의 기업 에이론 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한다.
그로부터 약 3년간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광야에 홀로 핀 야생화처럼 힘들게 회사를 운영한다.
모든 것이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기업과 달리 개인 기업은 사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고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월급쟁이 사장 시절과 개인이 직접 사업을 하는 것은 천지차이였습니다. 혼자 광야에서 비바람을 다 맞는 거지요. 한국도 아니고 타지에 나가서 사업을 하니 더더욱 고생이 심했습니다. 매달 어김없이 돌아오는 월급 날 종업원 급여를 주기가 힘들어서 한국의 보유 자산을 다 소진하게 되었을 때 정말 막막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강에 가서 빠져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겠어요?”
그는 드디어 2007년 5월 사업을 정리하기로 마음먹는다.
큰 고생 없이 순탄 대로만을 걸을 줄 알았던 정병국 사장의 사업 실패 얘기를 듣다 보니 다소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싱가포르 소재 3M사에 있는 미국인 지인들에게 재입사 의향을 밝혔지요. 한국 3M에서 20여 년 가까이 일했으니 대다수 중역들은 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음 달 바로 싱가포르 지사에 입사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3M은 퇴사한 사람도 다시 돌아와서 근무하면 받아주는 기업 문화가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했고 3M에서 일했을 때 성과도 내고 했으니까 저에 대한 증명은 되어 있었지요. 아주 흔쾌하게 재입사를 수락 받았습니다. ‘이게 3M의 문화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 지사에서의 근무 기간은 짧았다. 재입사를 하자마자 미국 본사에서 마침 한국에 자리가 비었으니 굳이 한국인이 싱가포르에 있을 필요가 있느냐, 한국에 가서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제안을 했다.
결국 그는 한국 3M 산업용제품 사업본부로 발령을 받는다. 이역만리 나가서 고생을 하다 본래의 자리인 한국 3M으로 다시 오게 된 것이다.
“당시 한국에는 3M 기술연구소가 설립되어 있었고 미네소타에서 수학한 이인희 박사가 부사장으로 있었습니다. 한국 3M은 그동안 놀랍게 성장해서 국내 대기업인 삼성이나 LG 등의 회사와 많은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3M은 우수 고객사로부터 저력이 있는 소재부품 전문기업으로 충분히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원칙을 준수하는 노사 소통의 중심
싱가포르에서 날아온 그에게는 커다란 미션이 주어졌다.
얽히고 꼬인 노사문제의 해결이라는 어려운 과제였다. 한국 3M은 2009년부터 나주와 화성의 공장을 중심으로 노조가 결성되어 회사와 오랜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노조 결성 시기에 미국인이 사장이었고 미국인 사장과 한국인 노조원들 사이에는 언어와 문화장벽이 높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때 그가 소통의 해결사로 나섰다.
“노사문제는 한 마디로 커뮤니케이션 장애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비결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직원들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노조원들도 우리의 직원 아니겠습니까?”
그는 본부장 직책에 있을 때부터 나주에 있는 노조간부들과 수시로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급하면 하루에 두 번씩도 내려갔다.
만나서 직원들끼리 속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애로사항이 풀리기 시작했다.
“운동장에 늦게까지 주저앉아서 옥수수를 나눠 먹으면서 회사가 할 수 있는 방법과 원칙, 회사의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외국인 상사가 아니다 보니 같이 다리 펴고 앉아서 이야기하다 보면 업무적인 면보다 인간적인 면에 더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이런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면서 원칙을 중심으로 될 것과 안 될 것을 논의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노조원들이 저를 많이 따라 준 것입니다.”
2011년에 3M 본사는 현지인을 사장으로 선발하였는데 그 시초가 바로 한국 3M의 13대 사장 정병국이었다. 이후 일본에서도 현지인이 사장으로 취임했다.
"제가 사장이 되고 나서는 아무래도 노조와의 소통이 더 원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비교적 빨리 얽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정병국 사장의 소통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이어진다.
“현재 한국 3M의 전체 인력은 약 1,600명 정도입니다. 공장은 화성과 나주, 기술연구소가 동탄, 본사가 서울, 유통센터가 평택과 양산에 있습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했던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은 우리가 소통을 하고 있다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저는 더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회사에서 진행되는 여러 직급/직능별 교육에도 자주 참석합니다. 교육 주제에 맞춰 간단한 교육도 할 뿐더러 교육 후 이뤄지는 식사자리에도 같이 참석해서 친근감도 키우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편안하게 듣습니다. 때로는 현안에 대한 제 이야기를 전달해서 직원들의 이해를 돕기도 하고요.”
노사관계 회복이나 조직문화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많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정병국 사장은 잘 알고 있고 믿는 만큼 실천하고 있다.
소통이 이뤄지면서 기존의 외국인 사장과의 언어 장벽으로 인해 발생했던 감성적인 부분의 취약성을 더 많이 포용하게 되었다.
한국 3M의 신제품 개발과 ‘펭귄 어워드’ 제도
지난 30년 동안 한국 3M의 매출은 100억 원에서 1조 7천억 원으로 증가해 3M 로컬 기업 73개 중 5위 안에 들어가는 쾌거를 이루었다.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한국 3M은 어떻게 고객 대응능력을 키웠을까. 정병국 사장은 신제품 개발이야말로 지속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3M은 40%의 룰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5년 동안 개발된 기술과 제품이 올해 매출액의 40%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야 경쟁도 덜하고 성장 마진을 적절하게 취할 수 있으며 고객과 가격 문제로 심하게 갈등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제품을 개발하면 상대적으로 시장도 선도할 수 있는 능력이 경쟁자보다 커지고 건실한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신제품 개발의 산실이 바로 동탄의 기술연구소입니다.”
한국 3M의 고객은 6개의 소재 부품 사업군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일반 소비자가 60%, 나머지 40%의 매출은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과 같은 대기업들이다.
“디스플레이, 휴대폰, 자동차가 분야가 가장 많은 매출을 차지합니다. 이러한 제품들은 모델에 따라 제품수명(End of Life)이 있습니다. 한 생명이 끝나면 새로운 모델이 개발되어 새로운 제품으로 출시되지 않습니까? 그 회사의 신규 모델에 우리의 신제품이 적용되도록 밀착 대응을 해야 하지요. 이러한 고객 대응 방식이 갑과 을의 가격 전쟁에서 한국 3M이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신규 모델의 업그레이드된 성능을 맞추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더 좋은 소재를 개발해야 하는데, 우리는 동탄 기술연구소에서 한국 3M이 가지고 있는 원천기술을 이용해서 제품을 개발하고 이것을 나주나 화성의 공장에서 만들어 공급하고 있습니다. 기술연구소는 연구원이 200명 정도 밖에 안되지만 고객사인 LG그룹, 삼성그룹의 사장단들이 와서 견학을 하고 갈 정도로 탄탄한 성과를 내는 곳입니다.”
LCD TV로 예를 들자면 한국 3M의 대표적 신제품인 DBEF 필름이 있다. 100겹의 필름을 압축시켜 놓아 LCD 광원을 최대한 밝게 해주는 필름인데 전력 소비량도 낮출 수 있고 밝기도 좋아 UHD TV에는 모두 사용을 하고 있다.
원천 기술은 미국에서 도입했지만 가공 기술은 모두 한국에서 개발하였으며 고객 요구에 맞게 바로 수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휴대전화의 경우 Optically Clear Adhesives라는 제품이 있다.
이것은 터치 패널을 장착한 스마트 디스플레이 제조에 꼭 필요한 접착제인데 애플이나 삼성이 주 고객이다.
한국 3M은 이 분야의 제품 개발 능력이 전 세계 3M 중에서도 최고 수준임을 인정받아 제품 개발을 통한 매출 증대에 기여한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시상하는 Golden Step Award 라는 글로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병국 사장은 무엇이든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고객의 니즈를 따라가는 기술을 개발해 3M의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동차의 경우 촉매장치를 감싸주는 매트가 필요한데 열전도도를 낮추어야 하는 특수재질이 필요합니다. 이 경우에도 3M의 제품을 사용합니다. 자동차 외관에 페인트를 칠하지 않고 필름을 붙이는 기술도 3M이 개발한 기술이지요.”
3M은 다양한 소재 개발 능력을 활용하여 어떠한 회사가 필요한 부품이 있다면 반드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그렇기에 지속적인 비즈니스가 가능하다. 한국 3M 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뛰어난 신제품은 국내 고객에게 공급될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3M 로컬기업들에게도 공급된다. 현재 약 3~4천 억 원의 수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3M은 각 국별로 경쟁력있는 제품이 있으면 타국가에 공급을 하는 네트워킹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3M의 제품과 기술이 좋다고 하면 3M 싱가포르이든 3M 차이나든 어디에도 판매할 수 있다.
3M에는 선의의 실수를 인정해주는 독특한 개발 문화가 있다. 이런 문화가 한국 3M도 성장시켰다.
‘펭귄 어워드’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3M에는 연구원들에게 15%의 시간을 각자가 창의적으로 사용하게 해 주는 제도도 있다.
이런 제도를 일회적 행사로 할 수 있지만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기까지는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펭귄 어워드’ 제도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물어보았다.
“3M은 실패에서 나온 제품인 ‘포스트 잇’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개발하다가 실패한 접착제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이를 상품화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 접착제를 메모지에 갖다 붙이니 히트 상품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실패가 용인되는 문화가 아니지만 우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펭귄상을 생각해 냈습니다. 펭귄은 겁이 굉장히 많습니다. 대장 펭귄이 먼저 물속에 뛰어 들어가야만 다른 펭귄들이 따라 들어갑니다. 물속에는 고래, 상어, 물개 등 천적들이 많습니다. 처음에 물에 들어간 대장 펭귄은 위험 부담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그런 펭귄이 있어야 다른 펭귄이 따라갈 수 있습니다. 펭귄상을 주는 이유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해 보라는 것입니다. 제품을 만들다 실패한 사람에게 펭귄상을 주면 왜 실패를 했고 앞으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통해 실패를 극복하는 문화가 조성됩니다. 결국 우리는 실패를 통해서 배웁니다. 펭귄상은 바로 우리 한국 3M에서 시작된 제도입니다.”
현재 한국 3M이 집중하고 있는 연구 분야는 Semi Conductor이다.
사물 인터넷의 상용화와 확대에 따라 반도체 공급 확대가 기대되고 한국이 반도체 산업을 리드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시장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현재 가능한 제품을 공급하는 것에서 5~10년 후 미래의 시장을 보고 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래의 메가트렌드를 진단하고 그것을 3M의 역량과 결합시켜 나가고 있다.
한국 3M은 규모와 연구개발 역량 등에서 전 세계 로컬 연구소 중 경쟁력이 매우 높으며 자발적 혁신과 협력적 혁신이 어우러진 연구 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혁신이다.
혼자만의 생각이나 역량만으로 혁신적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아이디어를 동료와 협력해서 더 성장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한국 3M
한국 3M은 다른 3M 로컬기업들과 비교할 때 인적 자원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3M 직원들은 매년 성과 관리 프로세스를 밟게 되어 있다.
각자의 업무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 계획을 세운 다음 개인의 책임 하에 자율적으로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창의성과 업무 주도성이 증대되면서 각자의 역량이 최대로 발휘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매년 개인별 경력개발 계획을 세우고 전체 활동 중 70%는 일을 통한 경험과 활동, 20%는 관계나 네트워크를 통해, 10%는 교육과정을 통해 자기 계발의 기회를 갖도록 하고 있다.
특히 직장과 개인 생활이 양립할 수 있는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을 강조한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연 근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올해 5월부터 도입된 이 제도는 업무 시간과 장소를 본인이 결정해 선택, 운영하는 제도로서 상사와 협의를 거쳐 생산성에 저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운영 가능하다.
“3M은 본사가 있는 미국 미네소타 지역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입니다. 또한 3M은 미국을 대표하는 30대 기업의 지표인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편입 기업에서 지난 30년 동안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미국을 대표하는 우량기업입니다. 한국 3M 역시 이미지가 좋습니다. 저는 사장으로서 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합니다. 입사지원자들이 한국 3M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이유 중 하나가 8시부터 5시까지 일하는 근무시간인데 사실 집중해서 일하면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시간은 각자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지요. 물론 저는 본사와의 시차 때문에 밤 8시부터 12시까지도 일해야 하지만 직원들에게는 회사만큼 가정이 편안한 것도 중요합니다. 직원들이 직장을 다니는 이유는 아이들 잘 키우고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아내한테 잘하고 가정을 책임지고 해결하는 가장의 역할을 위해서입니다. 저는 일 중독자를 바라지 않습니다. 물론 일보다 삶에 관심을 더 가지다 보면 나태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미국계 회사는 나태하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다만 조직문화가 균형감각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고 일과 가정생활을 잘 조절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직원들은 스스로 더 많이 회사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병국 사장은 고객사에 대한 대응은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해야겠지만 미리 준비하여 제때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개인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잔업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회사와 개인을 위해서 주말보다 주중에 고객의 요구를 다 해결해 주도록 노력하고 있고 가급적 토요일, 일요일 잔업은 안하도록 하려고 노력합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통상임금을 적용하기 때문에 주말 근무에는 비용이 많이 지출되면 부담이 있지요.”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고 이를 기준으로 휴일 수당이 지급된다. 따라서 회사도 생산성 관리를 통해 휴일 작업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휴일 근무는 회사나 직원 모두에게 좋을 것이 없다.
3M은 직급별 교육이 상당히 많다. 이런 직무 관련 교육을 할 때면 정병국 사장은 참석해서 삼겹살 소주파티까지 함께 한다고 한다.
“저는 직원들과 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좋습니다. 직원들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 농담도 많이 하고 점심때는 족구도 합니다. 게임할 때 ‘십만원빵’ 내기도 하고요. 하하. 물론 저는 가급적 잃어주려고 노력합니다. 족구뿐 아니라 볼링대회, 축구대회, 등산대회도 같이 하지요.”
정병국 사장은 사회공헌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 3M이 2002년부터 실시해오고 있는 대표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3M 사이언스캠프를 꾸준히 지원하고 있는데, 이 캠프는 미래의 과학영재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캠프는 융합과학교육을 지향하여 과학을 중심으로 창업, 디자인, 예술까지 통합한 프로젝트를 참가학생들이 직접 수행하는 체험형식으로 진행된다.
정병국 사장은 직원들의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필요한 물품이나 자재를 회사가 공급하도록 후원, 봉사활동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기회가 되면 정병국 사장이 직접 사회봉사 활동에도 참여하여 기업시민 정신을 실천하고 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한다.
외국계 기업으로서는 유일하게 존경 받는 기업 30위권
3M은 존경받는 기업으로서 미국에서 10위 안에, 한국 3M은 외국계 기업으로서는 국내 유일하게 30위권에 들어가 있다. 한국 3M은 어떻게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될 수 있었을까.
“한국 3M은 고도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직원들에 대한 배려도 올라갔습니다. 존경받는 기업은 구성원 외에 외부인들의 시각도 중요합니다. 미국 유명 컨설팅 회사에서 3M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이노베이션’입니다. 이 단어를 가장 많이 적용하는 회사가 구글, 애플, 3M 순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혁신의 대표적인 IT 기업 두 곳 다음으로 전통적인 제조 회사인 3M이 혁신기업에 올랐습니다. 저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3M은 미국회사인데 매우 한국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의 특색은 아마도 설립 당시의 상황 때문인 것 같습니다. 두산그룹 합작 회사로 시작된 한국 3M은 두산그룹의 인화단결, 3M의 이노베이션 정신을 바탕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 다 백년이 넘은 회사들입니다. 오래된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이 만나서 ‘인화단결+이노베이션’이 되었고 이것이 한국 3M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이 정신으로 우리는 팀워크를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그 예로 놀라운 사실이 있다. 한국 3M은 전 직원이 모두 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이 없다.
또한 구성원들이 노력하여 실적을 달성하면 공장의 직원들에게 인센티브 여행을 보내준다.
이렇게 한 지가 20년이 넘었다. 인센티브 여행은 처음에는 국내로만 시행되다가 요즘에는 해외로 가고 있다.
한국 3M에는 삼성, LG 등 대기업 출신의 직원들이 많이 전직해온다.
일단 입사하면 이직률은 1.5%로 매우 낮다. 3M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회사이다.
정병국 사장은 3M이 가진 강점의 문화가 바로 이 다양성이라고 강조하면서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회사는 여성 리더십 개발 등 여직원의 역량 개발과 발탁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3M의 여성 사무직 직원 비율은 21% 입니다. 한국 평균으로 봤을 때는 상대적으로 높지만 다른 지역 3M 로컬기업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는 낮습니다.
제가 도전하는 목표는 2018년까지 35%로 여성 직원을 늘리고 여성을 매니저급으로 더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여성 인력을 채용하려면 임신과 출산을 배려해야 합니다.
인력 활용을 증대하기 위해서 출산휴가, 대체 인력 투입 등의 여건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고학력 경력 단절 여성의 인적 손실이 크다.
여직원을 많이 선발하고 교육이나 커리어 관리를 통해 역량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3M은 남성과 여성의 공존, 다양한 인종의 공존을 고려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3M 본사의 사장은 유럽인, 회장 밑의 고위 임원 15명 중 미국인이 3명 정도이고 나머지가 모두 외국인일 정도이다.
‘겸손’과 ‘넘침(Overflow)’
인생을 물 흐르듯이 순조롭게만 살 수 있다면 좋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과거의 성공은 화려할수록 추억이 되고 실패는 아프긴 하지만 이후에는 좋은 경험으로 남는다.
개인 사업을 하던 시절 강에 가서 빠져 죽을 결심까지 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지만 그 일이 나중에 노사문제를 풀 때 오히려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그는 후배들에게 ‘겸손’과 ‘넘침(Overflow)’을 얘기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 3M의 당면한 과제였던 노사문제를 저는 개인 사업을 통해 겸손을 배웠기 때문에 풀 수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40세가 안 된 나이에 본부장을 했고, 사장을 40대 중반에 했고, 개인 사업을 외국에서 했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어요. 정상까지 오르지도 못하고 나락에 떨어졌지요. 추락하는 것은 금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3M에 돌아와서 노사문제를 맞닥뜨리고 보니 예전에는 없던 저만의 눈이 생겼습니다. 처절하게 어려움을 겪다 보니 인간성과 인간사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졌다고나 할까요. 노사분쟁을 하다가도 배고프면 운동장에 쪼그리고 앉아 같이 빵을 먹고 함께 토론을 했습니다. 어려움을 겪어보았기에 공장의 말단 작업자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실패를 통해 겸손을 배웠고 그 겸손이 노조원들에게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오전에 나주공장 풀밭에 앉아 노조원들과 이야기하고 오후에 서울에서 사장을 만나서 쟁점에 대한 의논을 하고 다시 저녁에 내려가서 그들을 만났다고 한다.
“노조원들이 정병국이라는 한국인 임원의 진정성에 대해 어느 정도 감동을 했고 이 사람과는 대화가 되겠다는 생각한 것 같습니다. 서서히 노조 측에서 저의 마음을 받아주었습니다. 저도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고 직원 아니겠습니까.”
임원으로서 그렇게까지 한다는 것이 어쩌면 과하다고 보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넘침’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거래처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젊은 날 자신이 응대했던 한 가지 사례를 언급하였다.
당시 거래처 중 새한미디어라는 회사가 있었다. 충주에 위치한 공장은 서울에서 약 2시간 이상을 달려야 갈 수 있는 거리였다.
1990년 당시 한국 3M은 이 회사에 비디오테이프를 걸어놓는 행거를 판매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11시, 시간당 수천 개가 나오는 행거용 자동 기계장치가 고장이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장치가 고장이 나면 나중에 수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공장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고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연락을 받은 그는 기계 고치는 사람을 수소문해서 밤 12시에 그를 태우고 달렸다.
2시간 거리를 1시간 만에 주파해서 급박하게 수리에 들어갔다. 공장에서는 수리하러 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단단히 별렀다고 하는데 1시간도 안 걸려 허겁지겁 달려온 그를 보고 깜짝 놀라 아무 소리를 못했다고 한다.
당시 그 회사의 회장 부부도 충주에 거주하고 있던 터라 그분들도 나서서 수작업을 도와주고 있던 실정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분들이 도착한 그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이 잘 마무리되었던 것이다.
겸손하고 좀 넘치게 일하는 것, 정병국 사장이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원칙이다.
“혹시 < 역린 >이란 영화를 보셨나요? 정조의 내시 역할로 나오는 정재영의 대사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배어 나오고 겉으로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게 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면 본인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정병국 사장은 2012년 한국경제 올해의 CEO 대상을, 2013년 동아일보 한국의 최고경영인상을 수상했다.
2014년도에는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대상을 수상한 저력도 가지고 있다. 그는 일을 할 때 특히 더 ‘넘침'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제가 좀 끈질깁니다. 저 뿐만 아니라 직장인이든 사업가든 쉽게 포기하면 할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강한 경쟁자도 실수를 하게 마련이고 끈기가 있다면 기회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위기가 기회가 되고 최선을 다하면 저절로 자기 그릇 보다 넘치는 Overflow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주위에서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느 사장이 아까운 인재를 그냥 두겠습니까?”
누군가에게 주어진 그릇에 담긴 물이 차고 넘치게 되면 모두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더 큰 그릇을 주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임원 자리에 올라가고 CEO의 위치에 올라간다.
주어진 그릇에서 차고 넘치게 만들어라. 윗사람 이를 보고 그 물이 아까워서라도 더 큰 그릇을 내줄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라.
흔히 훌륭한 리더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비유하지만 지휘자는 관객을 볼 수 없는 단점이 있다. 그는 지휘자 보다는 판소리의 ‘고수(鼓手)’가 되라고 말한다.
“고수는 판소리에서 명창과 관객의 반응을 보고 전체적인 조화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CEO는 바로 이 고수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혁신을 통해 시장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판단해 시장지배력을 높여 나가는 한편 직원들과의 소통을 확대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존경받는 기업으로서의 명성을 유지해 나가도록 이끌어가는 것이 바로 고수 같은 CEO입니다.”
겸손과 넘침으로 풍요롭고 특별한 세상을 만드는 소재 부품의 혁신가 정병국 사장.
그는 진정으로 청중과 함께 호흡하는 판소리 고수와 같은 CEO, 고객들과 직원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넘침’의 고수였다.
고수, 그 의미의 잔잔한 파장이 가슴에 와 닿는다.